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67화 그림자가 부르는 진혼제 (2)

 ◈ 267화 그림자가 부르는 진혼제 (2)




제임스 모리아티의 사건 이후 케이시에게 무수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초대장을 보낸 사람 대부분은 델리카 왕국의 이름 있는 귀족들.




그들은 어떻게든 나라를 구한 탐정과 연을 만들고자 했다.




케이시는 평민도 아니고 이름이 있는 마법 가문 셀모어의 여식이었기에 탐이 나는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이시는 자신에게 날아온 모든 초대장을 다 무시했다.




모든 초대를 거절한 케이시가 들른 곳은 딱 한 군데였다.




“무탈해 보이시네요, 루트비히 공작님.”




케이시는 새로운 응접실에서 루트비히벤칸토 공작과 마주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려는지 호위병들의 숫자가 전보다 많았고,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도 흉흉했다.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이 아니라 바깥과 차단된 벙커에 까웠다.




‘아무래도 믿었던 호위들마저 당한 것이 꽤 큰 충격이었던 거겠지.’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 지금 루트비히의 수척한 외모였다.




그날 이후로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미, 미안합니다, 케이시 탐정. 이런 꼴로 맞이하게 돼서.”




“아니요. 별로 신경 쓰지 않는걸요.”




루트비히는 두꺼운 담요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한이 가시질 않는지 그의 입술은 파리하기까지 했다.




방이 추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케이시 입장에서도 덥다고 느껴질 정도.




그럼에도 루트비히는 떨고 있었다.




정확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케이시 탐정. 제임스 모리아티는, 죽은 게 맞습니까?”




루트비히 벤칸토 공작은 자신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혈통이었으며 젊은 나이에 가문을 승계받은 귀족이었다.




뛰어난 외모, 화려한 언변 능력,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인맥까지.




루트비히의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창창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루트비히는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에 의해, 그가 알던 세상은 완전히 박살 나고 말았다.




“그 괴물은, 정말로 죽었습니까?”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이며 확인차 질문을 하는 루트비히.




그는 아직도 그날 제임스 모리아티가 했던 경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안도하지 마라. 내가 금방 다시 찾아갈 터이니.




공포가 완전히 각인된 루트비히는 그날 이후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밥을 먹으면 그때마다 구역질을 했으며,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으로는 물건 하나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케이시는 루트비히가 어떤 상태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정신이 망가졌다.




성공 가도만 달리다 처음으로 실패와 좌절을 겪은 사람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충격이 클 텐데, 루트비히는 오죽했을까.




그리고 대부분은 결국 옛날의 당당함을 회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케이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네요.”




“뭘 말입니까. 지금 제임스 모리아티의 생사 여부보다 중요한 것이 대체 뭐가 있다고…….”




“실험실을 봤어요.”




“…….”




실험실이라는 말에 루트비히의 표정에 미세하게 반응이 일어났다.




케이시도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지적하지 않았다.




“버려진 탄광 아래 지하 깊은 곳에, 비밀스러운 거대 실험실이 있더라고요. 제임스 모리아티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일단 들어 보세요. 분명 표면상으로는 그곳은 범죄자 제임스 모리아티가 뒤에서 몰래 진행하던 끔찍한 실험이겠죠.”




“…….”




표면상이라는 말에 루트비히가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따지려 하는 대신 케이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죠. 그 정도의 규모의 실험실을 짓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테니까요.”




어디 자금뿐일까.




전문 인부는 어디서 구하고, 자재는 또 어디서 공수해야 하는가.




그 정도 규모의 공사가 진행되다 보면 필시 정보가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장소에 실험실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몰랐다.




“과연 그걸 개인이 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제임스 모리아티는 범죄계의 대부가 아닙니까. 휘하 범죄자들을 이용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죠.”




“그런가요? 하지만 제임스 모리아티의 행보도 이상했어요. 그 정도의 사람이, 어째서 대학교수 같은 걸 했던 걸까요.”




“……사회적 명성이 높은 사람이라 정체를 갖추기에 최적의 신분이었을지도 모르죠.”




루트비히는 짜증을 감추지 않은 채로 케이시를 노려보았다.




“케이시 탐정님. 지금 이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설마 제임스 모리아티가 실제로는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싶은 겁니까?”




“저는 그 남자의 죄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법의 망을 피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하고 케이시가 말을 이었다.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더 있는데, 그 사람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불공평하잖아요?”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루트비히는 끝까지 철면피처럼 부정했다.




케이시도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심증만 있을 뿐이지, 물증은 이미 사라진 뒤.




애초에 루트비히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과 연관된 흔적을 쉽게 남겼을 리도 없다.




그렇기에.




케이시 셀모어는 루트비히 벤칸토 공작을 공식적으로 체포할 수 없었다.




루트비히도 그것을 알아서인지 얼굴에 한층 여유가 깃들었다.




“더 할 말은 없으신 거로 보이십니다만.”




“네, 그렇네요.”




케이시는 루트비히의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여기서 그녀가 더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아마 억지를 부려 체포한다고 하더라도, 루트비히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서 금방 사면되겠지.




안 봐도 그려지는 뻔한 미래였다.




“아, 조금 전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가 어떻게 됐냐고 물으셨죠?”




“……예, 그랬죠.”




갑자기 나온 제임스 모리아티의 이름에 여유로웠던 루트비히의 표정이 삽시간에 썩어들어 갔다.




“공식적으로는 제임스 모리아티는 사망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 공식적으로 말이죠.”




“…….”




루트비히 공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흘러넘치는 공포가 그의 눈동자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마지막에 그를 쓰러뜨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한 말이죠. 싸운 건 맞지만, 정확히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몰라요.”




“그렇다면 죽었을 가능성도…….”




“있겠죠.”




“그, 그러면!”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가 발견된 폭포수 근방에서는 저 말고도 어떠한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케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루트비히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그거참 신기하죠?”




“그, 그런…….”




“어쩌면 그 남자는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살아 있다면 아마 자신이 미처 이루지 못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 어디서 몰래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요?”




“그, 그 남자가 살아 있다면! 당신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가 왜요?”




“제임스 모리아티를 쓰러뜨린 것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가 살아 있다면……!”




“그때 가서 또 잡으면 되죠.”




케이시는 그 말을 끝으로 절망하는 루트비히를 두고 응접실을 떠나려 했다.




“아 참.”




“……?”




케이시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자, 루트비히가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창가는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 사람, 보아하니 어둠이 있으면 어디든지 나타나는 것 같거든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트라우마가 자극된 루트비히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고 말았다.




“루, 루트비히 공작님!”




“가서 사제님 불러와!”




당황해하는 그의 호위들을 뒤로한 채 케이시는 응접실을 나섰다.




루트비히의 반응을 보면 그는 평생 불안감과 공포, 강박증에 시달릴 것이다.




이것이 케이시가 루트비히에게 지금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벌이었다.




* * *




벤칸토 공작가에서 나온 케이시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실험실이 있던 버려진 탄광이었다.




몸 주위를 얇은 물의 막을 둘러 모습을 감춘 채로 이동한 그녀는,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에 뚫린 거대한 구멍.




그리고 그 근처에 숨겨져 있는 수풀 안쪽의 캡슐까지.




‘여기까지는 아직 수사가 미치지 않았구나.’




아니면 일부러 이곳만큼은 피한 걸지도 모른다.




케이시는 캡슐에 다가가 내부를 확인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작고 아담한 소녀였다.




새하얀 피부에 금발.




마치 성경 속, 신이 첫 피조물로 만들었다는 최초의 인간 혹은 그들이 지상으로 내려보냈다는 천사를 닮은 외모였다.




당장이라도 살아 숨 쉴 것 같은 생생한 모습.




그 정도로 눈앞의 소녀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기계 태엽 장치와 고도의 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오토마톤.’




캡슐의 표면 위로 손을 가져다 대자, 전면부의 이음매 부분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뚜껑이 열렸다.




케이시는 살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열린 캡슐의 안쪽에서 소녀 오토마톤이 눈을 떴다.




“…….”




상반신을 일으킨 소녀의 투명하리만치 맑은 시선이 케이시를 향했다.




소녀의 머리가 옆으로 살짝 기울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깨울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작동해 버린 것 같았다.




케이시는 무어라 말할지 고민하다가, 이윽고 적당한 대답을 꺼냈다.




“널 주운 사람.”




“……?”




이제 막 눈을 뜬 오토마톤이지만, 그 눈빛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묻고 있었다.




이것이 훗날 케이시의 조수가 될 베티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케이시 셀모어는 눈을 떴다.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펴보자 정리하지 않은 방 내부의 풍경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자신의 방.




정확히는 레더벨크의 거주 구역에 자리 잡은 그녀의 숙소였다.




케이시 셀모어는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메모리 스토밍을 끝내고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왔음을.




스르륵.




바깥의 일조량을 보면 잠이 들고 별로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그녀는 이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긴 시간을 보냈다.




케이시는 천천히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이 무거웠다.




그보다는 가슴 부근에 무거운 납덩어리가 올라가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아.”




순간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주륵.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떨리는 손끝으로 뺨을 닦은 케이시는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케이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는…….”




그 기억과 오랫동안 동화되었기 때문일까, 그날의 고통과 괴로움이 그녀의 감정 위로 멍처럼 번져 나갔다.




그저 소소한 행복을 바랐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에게서 소중한 것을 앗아 갔다.




슬퍼할 자격조차 그 남자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무언가에 괴로워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차오르는 슬픔과 분노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어서서 걸었다.




누군가는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검을 쥐고. 총을 쥐고.




비난과 고통으로 가득한 가시밭길을 걸은 것이다.




그것이 그 남자가 택한,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한 진혼제(鎭魂祭)였으니까.




“흐윽.”




진실이 풀렸다는 후련함, 왜 그때 몰랐을까의 미련, 그럼에도 그 남자의 해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고집,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그를 향한 연민.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심장을 옥죄며 고통을 가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괴롭고




사무칠 정도로 먹먹한데 마땅히 풀어낼 방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중 케이시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루드거가 자신에게 보였던 감정이었다.




‘그 남자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안해했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그 남자는 자신에게 미안해하며 목숨을 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마지막에 그가 자신을 구해 준 것은 그런 이유였다.




‘정작 나는 그 남자를 미워했는데.’




자신을 배신하고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그를 지탄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 또한 루드거에게 속았고, 그의 뜻대로 따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케이시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째서 그때 알아차리지 못했는가.




천재라 불리고, 탐정이라 불렸으면서 어째서 몰랐는가.




루드거가 속여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변명일 뿐이다.




결국, 자신이 부족하고 멍청했던 것이다.




‘뭐가 천재 탐정이야. 뭐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냐고. 진짜 영웅은 오히려 그 남자가…….’




한 소년을 구하지 못했던 그 남자는 그럼에도 한 나라를 구했다.




하지만 한 나라를 구했다 알려진 그녀는.




사실 누구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




케이시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오르는 자기혐오를 견디지 못해 얼마나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을까.




케이시의 머리 위로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얹어졌다.




“케이시, 울어요?”




“…….”




케이시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 쪼그리고 앉은 채 자신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베티가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픈 거예요? 지난번 습격 때문에 어디 다친 거 아니죠?”




“…….”




“아, 설마 진짜예요? 어, 음. 저는 딱히 뭔가 위로를 해 줄 정도로 유능하지는 않은데 말이죠.”




베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케이시의 머리를 손으로 스윽스윽 쓰다듬었다.




케이시가 왜 그러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베티가 어색하게 웃었다.




“왜 쓰다듬냐고요? 으음. 잘 모르겠어요. 저도 왜 그럴까요. 하지만 뭔가, 이래야 할 거라고 막연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티…….”




“조금 이상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진심이거든요. 이렇게 힘들어하는 케이시의 모습은, 솔직히 쌤통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좀 더 활기찬 케이시가 좋은걸요.”




왜냐하면.




베티가 그 뒷말을 이었다.




“처음 만날 그날, 저를 구해 준 것이 케이시였으니까요.”




“…….”




베티의 말에 케이시는 답답했던 가슴이 확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던 모든 괴로움이 찬물에 씻겨 나가듯 사라졌다.




있었다.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진실조차 몰라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구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하.”




케이시는 자신이 괜한 고민을 했다는 듯 맥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네. 이건 확실히 나답지 않아.”




“어, 바로 회복됐네요?”




“그래.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어. 고마워. 잠시 나갔다 올게.”




“어디 가시게요?”




“세오른 아카데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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