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75화 드발크 황성 (2)

 ◈ 275화 드발크 황성 (2)




‘이거 뭔가 이상한데.’




쥐가 전해 준 사실을 들은 한스는 고민에 빠졌다.




보통 쥐들은 한스가 부탁하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들어준다.




물론 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보니, 한스가 주로 시키는 일은 어디를 가서 본 것을 알려 달라는 것이 전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 제보당의 괴수로 변신한 이후, 한스는 짐승에 대한 통제력이 강해졌음을 느꼈다.




이제 단순히 쥐뿐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를 넘어 까마귀까지 부릴 수 있게 됐으니까.




이 말이 무엇이냐면, 이제 쥐 정도는 한스가 무슨 말을 해도 충실히 그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한스도 그걸 알기에 지하 수로를 확인해 보라며 쥐를 보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하 수로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고 했었지.’




길이 막혀 있거나 더 가야 할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쥐들이 두려워서 더 이상 아래로 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내 통제력을 넘어서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강하게 명령하면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만들 수도 있는데?’




하지만 쥐가 거짓말을 전해 줄 리가 없었다.




한스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만큼, 쥐들은 진실만을 이야기했으니까.




물론 쥐가 물어다 주는 정보 자체가 마냥 깔끔하지는 않아서 한스 또한 자체적으로 정보를 재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걸 감안해도, 무서워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았다.




‘뭔가 있다.’




한스는 직감했다.




수도의 지하 수로 아래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렇다면 형님의 스승님은 그걸 알고서?’




한스의 그란데르의 조언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하수도를 살피라 했다.




무언가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조언을 해 주지도 않았을 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안에 정확히 뭐가 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한스는 애써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에게도 눈치라는 것이 없지 않았다.




‘한 번 알려 준 이후로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어.’




그렇다면 이쪽이 아무리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상하게 했지.




이렇게 된 이상 본인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쓰읍. 아 진짜. 이러는 거 정말로 싫은데.”




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겨 입었다.




본인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한 상황에서 도망칠 만큼 성격이 되바라지진 않았다.




‘게다가 나 혼자서만 가는 건 아니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한스 말고도 또 한 명의 오웬즈 멤버가 와 있다.




실질적인 전투 능력이 가장 강한 코드네임 <허먼 멜빌>의 판토스나, <빅토르 위고>의 알렉스가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외라면 의외라 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엘프.




“이보쇼. 다 됐소?”




한스가 부르자 굳기 닫힌 방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곳에 주황색 머리카락을 난잡하게 기른 더벅머리 엘프가 걸어 나왔다.




벨라루나 페타나.




오웬즈의 코드네임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루드거가 그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약에 취해 있는 이 엘프가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문학가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준비물은 다 챙겼소?”




“후우, 후우. 일단 다 챙기긴 했는데…….”




“그러면 갑시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한스와 함께 움직이기 위해 수도까지 온 것이 바로 그녀였다.




한스는 벨라루나의 머리 위에 빵모자를 씌운 뒤 주택을 나섰다.




* * *




수정궁의 마법 전시회장.




로이나 파블리니는 헤실헤실 웃으며 안내를 맡았다.




“여기는 마법을 전시하는 곳이자 마법의 전당이라 하는데, 아마 못 들어 본 마법들의 자료도 이곳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신기한 마법들이 많은 건가요?”




“예. 수정궁은 황실에서 책임지고 유치하는 곳인지라, 구색만 갖추지 않고 진심으로 하고 있거든요.”




그 때문에 황실에서는 대륙의 온갖 마법과 지식을 가져와 수정궁에 전시해 놓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접하기 힘든 [특이] 계열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아, 물론 해당 마법의 근본적인 비밀까지 전부 다 알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안을 지켜 주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보다 리네 학생은 정말 무속성 마력 보유자인가요?”




로이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시선에 리네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원소 마법을 쓰기 힘들었거든요.”




“와, 그러면 은근 수업에서 불편한 게 많았을 텐데.”




“네, 실제로도 그랬었죠. 어떻게든 이론으로 꾸역꾸역 따라가기는 하는데, 뭔가 한계를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 그 기분 저도 잘 알아요!”




로이나는 리네의 손을 잡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로이나는 6위계 마법사였지만, 다른 6위계 마법사처럼 스스로 위대하다고 느껴 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저, 그래도 로이나 멘토님은 렉서러 등급 마법사 아니신가요?”




“그래 봤자 말석밖에 되지 않는걸요!”




“말석이라도 대단한 거 같은데…….”




“저는 이론에 빠삭해서 그런 거지, 따지고 보면 반쪽짜리 6위계에 지나지 않아요.”




로이나는 실전에 약해도 너무 약했다.




선천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 로이나였기에, 무속성 마력이라는 장애를 떠안고도 세오른에서 열심히 하려는 리네가 기특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리네로서는 약간의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은 분이신 거 같아.’




궁금한 걸 물어보니 진지하게 대답해 주는 것도 모자라, 수정궁의 안내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리네로서는 이렇게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로이나는 웃으며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 했다.




“그보다 리네 학생은 무속성 마력을 지녔는데, 세오른 생활은 괜찮나요?”




“네.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교수님들 수업을 따라가긴 힘들었을 텐데요?”




“교수 중에서 신경을 잘 써 주시는 분이 있으시다 보니…….”




“오, 그래요? 누군가요?”




“루드거 선생님이요.”




“엑?!”




루드거의 이름이 나오자 로이나가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러시나요?”




“어, 음. 그 루드거라는 분이 루드거 첼리시 맞죠?”




“예. 맞아요.”




“그랬는데 잘해 주셨다고요? 인상만 보면 부족한 학생들은 가차 없이 버리실 것 같았는데.”




로이나의 말에 리네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루드거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건 없어서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루드거 선생님은 되게 학생들을 아끼세요. 물론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시지만, 누가 힘들어하면 마지못한 척하며 도와주시죠.”




“헤에. 그, 그랬구나.”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무속성 마력에 대한 조언이나, 특히 부족했던 마력 방출량이 확실히 늘어서 전보다 훨씬 더 나아졌죠.”




“마력 방출량이라면, 설마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의 실험에 참여하신 건가요?!”




로이나가 놀라서 되물었다.




“예. 어쩌다 보니…….”




“정말 부럽네요! 한창 성장해야 할 타이밍에 그런 기연을 얻게 되다니! 무섭지는 않았나요?”




“사실 걱정이 앞섰죠. 아직까지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연구였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말 것 같아서요.”




“저, 정말 대단해요!”




그녀는 리네의 용기와 더불어, 루드거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봤다는 듯 눈을 빛냈다.




리네의 입장에선 6위계 마법사이자 업계 대선배인 로이나가 이렇게까지 말해 주니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빈말이라고 보기엔 로이나의 행동은 진심이었다.




리네의 ‘눈’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리네는 자신에게 호의를 품은 사람과 적의를 품은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남들이 무서워하는 루드거도 리네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갈 수 있던 것도 바로 보는 눈 덕분이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행동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악의를 품었는지 호의를 품었는지는 전부 알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 그보다 리네 학생.”




“네?”




“아까부터 저희 뒤에서 따라오는 저 금발 학생은 대체 누군가요?”




리네는 누구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눈에 띄는 화려한 블론드 헤어를 보는 순간 리네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에렌디르 폰 엑실리온.




제국의 3황녀이자 리네의 선배이며 동시에 친구이기까지 한 그녀가, 뒤에서 두 사람을 몰래 쫓아오고 있었다.




눈에는 이글거리는 질투심이 가득한 채로.




본인은 열심히 숨어서 쫓아온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그녀의 특유의 머리색은 이런 인파 사이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제 선배예요.”




“서, 선배요? 그런데 왜 따로 안 다니고 저희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가서 데려올게요.”




리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인파에 숨어 있던 에렌디르에게 접근했다.




“선배. 뭐 하세요?”




“앗! 리, 리네 후배? 그…… 우연이네? 여기서 다 만나고 말이야.”




“만나고 자시고 저희 같은 멘토 수업을 듣기 위해 왔잖아요.”




“아, 맞다. 그, 그랬었지?”




“그래서 선배는 혼자 따로 구경 안 하세요? 같이 구경하는 사람은 없고요?”




“…….”




에렌디르의 표정이 삽시간에 우울하게 변하자 리네는 아차 싶어서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마침 잘됐네요! 저도 선배랑 같이 가고 싶었거든요! 찾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우연이네요!”




“……!”




에렌디르의 표정이 다시 맑아졌다.




리네는 그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참 피곤하구나 싶었다.




아무래 그래도 선배이자 황녀인데 이렇게 단순해도 되는 건가.




첫인상 때 보여 준 도도함과 당찬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래도 뭔가 이게 선배답기도 하고 친근해서 보기 좋지만.’




일단 에렌디르를 혼자 놔둘 수도 없었기에 리네는 그녀의 손을 잡아 로이나가 기다리는 곳까지 데려갔다.




그렇게 로이나와 에렌디르가 서로 마주 보게 됐다.




“저, 저기 리네 학생. 이 사람은…….”




에렌디르를 알아본 로이나가 다시 처음처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에렌디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그녀가 지닌 화려한 외모와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성격의 로이나에게는 그야말로 상극 중의 상극.




긴장한 것은 에렌디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보여도 로이나는 6위계 마법사이며 이론계의 불세출의 천재이자 그녀의 멘토였다.




반면 황가의 핏줄을 이어도 이론에서 영 약한 에렌디르에겐, 로이나는 자신의 모자란 부분만으로 고위계에 오른 천재였던 것이다.




리네는 서로 불편해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떻게 해야 이 서먹한 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뭔가 강제로 친하게 만들어 주려 해도 반발심만 들 것 같은데.’




때마침 리네의 시선에 전시회장의 마법들이 보였다.




“로이나 멘토님. 저 마법은 뭔가요?”




커다란 유리관 안쪽에는 술식과 함께 마법의 형태가 환영 마법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 어떤 마법인지 소개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리네는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아, 저거 말이죠?”




로이나는 질문을 받자 이때다 싶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리네는 그 말을 경청해서 들었고, 에렌디르도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편승해 설명을 경청했다.




덕분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해소되고 에렌디르도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러면 좀 더 안쪽으로 가 볼까요?”




리네의 자연스러운 제안에 세 사람은 수정궁을 돌아다니며 안쪽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누가 멘토이고 이끄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지만, 세 사람 중 누구도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으음. 아마 이쪽일 거예요. 특이 계열 마법이 전시된 곳.”




로이나가 가리킨 곳에 인파들 사이에 보관된 마법들이 보였다.




진짜 마법은 아니고, 이런 마법이라는 것을 흉내를 낸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매우 실감 났기에 사람들은 감탄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계열과 특화가 묶이죠. 그중에서 현대의 마법으로 정의되지 않는 마법들은 [특이] 계열로 구분되고는 해요.”




“그런데 특이 계열 마법이 생각보다 많네요?”




“오히려 다양성만 놓고 보면 특이 계열은 나머지 4계열보다 훨씬 더 방대하거든요.”




리네는 한 전시 유리관 앞에 멈춰 섰다.




그 안에서는 잠을 자는 사람과 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간 마법사의 모습이 보였다.




“<꿈dream walk> 마법이네요. 몽상학파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사용하죠. 특이 계열치고는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어요.”




그 말에 리네는 줄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지금 현장 학습을 하고 있었지.




그러던 찰나 리네의 시선에 한 마법의 모습이 잡혔다.




리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로이나 또한 해당 마법을 보고는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아, 저건 신성 마법이네요.”




“신성 마법이요?”




“특이 계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장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죠. 루멘시스 교단의 팔라딘이나 인퀴지터, 신관들이 사용하는 마법이니까요.”




“인퀴지터는 뭔가요?”




“다른 말로는 이단심문관이라고도 해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사장된 직종이지만, 루멘시스교단은 아직도 그런 자들을 데리고 있거든요.”




“그랬군요. 그런데 마법을 쓰다니.”




“그들은 마법이 아닌 신의 기적이라 말하지만, 현대 이론에 의하면 반쯤 마법으로 보고 있어요.”




리네는 신성 마법의 전시관을 응시했다.




그 안에서 새하얀 성복을 입은 채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여인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빛이 일렁이듯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환영인 걸 알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유독 리네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체 뭐지?’




빛 때문에 여인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리네는 이상하게 그 모습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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