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76화 황성의 주인 (1)

 ◈ 276화 황성의 주인 (1)




“스승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에이단은 자신의 스승님을 보며 그렇게 물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테이시와 이오나도 놀라서 되물었다.




“스승?”




“잠깐만 에이단. 스승님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에이단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설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어, 그러니까 이쪽은 내게 반마법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인데…….”




에이단이 뭐라고 설명을 할지 고민할 때 만델리나가 대신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꽤 길어질 거 같은데, 어디 한적한 곳에서 이야기할까?”




만델리나의 말에 에이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네 사람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만델리나였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는 만델리나라고 해.”




털털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만델리나에게 테이시는 못마땅하게, 이오나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에이단의 친구인가 보구나? 에이단 이 녀석, 이런 미인들과 친하게 지내다니. 요즘 잘 지내나 보다?”




만델리나는 이제는 꽤 성장한 자신의 제자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어깨동무를 했다.




그 모습에 테이시의 눈썹이 살짝이지만 위로 휘었다.




“아하하. 저로서는 과분한 친구이지만요.”




“요 녀석 봐라? 못 보던 사이에 예의를 차리는 것도 늘었네. 성장했구나, 성장했어!”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모습.




테이시는 뭔가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불편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에이단의 스승이라는 만델리나는 성격도 좋아 보이고,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미인이었다.




그때 만델리나가 테이시를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그쪽의 아가씨 이름은 뭐라고?”




“……테이시 프리아드라고 해요.”




“하하, 그렇구나. 아, 혹시 에이단이 신경 쓰이는 거야?”




“네, 네?”




“이야. 에이단 이 녀석, 능력도 좋단 말이지. 마법을 그렇게 좋아하던 시골 꼬맹이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와 알고 지내다니. 아, 혹시 여자 친구?”




“여, 여자 친구라니……!”




테이시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푸욱 빨갛게 물들었다.




만델리나의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으리라 되새기던 마음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어? 아니었어? 이렇게 귀엽고 예쁜데? 야, 에이단!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네? 제가 뭘요?”




오히려 에이단을 질타하는 만델리나의 모습에, 테이시는 생각을 바꿔 먹었다.




‘아, 좋은 사람이구나.’




사랑에 빠진 소녀는 이렇게나 무서웠다.




반면, 에이단은 으악!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만델리나가 에이단의 머리를 쥐어박았기 때문이다.




“아으 머리야. 그보다 스승님이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엉? 뭐가?”




“스승님은 원래 여기저기 떠도는 성격 아니었어요?”




“아니 뭐,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거든.”




“아니라고요? 스승님은 놀고먹는 걸 좋아하는 한량이잖아요.”




“……아무리 내 제자지만, 그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아픈걸.”




하지만 만델리나는 에이단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놀고먹는 걸 좋아하는 한량이 맞았으니까.




“뭐, 그래도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 나 취직했거든.”




“……예?”




“뭐 왜, 뭐. 그게 놀랄 일이니?”




에이단은 그렇다고 답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생각해 보면 만델리나는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지, 마법의 능력만 놓고 보면 일류 마법사였으니까.




“아, 그러면 일 때문에 여기에 나오신 거예요?”




“아니. 이건 그냥 땡땡이.”




“…….”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농담이니까.”




“농담 맞죠?”




“반은?”




“아…….”




“반대로 절반은 진짜라는 소리야. 실제로 일 때문에 나온 건 맞으니까.”




“무슨 일이요?”




에이단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그 모습에 만델리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건 비밀. 제자야, 이 스승님은 말이지, 매우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어서 일반인에게는 발설이 금지되어 있단다.”




“엑, 스승님이요?”




“이 자식 봐라? 마치 ‘스승님이 중요한 일을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 말투네?”




“발설 금지라면서 중요한 업무라고 말은 해도 괜찮아요?”




“뭐, 세세한 내용만 말 안 하면 상관없지 않을까?”




“……진짜 괜찮을까. 이 사람.”




“방금 뭐라 했니?”




“아니요. 그래도 스승님이 좋은 곳에 취직하셨다 하니 마음이 놓이네요. 혹시라도 어디 길바닥에서 굶고 계시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내가 굶긴 왜 굶어!”




“실제로 저랑 처음 만났을 때, 배고파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셨잖아요.”




“윽! 그, 그건…….”




과거의 일이 떠오른 것인지 만델리나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에이단의 시선을 피했다.




“옛날에 무슨 일 있었어?”




테이시가 묻자 에이단이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응. 내가 스승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스승님이 길거리에서 쓰러져 거의 굶어 죽기 직전이었거든.”




“…….”




테이시가 눈을 크게 뜨며 만델리나를 돌아봤다.




만델리나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에이단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그때 어린 시절의 내가 스승님에게 빵을 가져다줬어.”




“빵을……?”




“응. 그래서 스승님이 고맙다고, 마법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지. 그때 배운 마법이 반마법이고.”




테이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오나도 조금이지만 입을 헤 벌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고작 빵 한 조각 때문에 특이 계열 마법을 익히게 됐다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연이…….”




“후후. 테이시 아가씨.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사실 가르쳐 준다고는 했지만, 배우는 것은 별개의 것이거든.”




만델리나는 곧바로 멘탈이 회복이 됐는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네?”




“그러니까 반마법이라는 것은 남이 가르쳐 준다고 해서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체질이나 적성도 중요하거든. 특히 [특이] 계열 마법은 더더욱.”




“하지만 에이단은 배웠잖아요.”




“……그래.”




만델리나도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이내 만델리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하니 나에게 빵조각을 쥐여 주던 그 순진한 시골 꼬맹이가 내 뒤를 이을 반마법 적성자일 줄 누가 알았겠어.”




“어, 그러면 에이단이 적성이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러면 그냥 겉으로는 아쉽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공짜 빵 얻어먹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넘길 생각이었지.”




“이 사람 진짜 본심을 숨길 생각이 없네!”




테이시는 새삼 깨닫고 말았다.




에이단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스승님인 만델리나도 절대로 정상인은 아니라고.




“아하하. 내가 적성이 있어서 다행이네.”




“넌 또 뭘 웃고 있어!”




심지어 에이단은 속 편하게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고 넘기려 하는 걸 보니 테이시는 속이 터지다 못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만델리나가 말했다.




“앗 참, 내 정신 좀 봐. 아무래도 이만 가 봐야겠네.”




“네? 가시는 거예요?”




“말했잖아. 일하러 나왔다고. 슬슬 돌아갈 시간이야.”




“아.”




“너무 아쉬워 말렴. 인연이 있다면 또 언젠가 만나겠지.”




만델리나는 걱정 말라며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아, 참. 에이단.”




“……?”




만델리나가 떠나기 전 에이단에게 충고를 전했다.




“되도록이면 멘토님과 떨어지지 마.”




“예? 왜요?”




“음. 글쎄다. 아마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서? 자세히는 나도 몰라. 그럼 이만!”




만델리나는 제대로 대답해 주지도 않고 자리를 휙 떠나 버렸다.




뒤에서 당황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만델리나는 그것을 뒤로한 채 인적이 드문 곳까지 이동했다.




적당히 주변을 둘러본 만델리나는 곧바로 품 안에서 통신 아티팩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황녀님, 접니다. 임무 마치고 황성으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단과 대화를 나눌 때와는 전혀 다른 차갑고 사무적인 목소리.




만델리나는 그 말을 끝으로 통신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 * *




루드거는 계속 황실 내부를 돌아다녔다.




물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고 다른 교사들과 함께, 황실 안내인의 지시를 따를 뿐이었다.




별 탈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던 황실 구경은, 난데없이 나타난 한 남자에 의해서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황실 수호 기사단 중 하나인 파시우스라고 합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금발의 미남자였다.




입고 있는 황실 특유의 제복은 정갈했으며, 자세는 꼿꼿했고, 행동도 예의가 발랐다.




연한 금발을 어깨 아래까지 길렀는데, 그것을 목 언저리에 적당히 묶은 모습이 그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퍽 어울렸다.




파시우스라는 이름을 알아듣는 몇몇 교사들이 웅성거렸다.




“파시우스라면, 설마 그 파시우스 경?”




“로열가드가 여기는 대체 왜?”




로열가드.




황실의 주요 인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황궁 최고의 검에 주어지는 칭호.




자신을 알아본 교사들에게 파시우스는 미소로 양해를 구하면서 한 사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루드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파시우스는 지금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파시우스가 루드거의 앞에 서며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혹시 루드거 첼리시 경 되십니까?”




“예. 제가 루드거 첼리시입니다.”




“오, 역시 그랬군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황실에서 일하는 기사인 파시우스라고 합니다.”




“예, 저 역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래서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로 접촉할 정도라면 필시 무언가 목적이 있을 터.




파시우스는 루드거의 직설적인 질문에도 미소를 흩트리는 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루드거 첼리시 경. 혹시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로열가드 파시우스의 개인적인 요청.




그 말에 주변 교사들이 재차 놀랐다.




아무리 세오른의 교사라 하더라도, 제국에서 손에 꼽는 전투력을 지닌 로열가드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 로열가드가 세오른의 교사를 개인적인 용무로 초대하다니.




하지만 초대를 받은 것이 루드거 첼리시라고 하니 또 묘하게 납득이 갔다.




“시간을 내어 달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인솔 교사로서 다른 개인적인 용무로 빠질 수는…….”




루드거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 하자 파시우스가 루드거에게 들릴 만큼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루드거 경을 뵙고 싶어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




파시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찡긋 한쪽 눈으로 윙크를 보냈다.




마치 이 정도 말했으면 그쪽도 충분히 알아들었지, 하는 의도로.




실제로 루드거는 파시우스가 그 말을 조용히 권하는 순간 곧바로 깨달았다.




누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황실 내에서 무력으로 손에 꼽는 로열가드를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그것은 상대가 이쪽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직위가 매우 높음을 시사했다.




황실에서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몇 없었다.




‘아니, 몇이 아니지. 단 한 명밖에 없다.’




루드거는 고민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로열가드를 보내면서까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은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뜻.




‘설마 내 정체를 알고 있나?’




아직 속단할 수는 없었다.




루드거는 세오른의 교사로서 최근 엄청나게 주가를 올리고 있었으니까.




아케인 체임버에서 선보였던 결과물을 생각하면 그저 관심이 생겨서 따로 부른 걸지도 몰랐다.




뭐가 어찌 됐든 황실의 높은 사람이 자신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거절의 의사를 비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군.’




썩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거절하는 것도 애매했다.




일단 그는 황실의 손님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가도록 하죠.”




“예. 그러면 제가 안내해 드리죠.”




파시우스는 그 대답만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루드거를 안내했다.




떠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다른 교사들은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일부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일부는 질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황실의 긴 복도를 벗어나 파시우스가 안내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자그마한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분수와 곳곳에 핀 화려한 색상의 꽃들.




장엄할 정도로 높게 솟은 토피어리와 잘 다듬어진 나무들까지.




은은한 향기와 함께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작다는 것도 드발크 황실의 광활한 안뜰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이곳도 만만치 않은 규모였다.




“루드거 첼리시 경의 이야기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앞장서서 걷던 파시우스가 조용히 가는 건 너무 적적한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오른에서도 상당히 많은 마법을 보여 주셨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이번에 아케인 체임버에서도 마법계를 떠들썩하게 만드셨다고요.”




“별거 아닙니다.”




“하하. 별거 아니라뇨. 그런 것도 못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오히려 화를 냈을 겁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진심이시군요.”




루드거의 말에 파시우스가 눈을 빛냈다.




“그렇기에 황녀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높게 솟은 토피어리들을 지나치자 자그마한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터의 중심에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정자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겸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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