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57화 고르드 학장 (2)
◈ 257화 고르드 학장 (2)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고르드는 루드거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다시 물었다.
“내가 자네에게 무언가 잘못을 했던 적이 있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학장님은 제게 잘해 주셨습니다. 예, 충분히요.”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제가 묻고 있는 것은, 왜 저에게 그런 짓을 했냐가 아닙니다.”
가면 속 루드거의 시선이 고르드 청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고르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
“그렇다면 제가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 드려야겠군요.”
루드거는 소파에서 일어나 고르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학장님.”
“뭐, 뭔가. 다가오지 말게.”
“강철의 합창단 프로젝트 연구에 지원을 하신 이유가 뭡니까.”
고르드가 눈을 부릅떴다.
마치 그걸 이쪽이 어떻게 알고 있냐는 반응이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했다고.”
“그, 그럴 리가…….”
“학장님. 저는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제가 질문을 했으니 이제 학장님이 대답하실 차례입니다.”
고르드 학장의 앞에 선 루드거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왜 그러셨습니까.”
“나, 나는 모르는 일…… 끄아아악!”
고르드는 발뺌을 하려 했지만, 손등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덧 그의 손등에는 단검이 하나 박혀 있었다.
“끄흐으윽. 내, 내 손……!”
“학장님. 이건 게임입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학장에게 루드거는 작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서로 진실을 말하는 게임이죠. 질문하고 진실을 말한다. 학장님은 질문하셨고, 저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학장님도 진실을 말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끄으으윽!”
“그런데 거짓을 고하시는 것은 엄연한 규칙 위반입니다.”
“내, 내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가!”
고르드 학장의 외침에 루드거는 그의 손등에 박힌 단검을 단번에 뽑았다.
피가 튀고, 고르드 학장의 비명이 재차 학장실에 울려 퍼졌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학장님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그걸, 내가 말할 거라 생각하나?”
“학장님. 질문은 끝났습니다. 조금 전 대답을 함으로써 2번째 대답을 했습니다.”
“뭐?”
고르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 ‘무슨 말을 듣고 싶냐’라는 것이 질문이고, 루드거는 그것에 대답한 것이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학장님께서 질문하셨으니, 이제 제 차례군요.”
“이, 이 미친놈!”
“고르드 학장님. 이번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뭡니까?”
고르드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나, 나는 몰라! 나는 모른다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학장이라는 지위를 넘어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욕망으로 사람을 팔아먹었으면서, 이제 와서 입을 다무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욕망이 루드거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자 고르드가 어깨를 크게 떨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고르드를 놀라게 한 것은, 루드거는 이미 그에 대한 것을 전부 알고 찾아왔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질문과 답변이라는 주고받는다는 게임을 하겠다고 하다니.
“나, 나는……!”
“학장님께서 여전히 망설임을 보이시니 제가 은혜를 입은 몸으로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뭐, 뭘 하려는 건가!”
“별거 아닙니다.”
루드거는 조금 전 손등을 찍었던 단검을 내밀어 보였다.
방 안의 불빛을 받아 예리하게 빛나는 단검에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학장님께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 드리려는 겁니다.”
“나, 나를 고문하겠다고?!”
“싫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대답하시면 됩니다. 누가 그랬는지. 배후에 누가 있는지.”
“나, 나는……!”
고르드 학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말 못 해. 나는 말 못 하네!”
“그렇습니까?”
루드거는 그런 고르드를 보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그 직후 학장실에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
* * *
콰앙!
“제임스 모리아티!”
학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케이시 셀모어가 들이닥쳤다.
“역시 여기에 왔구나!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케이시 셀모어.”
루드거는 케이시 셀모어를 돌아보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케이시 셀모어는 그제야 루드거에게서 가려진 참상을 볼 수 있었다.
“너……!”
고르드 힘벨 학장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꺽꺽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모진 고문을 받은 그는 숨만 쉬고 있을 뿐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고르드 학장의 모습에 케이시가 이를 으득 갈았다.
“대체 어떻게! 당신을 교수로 추천해 준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아.”
케이시의 말에 루드거는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도 보일 수 있는 거였어.”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뭐가 어찌 됐든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
케이시 셀모어는 루드거에게 경고를 했지만, 함부로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루드거에게 타격을 줄 수 없을 텐데, 그렇다고 위력이 강한 마법을 사용했다간 인질로 잡힌 고르드가 휩쓸릴 수도 있었다.
케이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눈치챈 루드거가 가면 속의 붉은 눈동자를 휘며 물었다.
“인질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가? 그렇다면 내가 도움을 주지.”
“……잠깐!”
케이시가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루드거의 손이 움직이고, 날카로운 단검이 그대로 고르드 학장의 이마에 날아가 박혔다.
털썩.
겨우 목숨만 붙어 있던 고르드 학장의 숨이 끊어진 걸 본 케이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제임스 모리아티!!!”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며 학장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콰아앙!
루드거가 창밖으로 몸을 날리고, 그 직후 거대한 물대포가 그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깨진 유리창과 벽의 잔해가 떨어졌지만, 루드거는 그 대신 왼팔을 뻗었다.
왼팔에 장착한 와이어 런처가 쏘아지며 대학의 높은 첨탑에 걸렸고, 그의 몸이 훅 당겨지며 하늘로 솟았다.
부서진 창가에 선 케이시는 건물 옥상에 선 루드거를 발견하더니 적의가 가득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루드거는 그런 케이시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충분히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케이시 셀모어. 자네의 감은 꽤 날카롭지만, 이번에도 늦고 말았군.”
“당신. 대체 뭘 할 생각이야!”
“재미있는 질문이로군. 탐정답게 한번 맞춰 보지 그러나.”
케이시 셀모어는 더는 들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마력을 일으켰다.
허공의 수분이 그녀의 발밑에 맺히더니 분수조차 솟아올랐다.
“제임스 모리아티!”
물줄기를 탄 케이시 셀모어가 루드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보다 등을 돌렸다.
“거기 서!”
케이시가 수차례 물의 창을 쏘았지만, 루드거는 엄청난 움직임을 선 보이며 그것을 모조리 피해 냈다.
케이시 셀모어는 루드거가 있던 옥상에 착지한 뒤 곧바로 그를 쫓으려 했다.
“없어?”
하지만 루드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그의 흔적이 완전히 뚝 끊긴 것처럼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루드거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친 것은 바닥에 착지하면서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루드거는 사라졌다.
케이시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케이시 셀모어. 이 이상 나를 쫓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
그 순간 들려오는 루드거의 목소리에 케이시는 분노를 삭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 나를 도발해 놓고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내가 그럴 거 같아?”
[허세를 부리는가. 그 기개는 높이 사마.]
“어디 나한테 잡히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목숨이 아깝지 않나?]
이쪽을 떠보려는 질문에 케이시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목숨이 아까웠다면 이런 일을 하지도 않았겠지.”
[그렇다면 열심히 나를 쫓아 봐라. 이건 게임이다.]
게임이라는 말에 케이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너는 나를 쫓고, 나는 너에게서 도망친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나는 이 도시를 넘어 왕국 전역에 펼쳐진 일들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내가 그렇게 놔둘 거 같아?”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것이 게임의 묘미지.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내가 유리할 거 같으니 너에게 힌트를 하나 주지.]
“누구 맘대로!”
[나는 다음에 대도시 다르탕스로 움직일 거다. 나를 잡고 싶다면, 그곳으로 와 보도록.]
노골적이기까지 한 말에 케이시가 의심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왜 그쪽의 말을 믿어야 하지? 그래놓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칠지 모르는데 말이야.”
[겁먹었다면 오지 않아도 좋다. 그곳에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하는 것도 그대의 선택일 테니까.]
이쪽의 자존심을 노골적으로 건드리는 루드거의 말에 케이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발도 도발이지만, 사람이 죽는 일을 가지고 게임이라고 운운하는 그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탐정으로서.
아니, 그것을 넘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 가 줄게. 거기서 목 씻고 기다려.”
[기대하지.]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흡족해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사라졌다.
* * *
고르드 학장의 처리를 끝낸 루드거는 곧바로 한스와 합류한 뒤 대도시 다르탕스로 향했다.
철강국 델리카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도시 다르탕스는 왕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장 많은 공장이 들어선 곳이었다.
루드거의 목표는 그 공장 중 하나였다.
“새로운 실험 말이오?”
다르탕스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한스가 물었다.
변장한 루드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 강철의 합창단 프로젝트는 확실히 위험한 실험이었다. 그것으로 전장의 판도를 바꾸기 충분하지.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
“뭐가 말이오?”
“그것 하나만으로, 하나의 국가가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쟁을 준비할 수 있다 보는가?”
루드거의 말에 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더 있다는 말이구려.”
“강철의 합창단은 기사급 전력을 자원이 허락하는 내에서 무한정으로 뽑아내는 프로젝트지.”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강철의 합창단 프로젝트로 만든 특수 오토마톤이 기사를 대체한다면.
아직 세상 전력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어떻게 대체한단 말인가?
“뭐, 마법을 쓰는 오토마톤이라도 만드는 거요?”
“아니. 그들은 마법사를 대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뭘 할 속셈인 거요?”
“한스. 마법사들이 어째서 현대전에서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지?”
“그거야 [불의 침묵] 아니겠소. 화약의 작용을 억제해서 총도 쏠 수 없고, 폭탄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오.”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마법사들은, 아무리 오토마톤을 개조하고 강화해도 절대 대체할 수 없지.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들은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방향을 바꿨다고요?”
“마법사를 만들 수 없다면, 그 마법사들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지.”
“으음.”
한스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들다니. 마법 자체를 못 쓰게 만든다는 거요?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소.”
“그래. 가능할 리가 없지. 마법을 없애는 마법이라니. 그런 건…….”
루드거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잠시 뜸을 들였다.
“형님?”
“……없지는 않지만, 특별한 사람만 쓸 수 있는 거다. 당연히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법사들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거요?”
“조금 전에 네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뭐요? 설마 아까 그 [불의 침묵]을 말한 거요?”
“그래.”
루드거는 기차의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멀리서 공장의 굴뚝과 검은 매연이 가득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대도시 다르탕스였다.
“한스. 만약 마법사가 사용하는 [불의 침묵]이 화약을 무력화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을 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어, 그건…….”
한스는 고민하다 답을 내놓았다.
“위험, 하겠죠? 물론 그런 거로 마법사가 쉽게 죽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 방어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화약 무기는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설마…… 왕국은 지금 그런 위험한 것을 만들었다는 거요?”
한스는 혹시나 싶어 물었지만, 그는 부디 그런 것이 아니길 빌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루드거는 그런 한스의 기대감을 배신했다.
“놈들은 특별한 화약을 만들었다. 불의 침묵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화약을.”
한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거라면 확실히 위험하겠구려. 하지만 그걸 대체 어떻게 만든 거요?”
“그건 나도 모른다.”
마법사가 현대전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불의 침묵]이다.
이것 하나만으로 화약을 다루는 병기는 여전히 힘을 못 쓴다.
총알을 피하는 기사와, 무기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마법사가 아직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기사는 강철의 병기로 대체되고.
마법사들이 화약 병기에 지닌 이점이 사라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끔찍한 혼돈.
전쟁의 불씨는 삽시간에 번져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그 화약을 제조하는 비밀 공장이 저 도시 어딘가에 있다.”
“……돌겠구려.”
“그러니 한스.”
“예, 예?”
“찾아라. 기한은 하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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