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69화 뜻밖의 선물 (2)

 ◈ 269화 뜻밖의 선물 (2)




루드거의 교무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엘리사는 꽤 거리가 멀어졌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엘리사는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윌포드를 발견하고는 점잖은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윌포드는 엘리사에게 평소와 같은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총장님. 선물은 제대로 드렸습니까?”




“예, 물론이죠.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엘리사는 조금 전 루드거의 앞에서 긴장했던 사실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운 채 당당하게 답했다.




보통 이렇게까지 말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윌포드는 뭔가 수상함을 느껴서 확인차 질문했다.




“선물은 뭐로 드렸습니까. 그날 제가 추천해 드린다고 했지만, 총장님께서 본인이 직접 알아서 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물이요?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보통 루드거 선생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어지간한 선물로는 쉽게 납득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건 윌포드의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그 남자라면, 사실 무슨 선물을 준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걱정이 드는 것은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물은 무얼 드렸습니까?”




“듣고 놀라지 마세요. 저와의 개인 식사권을 줬어요.”




“……예?”




윌포드가 놀라며 되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왜 그러시죠? 저와의 식사 기회인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윌포드는 불안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음을 깨닫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어렴풋이 이럴 거라 예상하기는 했다.




엘리사 윌로우는 학창 시절 때부터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받았지,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선물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다.




잘 보일 필요가 없으면 선물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아도 모두가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으니까.




미모, 집안, 재능.




그녀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세오른의 총장의 자리에 올라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길 원했고, 그에 따른 업무를 추진했다.




비록 그 수단이 완전히 깨끗하진 않더라도, 그녀의 성향이 일견 정의롭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완벽 초인.




혹자는 엘리사 윌로우를 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엘리사 역시 사람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반대로 호의를 베푸는 것에 어색해하다니.’




호의를 베풀려고 해도 그것이 호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정확히는 상급자로서 포상을 내리는 것은 가능했지만, 대등한 관계로 진심을 담은 선물은 준 적이 없었다.




자라 온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고, 그 사람을 완성하는 요소 중에서 환경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이번에 루드거에게 선물을 줄 때 긴장을 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총장으로서 엘리사 윌로우는 완벽했지만,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부족했다.




“아무래도 총장님께서는 조금 일반적인 상식을 배우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윌포드. 그게 무슨 실례되는 농담이에요.”




“진심입니다만.”




“…….”




엘리사가 뚱한 표정으로 윌포드를 째려봤다.




윌포드는 앞으로 가르칠 것이 많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 * *




“세디나 로쉔.”




“예, 선생님.”




더 이상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교무실에서, 루드거는 마지막으로 정리한 서류를 테이블에 놓으며 세디나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 세오른에서 현장 학습을 간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세디나도 현장 학습에 가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주변 학생들이 하루가 멀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터라,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건 왜……?”




“세오른이 움직인다면 검은 여명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그들이 혹시 무언가 꾸미는 일이라도 있나?”




“아, 그건…….”




세디나는 무어라 말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아는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현재 검은 여명회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




루드거는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을 세웠다가 이내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하군. 분명 이 기회를 틈타서 무언가 행동하리라 생각했는데. 상부에서 따로 내려온 지시나 명령은 없었나?”




“예. 단지 대기하라는 말뿐이었습니다.”




“대기하라, 인가.”




세디나는 검은 여명회의 세컨드 오더지만, 최근에는 루드거의 전담으로 활동하면서 상당한 직위를 얻게 됐다.




신분상 세컨드 오더임은 여전하지만, 퍼스트 오더 <존 도우>의 대행자라는 이명은 크다.




그 덕분에 세디나는 전보다 더 상위정보의 접촉에 용이해졌고, 검은 여명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었다.




그런 세디나조차도 이번 현장 학습 건으로 검은 여명회에 하달받은 명령이 없다 했다.




‘나에게도 따로 지시가 내려온 것도 아니고 말이지.’




물론, 이쪽은 이미 시킨 일이 있으니까 추가적인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제로 오더는 루드거가 원래 있던 존 도우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더욱 정보의 접촉을 신경 쓰는 걸지도 몰랐고.




루드거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로 오더의 성격상 그런 귀찮은 일은 하지 않을 거다.’




제로 오더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만약 제로 오더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썼다면, 오더 시노드에서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그가 가만히 듣게 놔뒀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제로 오더는 회의에서 가만히 있었다.




누구인지도 모를 녀석이 간부 자리를 대신 꿰차고 온 걸 알면서도.




그저 방임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속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루드거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번 현장 학습 때는 정말로 검은 여명회는 움직이지 않는 건가?’




그러다 어느 곳에 생각이 미친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세디나. 너는 검은 여명회의 움직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부는 알지 못한다. 맞나?”




“…….”




세디나는 존경하는 루드거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꽤 뼈아픈지 대답을 살짝 망설였다.




“널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네가 미처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의 경우에…… 니콜라이가 연관되어 있나?”




퍼스트 오더 니콜라이.




검은 여명회의 간부 중에서도 유독 정보를 취급하는 쪽에서 능력을 지닌 그라면, 다른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과연 루드거의 추측대로, 세디나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렇군. 그쪽이 뭘 하려는지 완전히 알지 못하는 이상, 검은 여명회가 움직일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가.”




되도록 아무 일 없이 평탄하게 흘러갔으면 좋겠지만, 뭐든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야 하는 법이다.




‘해야 할 일이 늘었군.’




본래라면 수도에 가서 렐릭의 파편을 훔칠 수 있는 기회를 볼 생각이었다.




보통 황실의 철통같은 보안을 생각하면 엄두도 나지 않을 일이겠지만, 마냥 도전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이번 현장 학습에 한해서, 학생들이 황실 내부를 둘러보는 것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황실로서는 훗날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될 아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생각이었겠지.’




그 취지는 이해한다.




덕분에 가장 높은 벽이라 생각했던 황궁에 인솔 교사라는 명목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러나 거기에 검은 여명회가 끼어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니콜라이가 보여 준 행동으로 보건대, 그는 뒤에서 무언가 일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게다가 니콜라이는 지난번 회의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루드거에게 큰 치욕을 당했다.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복수를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제로 오더는 간부들 간의 경쟁을 전혀 제지하지 않으니까.’




니콜라이의 입장에서, 자신의 원수인 존 도우와 목표물 중 하나인 세오른 아카데미가 수도로 현장 학습을 간다면.




과연 그가 가만히 있을까?




물론,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놓고 이쪽의 정체가 검은 여명회의 간부라고 소문내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향한 견제를 넘어 조직을 배신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니콜라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 그 선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제로 오더가 허락한 한도 내에서의 경쟁일 테니까.




‘뭐가 어찌 됐든, 특별한 현장 학습이 되겠군.’




* * *




치이이익!




열차가 새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철로 위를 달렸다.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좌석에 앉은 학생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드디어 현장 학습이다!”




“벌써 기대돼!”




“멘토분들은 누가 오시려나?”




레더벨크가 세오른과 인접해서 마법, 그리고 마법 공학과 과학이 발전한 대도시라면.




린데브루뉴는 천년제국의 발자취가 새겨진 역사적인 사료가 넘치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직 수도에 가 보지 못한 학생들은 설렘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누가 열차 내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지?”




그때 열이 잔뜩 오른 분위기에 찬물을 넘어 얼음 마법을 시원하게 날리는 것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떠들던 학생들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루드거 첼리시.




인솔 교사로서 합석한 그는 자리에서 날뛰는 학생들을 말 한마디와 눈길 한 번으로 제압했다.




시끄러운 차량도 루드거가 한번 훑고 지나가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학생들이 뒤에서 수군댔다.




“그래도 모처럼의 현장 학습인데 좀 좋아하면 안 되나.”




“그러게 말이야. 루드거 선생님은 너무 엄격하신 거 같아.”




“근데 그럴 만하지 않아? 루드거 선생님은 세오른에 부임하러 오실 때 열차 테러에 휘말리셨잖아.”




“아, 설마 그래서?”




한 차례 조용해진 열차는 무사히 수도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인솔 아래 수도의 기차역에서 우르르 빠져나왔다.




“와.”




“여기가 수도구나.”




“진짜 예쁘다.”




제국의 수도 린데브루뉴는 한눈에 봐도 하얗고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도시였다.




기차역에서 나와 광장으로 향하는 거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을 보는 것과 같았다.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 레더벨크가 조금 어둡고 딱딱하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린데브루뉴는 색감이 맑고 따스했으며 레더벨크보다 더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학생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고,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리운 감정을 느낀 것은 루드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도 오랜만이로군.’




루드거가 스승님의 품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왔던 곳이 바로 이곳, 린데브루뉴였다.




그때도 린데브루뉴는 상당히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7년도 더 지난 일이니 당연한 건가.’




마법과 과학이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7년이란 세월은 변화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바뀐 건 아닌지라, 길을 걸으면서도 과거의 모습이 언뜻언뜻 겹쳐 보이고는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와서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시절.




어두운 밤거리를 걷던 루드거는 골목길의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부딪쳤다.




로브를 머리 위에 뒤집어써서 정체를 감췄다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와 금빛 머리카락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네놈은 무어냐.




-너는 누구지?




두 사람은 서로 동시에 그렇게 물었다.




아무리 어두운 골목길이라 하더라도 루드거는 누군가 자신을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감을 올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부딪치기 전까지, 누군가 다가오는 걸 몰랐던 것이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기척을 죽이는 아티팩트와 주변의 사람을 찾는 아티팩트를 쥐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의문의 남자와 맞닥뜨린 것이다.




서로가 비밀을 품고 있던 두 사람.




그것이 제국의 1황녀와 잭 더 리퍼의 첫 만남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제1 황위 계승권자가 되어 명실상부한 차기 황제라 불리고 있지.’




전대 황제가 워낙 무력하고 심성이 나약한 성격이다 보니 더욱 그러한 점이 두드러졌다.




‘여전히 황궁에 틀어박혀 열심히 일하고 있으려나. 아니, 그 성격을 생각하면 뒤에서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세간에 알려진 아일린 1황녀의 이미지는 자애롭고 아름다우며 능력이 뛰어난 철혈의 여제라는 인식이다.




그 소문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아일린은 그렇게 불리기 충분한 능력을 지녔으니까.




다만, 소문이 그녀라는 존재를 온전히 다 담지 못할 뿐.




‘그 성미를 생각하면,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지만.’




아일린과 비슷한 사람을 떠올리라면 루드거는 단연코 엘리사 총장과 제로 오더를 떠올릴 것이다.




속내를 알기 힘들고, 흑막의 포스를 풍기며 뒤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는 사람.




그럼에도 당당하고 고고하며 절대로 자신을 낮추거나 굽히지 않는 사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경은 한다만.’




얼굴을 맞대고 지내라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 것이다.




그 정도로 아일린 1황녀는 피곤하고, 또 꺼려지는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차기 황제라는 든든한 우군이 생겼는데 정체를 감추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저쪽은 같은 핏줄인데, 대체 왜…….’




루드거의 시선이 후배들에게 열심히 수도에 대해서 설명하는 에렌디르를 향했다.




수도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해 선배로서의 위엄을 살리고자 하는 것 같은데.




말이 너무 많아서, 듣고 있는 신입생들은 감탄하기보다는 잔뜩 질려 하고 있었다.




정작 에렌디르는 눈치 없이 설명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면, 저게 과연 자신이 알던 그 1황녀의 동생이 맞나 싶을 정도다.




당연히 에렌디르를 향한 루드거의 시선은 어딘가 안쓰러우면서도 한심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빠 쪽을 닮은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루드거는 고개를 저으며 도시의 모습을 살폈다.




‘결국, 다시 돌아오기는 왔군.’




원래라면 제라드라는 신분으로 이곳에 왔어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기하던 한스와 만나서 서서히 자리를 잡고 세력을 만들어 나갔으리라.




하지만 다시 방문하면서 얻은 그의 신분은 마법 아카데미의 교사였다.




앞일을 모르는 거라고 하더니, 참으로 재미있는 운명의 농간이 아닌가.




“여기가 중앙 광장이구나.”




“엄청 넓다.”




멀어 보였던 광장에 도착하자, 익숙한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맞이해 줄 멘토 마법사들.




그들이 무리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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