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55화 세리단 아이언피트 (2)
◈ 255화 세리단 아이언피트 (2)
“에휴.”
종군 마법사 프랭크 버클러는 차갑게 식어 버린 맥주를 들이켜다가 짜증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제길. 대체 언제까지 이런 답답한 지하 광산에서 죽치고 있어야 하는 거야?”
지하 광산에서 노예들이 레어 메탈을 채굴하는 모습만 본 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감시와 관리야 전부 아래 녀석들이 하니까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햇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3달을 넘게 지내려 하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제길. 그래도 노예 놈들을 상대로 스트레스라도 풀 수 있었을 때는 그나마 좀 나았는데.’
즐길 수 있는 것도 한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예들을 고문하면서 답답함을 해소했다.
그것도 1달 전의 일이었다.
노예의 숫자가 줄면서 레어 메탈 채굴량에 차질을 빚게 된 이후, 프랭크는 이제 노예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게 됐다.
물론 놈들이 대놓고 반항을 하면 그때는 ‘정당방위’가 성립이 된다.
하지만 노예들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라 프랭크 앞에서는 일부러 고개를 납작 숙였다.
이래서야 이쪽이 어떻게든 트집을 잡기도 어려웠다.
결국, 프랭크는 최근 1달 동안에는 계속 밤마다 술에 빠져서 지냈다.
문득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종군 마법사로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재능이 있었고, 특히 싸움과 관련된 것에는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났다.
물론 뛰어난 재능은 자만심을 불러왔고, 프랭크의 자만심은 결국 군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상사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극상을 일으킨 것이다.
죄목은 명령 불복종에 상관 살해.
군법 상으로는 당장에 즉결 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지만 프랭크는 죽지 않았다.
그의 능력을 높게 산 국가는 그의 신분을 없애고, 대신 이런 불법적인 일에 활용했다.
이 일만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다시 예전처럼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것만을 위해 프랭크는 길고 긴 세월을 견뎠다.
물론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귀찮은 명령은 적고, 군에 있을 때보다 자유로우며, 지원도 꽤 받았으니까.
‘게다가 여기에는 나 말고도 나랑 비슷한 부류가 2명은 더 있는 거 같고.’
프랭크와는 다른 의미로 문제를 일으켜 신분이 말소되고 더러운 일을 떠맡은 2명의 워 메이지들.
어떻게 보면 프랭크의 동지라 할 수 있었지만, 프랭크는 저들이랑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같은 똥통에 처박혀도 자신이 더 깨끗하고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이리라.
프랭크가 오늘도 적당히 잠이나 자려고 간이 막사의 침대에 눕는 순간이었다.
“흠?”
프랭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느껴진다.
강한 녀석의 기척이.
단순히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녀석은 일부러 이쪽을 부르고 있었다.
마력의 파장을 풀풀 풍기면서.
프랭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간이 텐트의 바깥으로 향했다.
인위적인 빛이 가득한 넓은 지하 광장.
개인의 시간을 위해 출입을 금지시킨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저건 또 뭐야.’
그것은 그림자를 두른 남자였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그림자가 양어깨 아래로 망토처럼 흘러내렸고, 얼굴에는 검은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야. 바깥 녀석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안 되겠네, 이 자식들 이거.”
프랭크는 말은 그렇게 해도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가 들어온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출입 금지 구역인 거 알지?”
“…….”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프랭크는 그 모습에 김이 샌다는 듯 혀를 찼다.
“뭐, 그렇게 마력을 풀풀 풍기며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딱 봐도 좋은 일로 찾아온 것 같지는 않고 말이야.”
상관없었다.
아니.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쉽게 죽지 마라. 진짜 오랜만에 즐거워지려고 하고 있으니까. 모처럼 지루함을 씻을 수 있는 상대인데, 빨리 끝나면 재미없잖아?”
프랭크의 주위로 술식이 발현되며 마법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프랭크의 주위로 화염의 창 5개가 생성되며 그림자를 향해 쏘아졌다.
그 순간 그림자가 움직였다.
단순한 술식을 펼치나 싶더니 이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법이 완성됐다.
생성된 얼음의 덩어리는 화염의 창과 충돌하며 상쇄되듯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프랭크는 눈을 빛냈다.
“역시 한 실력 하는 놈이었군.”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까지 몰래 들어와서 자신에게 대놓고 싸움을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프랭크는 겉으로는 그림자를 깔보듯 굴었지만, 속으로는 철저하게 계산해서 행동했다.
첫 공격이 성공하리라 생각지 않았기에 프랭크는 바로 다음 마법에 들어갔다.
그 순간 그림자를 두른 남자가 움직였다.
그림자의 망토가 펄럭이더니 프랭크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들어갔다.
망토가 아니라 날개를 펼친 것 같았다.
‘접근전? 꽤 좋은 판단이네.’
프랭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프랭크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술식을 재차 완성시켰다.
종군 마법사인 그에겐 움직이면서 술식을 만드는 기동 술식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재차 생성되는 마법.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 강한 마법이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뱀의 머리가 그림자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쩌억 벌렸다.
이대로라면 뱀의 아가리에 침입자가 알아서 몸을 던지는 꼴이 될 터.
그 순간 그림자를 두른 침입자가 마법을 발동했다.
쩌저저정!
뱀의 입 안에서 무수한 얼음의 송곳이 밤송이처럼 자라나며 뱀의 머리를 찢어 버렸다.
“기동 술식? 설마 너도 워 메이지냐?”
프랭크가 그렇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불의 뱀이 사라지며 사방으로 불씨가 흩어졌다.
프랭크는 허공에 팔을 뻗었다.
휘오오오오!
무수한 불씨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 동그랗게 압축됐다.
그것을 곧바로 던지려는 순간, 그림자는 어느덧 지척까지 접근했다.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은빛 칼날이 프랭크의 목을 노렸다.
그 순간 프랭크는 씨익 웃었다.
채앵!
그의 오른손에 쥔 화염의 구체가 길게 늘어나더니 검의 형태를 취하며 그림자가 휘두른 칼날을 막은 것이다.
“근접전이면 이길 줄 알았어?”
보통 마법사들은 원거리에서 강하고 근거리에서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법사들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술식을 이루고, 마법을 발현하고, 그것을 막는다.
서로 떨어진 거리에서 누가 먼저 술식을 완성하냐, 마법을 빠르게 쏘아 내느냐, 상성을 분석하느냐.
그 싸움은 기본적으로 동적이기보다는 매우 정적이었다.
마법사들이 근접전에 약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편견이 아닌 상식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워 메이지는 달랐다.
그들은 어떻게든 실전에서 마법을 펼쳐 내기 위해 방법을 고안하는 자들이다.
세상을 발전시키는 마법이 아닌, 전투와 관련된 마법과 효율적으로 적을 죽이는 방식을 연구하는 미치광이들이었다.
당연히 워 메이지들은 마법사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근접전’에서 약하다는 것이 통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워 메이지 중에서는 근접전을 선호하는 자가 있었다.
프랭크가 바로 그런 부류였다.
“칼 쥐고 근접전? 오히려 붙어 주면 이쪽이 더 고맙지!”
고압축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
프랭크는 이쪽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향해 비웃음을 머금었다.
“기동 술식을 사용하고 가까이 다가온 걸 보면 그쪽도 나름 싸움 경험이 있는 워 메이지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 순간 까마귀 가면의 안쪽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웃어?’
검과 검을 맞댄 채로 힘겨루기를 하던 프랭크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뭐지? 내가 뭔가를 놓쳤나?’
이상하게 감이 좋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뒷골이 당기면 끝이 썩 좋지 않았는데.’
프랭크는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며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뭐가 어찌 됐든 싸움을 피할 수는 없는 법.
‘혹시 모르니 전력을 다해 녀석을 죽인다!’
프랭크는 눈에 살기를 품으며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 * *
멀리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장을 느낀 다른 종군 마법사 두 명이 싸움이 벌어지던 현장에 도착했다.
한쪽은 신장이 작아 아이처럼 보였고, 다른 한쪽은 덩치가 커 꺽다리처럼 보였다.
“여기는 프랭크의 숙소로군.”
“대체 몇 명이 온 거지? 보안이 뚫리기라도 한 건가?”
까무잡잡한 피부의 두 워 메이지는 싸움이 벌어진 장소에 선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마력 충돌의 파장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싸움이 끝났다는 건데.
“이봐. 저길 봐.”
키가 작은 워 메이지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피투성이의 시체 하나가 누워 있었다.
“프랭크, 로군.”
레어 메탈 채굴광산에 파견된 워 메이지 프랭크 버클러.
그는 차가운 주검이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부릅뜬 그의 눈은 자신이 패배가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프랭크가 당하다니. 성격은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한 놈이 아니었나?”
“아무래도 침입자가 보통내기가 아닌 모양이야.”
“흔적을 보면 여러 명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니야. 마법사 한 명. 그것도 근접한 싸움에서 패배했군.”
“프랭크가 마법사를 상대로 근접전에서 졌다고?”
“결과가 말해 주지 않나. 그리고 프랭크가 쓰러질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 또한 워 메이지라는 소리겠지.”
두 워 메이지는 자연스럽게 등을 맞대고 주변을 경계했다.
마력의 파장이 끊긴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즉 프랭크의 숨통을 끊은 침입자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는 말이었다.
파앗!
그때였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넓은 공동 내부를 비추던 불이 모두 꺼졌다.
삽시간에 어둠이 몰려와 그들의 시야를 앗아 갔다.
“시야를 차단할 생각인가?”
“효과적인 수법이로군. 하지만 너무 뻔해.”
꺽다리 워 메이지가 허리춤에서 금속 통 하나 꺼냈다.
통의 끝에 매달린 줄을 당기자 피슝 하고 빛이 튀어나와 허공으로 쏘아졌다.
주변이 불이 꺼지기 전보다 훨씬 더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두 워메이지는 밝아진 풍경 속에서 숨어 있는 적의 모습을 찾고자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새하얀 광채 때문에, 그들의 발밑에 짙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
감각이 예리한 워 메이지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워 메이지들은 곧바로 맞댄 등을 떼고서 몸을 던지듯 자리에서 벗어났다.
촤자자자작!
직후 발밑에서 무수한 가시가 치솟아 오르며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조금이라도 피하는 것이 늦었더라면 그야말로 꼬챙이가 됐을 것이다.
“마법? 대체 어디서?”
발밑에서 펼쳐진 마법에 덩치가 작은 워 메이지가 의문을 품었다.
장신에 한 손에 쿼터스태프를 쥔 워 메이지는 검은 가시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보통 마법은 마법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경계하며 적의 공격을 기다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쪽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숨어 있는 위치가 들통이 날 테니까.
그때 한 명이 방어하고, 다른 한 명이 그대로 반격할 생각이었다.
그걸로 쓰러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위치를 파악했다면 둘이서 협공을 가하며 천천히 압박을 가하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마법은 전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끼기기긱.
검은 가시가 해제되더니, 이윽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한 채로 얼굴에 까마귀 가면을 쓴 남자였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서 있던 자리에 침입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워 메이지는 혼란에 빠졌다.
‘땅속에 숨어 있었나? 아니. 하지만 그건 땅 밑에서 온 공격이 아니었어. 말 그대로 그림자였다.’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거란 말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오지 않을 건가?”
“……!”
두 워 메이지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키가 작은 워 메이지는 양손에 단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고.
키가 큰 워 메이지는 쿼터스태프에 마력을 둘렀다.
두 워 메이지가 그림자의 주인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 * *
“형님!”
한스는 루드거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 옆에는 세리단도 함께 있었다.
“형님 어디 있소? 이쪽은 성공적으로 끝마쳤소!”
루드거가 워 메이지들을 묶는 동안, 광산의 노예들은 무기를 챙겨 들고 한밤중에 기습을 가했다.
순찰조가 모두 당해 버린 것이 컸다.
다들 잠에 빠진 상황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일시에 들이닥치니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했다.
반란은 성공적이었다.
한스는 그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바로 루드거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곳에 있는 워 메이지는 총 3명.
아무리 형님이라 하더라도 워 메이지 3명과 싸우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루드거라면 어련히 위험해지기 전에 알아서 빠졌겠지만.
그랬다면 워 메이지가 뒤늦게 현장에 들이닥쳐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지금까지도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형……님?”
싸움의 흔적이 가득한 현장에 헐레벌떡 뛰어온 한스는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말문을 잃었다.
루드거는 멀쩡했다.
그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런 루드거의 근처에는 워 메이지로 보이는 시체가 있었다.
단검을 휘두르던 키가 작은 워 메이지는 자신의 단검에 급소가 찔려 죽었고.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던 워 메이지는 머리가 박살 나고, 자신이 사용하던 스태프에 명치가 관통당해 있었다.
“왔나?”
루드거가 한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 예. 그…… 도우러 왔는데…….”
한스는 멍한 얼굴로 워 메이지의 시체를 보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괜히 걱정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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