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54화 세리단 아이언피트 (1)

 ◈ 254화 세리단 아이언피트 (1)




루드거와 한스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감시가 삼엄하더라도 모두가 밤을 지새우며 경비를 설 수는 없을 터.




예상대로 작업 시간이 끝나자 감시자 중에서 절반 이상은 자리를 떠났다.




남은 감시자들은 허튼짓하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길 듯이 흉흉한 시선으로 노예들을 노려보았다.




이미 그에 따른 전례가 있어 노예들은 몸을 사리며 되도록 그들의 눈에 띄지 않고자 했다.




대부분 노예로 붙잡혀 온 아인종들은 눈빛에 총기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하루 살고, 하루 견디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모든 노예가 그러지는 않았다.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의지.




이 숨 막히는 지하 탄광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열의.




눈동자 안에 그런 뜨거운 불꽃을 내재한 자는 이런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존재했다.




세리단 아이언피트가 바로 그러했다.




“어디 두고 봐. 이 빌어먹을 광산, 싸그리 날려 버리겠어.”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




세리단은 겉으로는 인간들의 명령에 승복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이 답답한 광산을 탈출할 계획을 짰다.




반란은 불가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결국 체구가 작은 드워프.




홀로 망치를 쥔다 해도 총 앞에서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를 제외한 다른 붙잡힌 자들은 전부 희망을 놓고 있었기에, 그녀의 뜻에 동조해 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시자들 사이에는 마법사가 있었다.




상대가 마법사라면 기습해도 이길까 말까인데, 정면 승부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




그렇기에 세리단은 다른 길을 택했다.




“이것만 완성된다면.”




레어 메탈을 채굴하면서 그녀는 다른 금속 부산물을 꾸준히 챙겼다.




감시자들은 모르지만, 이런 부분에 지식이 특화된 세리단은 알 수 있었다.




화약의 원재료이자,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폭발력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조각들을.




세리단은 이곳에 갇혀 지낸 지난 1개월간 열심히 화약의 재료를 모았고, 감시자들의 시선을 피해서 폭탄을 만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장장 한 달간 준비된 폭약들.




세리단은 특유의 작은 체구를 살려 이 갱도 곳곳의 좁은 틈새에 폭탄을 몰래 설치했다.




물론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자칫 잘못 건드리면 터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폭발의 위력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한다면, 이 갱도째로 완전히 붕괴되어 그녀 또한 무사할 수 없었다.




그런 것까지 충분히 감안하려면 조금 더 세밀한 조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조정의 기간이 또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조정 기간을 거치면 그 두 배가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러면 늦을 수도 있었다.




멋대로 사람을 납치해서 광산 노예로 부리는 놈들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을 바꿔 먹어서 다 죽일지도 모를 일.




“차라리 지금이라도…….”




세리단이 그렇게 각오한 순간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중하는 것이 좋을 거다.”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리단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원래 아무도 없어야 할 그곳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어떻게?”




감시자들의 순찰 루트와 타이밍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올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세리단이 마냥 방심한 것은 또 아니었다.




예기치 못하게 누군가 올지 모르는 상황을 상정해서 상시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자가 말을 걸기 전까지 저곳에 누가 서 있는지도 몰랐다.




말 그대로 유령처럼,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익……!”




세리단이 손에 쥔 폭탄을 터뜨리려고 하자 남자, 루드거가 고개를 저었다.




“기세는 좋다만, 지금 거기서 터뜨리면 모두가 죽는다. 그걸 바라는 건 아닐 텐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 확실히 그 말은 맞군. 이 상황에서는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당신 뭐야?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여기 사람들과 좀 다른데?”




세리단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눈앞의 남자는 이곳을 감시하는 자들과 상당히 달랐다.




복장도 복장이지만, 일단 분위기부터 그러했다.




“드디어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나 보군.”




루드거는 그런 세리단을 보며 웃었다.




“일단 폭탄부터 치우고 이야기하지.”




* * *




세리단은 순찰을 도는 자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단순한 제압이 아니라 전부 죽인 것이었다.




순찰을 도는 사람들의 숫자는 전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 죽는 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하나씩 정리했다. 단지 그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이, 눈앞의 샌님같이 생긴 청년이라는 사실에 세리단은 몸을 떨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것이 뭐야?”




“이곳에 들어오면서 그쪽을 유심히 지켜봤네. 꽤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더군.”




루드거는 세리단이 설치했던 특제 폭탄 하나를 들어 보였다.




순찰자들을 처리하면서 하나 챙겨 온 것이었다.




“제대로 된 환경도 아닌데 사제 폭탄을 만들다니. 심지어 타이머와 안전장치도 준비되어 있군.”




“뭐야, 알고 있었어?”




“드워프는 손재주가 뛰어나지. 하지만 그들이 만지는 것은 순전히 철과 관련된 무구들. 이런 폭탄은 취급하지 않을 텐데도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다니. 독자적으로 개발한 건가?”




그 말에 세리단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법 보는 눈이 있네.”




“그러니 도와주도록 하지. 자네를 포함해 이곳에 노예로 사로잡힌 자들을 풀어 주겠네.”




“나는 뭘 하면 되는데?”




“이 탄광을 날려 버리는 걸 도와줄 수 있나? 그쪽의 도움을 구하고 싶군.”




세리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 안 해?”




“무얼 말이지?”




“나는 드워프야. 그런데 이런 위험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잖아.”




“화약과 폭탄 말인가? 뭐,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일반적인 관점?”




“애석하게도 나는 일반적인 사람과 거리가 멀어서 말이야. 그런 편협한 생각은 하지 않는 주의다.”




드워프가 폭탄을 만들면 뭐 어떤가.




루드거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리단은 그 말에 거대한 파도를 전신으로 부딪치는 기분이었다.




“……신기하네. 우리 마을 영감들도 그렇게는 말 안 했는데.”




세리단은 특이한 드워프였다.




다른 드워프가 망치와 모루에 관심을 보일 때, 그녀는 복잡한 기계 장치에 관심을 가졌다.




만들고, 발명하고, 터뜨리고.




그 또한 분명 ‘제작’에 가까웠지만, 다른 드워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리단을 괴짜라고 여기며 그녀를 멀리했다.




세리단도 그런 동족들을 보며 자신을 이해 못 한다며 툴툴댔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누군가는 자신이 만들어 준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정말 대단하다고.




이것은 세기의 발명이라고.




칭찬해 주길 바랐다.




“보는 눈이 없는 자들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 네가 만든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훌륭한 재능을 지녔는지도.”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녀를 인정해 주었다.




동족조차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던 그녀가 재능이 있다고 말해 줬다.




세리단은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나리는 보는 눈이 있네.”




“나리?”




이건 또 들어 본 적이 없는 칭호에 루드거가 눈썹을 꿈틀였다.




“응, 나리. 딱 그렇게 부르기 적합해 보이거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나쁜 기분은 아니군.”




“그래서 나리. 바라는 게 뭐야? 여기 날려 버리는 거?”




“할 수 있나?”




루드거의 물음에 세리단은 기대하던 바라며 씨익 웃었다.




“그건 내가 가장 바라던 일이야.”




세리단은 이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그 오랜 모멸과 핍박을 견뎌 냈던 거라고.




모두가 비정상이라 손가락질을 할 때, 자신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라고.




“형님. 나 왔소.”




“그래. 한스. 상황은 어떻지?”




“일단 순찰조는 형님이 제거했고, 다음 순찰까지 여유 시간은 2시간 정도 남았소.”




“남은 놈들은?”




“지금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소. 분위기를 보아하니 거하게 술을 마시고 취하려는 것 같던데…… 그 꼬맹이는 뭐요?”




한스는 세리단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리단 또한 자신을 꼬맹이라 부르는 한스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나리. 저건 뭐야? 왜 개 냄새가 나는 거고?”




“누가 개라는 거요!”




괜히 찔린 한스가 역정을 냈다.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한스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지. 한스. 이쪽은……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않았군.”




“세리단. 세리단 아이언피트야.”




“그래 세리단 아이언피트. 나는 지금은 제임스 모리아티라 불리는 사람이네.”




“지금은, 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가명이라는 거지?”




“그래. 진짜 이름은 복잡한 사정 때문에 말해 줄 수가 없겠군.”




“뭐 됐어. 어차피 나리라고 부르면 되니까.”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했다.




“그보다 세리단. 궁금한 것이 있군. 갱도에 설치된 폭탄을 터뜨린 뒤에 뭘 할 생각이었지?”




“어, 폭탄? 그건 별로 진지하게 생각 안 했는데. 터지면 다 같이 죽는 거지 뭐. 한 번 사는 인생, 크게 가야 하지 않겠어?”




“…….”




루드거는 자신이 이곳을 빨리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순찰조가 오기 전까지 남은 2시간.




세리단과 한스는 노예들이 갇혀 있는 감방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그들을 풀어 주었다.




갇혀 있던 노예들은 구세주의 등장에 눈을 빛냈다.




순찰병으로부터 가져온 무기까지 손에 쥐여 주니 그들은 전부 희망에 가득 찼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루드거가 한스에게 말했다.




“한스. 이곳 사람들의 지휘를 맡기마. 비록 무기를 쥐여 줬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 자들이다.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힘들 거다.”




“형님은요?”




“저들의 숫자는 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험한 전력은 남아 있지.”




마법사.




이 탄광 깊은 곳에서 노예들을 감시하는 마법사라면 델리카 왕국에 소속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국가 소속 마법사라면 떠오르는 자는 오직 하나였다.




종군 마법사.




워 메이지라 불리는 그들은 마법사임에도 마법에 대한 탐구보다는 실전에서 마법으로 어떻게 적을 효율적으로 쓰러뜨릴지 고민하는 자들.




이 채굴장에는 그런 마법사가 무려 3명이나 있었다.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 온 놈들이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상대겠지.”




레어 메탈 채굴이 국가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곳에 있는 마법사도 평범한 종군 마법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자들이 대체 왜 여기에…….”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돼서 그런 걸 거다. 군대 내에서도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지. 그럼에도 이곳에 있다면 그런 문제를 감안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거겠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워 메이지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알겠소. 너무 무리하지 마시오.”




“걱정 마라. 그 외에도 재미있는 물건도 받았으니.”




루드거는 허리춤에 달고 있는 총기류를 보여 주었다.




생긴 것은 총과 비슷했지만, 총구 안에 담긴 것은 총알이 아니라 날카로운 갈고리였다.




세리단이 혹시 몰라서 이곳에 탈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와이어 런처’ 프로토타입.




그것을 세리단이 자신은 이제 필요가 없으니 쓰라며 루드거에게 건네줬다.




루드거는 이 ‘와이어 런처’를 보는 순간 활용할 구석이 많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중에 조금 더 개량하게 된다면, 부피를 줄여서 손목 같은 곳에 숨겨 놓고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먼저 움직인다. 신호를 보내면 따라오도록.”




“알겠소.”




아테르 녹터누스.




루드거는 곧바로 몸에 그림자를 둘렀다.




멀리서 루드거의 모습을 힐끔힐끔 지켜보던 노예들이 그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루드거가 까마귀와 같은 검은 날개를 펼치며 빠른 속도로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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