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61화 탐욕 집회 (2)

 ◈ 261화 탐욕 집회 (2)




케이시 셀모어는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한 넓은 홀.




눈부신 샹들리에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찬란하게 흩어지고, 감미로운 음악이 내부를 감돌았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저마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은 그들이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




‘바깥은 지금 이렇게나 혼란스러운데, 이런 곳에서 서로 웃으면서 술이나 마시고 있다니.’




연회장의 한구석에서 그 광경을 주시하던 케이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속으로 투덜거렸다.




바깥은 지금 제임스 모리아티의 범죄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시민들은 연이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으며 경찰들은 그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신문에서는 연일 제임스 모리아티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만 떠들어 댔다.




그럼에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일과 관련이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자기들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듯이.




케이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사람들 사이에도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 섞여 있지 않을까?’




당장 경찰청의 고위 간부가 끌려 나가는 일이 있지 않던가.




이곳에도 없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오오, 케이시 셀모어 탐정님. 만나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가레스 남작이라 하는데…….”




“죄송하지만, 혼자 있고 싶네요.”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호시탐탐 그녀에게 다가와 어떻게든 친분을 만들려는 자들이었다.




특히 젊은 남성 귀족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데, 전부 그녀의 외모와 명성에 혹한 자들이었다.




그 불편함 속에서 케이시는 짜증을 느꼈다.




‘적어도 그 남자는 이러지 않았었어.’




제임스 모리아티의 교무실에서 주고받았던 농담을 떠올리던 케이시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정신 차려 케이시 셀모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 남자는 세기의 범죄자야. 내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할 상대라고.’




그리고 그 범죄자가 지금, 이 연회장에 몰래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의 다음 목표가 이곳에 있었으니까.




오오오.




때마침 연회장의 한쪽이 시끄러워졌다.




케이시 셀모어는 본능적으로 올 게 왔구나 싶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젊은 미남자가 2층의 발코니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여러분. 만나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연회의 주최자인 루트비히 벤칸토라 합니다.”




루트비히 벤칸토 공작.




젊은 나이에 공작 위를 물려받은 그는 델리카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인이었다.




그가 등장하자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를 향했다.




“여러분. 정말 슬프게도 최근 델리카 왕국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범죄율이 치솟고 왕실은 신뢰를 잃게 됐죠.”




루트비히는 손에 쥔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저희 델리카 왕국은 이 시련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강철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지듯 저희 또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희는 절대 악행 따위에 굴하지 않습니다.”




오오오.




연회장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 이 슬픔을 잊고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리며, 준비한 연회를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귀족들은 그 말에 손뼉을 쳤다.




케이시만이 뚱한 표정으로 루트비히를 노려보았다.




‘죽은 사람들을 기린다면서 자기들끼리 술 마시고 떠드는 건 뭔데?’




차라리 묘비에 단체로 찾아가 목례라도 한다면 모를 일이다.




결국, 이 자리는 표면적으로만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자리지, 실상은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런 자리를 개최한 루트비히를 향한 케이시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케이시가 이런 장소까지 찾아온 것은 루트비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제임스 모리아티.




그가 루트비히 벤칸토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아직까지 제임스 모리아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물론 제임스 모리아티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놓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 남자는 어딜 가도 존재감이 넘치기 때문에, 숨는다고 해서 숨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분명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일단 루트비히와 만나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잔 드시겠습니까?”




“됐어요.”




케이시는 은쟁반 위의 샴페인을 건네는 웨이터의 말을 무시하며 루트비히를 향해 다가갔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던 루트비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케이시를 보더니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자리 좀.”




눈치 빠른 귀족들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방해하는 사람들도 사라지자 루트비히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케이시를 반겨 주었다.




“만나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레이디 셀모어.”




“케이시 탐정이라 부르세요. 저는 지금 셀모어 가문의 여식으로 온 게 아니니까요. 루트비히 벤칸토 공작님.”




“이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무례를 범하고 말았군요. 그런 저에게 이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케이시는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쪽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많았다.




“여기서 나누기는 좀 그렇고. 조용한 곳에서 따로 이야기하죠.”




“레이디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죠.”




루트비히는 흔쾌히 승낙했다.




연회장에서 벗어나 응접실에 도착한 케이시는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당신의 목숨이 위험해요.”




그 말을 들은 루트비히는 눈을 끔뻑였다.




“레이디 셀모어. 제가 뭘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제가 위험하다고…….”




“제대로 들은 것이 맞아요. 저는 당신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더 이상하군요. 제 목숨이 위험하다니. 대체 누가 그런다는 거죠?”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 그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루트비히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신기하군요. 저는 제임스 모리아티를 본 적이 없는데, 그가 저를 죽이려 한다니. 그럴 만한 계기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죽어 버린 군 장성들은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네요.”




“그렇게 확신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루트비히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제임스 모리아티가 자신을 노리는지, 그리고 케이시 셀모어가 그걸 어떻게 알고 경고를 하는지.




“그의 범행 행동을 보고 다음 목표를 파악했을 뿐이에요.”




“그게 저였다는 말이군요.”




“루트비히 공작님. 다른 사람들의 눈은 속이겠지만, 제 눈은 속이지 못해요. 당신은 죽은 장성들과 나름의 친분을 가지고 있었죠.”




케이시의 지적에 루트비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귀족으로서 군부와 연관이 있다 보니 몇 번 마주친 것이 전부입니다.”




“잡아떼지 마세요. 사람들이 쉬쉬했을 뿐,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케이시가 물러서지 않고 말하자 루트비히는 상체를 숙이며 팔에 깍지를 꼈다.




“좋습니다. 레이디 셀모어의 말씀이 맞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제임스 모리아티가 제 목숨을 노리는 지금 제가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도망치세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하하.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잊었습니까?”




지금 연회가 열리는 곳은 벤칸토 공작가의 저택이다.




비록 도시의 바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곳은 루트비히 공작을 수호하기 위한 병력이 가득했다.




“장담컨대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은 이 나라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호위만 몇 명이라 생각하십니까?”




“상대를 너무 우습게 보시는군요.”




“우습게 보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가 마법을 썼다지요? 그렇다면 마법사라는 소리인데, 고작 마법사 하나가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는 고작 마법사가 아니라고요.”




“제 걱정을 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 말만으로 제가 이곳에서 떠날 일은 없겠군요.”




케이시는 깨달았다.




자신이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루트비히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이 사람.’




무엇보다 루트비히는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케이시는 그것을 직감했지만, 단서가 충분하지 않아 정확히 뭔지는 파악이 힘들었다.




“그래도 조언은 허투루 듣지 않도록 하죠. 호위를 곁에 두도록 하겠습니다. 되셨습니까?”




“……알겠어요.”




더 따져 봤자 소용 없을 거라는 걸 깨달은 케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접실을 벗어나 연회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짜증이 가득 섞여 있었다.




‘루트비히 공작에게 뭔가가 있어. 그리고 오히려 나를 노골적으로 배제하려 하고 있지. 그쪽이 내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개별적으로라도 움직일 수밖에.’




케이시는 일단 돌아가서 옷부터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드레스코드를 위해 일부러 맞춰 온 복장이지만, 치렁거리는 프릴이 자꾸 그녀의 발걸음을 방해했다.




만일 제임스 모리아티가 나타난다면, 이런 복장으로는 그를 쫓을 수 없었다.




“이씨.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 치맛자락은 왜 이렇게 거슬리고 난리야.”




케이시는 툴툴거리면서 복도를 걸었다.




* * *




응접실에 홀로 남게 된 루트비히는 뒷짐을 쥔 채로 창밖을 응시했다.




어스름이 짙게 깔린 정원의 위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쏟아졌다.




그 사이사이에 순찰을 도는 가문의 병사들이 보였다.




“제임스 모리아티라.”




루트비히는 케이시 셀모어와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표정은 이 상황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게토 중장 파벌이 죽은 것은 아쉽군. 뇌까지 썩은 늙은이들이라 해도 허투루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데. 전부 다 죽었을 줄이야.”




이래서야 뒤에서 몰래 프로젝트를 기획한 입장에서 상당히 뼈아픈 손해가 아닌가.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빈자리를 대체할 부품은 이 나라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것은 전부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 똑똑-하고 응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한 손에는 은색 쟁반을 들고 있는 웨이터였다.




“무슨 일이지. 여기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웨이터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루트비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웨이터가 아니로군.”




“눈치가 빠르군.”




웨이터는 곧바로 손으로 얼굴 부근을 쥐더니 그것을 확 잡아 뜯었다.




처음에 피부라도 벗기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면이라기엔 길게 찢어지듯 늘어나는 그것은 인공적으로 만든 피부였다.




이윽고 안쪽에 감춰진 흑발이 드러나자 루트비히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쪽이 바로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였군.”




“만나서 반갑군. 루트비히 벤칸토 공작.”




휘리릭.




바닥의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루드거가 입고 있는 웨이터복의 위에 덧씌워졌다.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그 반응을 보면 내가 왜 찾아온 건지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래서 나를 죽이러 왔나? 하긴, 지금까지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죽였으니 이제 내 차례가 올 때가 되긴 했지.”




“그렇다면 각오는 충분히 됐나.”




“각오?”




루드거의 말에 루트비히는 웃었다.




“이봐,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 자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하겠어. 내 사업장을 모두 날려 버리고, 내가 부리던 중요한 체스 말을 모두 박살 내버렸으니까.”




루드거는 루트비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너무 거만한 거 아닌가? 이런 곳에 혼자서 쳐들어오다니 말이야.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가?”




“다른 녀석들도 다 그런 식으로 말했다가 죽었지.”




“반대로 묻지. 내가 설마 그런 머저리들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나?”




루트비히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둘 사이에 반투명한 벽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장벽이었다.




“오히려 나는 기다리고 있었지. 그쪽이 내 목을 치러 오기를 말이야.”




직후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벤칸토 공작 소속 호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다 기사와 마법사로 이루어진 그들은 루드거를 단번에 포위했다.




루드거는 방벽 너머 루트비히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함정이었나.”




“아무렴. 바보가 아닌 이상, 나를 노리러 오는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열리는 연회도 결국은 루드거를 현혹시키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루드거가 숨어들기 좋게끔 판을 깔아 둔 것이었다.




“눈치 빠른 아가씨 한 분이 찾아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웃겼단 말이지. 진짜 잡아가야 할 상대가 자기 코앞에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야.”




“…….”




“그래도 상당히 놀랐어. 설마하니 강철의 합창단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던 연구실을 아직 폐기하지 않고 놔두다니 말이야.”




루드거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눈썹을 꿈틀이며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으로 루트비히를 응시했다.




“다 방법이 있지. 그래서 궁금하더군. 다른 것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으면서 굳이 그곳을 남겨 놓은 이유가 뭘까.”




루트비히는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정답을 꺼냈다.




“아이를 납치해서 실험체로 사용했다 했었지. 그렇다는 것은, 아직 있는 것이로군?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실험체가.”




“…….”




“저런. 그렇게 관리를 소홀히 하면 쓰나. 걱정하지 말게. 혹시 몰라서 내가 그쪽에 사람을 보냈거든. 뭐든지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사람들로 추려서 말이지.”




루트비히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겼다고 확신하는 승리자의 미소였다.




“실험체로 쓴 아이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게. 지금 여기서 자네를 처리하고 곧바로 뒤이어 보내 줄 테니까. 그러면 외롭지는 않겠지.”




스릉.




루드거를 포위한 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마법사들은 술식을 구현하며 마법을 펼칠 준비를 갖췄다.




“그래도 마지막에 가기 전에 유언 정도는 들어주고 싶은데,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루트비히의 도발에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싶군.”




“오. 두 개나? 유언치고는 많지만, 뭐 아량을 베풀어서 허락하지.”




“첫째. 그 아이의 이름은 실험체가 아니라 아르테다. 고명한 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은 아이였지.”




“그랬나? 뭐, 그런 아이의 이름이 뭐가 됐든 별 상관없다네. 그래서 두 번째는 뭐지?”




“둘째는…….”




루드거의 푸른 눈동자가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났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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