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65화 라이헨바흐 폭포 (2)

 ◈ 265화 라이헨바흐 폭포 (2)




지상으로 올라온 루드거는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커다란 캡슐까지 함께 옮긴 여파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




머리를 뚫고 들어오는 신들의 목소리.




루드거는 이를 악물고 견뎌 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력 회복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그작!




“쓰읍. 후우.”




루드거는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리를 아우르던 두통이 가시고 뇌를 울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순간 가해진 정신적인 피로감은 너무 강렬했다.




‘여기는, 근방의 숲인가.’




마력을 너무 급격히 소모하고 다시 채워 넣는 과정 때문인지 시야가 살짝 침침했다.




조금 숨을 돌리니 흐릿했던 시야가 원래대로 서서히 돌아왔다.




루드거는 곧바로 가져온 캡슐부터 살폈다.




캡슐 안에는 소년의 모습을 한 오토마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루드거는 곧바로 캡슐을 열었다.




치이이익.




캡슐의 전면부가 위로 올라가며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루드거는 그 소년의 모습을 가만히 살폈다.




아르테의 영혼이 들어간 오토마톤의 모습은 아르테와 확연히 달랐다.




당대 최고의 조각사가 혼신을 다해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외모.




실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있었는데, 어떻게 봐도 실제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 오토마톤의 몸에, 아르테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다.




루드거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오토마톤 소년이 눈을 떴다.




소년의 눈동자는 맑고 깨끗했다.




어떠한 감정도, 더러움도 보이지 않는 순수한 백옥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안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실제 사람의 눈동자와 구분이 가지 않았다.




“…….”




“…….”




루드거와 소년이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루드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소년이 먼저 말을 해 주길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몰랐다.




한동안 루드거의 모습을 빤히 응시하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




루드거는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뗐다가, 다시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쥔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혹시 몰랐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가.’




아르테의 영혼을 이식했다 하더라도, 이 오토마톤이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존재일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랐던 걸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다시 자신을 향해 선생님이라 부르기를.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느냐.”




루드거의 물음에 오토마톤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완전히 캡슐에서 나온 소년은 주변 숲을 둘러보았다.




처음 발걸음은 위태로웠지만, 걷는 것이 익숙해진 것인지 소년은 곧바로 캡슐 주변을 돌아다녔다.




루드거는 그런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맨발로 흙 위를 걷던 오토마톤 소년이 루드거를 돌아봤다.




그는 순수한 눈동자로 루드거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그래.”




“그렇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누군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




강철의 합창단 오토마톤들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당연히 그들은 기본적으로 명령을 받고,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나는…….”




루드거가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였다.




드드드드!




푸화아아악!




지면의 아래에서 거센 진동이 일어난다 싶더니, 숲 저 너머에서 거대한 분수가 뿜어져 나온 것이 보였다.




갑자기 지하수가 터져 나올 일은 없으니, 저기서 뿜어져 나온 물이 누구의 것인지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마력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주위로 서서히 번져 나가는 것을 보며 루드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위치를 특정하고 있다?’




그는 이윽고 자신의 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케이시 셀모어와 싸우면서 옷의 일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집중해 보니 그곳으로부터 미약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킹을 해 뒀군. 그때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루드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마 그 짧은 전투 사이에 이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리라.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듯, 퍼뜨렸던 물방울들이 루드거에게 이끌리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아, 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숨어 있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더니 근처 수풀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루드거는 잠시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재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적어도 케이시 셀모어에게 저 오토마톤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됐다.




‘그래. 나를 잡으러 와라.’




루드거는 일부러 케이시 셀모어를 유인하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뿌렸다.




저쪽에서도 이쪽을 감지한 것인지,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케이시 셀모어의 모습이 보였다.




“제임스 모리아티!”




“결국, 끝까지 쫓아오는군.”




루드거는 우선 이 숲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근처의 지리는 모른다.




그저 거리를 벌릴 생각으로 계속 도망을 칠 뿐이었다.




케이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악착같이 쫓아왔다.




루드거는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척이 추격자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간혹 등 뒤에서 물로 이루어진 창과 화살 따위가 날아왔지만, 몸에 두른 아테르 녹터누스가 그것을 알아서 쳐 내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쪽 또한 상응하는 마력이 소모됐다.




몇 번 마법을 막아 내자 이후에 날아오는 공격은 없었다.




케이시도 상당히 힘을 많이 소모한 모양인지 물을 끌어 올리는 대신 본인의 두 다리로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다.




운동이라곤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을 텐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힘들어하면서도 끝까지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적이지만 애초에 그녀를 진심으로 미워한 것도 아니고 죽일 생각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이용하는 것에 미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비록 첫 만남에서 그렇게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됐다.




서로가 숨기는 것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자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 관계를 모두 파탄 낸 것은 결국 루드거 본인이었다.




그녀의 기대감을 배신하고, 한 나라를 뒤흔든 범죄자가 되면서까지 이 일을 벌이려던 것은 전부 이쪽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였다.




후회한다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후회하고 있다.




어쩌면 더 나은 방법이.




조금만 더 고민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악인으로 낙인찍혀 도망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정신과 마력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그 길을 걸었을 뿐이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전부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그렇기에 후회가 생겨도 누구도 열 수 없는 상자 속에 담아 둔 뒤, 마음이라는 호수 깊은 곳에 집어 던질 뿐이다.




침전해서 아래 가라앉은 그것이 부패하여 호수 전체를 썩게 만들지라도.




한 번 이 길을 골랐다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니까.’




숲을 지나 산 깊은 곳으로 대체 얼마나 달렸을까.




콰아아아!




멀리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자연이 자아낼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소음.




이윽고 루드거를 맞이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웅장한 자태를 뿜어내는 폭포였다.




“……하.”




폭포의 모습을 보는 순간 루드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오고 말았다.




“악독한 범죄자 제임스 모리아티가 그 끝내 마주하는 것이 폭포인가.”




참으로 재미있는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이렇게 될 걸 생각하고서 이 가명을 고른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루드거는 절벽의 끝에 섰다.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도망을 칠 곳도 남아 있지 않았다.




루드거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숨을 헐떡이고, 입고 있는 옷은 엉망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럼에도 만월의 달빛 아래에서 그 미모는 퇴색하는 일 없이 이쪽을 강렬하게 응시하고 있는 그녀가.




그래.




너 또한 멈추지 않는구나.




“하아. 하아. 이제 더는 도망칠 곳은 없어. 제임스 모리아티.”




루드거는 차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것이 기쁨인지 짜증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본인도 몰랐다.




다만 지금은, 제임스 모리아티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




“그래서 항복할 생각은?”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케이시도 어차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루드거는 거대한 폭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케이시 셀모어. 이 앞에 있는 폭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야.”




“그런가. 이름 없는 폭포였군. 그렇다면 나는 이 폭포의 이름을 라이헨바흐 폭포(Der Reichenbachfall)라 부르겠네.”




루드거는 허리춤의 지팡이를 쥐고 케이시를 향해 겨누었다.




케이시 또한 손에 쥔 지팡이를 루드거에게 겨누었다.




“이게 내 마지막이네.”




케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퍼퍼퍼펑!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긁어모아 펼친 마법들이 서로 충돌했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달밤의 벼랑 끝에서 두 사람의 마법의 춤사위가 이어졌다.




처절하기도, 또 반대로 보면 몽환적이기도 한 짧은 춤사위가.




그것이 자아내는 소음은 폭포의 굉음에 묻히거나 뒤섞여 어디론가 흘러내려 갔다.




그리고 춤은 끝났다.




싸움의 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도 정해지지 않았다.




“마력이 바닥났군.”




“그러는 그쪽도.”




두 사람은 지팡이를 겨누었다가 서로 더 이상 마력을 짜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극도의 마력 고갈 현상.




살면서 이런 일을 별로 겪어 보지 못한 케이시는, 아득하게 밀려오는 거대한 정신적 피로감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루드거는 달랐다.




“상태를 보아하니, 결국 이 싸움은 나의 승리인가.”




이쪽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평생을 마력량에 허덕이면서 지내야 했다.




마력이 고갈되고 그것을 강제로 채워 넣는, 마력 방출량과 효율적인 지배력으로 꾸역꾸역 사선을 넘어왔다.




그런 루드거도 거의 한계를 맞이하기는 했지만, 케이시처럼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쁜 호흡은 어쩔 수 없었기에, 루드거는 그것을 차분히 고르며 케이시를 응시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은 당장 기절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위태로웠다.




다가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그녀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질 것이다.




케이시의 전신을 좀먹고 있는 패배감이 바로 그 증거였다.




세기의 탐정 케이시 셀모어와, 세기의 범죄자 제임스 모리아티의 싸움은.




결국, 악의 승리로 끝맺게 된 것이다.




“그게 끝인가?”




정의가 패배하다니.




소설이라 하더라도 욕을 들어먹을 수밖에 없는 최악의 결말이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




그래서는 안 됐다.




적어도 이 이야기의 끝은, 악이 승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설마 벌써 쓰러지려는 거냐? 이 나를 눈앞에 두고, 절벽의 끝까지 몰아 놓고 포기하겠다고?”




꿈틀.




아래를 향하던 케이시의 시선이 다시 루드거를 향했다.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이지만 빛을 되찾았다.




“뭘 하려는 거냐, 케이시 셀모어. 너는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섰지?”




“시끄, 러워…….”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세상에 악을 뿌리 뽑겠다 하지 않았나.”




케이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쪽을 질타하는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일어나라.”




루드거의 목소리는 이내 실망인지 분노인지도 모를 노기(怒氣)를 품고 있었다.




“일어나!”




케이시는 주먹을 불끈 쥐고,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비틀거리며 무너질 것 같던 몸이 다시 자리에 우뚝 섰다.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으아아아!!!”




케이시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자리를 박찼다.




그 움직임은 너무나도 위태롭고 굼떴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일순간이지만 루드거가 기세에 밀려 몸이 얼어붙었을 정도로.




파앗!




달려오는 케이시의 등 뒤로 푸른 불빛이 맺힌다 싶더니 루드거의 얼굴을 향해 물 덩어리 하나가 날아왔다.




바닥에 바닥까지 남은 마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펼치는 마지막 마법.




‘아직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방어 마법을 펼치기엔 이쪽은 마력이 바닥났다.




기습적인 공격이라 피하기도 애매하다.




루드거는 지팡이를 쥔 오른팔을 들어 올려 야구공만 한 물 덩어리를 막았다.




퍼엉!




팔뚝에 맞고 흩어지는 물방울들.




마력을 머금은 물이라 근육을 울리고 뼈까지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루드거는 견뎌 냈다.




이것만으로는 그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러면 다음은?’




케이시가 무슨 행동을 취할지 생각하려던 그때였다.




터억.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충격.




설마 새로운 마법인가 싶어서 고개를 숙인 루드거의 눈에 보이는 것은, 케이시 셀모어의 자랑인 푸른 물결의 머리색이었다.




그것은 루드거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니 누구였더라도 생각하지 못할 일격.




모든 마력을 다 소모하고 정신력이 고갈된 극악의 상황에서 케이시 셀모어가 고른 최후의 선택은.




바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눈앞의 남자를 놓치는 순간 앞으로 벌어질 참사를 막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불사를 각오로.




뒤로 떠밀린 루드거의 몸이 절벽의 아래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케이시 셀모어와 함께.




케이시 셀모어는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루드거의 몸을 양손으로 꽈악 붙들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이 남자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것을 알아볼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서서히 암전해 가고 있었으니까.




“네가 이겼다.”




환청일지도 모르지만.




그 남자가 마지막에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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