PUA - 398화 강철의 마법사 (1)

 ◈ 398화 강철의 마법사 (1)


“벨카트! 자네가 대체 왜!”


데릭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둘은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면식은 있었다.


적어도 벨카트가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데릭으로서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림레이는 딸의 복수 때문이라지만 벨카트는?


죽어 버린 레슬리의 이름까지 사용하면서까지, 대체 무얼 할 생각이란 말인가.


불현듯.


데릭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설마 자네, 친구들의 복수를 하고 싶어서인가?”


“……친구?”


루드거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데릭이 복잡한 얼굴로 벨카트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자벨라와 레슬리, 벨카트는 오래전부터 친구였네. 세 사람은 항상 한 몸인 것처럼 붙어 다녔지. 그건 진리학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어.”


매사에 긍정적이고 해맑았던 이자벨라.


어리바리하지만, 누구보다 사려가 깊고 상냥했던 레슬리.


냉정하지만, 그렇기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었던 벨카트.


서로 다른 세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모인 그들은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팀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가 틀어진 것은, 결국 그날의 사고 때문이었지.”


루드거는 데릭이 말하는 그날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자벨라가 카사르 분지에 가서 마력 폭풍에 휘말린 날.


그때부터 세 사람의 관계는 사실상 무너지고 말았다.


“레슬리도 그때 죽은 게 아니었던 겁니까?”


“레슬리는 그날 카사르 분지에 있지 않았네. 그런 그가 행방불명이 된 것은 이자벨라가 죽은 1년 뒤의 일이야. 그야말로 홀연히 사라졌지. 누구도 그의 행방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그래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 거였군요.”


“하지만 가능성까진 부정할 수는 없었네.”


데릭은 그래서 이번 일의 배후가 레슬리라 생각했다.


정혼자인 이자벨라의 복수를 위해서 행동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그 진짜 정체가 벨카트였을 줄이야.


데릭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카사르 분지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마법사가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헛소문이라 생각하고 금방 묻혔네.”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 주장을 하던 사람이 1년 뒤에 사라져 버렸으니까.


“레슬리는 자기 홀로 카사르 분지로 향했던 거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지.”


이자벨라도 죽고, 레슬리도 죽고.


함께 어울려 다니던 3명 중 남은 것은 이제 한 명뿐이었다.


10년을 넘게 지내온 친구 중 둘이나 죽었을 때, 홀로 남겨진 벨카트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벨카트. 그래서 이러는 건가?”


데릭의 눈빛에 착잡함이 가득했다.


“죽은 친구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서로 친했던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한때 진리학파 출신의 동문으로서, 저렇게 타락해 버린 벨카트의 모습에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산 사람은 살아서 떨쳐 내야 하지 않겠는가.


벨카트는 그런 데릭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변명도, 수긍도 없이 그저 이쪽이 멋대로 생각하라고 놔두는 것 같았다.


‘이쪽이 진짜 퍼스트 오더였나.’


루드거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림레이가 퍼스트 오더인 줄 알았다.


림레이는 베테랑 6위계 마법사다.


어딜 가도 최고의 전력으로 꼽히는 그가, 고작 버림 패였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의외로군.”


벨카트는 데릭에게서 시선을 돌려 루드거를 응시했다.


“설마 그분이 실패했을 줄이야. 저택이 완전히 붕괴했기에 성공적으로 끝난 줄 알았거늘.”


벨카트는 루드거를 보고도 딱히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루드거가 이곳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루드거에게 여기서 곧 벌어질 일에 대해 따로 경고하거나 말해 주지 않았다.


같은 퍼스트 오더이든 뭐든, 그가 자신의 임무 지역에 온 이상 방해하면 그냥 죽이면 됐으니까.


애초에 검은 여명회의 간부들이 이렇다.


자신의 임무를 위해서는, 혹은 살기 위해서는 다른 간부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림레이에게 경계하라고 주의를 주기까지 했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존 도우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림레이가 존 도우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는 소리다.


“그런가. 그분은 죽은 건가.”


슬픔의 감정은 없었다.


그보다 당장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앞에 있다.


‘림레이를 쓰러뜨린 것은 저 남자겠지.’


퍼스트 오더 [존 도우]


처음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같은 퍼스트 오더였지만 존 도우는 오로지 제로 오더에게만 충성했고, 다른 간부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휘하에 부하들을 잘 두지도 않고, 주로 혼자서 활동하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존 도우가 그간 보여 준 행적은 잠입과 변장, 암살, 정보 수집에 특화된 것이었다.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은 요인을 없애고, 거짓된 정보를 뿌려 분쟁을 일으키고.


아마 평생을 그렇게 움직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존 도우는 세오른의 교사로 잠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듯, 존 도우는 많은 파란을 일으켰다.


때로는 같은 퍼스트 오더로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로 오더가 믿었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존 도우가 자신을 막기 위해 찾아왔다.


검은 여명회를 배신한 거냐는 말은 무의미했다.


존 도우를 먼저 죽이려 했던 것은 자신이 아닌가.


‘비원을 코앞에 둬서 그런가, 괜히 잡생각이 많아지는군.’


그래.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서로 죽고 죽이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존 도우. 아니, 루드거 첼리시.’


벨카트의 시선 안에 담긴 생각을 읽어 낸 것인지 루드거 또한 한층 싸늘해진 시선으로 응대했다.


데릭이 외쳤다.


“벨카트! 이만 멈추게! 자네는 지금 대학살을 벌이려 하고 있어!”


“데릭. 세상 물정 모르고 정의로운 행세를 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군. 내가 지금 무얼 하려는지도 모르고 여기에 있는 줄 아나?”


“지맥 2개가 무너져도, 아직 남은 지맥이 있어! 그리고 자네의 부하들은 다 죽었고.”


데릭의 말 대로였다.


검은 여명회의 세컨드 오더들과 서드 오더들은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지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쪽도 마찬가지지. 동시에 일을 진행했을 텐데 터진 곳은 하나야.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우리가 막아 냈다는 소리일세.”


그러니 항복하라고.


데릭은 그렇게 경고했다.


그런 데릭의 경고에도 벨카트는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가 왜 절벽에서 계속 폭탄을 터뜨렸는지 아나?”


“당연히 지맥을 파괴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것도 맞지만, 정확히 파괴만을 위한 것은 아니야. 되면 좋지만, 그러기엔 이 땅은 조건이 까다롭거든.”


벨카트는 폭발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응시했다.


“이곳의 지맥은 절벽의 기암 괴석 아래에 흐르고 있다. 지맥이 다른 곳에 비해 유독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지. 내가 지맥을 터뜨리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아니야. 지금까지의 과정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던 거야.”


“뭐라고?”


“너희는 나를 막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과연 제대로 막은 게 맞을까?”


벨카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절벽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직후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폭발의 흔적이 남은 크레이터 곳곳에서, 미약하지만 푸르스름한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밀도의 마력으로, 지맥에서 흐르는 일부 마나가 새는 것이었다.


데릭은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도, 아직 지맥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정도로는 괜찮아. 아직 위급할 정도는 아니야.”


“그렇겠지. 하지만 절벽은 임계점을 코앞까지 맞이했다. 여기서 마법이 내리꽂힌다면 어떨 거 같나.”


“뭐?”


“그전까지는 힘을 아끼기 위해 가만히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벨카트는 부유 마법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는 50여 명의 마법사와 기사들을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지닌 모든 힘을 이용해 그 물러진 절벽을 파괴할 생각이다.”


단순히 말뿐인 경고가 아니라는 듯 벨카트의 주위로 거대한 마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막아 보도록.”


“이, 이런!”


무려 6위계 마법사의 공격이다. 그런 그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곳에 모인 50명의 사람이 합을 맞춰서 싸운다면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위치였다.


절벽의 틈새로부터 푸르스름한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이곳의 지맥은 꽤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 곳에서 6위계 마법사와 싸우라고?


이쪽은 지켜야 하는데, 반대로 저쪽은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


숫자만 보면 우세하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이 그들에게 불리한 것이다.


막아야 한다.


데릭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려는 순간, 그보다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허공을 향해 솟구친 한 줄기의 섬광.


거대한 열량을 머금은 섬광은 단순히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이 아닌, 모든 걸 꿰뚫는 대포였다.


그것을 펼친 것이 루드거 첼리시임을 알고 눈을 크게 뜬 데릭은, 심지어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막아 내는 벨카트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거대한 광량의 빛이 실드와 충돌하며 수 갈래로 갈라져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광경에 마법사들이 시선을 빼앗길 때, 루드거가 일갈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어서 몰아세우지 않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벨카트를 공격하기 위해 술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벨카트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루드거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도, 그는 동시에 다른 술식을 펼치며 주위에 마법을 자아냈다.


흔히들 더블 캐스팅이라 불리는 방식.


현재 방어 마법을 먼저 유지하고 있었기에 공격으로 전환하는 마법은 단순화될 수밖에 없었다.


벨카트는 그것을 막대한 마력을 때려 박는 것으로 대체했다.


단순한 마력 방출, 그것도 마력의 구체를 만들어 쏘지도 않고 떨어뜨리는 방식.


하지만 그 마력구에 담긴 마나는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오랫동안 쥐어짜 내야만 가능한 양이었다.


저것이 절벽 위에 충돌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막아!”


“방어 마법을 사용해!”


밑에서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급하게 방어 술식을 펼쳤다.


그들은 마력을 한데 모아 벨카트의 마력구가 떨어지는 곳에 실드를 펼쳤다.


직후 실드와 마력구가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를 자아냈다.


40명에 가까운 마법사와 벨카트 개인의 힘겨루기는 놀랍게도 무승부를 이루었다.


마력구와 실드가 동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느꼈다.


가까스로 막아 내 숨을 헐떡이는 이쪽과 다르게 벨카트의 표정은 별일 없다는 듯 평온하다는 걸.


그 정도로 수준의 격차가 컸다.


“당황하지 마라! 어차피 여기서 물러나면 모두 죽는다!”


오러가 깃든 바렌치나의 목소리가 절벽 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말이 겁에 질린 마법사들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막겠다! 다들 버티는 데 집중해라!”


바렌치나는 벨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유 마법을 사용하는 벨카트는 높은 허공에 있다.


당연히 그냥 뛰어오르는 것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


그때 데릭이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한 돌기둥이 비스듬하게 솟아올랐다. 바렌치나는 돌기둥을 밟고 벨카트를 향해 다가갔다.


“상급 기사인가.”


벨카트는 바렌치나의 목소리에 깃든 오러의 양으로, 그녀가 상급 기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방어 마법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기사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오러가 지닌 힘이었다.


강한 기사가 사용하는 오러일수록, 마법사가 혼신을 다해 만든 실드 따윈 종잇장처럼 찢어 버린다.


“다가오기 전에 막으면 그만이지.”


벨카트가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서 거대한 금속의 직육면체가 나타나 바렌치나를 향해 떨어졌다.


한 면의 길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크기였다.


바렌치나는 그대로 연보랏빛 오러가 깃든 검을 휘둘렀다.


금속 마법은 새빨간 단면을 드러내며 두 조각이 나 좌우로 흩어졌다.


그 순간, 금속 안에서 숨겨져 있던 거대한 전류가 방출되었다.


“무슨?!”


바렌치나는 당황해하면서도 몸에 오러를 두르며 뒤로 백 덤블링을 하듯 물러났다.


직후 전류의 파장이 그녀가 서 있던 돌기둥을 휩쓸었다.


벨카트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위로 강렬한 전류 코일을 뿜어내는 두 금속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바렌치나를 압박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데릭이 외쳤다.


“조심하게! 벨카트는 금속 마법과 전기 마법의 대가야!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위험해!”


벨카트는 레슬리라는 정체를 감추고 있을 때도 금속과 전기 속성 마법을 수준급으로 사용하는 마법사였다.


그 분야에 있어서 벨카트는 위계가 높은 마법사와도 견줄 정도였다.


그런 벨카트가 사실은 6위계 마법사였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그의 주 마법이 이제 얼마나 강할지 추측도 불가능했다.


그때 루드거가 나섰다.


바렌치나에게 신경이 집중되느라 잠시 허점이 생긴 틈을 타, 루드거는 벨카트의 지척까지 접근해 마력이 담긴 지팡이를 휘둘렀다.


벨카트는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을 뻗었다.


활짝 펼친 손 앞에 금속의 부스러기들이 모이더니 한 자루의 검이 생성됐다.


마그네타 소드(Magnetar Sword)


카앙!


두 무기가 서로 충돌했다.


루드거는 곧바로 지팡이를 회수하며 마법을 펼치려 했지만, 지팡이는 벨카트의 검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앞에서 금속을 함부로 휘두르면 안 되지.”


어느덧 벨카트의 주위로 무수한 금속의 창들이 생성되더니 루드거를 향해 쏘아졌다.


* * *


카사르 분지와 가장 인접한 도시인 팰릭스 시티에서는 현재 이상 현상이 연달아 벌어졌다.


평소에 잘 움직이던 마차가 멈췄고, 안개가 자주 끼던 날씨가 유난히 맑아진 것이다.


시민들은 평소와 다른 상황에 당황했고, 저 멀리 보이는 카사르 분지의 새하얀 돔이 전보다 더 옅어진 것에 크게 경악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정작 놀라게 만든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저기, 원래 저쪽에 산이 있었나?”


하룻밤 사이에, 없던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더 나아가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 산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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