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79화 그림자 회담 (2)

 ◈ 279화 그림자 회담 (2)




만델리나는 루드거를 본 순간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남자가, 과거 7년 전 그녀가 소속되어 있던 블랙옵스를 모조리 쓸어버린 잭 더 리퍼였으니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만델리나의 임무는 1황녀 아일린의 명령을 받아서 루드거의 과거 신분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오는 것.




그 역할을 도맡은 만델리나는 전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대답해라, 만델리나.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루드거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말하자 만델리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직도 그날의 공포는 만델리나의 뼛속 깊은 곳까지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루드거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질 무렵 구원의 손길을 건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일린 1황녀였다.




“그만. 지금은 내 충실한 부하이니 더는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루드거도 자신이 너무 날카로웠음을 인지하고 기세를 거두었다. 다만 아일린에게 핀잔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를 품다니. 보통 담력이 아니시군요.”




“원래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만델리나가 보통 특이한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다. 흥미가 생겨서 데리고 있다.”




특이한 성격이라는 말에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팀 블랙옵스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법 스페셜리스트들이다.




납치, 협박, 고문, 살인은 그들에게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팀 블랙옵스는 대부분 사이코패스거나 감정 표현이 극히 드문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충성심이 높다는 걸 제외하면 사람이라 보기 힘든 수준.




만델리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명령을 받아도 그것을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가벼운 태도.




마법사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상성을 보이는 반마법을 지녔음에도 싸움을 선호하지 않는 겁쟁이.




길가의 꼬맹이가 놀리는 것에 진심으로 발끈하는 비루한 인내심까지.




어째서 이런 사람이 블랙옵스에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만델리나는 특이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기억나는군. 그때 날 마주하자 살려 달라고 추하게 빌었었지.”




“윽!”




루드거가 과거를 떠올리며 입에 담자 만델리나가 어깨를 움츠렸다.




본인도 그때의 일을 떠올린 것인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호오. 그대에게도 그랬나?”




“설마, 또……?”




“마찬가지다. 쿠데타를 벌이려 했던 잔당의 싹을 뽑기 위해 몸소 행차하자, 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군.”




아일린은 그날을 떠올렸다.




만델리나는 자신을 쫓아온 추격자들 사이에 섞인 아일린 1황녀를 보는 순간, 그대로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항복! 항복할게요! 살려만 주세요!




블랙옵스 팀 알파 출신이라는 말에 잔뜩 긴장했던 추적자들은 그 얼빠진 모습에 싸울 의욕조차 잃었다.




그건 무자비하게 철퇴를 내릴 생각이었던 아일린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죽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루드거도 7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만델리나는 루드거를 마주하는 순간, 곧바로 항복의 의사를 표했다.




다른 블랙옵스 팀원들이 모두 루드거를 우습게 보고 싸우려 할 때, 혼자만 구석에서 몸을 웅크렸던 것이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




추하게 살려 달라고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바람에, 잔뜩 날이 올랐던 루드거도 이게 뭐냐며 흥이 식었을 정도.




하지만 그렇기에 만델리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




“뭐, 옛날에는 그랬을지도 몰라도 지금은 나의 충실한 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 황녀님. 아무리 그래도 개는 좀 아니지 않나요?”




“싫으냐? 다시 예전처럼 목줄을 풀어 들개로 만들어 줄 수 있느니라.”




아일린이 섬뜩한 시선을 보내며 묻자 만델리나는 사색이 되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니요! 제가 어찌 싫겠습니까! 명령만 내려 주세요! 저는 황녀님의 충견이니까요! 헤헤.”




“…….”




아일린 1황녀가 만델리나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통쾌하다는 생각보다는 묘하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보다 에이단 녀석에게 반마법을 어쩌다 가르쳐 줬는지 묻고 싶었는데.’




해당 주제를 꺼내기에는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세상을 떠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만델리나가 1황녀 직속 사냥개가 되었다는 걸 알았으니, 기회는 나중에 또 생기리라.




“그래서 만델리나. 알아 온 소식은?”




이렇게 오랜 해후를 맞이해서 수다나 떨자고 만델리나를 부른 것이 아니었기에 아일린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만델리나 또한 진중한 표정이 되어 자신이 알아낸 소식을 전해 왔다.




“예, 시키신 대로 놈들의 흔적을 쫓아 봤는데…… 아직 수도 내부에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수도 안쪽이라. 쥐 잡듯이 뒤졌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거로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일린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것은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루드거도 마찬가지였다.




“지하 수도로군.”




“예.”




만델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추측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놈들의 흔적을 쫓아 지하 수도까지 들어가 봤지만, 그 이상은 무리라 판단해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호오. 무리라고?”




만델리나의 솔직한 보고에 아일린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만델리나는 평소 언행이 별로 미덥지 못해 보여도 그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낙하산으로 블랙옵스에 들어간 것도 아니며, 반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성격이 이상해서 그렇지, 순수한 실력과 능력만 보면 만델리나는 확실한 일류.




그런 만델리나가 물러났을 정도라면 이미 지하 수도는 놈들의 소굴이 된 것이 분명했다.




“잠입은 불가능했나? 이유는?”




“사방에 감시가 깔려 있어서 들키지 않은 채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딱 입구 근처가 한계였습니다.”




“흐음. 확실히 전투를 목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염탐만 하고 오라고 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놈들이 지하에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소득은 있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휴식 차원에서 온 황실이었지만, 아무래도 온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 같군요.”




“핫. 지나가던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잘도 입에 담는구나.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이지?”




“잠시.”




아일린이 그렇게 묻자 루드거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일린도 거기에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검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은 커다란 까마귀였다.




‘까마귀?’




그러나 놀랍게도 까마귀는 발목에 쪽지를 하나 달고 있었다.




루드거가 손을 내밀자 까마귀는 자연스럽게 루드거의 팔뚝 위에 내려앉았다.




오.




옆에서 구경하던 만델리나가 나지막이 감탄을 흘렸다.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까마귀를 부르는 루드거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대상자가 한때 자신의 직장을 날려 버리고, 본인도 죽일 뻔했던 희대의 괴물임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품는 것도 웃긴 일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멋진 것은 멋진 거였다.




“수고했다.”




루드거가 까마귀가 가져온 서신을 챙기며 그렇게 말하자 까마귀는 한 번 까악 울고는 다시 날아올랐다.




“놀랍군. 새도 부릴 줄 알았는가?”




“제가 아니라 부하 녀석이 부리는 겁니다.”




루드거는 그렇게 답하며 서신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즉석에서 마력으로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본 아일린이 퉁명한 어조로 물었다.




“뭐 재미있는 거라고 혼자만 보는 게냐.”




“보안에 신경을 쓰는 것이 버릇돼 있어서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알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있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호오. 그럼에도 내가 보는 앞에서 서신을 태웠단 말이더냐? 참으로 본받을 만한 자세구나. 내 부하들도 배웠으면 좋겠어.”




“어, 정말요?”




만델리나가 옆에서 순진무구하게 되묻자 아일린이 찌릿 노려보았다.




‘넌 눈치도 없는 거냐?’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하자 만델리나는 곧바로 의기소침해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서 서신에는 뭐라 적혀 있더냐. 설마 그냥 넘기는 건 아니겠지?”




“지하에 무언가가 있다는 모양입니다.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요.”




“거대한 무언가?”




“예. 마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식물이라고 하더군요.”




거대한 식물이라는 말에 아일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 * *




“하, 한스 씨. 제대로 보낸 거 맞죠?”




“당연한 소릴. 지금쯤이면 형님은 내가 보낸 서신을 받았을 거요.”




린데브루뉴의 거대한 지하 시설.




한스와 벨라루나는 어두컴컴한 지하 수도 내부를 조용히 움직였다.




“그렇다 해도 신기하군. 수도가 넓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지하 수도가 깊게 있을 줄이야.”




한스는 복잡한 길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부의 지도를 구해 왔는데도 길이 너무 복잡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쥐들과 교감만 됐으면 모를까 한스의 강점인 쥐들조차도 이 근처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부 두려워서 접근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평범한 하수도가 아니야.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조금 더 세밀화된 시설이지.”




한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부분은 벨라루나도 동감하는 부분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 천년 제국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이렇게 지하가 복잡하고 거대할 줄은 몰랐는데요.”




“세월이 흘러도 건축물은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갈 수는 없지만, 땅은 계속해서 파고 내려갈 수 있으니까. 다만 관리가 안 될 걸 보면, 사실상 버려진 구역 같소. 제국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인데.”




이런 버려진 곳에 쥐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부터 어딘가 수상했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지하 수로보다 더 깊은 곳.




한때 지하 수로로 사용했겠지만,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버려진 지하 시설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면서 봤던 그거. 거대한 나무의 뿌리였나? 혹시 뭐 아는 거 있소?”




시설로 접어들면서 보았던 말라비틀어진 거대한 나무의 뿌리.




그것은 한스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애초에 위에 도시가 있는데, 지하에 나무가 있을 수가 있나?’




한스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벨라루나는 한스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큰 나무는 솔직히 저도 떠오르는 건 없어요.”




“아니, 엘프인데 그걸 왜 모르는 거요?”




“에, 엘프라고 다 아는 건 아니거든요? 모르니까 이제 알아 가는 거죠!”




“그런 엘프가 맨날 나를 실험체로 쓰려고 해?”




“그게 알아 가는 과정이니까요.”




“두 번 알았다가는 사람 하나 잡겠군.”




“걱정 마세요. 한스 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을 거예요.”




“칭찬 맞지?”




“그러니 몇 번이고 거칠게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칭찬 맞지?!”




티격태격하며 길을 걷던 두 사람은 또다시 거대한 나무뿌리를 발견하게 됐다.




말라비틀어지고 퇴색되어 짙은 갈색보다는 오히려 상아색을 띠는 뿌리.




수로 시설의 한쪽 벽을 뚫고 튀어나와 있는 그것을 본 한스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우리 꽤 걸었지 아마?”




“아마도?”




“그런데 이쪽에도 튀어나와 있다는 건…….”




“뿌리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는 거죠.”




“이런 뿌리가 평범하다 생각하오?”




“솔직히 말하면 절대 평범하지 않죠.”




“그래서 아직도 짐작 가는 건 없고? 엘프잖소.”




“엘프라고 다 아는 건 아니라니까요.”




벨라루나는 그렇게 반박하면서도 주황빛 더벅머리 사이로 나무뿌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다문 뒤 서로를 응시했다.




“뭔데, 말해 보시오.”




“제가요? 한스 씨도 눈치채신 거 아니에요?”




“사실 나도 조금 전 떠오르긴 했는데, 오히려 입에 담으면 안 될 것 같거든. 식물 전문가인 엘프에게 양보하겠소.”




“이럴 때만 엘프 취급이죠?”




“그러니 더더욱 이럴 때라도 취급해 줘야지.”




벨라루나도 말싸움에서는 자신이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뿌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 아무리 봐도 그거 같아요.”




“그거라면?”




“……우리 엘프들의 근원. 세계수요.”




벨라루나는 뿌리가 튀어나온 벽면을 응시했다.




그 너머에 있을, 이 뿌리의 근원이 있는 곳을.




크르륵!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벨라루나가 한스를 돌아봤고, 한스가 벨라루나를 응시했다.




“뭐요?”




“뭐가요?”




“방금 댁이 낸 소리 아니었소?”




“그쪽의 배에서 난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모함하지 마시오. 사람 배에서 어떻게 짐승 소리가 나는 거요?”




“아니, 그럼 엘프인 저는 짐승 소리 내는 게 말이 되고요?”




크르르륵!




“…….”




“…….”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삐걱거리듯 움직여 자신들이 왔던 통로를 바라봤다.




저 멀리서 비추는 희미한 빛을 통해 무언가 그림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튀자.




한스와 벨라루나는 누구 할 것 없이 동시에 도망쳤다.




* * *




“황녀님. 혹시 수도의 지하에 무언가 있습니까?”




한스에게 전해 받은 보고에 의하면 지하에는 거대한 구조물과 함께 나무의 뿌리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번창한 수도의 지하에 그런 것이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스가 서신으로 굳이 거짓을 보냈을 리도 없었다.




그 모든 사안을 감안하면 한스가 말한 지하 시설이나 거대한 뿌리는 전부 진실.




“지하 수도 아래에 뭔가 더 있군요.”




“…….”




무언가 있다.




그리고 아일린 1황녀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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