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49화 각자의 선택 (2)

 ◈ 249화 각자의 선택 (2)




케이시 셀모어는 잠이 들었다.




정확히는 기억의 탁류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일전에 와 봤던 거대한 흐름.




거세게 휘몰아치는 강물 속에 갑자기 내던져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케이시는 차분하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원치 않는 기억의 흐름에 휩쓸릴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이곳은 이미 한번 와 본 곳.




‘이전과는 달라. 바로 찾아갈 수 있어.’




케이시는 기억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할 때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두 번째가 되니 훨씬 쉽고 더 빨랐다.




케이시는 끝내 자신이 읽다가 멈춰진 부분까지 도달했다.




물의 잔향이 느껴지는 기억의 코앞에.




‘가자.’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말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케이시는 기억의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전처럼 시야가 암전하고 다시 빛을 되찾았다.




뒤이어 보이는 광경은 그날 보았던 기억의 다음 이야기.




제임스 모리아티가 오르도 대학교의 정교수가 된 이후의 모습이었다.




케이시는 이전과 다르게 조금 차분해진 마음가짐으로 제임스 모리아티의 행적을 지켜봤다.




정교수가 되었음에도 그의 삶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르테를 가르친다.




그나마 변화라고 한다면 정교수가 되면서 주기적으로 오르도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강의하는 것 정도.




‘왜 세오른에서 교사로 잘 활동하나 했더니, 이때의 경험이 도움이 된 거였구나.’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연구, 연찬, 강의.




그럼에도 제임스 모리아티는 차근차근 그 명성을 쌓아 가고 있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당장 오르도 대학 부지를 걷고만 있는데도 여학생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는 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 위해서라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핑계였고, 이 잘생긴 교수와 어떻게든 말을 붙여 보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하이고. 학생들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




반투명한 상태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케이시는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하여튼 요즘 얘들은 모르겠단 말이야. 왜 이렇게 위험한 남자에게 끌린다는 거지?’




“다들 몸조심해서 집에 들어가게.”




“네, 네!”




“꺄아! 교수님이 우리 걱정을 해 주셨어!”




그리고 의외의 모습이라면 루드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학생들에게도 은근히 친절하게 대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여학생들이 떠나고 곧바로 평소의 무표정하고 싸늘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철저한 가면으로 이루어진 모습.




케이시는 그 이질감을 곧바로 잡아냈다.




‘그보다…… 여전히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 건가?’




루드거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펴보았지만, 그는 케이시에게 걸릴 만한 수상한 짓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의 반복.




그저 반복되는 강의.




루드거는 다른 사람과 인맥을 쌓으려 하지도, 거기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먼저 다가오는 쪽에 한해서는 따로 내치지 않고 받아 주기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처세술이나 다름없지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어떻게 봐도 청렴결백한 교수의 전형적인 삶이 아닌가.




학생들을 보낸 루드거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정교수가 된 이후로 상당히 넓은 집무실을 받았는데,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한 책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커다란 칠판이 걸려 있었다.




칠판 위에 새하얀 분필로 적혀 있는 것은 그가 한창 연구하고 있는 위상 수학과 관련된 것들.




제임스 모리아티는 조교를 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커피나 홍차를 마실 때도 본인이 직접 탔다.




루드거는 신문을 읽으며 느긋하게 커피의 맛을 음미했다.




이윽고 신문을 다 읽은 루드거는 그것을 한쪽에 고이 접어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광경. 어디서 본 거 같은…….’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라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에 의아해할 무렵이었다.




덜컹.




루드거의 집무실 문이 불현듯 열리더니,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방 안을 청명하게 울렸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루드거가 고개만 살짝 들어 갑자기 들어온 침입자를 흘겨보았다.




등 뒤의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한쪽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하는 저 모습.




케이시는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기억 속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맞아. 이때였어!’




케이시의 내면의 외침 직후 그녀와 같은 맹랑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여기에 제임스 모리아티라는 사람이 있다면서요?”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3년 전의 케이시 셀모어.




지금보다 좀 더 어려 보이며.




한창 천재 명탐정으로 명성을 높이며 세계 곳곳을 떠돌던 시절의 자신이었다.




3년 전의 케이시는 매우 자신감이 넘치고 도전적인 성격이었는데, 그것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였다.




‘어…… 내가 원래 저렇게 재수 없게 생겼던가?’




케이시는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떨떠름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3년 전의 자신은 뭐라고 해야 할까……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았다.




물론 변명이 없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 때는 연달아 미제 사건을 해결해서 한창 콧대가 높아졌을 무렵이었다.




그러던 차에 위상 수학을 연구하며 이름을 알리는 천재 교수에 대한 소문을 들어 버렸으니.




호기심 차 찾아갔음에도 ‘이 몸이 친히 행차해 주지’ 하는 마인드가 은연중에 섞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뭔가…….’




부끄럽다.




현재의 케이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래. 내가 바로 제임스 모리아티라네. 그러는 자네는 누구인가. 우리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루드거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온 불청객에게 화를 내는 대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고요? 정말 제가 누구인지 모르세요?”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남의 집무실에 멋대로 들어오는 사람을 내가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군.”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들어는 봤을지 모르겠네요. 저 케이시 셀모어의 이름을요.”




‘아…….’




현재의 케이시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는 과거의 자신 모습을 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철부지 시절의 자신이 벌이는 짓을 아무리 후회한들 지금 상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케이시 셀모어라…….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로군. 천재 탐정이라 불리며 여러 사건을 해결했다고.”




“오. 알아주시네요?”




“신문에도 많이 나왔으니 말일세.”




매일 신문을 읽는 루드거는 거기에 자주 적힌 케이시의 이름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명한 탐정이 이런 별 볼 일 없는 교수에겐 무슨 이유로 찾아왔나.”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에요. 최근 오르도 대학교에서 새로운 교수가 취임했는데, 워낙 유명하다고 해서요.”




“과분한 말이로군.”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냥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뿌듯해하셔도 좋아요. 제가 칭찬해 드리는 거니까요.”




“…….”




루드거가 ‘이 사람은 대체 뭐지?’ 하는 시선으로 케이시를 응시했다.




‘그만해!!!’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재의 케이시는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도 메모리 스토밍을 끊고 다시 바깥으로 도망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였다.




과거의 케이시가 루드거를 향해 책을 한 권 내밀었다.




“혹시 사인 가능하신가요?”




“내가 집필한 책이로군.”




“예. 위상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책 잘 읽었어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더라고요. 젊은 나이에 이런 이론을 떠올리다니. 역시 천재 교수가 불리실 만해요.”




“천재라 불릴 정도는 아니네. 그래도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니 부족한 이름이라도 하나 보태 주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케이시가 건네준 책의 첫 페이지에 제임스 모리아티라는 이름을 적었다.




잉크 적신 깃펜으로 적은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갈한 글씨였다.




케이시는 그것을 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님. 혹시 필적학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루드거는 케이시의 물음에 그녀를 힐끔 보더니 답했다.




“들어는 봤네. 사람의 손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과 심리, 성격과 특이함을 알아차리는, 이른바 유사 과학이지.”




“유사 과학이라.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골상학, 관상, 혈액형. 이런 것들과 비슷한 부류죠.”




“그걸 갑자기 물어보는 이유가 뭔가?”




“유사 과학이라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신경을 쓸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님은 필체가 정말로 정갈하시네요. 마치 타자기로 찍어서 내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보통 그런 사람들은 편집증일 정도로 깔끔을 떨거든요. 글자 하나하나의 획 끝처리가 조금이라도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는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죠.”




케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어질러져 있는 책과 종이들.




칠판 아래는 청소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하얀 분필 가루가 가득했다.




“청소를 안 한 지 얼마나 되셨죠?”




“글쎄.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을 거네만.”




“그런가요? 아, 조금 전 이야기를 이어서 하면. 보통 이런 부류는 두 가지더라고요. 하나는 방금 말한 대로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에 사소한 것도 절대 넘겨짚지 않는 사람이죠. 다른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노골적으로 속이 보이는 물음에 루드거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물었다.




“그렇게 말하니 궁금하기는 하군. 그래서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




“세간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것을 필사적으로 감추는 사람이죠.”




“…….”




케이시가 어때요?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고, 루드거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응시했다.




이윽고 루드거가 피식 웃으며 사인을 마친 책을 케이시에게 돌려주었다.




“흥미로운 분석이군.”




“어머. 그런가요?”




“그렇네. 그리고 나 또한 부족한 소양으로 한마디 하자면, 기왕 구매한 책은 끝까지 읽어 보는 게 좋을 거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 책은 초판본이라 아직 종이의 질이 썩 좋지 않은 필레피소스산 종이를 사용했다네. 페이지의 넘김이 좋지만, 조금이라도 험하게 다룬다면 손때가 타고 종이가 쉽게 눌리는 것이 특징이지.”




케이시는 건네준 책을 받으며 도발적인 시선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방에 들어오면서 책을 손에 쥔 자세부터 이쪽에 넘겨주기까지. 자네는 책을 그렇게 썩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겠더군. 그런데도 책은 중간 이후부터는 놀라울 정도로 페이지가 깨끗했지. 눌린 자국도, 손길이 탄 흔적도 보이지 않아. 글의 내용을 절반만 읽었다는 거지.”




“그사이에 보신 건가요?”




“본 게 아니라 보였을 뿐이라네.”




“관찰력이 뛰어나시군요.”




“아무렴 천재 탐정의 앞에서는 자랑거리조차 되지 않겠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마치 불꽃이 튀기는 것처럼.




“재미있네요.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님.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군. 나 또한 자주 뵐 것 같아. 케이시 셀모어 탐정.”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이때의 나는 이랬구나.’




케이시는 이제 반쯤 포기하며 3년 전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던 자신을 응시했다.




그때 제임스 모리아티를 만나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머릿속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꼈었다.




당신의 케이시는 모든 것이 식상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였다.




사건을 해결하고 명성을 얻고 주위에서 천재라고 추앙해 주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족감은 짧았다.




케이시는 사람들이 띄워 주면 띄워 줄수록 묘한 공허함을 느꼈다.




별거 아닌 것에도 호들갑을 떨고,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됐다.




많은 사람을 만났음에도 홀로 무인도에 고립된 기분이었다.




주변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




그것이 천재가 지닌 고독함이라는 걸.




그리고 천재만이 지닐 수 있는 오만한 태도라는 걸 당시 그녀는 몰랐다.




그래서 젊은 천재 교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케이시 셀모어는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임에도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는, 적어도 그녀가 아는 다른 멍청한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본능적으로 깨닫고 말았다.




이 사람도,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걸.




루드거 또한 느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 그랬어.’




케이시 셀모어는 그 이후, 오르도 대학교의 사람들과 지내며 자연스럽게 루드거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루드거 또한 처음에는 자꾸 찾아오는 케이시를 귀찮게 여겼지만, 특이한 성격의 그녀에게 흥미를 품은 것인지 곧장 말동무가 되어 주고는 했다.




서로 만나서 나누는 대화라 해 봤자 건실한 대화보다는, 서로를 향해 날 선 느낌으로 툭툭 던지는 쪽에 가까웠다.




그것은 당시 케이시가 보여 줄 수 있는 나름의 호의적인 표시였고, 루드거도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았던 이런 일상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델리카 왕국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밤중에 사람들이 행방불명된다는.




그것이 당시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주로 사라지는 것은 어린아이들이었으며.




대부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밑바닥의 사람들이 죽건 말건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연쇄 행방불명에 대해 다루는 신문사도 없었고, 간혹 다루는 신문사도 후면의 구석에만 살짝 ‘실종자를 찾습니다’라는 정도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루드거는 그 사소한 부분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린아이 위주로 행방불명이라…….”




고민이 들었다.




괜히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지만 감이 좋지 않았다.




오늘 돌아가면 아르테와 셀리에게 조심하라고 전하자.




충고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루드거는 그렇게 다짐했다.




“선생님!”




평소와 같이 오르도 대학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루드거는,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아르테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제, 제 동생! 셀리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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