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68화 뜻밖의 선물 (1)
◈ 268화 뜻밖의 선물 (1)
개인 교무실에 출근한 루드거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검토해 나갔다.
현장 학습이 코앞까지 다가온 시기다.
거의 분류가 마무리된 서류를 정리만 하면 이 업무도 사실상 끝이었다.
‘멘토들도 이 정도면 충분히 정해진 거 같고.’
루드거는 멘토들의 명단을 확인한 뒤 이대로 진행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기획처장이 된 이후로 바빠질 법도 했지만, 루드거는 첫 감찰 이후로 크게 바쁘지 않았다.
대부분 일은 아랫사람들이 하니까.
루드거는 그저 위로 올라온 결재 파일에 서명만 하면 그만이었다.
‘올해에는 쟁쟁한 멘토들이 많이 모였군.’
원래도 세오른의 현장 학습 기간에는 여러 유명한 마법사가 멘토로 자주 참가하고는 했다.
세오른은 제국 제일의 마법 아카데미다.
유명한 마법사 중에서 세오른 졸업생도 많았고, 모교를 위해서 얼마든지 나설 사람은 차고 넘쳤다.
‘게다가 세오른 학생들의 멘토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았다는 증표가 되니까.’
마법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매년 열리는 정기 행사치고는 올해는 유독 경쟁이 심했다.
추려낸 명단에는 익숙한 이름이 많이 보였다.
구 마탑과 신 마탑, 학파 연합회까지.
항상 해당 소속 마법사들이 신청하고는 했지만, 올해는 그 비율이 작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아마도 나 때문이겠지.’
대부분은 지난번 아케인 체임버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던 것이리라.
어떻게든 이쪽과 접촉해서 연을 만들거나, 세오른 측에 잘 보이기 위한 행동임은 분명했다.
‘그보다 이런 쟁쟁한 지원자들 속에서 용케 명단을 추려냈군.’
루드거는 기획처 직원들의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여기서 누군가를 빼거나 넣기에는 상당히 완벽한 인선이었다.
일단 겉보기에는 말이다.
‘괜히 기획처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능력을 썩히는 건 여러모로 인력 낭비니 앞으로 업무를 자주 시켜야겠어.’
이 소식을 들었더라면 기획실 직원들이 입에 거품을 물었으리라.
최근 들어 그들은 루드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매일 커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는 삶.
입 밖으로 영혼이 빠져나오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대학원생보다 기획실을 먼저 떠올릴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근 일주일 동안 기획실 근처에 좀비가 출몰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루드거 선생님.”
때마침 조교실에서 세디나가 마지막 결재 서류 더미를 들고 왔다.
“여기 마지막 결재 서류입니다.”
“수고했다. 혹시 따로 무슨 일은 없었나.”
“아, 보고드릴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졸업생 담당 교사 한 분이 기획실에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너무 뜬금없는 보고에 루드거는 테 없는 안경을 살짝 내리며 세디나를 바라보았다.
“왜지?”
“랩실을 탈출한 대학원생이 여기로 도망친 줄 알았다고 합니다. 밤마다 좀비가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착각한 거 같습니다.”
“…….”
루드거는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진지한 세디나의 표정에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안경을 썼다.
“……이번 일이 끝나면 기획실 사람들에게 휴가를 좀 줘야겠어.”
생각해 보면 기획처 부처 소속 직원들이 바빠진 것은 전부 루드거 본인 때문이었다.
새로 취임하면서 시킨 일들도 많았지만, 이번 멘토 명단은 루드거 때문에 지원자가 많이 몰린 경향이 컸으니까.
그 때문에 기획실은 근 일주일 넘게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그래도 정리는 끝났으니 더 이상의 일은 없을 거…….”
그 순간 교무실의 문이 덜컹 열렸다.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열다니.
상당히 무례한 손님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루드거는 이 상황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3년 전, 델리카 왕국에서 오르드 대학교에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실례할게요.”
당당한 발걸음으로 교무실에 들어오는 여성.
그래. 그때도 이랬다.
숲속에서 흐르는 맑은 물처럼.
청명한 푸른빛을 내는 머릿결이 발걸음에 맞춰 찰랑거리듯 흔들린다.
루드거는 자신을 찾아온 케이시 셀모어를 말없이 응시했다.
보통 이러면 다들 시선을 피했는데, 케이시는 지지 않고 루드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들어올 때는 문을 노크했으면 좋겠군. 그게 기본 예의니까.”
“이제 새삼 놀랍지도 않잖아요?”
루드거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세디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던 터라 세디나는 자연스럽게 서류를 놓은 뒤 조교실로 물러났다.
“이젠 척하면 척이네.”
“누구 덕분에 말이지.”
“그 누구가 누구인지 궁금하네. 하지만 내 볼일은 이거야. 루드거 기획처장님.”
케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루드거는 그녀가 내민 서류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케이시를 응시했다.
“……멘토 신청서?”
케이시가 내민 것은 이번 현장 학습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주기 위한 멘토 신청서였다.
루드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당돌한 탐정 아가씨가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싶은 표정이었다.
“이 당돌한 탐정 아가씨가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냐는 표정이네.”
“……그런 생각은 한 적 없다만.”
“안 봐도 알 수 있어. 뭐, 수상해 보이는 건 이해해. 솔직히 나 같았어도 그랬을 테니까. 그래서 어째, 해 줄 거야?”
“자네는 항상 무리한 요구만 하는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던 루드거는, 순간이지만 옛 말투를 사용했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둘이서 이렇게 실없는 대화를 하는 것은 오랜만인지라, 본인도 모르게 그때의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마냥 연기로만 여겼다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었나.’
어쩌면 그는 제임스 모리아티로서가 아닌, 진심으로 그때 그녀와 나누던 만담을 즐겼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그때의 관계는 최악이라는 형태로 결말을 맺었으니까.
지금은 비록 그때의 독기는 없다 하더라도 서로 적대 관계임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케이시는 루드거의 걱정과 다르게, 모리아티 시절의 말투를 사용한 것에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냈을 뿐이다.
‘뭐지.’
어딘가 침울해하면서도 후회가 가득해 보이는 반응.
물론 그것은 아주 찰나였고, 케이시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루드거는 케이시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설마 암살자들 때문인가? 내가 보낸 경고장이 설마 늦기라도 한 거고?’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거 신청할 거야.”
“거절하지.”
루드거의 말에 케이시가 버럭 화냈다.
“아니, 왜!”
“이미 신청 기간은 끝났다. 늦었으니 어쩔 수 없다.”
“하, 내가 누구인지 몰라? 나 케이시 셀모어야. 비색의 마법사라고!”
“설령 색의 칭호를 지닌 마법사라 하더라도 번복은 없다.”
“그쪽 재량으로 자리 하나 비워 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잖아!”
케이시는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래. 결재 서류, 아직 사인 다 안 했지? 그러면 아직은 무효잖아.”
“아니, 그래도 안 된다.”
“또 왜!”
루드거는 손에 쥔 서류철에 곧바로 펜으로 빠르게 자신의 사인을 휘갈겼다.
“방금 막 결재가 끝났거든.”
“치사하게 이러기야?”
“내가 이러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케이시가 눈을 부릅뜨며 마력을 일으켰다.
또 무슨 짓을 하려나 하고 루드거가 긴장하는 그때, 케이시의 은은한 마력이 루드거의 사인을 그대로 지워 버렸다.
“어머나. 사인이 사라졌네.”
검은 잉크 또한 액체였기에 케이시는 그것을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증발시켜 버린 것이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케이시이기에 가능한 일.
루드거가 다시 펜을 놀렸지만, 잉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사용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잉크가 바닥이 났을 리가 없다.
찌릿, 하고 루드거가 케이시를 노려보았다.
“치졸한 짓을 하는군.”
“내가 이러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루드거는 한숨을 내쉬며 눈에 낀 안경을 벗었다.
“찾아온 목적은 그게 전부인가.”
“그래.”
“…….”
“왜 순순히 수긍하냐는 시선이네. 찾아온 이유는 이게 맞아. 아직은.”
“아직은, 인가.”
대놓고 무언가를 하겠다고 경고하는 케이시의 말에 루드거는 실소를 지었다.
평소라면 이런 일에 짜증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루드거는 이상할 정도로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일이다.
자신을 붙잡겠다고 호언장담한 악연을 눈앞에 두고서 그런 실없는 생각이라니.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최근 무언가 일이 있었나 보군.”
“……그래.”
그렇게 말하는 케이시의 표정은 순간이지만 조금 전 봤던 것처럼 슬픔에 젖어 있었다.
루드거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의아해할 무렵 케이시가 불쑥 멘토 신청서를 내밀었다.
“…….”
루드거는 케이시를 슬쩍 보다가 어쩔 수 없다며 신청서를 받아들였다.
“해 준다는 거로 알고 이만 갈게.”
그것으로 볼일은 끝났다는 듯, 케이시는 곧바로 등을 돌려 교무실을 벗어났다.
마치 무언가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평소였다면 이쪽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뭐라도 더 할 줄 알았던 루드거로서는 전혀 의외였다.
아무래도 정말 무슨 일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나갈 때 닫지도 않고 나가는 것도 그때랑 똑같군.”
루드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케이시가 건네준 신청서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세디나.”
“예, 선생님. 부르셨습니까.”
조교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디나가 부름에 답했다.
“멘토 명단 중에서 새로운 사람이 한 명 추가됐다.”
“……방금 그 마법사로군요.”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력 하나는 진짜니까.”
세디나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시 셀모어는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단일 속성 원소 사용자에 마탑에서 색의 칭호를 받은 마법사인데 어찌 모를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멘토로 참여하겠다고 한다면, 세오른으로서는 거절은커녕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적당히 빈자리 하나 만들 수 있나.”
“이 이상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미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뽑은 거라서요.”
“그렇다면 사람 하나를 밀어내고 거기에 앉혀야겠군.”
“네, 기획실에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기획처팀의 휴가는 조금 나중으로 미뤄야겠군.”
루드거의 말에 세디나는 새로운 일거리가 추가된 기획실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 월급쟁이들의 운명인 것을.
한동안은 기획처실 근처에 대학원생들이 출몰한다는 민원이 끊이질 않으리라.
그때였다.
아직 열린 교무실의 문을 통해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 것은.
“크흠.”
일부러 자신을 알리기 위한 가벼운 헛기침 소리에 루드거와 세디나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초, 총장님?”
세디나가 놀라서 되물었고, 루드거도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엘리사 총장은 문밖에 선 채로 장난스레 물었다.
“루드거 선생님. 지금 바쁘신가요?”
“방금 막 업무가 끝나던 차입니다.”
“바쁜 게 아니라면 들어가도 되죠?”
“예, 물론입니다. 세디나 조교, 총장님께 차 한잔 타 드리지.”
“아, 예.”
“아뇨아뇨. 괜찮아요. 그냥 볼일만 빠르게 보고 나갈 거라서.”
볼일이라는 말에서 총장은 루드거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세디나도 그것을 알았기에 루드거의 눈치를 살폈고, 루드거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덜컹.
세디나가 호다닥 조교실로 떠나자 그제야 엘리사 총장은 마력으로 교무실의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셨나요?”
“딱히 찾아오신다고 하셔도 이상할 건 없죠.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루드거는 그렇게 물으며 총장을 살폈다.
엘리사 총장은 평소보다 분위기가 달랐다.
‘뭐지?’
항상 여유가 가득하던 사람이 긴장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총장에게서는 루드거로서도 살짝 긴장되는 거대한 박력이 뿜어져 나왔다.
루드거는 총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봤다.
‘혹시 내가 뭔가 기분을 상하게 했나? 아니면 그때 준 선물이 너무 과하기라도 했나?’
또각. 또각.
총장이 루드거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당연히 그 노도와 같은 기세는 가라앉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루드거에게 가까워질수록, 총장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박차를 가하듯 훨씬 더 거대해졌다.
고오오오.
마치 일생일대의 적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총장은 무언가 굳게 마음을 먹더니 입을 열었다.
“루드거 선생님.”
“……네, 총장님.”
루드거는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혹시 세오른에 새로운 세력이 침입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휴고 부르테그가 주제도 모르고 뒤에서 무슨 공작질을?
혹은 이쪽의 정체가 완전히 들통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루드거는 긴장한 채로 그녀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
“…….”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싸움을 계속했다.
째깍째깍.
방 한쪽에서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만 나지막하게 울렸다.
잔뜩 긴장한 채로 계속 시선을 마주하자 루드거도 슬슬 부담감을 느끼려던 그때.
탁.
엘리사 총장이 등 뒤에 숨겨 놓은 무언가를 루드거의 책상 위에 탁 하고 놓더니,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교무실을 떠나 버렸다.
“……?”
혼자 남은 루드거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루드거는 말없이 책상에 놓인 물건을 살폈다.
그것은 인장이 박힌 편지 봉투였다.
루드거는 봉투의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안에는 ‘총장과의 식사권’이 들어 있었다.
그것도 총장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로 말이다.
“……?”
루드거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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