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74화 드발크 황성 (1)

 ◈ 274화 드발크 황성 (1)




드발크 황성은 엑실리온 제국 자체를 상징하는 거대한 은빛의 성이다.




낯에는 태양의 축복을 받고, 밤에는 달과 별의 은총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듯 우뚝 선 성채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역사의 상징이었다.




평소라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그곳에.




루드거는 안내에 따라 걷고 있었다.




‘정말 황실의 문을 열어 줄 줄이야.’




루드거는 황성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 혼자만 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루드거 말고도 다른 교사도 있었으니까.




“와. 진짜 아름다워요.”




셀리나는 화려한 장식과 예술품으로 가득한 복도를 걸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루드거도 적당히 대답하며 그 말에 동조해 주었다.




셀리나 혼자만 신기해한다고 하기엔 다른 교사의 반응도 마찬가지.




아무리 세오른의 교사라 하더라도 황성에 들어올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곳은 유리의 복도라고 해서, 복도 자체가 유리와 크리스털과 거울로 이루어진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유리를 통해 만들어 낸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수정궁과 함께 린데브루뉴의 양대 유리 예술 작품이라 불렸다.




‘오히려 수정궁보다 나으면 더 나았나.’




표만 사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수정궁과 달리 유리의 복도는 선택받은 사람만 올 수 있었다.




희소성을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봐도 무방할 터.




‘나도 대륙을 돌아다니며 온갖 특이한 것들을 많이 봐 왔다고 자부했는데.’




루드거는 스승님과 돌아다니며 세계 오지를 탐험했다.




비밀의 유적, 불타는 하늘과 얼어붙은 땅,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중에서 평범한 사람은 평생 볼 수 없다는 원소군주도 목도했다.




루드거는 무언가를 보고 놀라기엔 그간 쌓아 온 경험치가 남들과 달랐다.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비교하면 인류가 만들어 낸 예술품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루드거조차도 유리의 복도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록 이것이 인공적일지라도, 수많은 예술가가 혼신을 다해 만들어 낸 작품에는 극한으로 계산된 아름다움이 있었다.




황실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걸 보게 될 일도 없었으리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떠돌던 긴 세월 동안 황궁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로군.’




7년 전 그날.




아일린 1황녀와 만났을 때도 루드거는 황궁까지 들어온 적은 없었다.




당시 아일린 1황녀는 황궁 내에 자신의 세력이 부족했고, 그녀를 감시하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 혹은 인적이 드문 폐가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차기 황제와 역대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카데미 교사가 만나던 곳이 더러운 폐가라니.




농담거리로도 여기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런 때가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골목길에서 몸을 숨긴 채 도망을 치는 일처럼.




지금은 눈부시게 빛나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위대했던 것은 아니니까.’




“루드거 선생님?”




“예.”




갑자기 들려오는 셀리나의 목소리에 루드거는 상념을 지우고 그녀를 돌아봤다.




함께 인솔 교사로 온 셀리나는 투명한 시선으로 루드거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냥 내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역시! 저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황실이라니,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게다가 예술품들은 아름답기까지 하고요.”




“예. 그러니 지금 충분히 즐길 생각입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황실 내부를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워낙 넓은 곳이라 아직은 황실의 창고까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구조 정도는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넓기는 더럽게 넓군. 둘러보는 것이 허락된 곳은 황성 전체의 극히 일부일 뿐인데도 이 정도인가.’




복도는 걸어도 끝이 없었다.




얼핏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황궁의 안뜰의 넓이만 해도 레더벨크 도시의 시민 공원을 방불케 할 규모였다.




걸어 다니기보다는 마차나 증기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드발크 황성은 거대했다.




‘이런 곳에서 렐릭의 파편을 훔친다고 하더라도, 도망을 제대로 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애초에 루드거가 황성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고대 유물의 조각을 얻기 위해서다.




‘제국의 수도에 조각이 있는 건 확실한데, 한스가 이 잡듯이 뒤져도 찾을 수 없다고 했지.’




약간 과대평가일지도 모르지만, 한스의 정보력이 닿지 않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무리 비밀스러운 곳이라도, 그곳이 사람의 손길이 닿는다면 반드시 알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에도 한스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소거법으로 인해 확실한 단서가 됐다.




‘이곳일 수밖에 없어.’




황실 내부에는 귀중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으니, 있다면 아마 그곳이리라.




다만, 산재한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창고의 위치를 안다고 해도, 황실의 크기를 감안하면 창고 또한 상당히 거대할 것이다.




‘파편은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공명하니, 들어만 간다면 찾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문제는 탈취에 성공한 이후다.




‘황실이 너무 넓어. 물건을 빼앗겼다는 걸 알면 사방에서 병사들이 나타나 포위하려 들겠지. 그렇게 되면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하겠군.’




루드거는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그림자를 통해 공간 이동을 한다면 어떨까.




‘공간 이동도 힘들어. 황실 곳곳에 설치된 마력 장벽 때문에 좌표가 꼬일 위험이 커.’




루드거가 지금까지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눈과 머리로 확실하게 좌표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좌표가 엇나가는 순간, 단적으로 높은 고공에서 뚝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건 차라리 다행이다.




벽에 끼거나 땅 아래 파묻히면 그때는 정말 문제가 되니까.




공간 마법은 오직 루드거만 쓸 수 있지만, 그 위험성을 감안하면 루드거도 함부로 쓸 것이 못 됐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마법이 아닌 본인의 두 다리로 이 황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데.




그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황성이 너무 넓었다.




넓은 만큼 사용인들도 많고, 병사들도 많다.




‘병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황실 자체를 수호하는 기사들도 만만치 않게 있지.’




지금도 복도를 걷다 보면 자리를 지키듯 서 있는 제복을 입은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황실수호 기사단.




제국의 3대 기사단과는 다르다.




스스로 험지에 가서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는 3대 기사단과 비교하면 수호 기사단은 실력이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기사는 기사.




평화로운 곳에서 자리를 지키거나 순찰만 돌아서 저평가를 당하는 거지, 일반인으로선 초인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로열가드겠지.’




오직 황실의 핏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사들.




로열가드는 기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칭호다.




숫자는 적지만, 그렇기에 개개인이 지닌 힘은 평범한 기사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듣기로는 그 테리나 라이언하울도 로열가드가 될 수 있었는데, 스스로 그런 자리는 맞지 않는다고 물러났다고 했던가.




‘모두가 마스터급 강자는 아니더라도, 최소 그에 준하는 경지라 봐야겠지.’




넘치는 수호 기사단과 로열가드를 뿌리치고 이 넓은 황실에서 탈출한다?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루드거는 문득 신의 힘을 쓴다면, 하고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렐릭을 모으는 것은 매우 은밀하게 할 일이었다.




그런데 신의 힘을 쓴다면 그때는 숨기고 뭐고 없다.




은밀성이 날아가는 것을 넘어서, 수도 전역의 시민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황실의 전력을 상대로 적당한 힘 대중을 할 수도 없을 테고. 그에 상응하는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나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지.’




루드거는 머릿속으로 혹시 모를 시뮬레이터를 돌려 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갔다.




‘작은 파편 하나 훔치겠다고 지도를 바꿀 수는 없지.’




무엇보다 황실에는 수호 기사단과 로열가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실에 소속된 마법사들도 있으며 아직 드러나지 않는 전력도 분명히 존재했다.




‘가령 그림자의 비수처럼.’




과거 1황녀 아일린의 숨겨진 비수는 루드거의 신분 중 하나인 ‘잭 더 리퍼’를 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잭 더 리퍼는 7년 전 사건을 해결한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황녀의 비수 이야기는 귀족들 사이에서 메아리처럼 돌았다.




끊어지지 않고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허상을 7년간 유지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 아마 빈자리에 새 사람을 앉혔을 가능성이 컸다.




‘이러면 근본적으로 황실 창고를 터는 것 자체를 재고해 봐야겠는데.’




한스가 그 말을 들었다면 ‘아니 진짜로 털 생각이었습니까?’라며 정색하며 물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루드거는 진심으로 황실을 털 생각이었다.




지금은 아니었지만.




루드거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한스와 세디나는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 * *




세디나 로쉔은 지금 큰 벽에 가로막혔다.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이랑.’




세디나의 시선이 자신의 멘토인 케이시 셀모어를 향했다.




케이시 셀모어 또한, 루드거의 조교인 세디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본래 세디나는 멘토들의 수업을 듣는 척하면서 종이 마법을 통해 주변에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었다.




선배인 한스가 나선다고 하지만, 이쪽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멘토가 이래서야 그럴 틈이 나지 않았다.




상대는 루드거 첼리시의 행방을 찾아 이곳까지 추적한 사람이다.




세기의 명탐정이라 불리고 있으니, 세디나로서도 함부로 마법을 사용했다가는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내 마법은 은밀성이 특히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저 정도의 실력자에게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차라리 이쪽에 관심을 껐다면 모르겠지만, 케이시도 세디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대체 무슨 목적이지?’




세디나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그때, 케이시 셀모어는 생각했다.




‘조교인 이 아이와 친해지면, 지금 그 남자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케이시가 멘토로 지원을 한 것은 루드거와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엿본 루드거의 과거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루드거가 의도했다 하더라도, 이 모든 일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다시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평소였다면 당차게 말했을 케이시도 루드거 앞에 서자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당신의 과거를 봤다고.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됐다고.




이쪽도 마냥 떳떳한 것은 아닌지라 그 말이 쉽사리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억지로 멘토 신청서를 밀어 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케이시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루드거의 주변인을 공략하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거로.




그 사실을 모르는 세디나로서는 설마 자기도 정체가 들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좋지?’




더욱이 문제인 것은, 세디나에게 불편한 사람이 한 명 더 같은 조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이이.




옆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강렬한 시선.




세디나는 일부러 그쪽을 돌아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줄리아 플룸하트.




하필이면 그녀가 같은 조가 되어 옆에서 세디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이쪽이 반응하지 않자 오기가 생긴 것인지, 줄리아도 시선을 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세디나로서는 줄리아가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다.




물론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세디나와 줄리아는 서로 절친한 친구였으니까.




세디나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도 줄리아가 처음이었고, 그것은 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디나가 검은 여명회에 들어가길 결심한 순간부터 둘 사이는 틀어졌다.




‘비록 지금은 검은 여명회가 아니라 루드거 선생님의 편에 붙었지만, 그래도 바뀌는 건 없어.’




세디나는 이미 평범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는 세계는 줄리아와 달랐다.




줄리아를 위해서라도 세디나는 그녀와 엮이면 안 됐다.




세디나를 향한 시선에 담긴 것은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미약한 호의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




세디나는 그것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일부러 줄리아의 시선을 무시했다.




하지만 이쪽이 아무리 무시로 일관하려 해도, 줄리아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관계 속에서, 세디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제발 누가 좀 도와줘.’




* * *




“아니, 이 녀석은 대체 뭘 하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야?”




위장 주택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스는 세디나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답답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다리를 떨었다.




‘도처에 기사들이 깔려 있으니 걔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세디나가 루드거를 존경한다는 것은 한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세디나가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뜻일 터.




‘그렇다면 일단 나 혼자서라도 형님이 시키신 대로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나.’




일단은 저기 소파에 아직도 누워 있는 그란데르의 조언대로 지하 하수구 위주로 둘러보기는 했는데.




솔직히 이쪽이 바라는 정보가 나올 것 같냐면 한스는 거기에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말 안 들었다고 괜히 지적당할 바에야 일단 해 보는 게 맞긴 한데.’




한스가 속으로 고민하던 그때, 보냈던 쥐 중 한 마리가 돌아왔다.




“뭐야. 빨리 왔네. 벌써 확인했어?”




찍! 찍!




“지하는? 하수도 안쪽은 살폈고?”




찌찍! 찌이익!




“뭐?”




한스는 쥐에게 전해 들은 소식으로 인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 수도 아래로 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스의 물음에 쥐가 수염을 쫑긋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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