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80화 천년의 비밀 (1)

 ◈ 280화 천년의 비밀 (1)




“좋아. 여기서 휴식이다.”




중간중간 학생들을 평가하던 캐롤라인 모나크는 곧 공방 거리 앞에서 학생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었다.




공방 거리는 마도 공학과 더불어 기계 공학 물건을 주로 제작하는 관광지였다.




산업용 물건보다는 아기자기한 기계 세공품이 더 많아서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많이 사가는 곳이기도 했다.




“적당히 구경하다 와라.”




캐롤라인은 학생들의 점수를 평가하며 조언해 주는 멘토였지만, 그녀 또한 세오른의 졸업생 출신답게 이런 부분에서 융통성을 잘 보여 주었다.




공방 거리는 나름 구경할 것들이 많았기에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넉넉했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에이단은 이 기회에 레오와 서먹해진 관계를 다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테이시는…….’




멀지 않은 곳에 붉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테이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이오나와 함께 한 가게의 가판 앞에서 물건들을 구경 중이었다.




눈을 빛내며 흥미롭게 구경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부르기 미안했다.




그래도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테이시를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어?”




에이단의 시야 한구석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레오의 모습이 잡혔다.




“레오?”




레오는 주변의 눈치를 슬쩍 살피다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와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 행동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레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있어 보였다.




에이단은 어찌할지 고민했다.




지금 테이시를 부르자니 이미 사라진 레오를 쫓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혼자서 레오를 따라가자니 테이시가 화를 낼 것 같고.




‘어쩌면 좋지.’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 레오는 어디론가 가 버릴 것이다.




그리고 에이단은 여기서 레오를 놓친다면 앞으로 평생 그를 만나지 못하리라는 직감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에이단은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에이단은 곧바로 레오의 뒤를 쫓아 골목길로 향했다.




* * *




“…….”




아일린은 루드거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으실 겁니까.”




루드거는 아일린이 머릿속으로 많은 것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 이 상황의 주도권을 본인이 잡고 싶어서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리라.




“이왕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서로 숨기는 것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자 아일린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루드거도 자신이 참 뻔뻔한 말을 했다는 걸 알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철판을 깔기로 했다.




“지금 이렇게 망설이는 순간에도 적들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후…….”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일의 완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하자 아일린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변함없는지 루드거를 한번 찌릿 노려보았다.




루드거는 대신 한발 양보해 주기로 했다.




“그 대신 저 또한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알겠느니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는 거래.




이거라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게 아니게 된다.




아일린도 결국 수긍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수도의 지하에는 뭐가 있는 겁니까.”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아일린의 입에서 나온 말에 루드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러나 이쪽을 골려 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몰랐기에 한 말이라는 걸 깨닫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일린이 찻잔을 고풍스럽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대는 제국의 역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엑실리온 제국은 천 년의 역사를 이어 온 곳이라고 들었으니, 못해도 그 정도는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 천 년. 참으로 긴 세월이지.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유구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세월. 그야말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야.”




아일린은 피식 웃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제국의 역사는 사실 그보다 더 짧다. 초대 황제의 건국 이후 실제로 지난 세월은 500년이 채 되지 않지.”




“그 또한 만만치 않게 깁니다만.”




“길지만, 천 년에 비할 바는 아니지. 햇수로만 2배 차이니까. 그렇다면 500년 전, 엑실리온 제국의 건국 이전에 있던 곳이 어디인지는 아는가?”




루드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역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아는 루드거도 엑실리온 제국 이전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왜 사람들은 제국의 역사를 천 년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일린의 말마따나 500년과 천 년은 햇수로만 따지면 2배나 차이가 난다.




단순히 부풀려서 말하기에는 너무 큰 규모.




역사가들은 기본적으로 사심이 담기지 않는 사실만 기재하기 때문에 실수로 보기도 힘들었다.




“그대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




아일린의 말에 루드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잘 들어라. 이건 그대와 본녀, 그리고 저 충견을 포함해 극소수만 아는 이야기니까.”




“어, 저도요?”




멍청하게 되묻는 만델리나를 무시하며 루드거는 귀를 열었다.




지금부터 아일린이 할 말은, 대륙 단위로 덧씌워진 거짓의 장막을 들추는 진실일 테니까.




“세간에 알려진 제국의 천 년 역사는 거짓이다. 사실 제국의 역사는 500년에 지나지 않지. 그전에는, 다른 곳을 ‘계승’한 것에 지나지 않거든.”




“계승? 나라 단위로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요.”




“실제 의미가 계승과는 다르지만, 내게는 그렇게 보여서 말이야. 기존에 있던 나라를 없애고, 그 위에 새로운 나라를 덧씌운 거니까.”




“놀랍군요.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성은 차치하고서 나 또한 황실의 고문서를 봤기에 겨우 정황만 파악할 수 있는 거였다. 백성들은 모르겠지만, 당시 왕실의 주요 인사들이 전부 다 물갈이가 됐더군.”




“……한 국가의 주요 인사를 그렇게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거야말로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일린은 무언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500년 전에는 과학이 발전하지도 않았고, 사회적인 인식도 굳이 따지면 미개한 수준이었지.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예,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요.”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이 지구로 치면 마법과 과학이 과하게 발전한 19세기인데, 그로부터 500년 전이면 완전히 옛날인 것이다.




미신과 신앙, 야만이 판을 치던 시대.




이성이 존재하지 않던 중세.




“그리고 그때 대륙 단위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국가가.”




“……브레투스 성국이로군요.”




루드거도 그제야 갈피를 잡았다.




“그래. 브레투스 성국이지. 주신 루멘시스를 믿는 자들로 구성된 로멘시스 교단의 총본산. 당시 왕을 파면할 권리까지 지녔던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뭐, 결국 요약하면 지금 황실의 지하 수로 아래에 있는 시설은 본 제국의 역사보다 훨씬 더 전에 있던 것들이라는 거지.”




엑실리온 제국이 들어서기 전 존재했던 전대 왕국의 유산.




그렇기에 세간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하 수로 아래에 펼쳐진 거대한 시설의 크기는, 500년 전 고작 중세 왕국의 하수도로 보기엔 너무나도 거대했다.




루드거는 생각했다.




그곳에 무언가가 더 있다고.




“사실상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수도의 지하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꼴이로군요.”




“그래. 보통은 흘러가는 세월에 스러져야 할 것들이지만, 아무래도 쥐새끼가 먼저 들어가서 둥지를 틀어 버린 모양이야.”




“그렇다면 거대한 식물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애초에 그 아래에 거대한 시설 같은 것이 있다는 것과, 그 시설이 아주 오래전 왕국의 유산이라는 것만 알지 그 이외의 것은 모르거든.”




아일린이 이 사실을 안 것도 그야말로 최근의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존심이 상해. 차기 황제로 추앙받는 내가, 아직 이 나라에서 모르는 것이 있다니. 실로 모욕적이야.”




“그런 비밀스러운 시설을 수도에 숨어든 쥐새끼들은 알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군요. 그래 봤자 테러리스트인 해방군들 아닙니까.”




“…….”




아일린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건 어떻게 아느냐는 시선.




루드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근래에 움직일 만한 녀석들이라면 놈들뿐이니까요.”




“하긴. 그대도 나름의 듣는 귀가 있다 했으니, 아는 것도 당연하겠군.”




“자칭 해방군 녀석들의 테러 활동은 꽤나 귀찮지만, 그래도 수도 지하에 숨겨진 시설까지 알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해방군이 수도에 숨어들어 와 곧바로 지하 시설로 갔다는 건.”




“놈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제삼 세력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로군.”




“예.”




그리고 루드거는 제삼 세력을 검은 여명회로 보고 있었다.




반쯤 확신했지만, 아일린에게는 굳이 말해 주지 않았다.




아직 검은 여명회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하기엔 그렇게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알 수 없는 세력까지 신경 쓰기엔, 당장에 위협이 되는 건 저 아래에 숨어든 쥐새끼들이다.”




“예.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병력을 투입하자니 걸리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고요.”




아일린은 손에 쥔 찻잔을 소리 나게 놓으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동안 놈들이 지하 시설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세력을 키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함정까지 있을 텐데, 거기에 무턱대고 사람부터 보내는 것은 인력 낭비지.”




상대가 안쪽에서 뭘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기사나 마법사를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장담할 수 없다.




괜히 건드렸다가 벌집을 들쑤시는 꼴이 되리라.




그렇다고 놔두자니 그 또한 문제였다.




“차라리 전면전이면 모를까, 놈들이 바로 발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쪽은 더욱 조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사단을 부른 거였군요.”




북부의 설산에서 단련된 차가운 강철의 콜드스틸.




제국의 그림자에서 악의 싹을 근멸하는 나이트크롤러.




일반적인 기사들을 넘어선 정예들로 구성된 두 집단을 집결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아일린이 이번 상황을 신중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마저도 부족하다. 놈들이 아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잔잔한 인조 공원의 정경을 살피던 아일린의 시선이 루드거를 향했다.




“그래서 그대의 도움이 필요한 거다. 상대가 어디에 숨더라도 반드시 침투해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그대의 능력이.”




“이해했습니다.”




루드거는 생각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문제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넘기기엔, 지금 이 수도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까.




‘아마 놈들도 그걸 노리고 움직이려 들겠지.’




학생과 시민을 향한 동시다발적인 무차별 테러.




그것을 알고 있는 이상 고민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보수는 확실히 챙겨 주는 거로 알겠습니다.”




사실상 수락의 말.




아일린은 흡족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누구나 매혹될 정도로 아름답고, 또 위엄 넘치는 미소를.




“해방군 놈들은 아마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내로 움직일 겁니다.”




“이유는?”




“세오른의 학생들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탑의 주요 인사들까지도.”




“과연. 그들을 모두 죽인다면 확실히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테니 놈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겠어. 하지만 마탑의 인사들은 6위계 마법사들까지 와 있는데, 고작 해방군의 전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은가.”




마법사에게는 [불의 침묵]이라는 마법이 존재한다.




상대방이 같은 마법사, 혹은 기사가 아닌 이상 총기류를 상대로 절대적 우위를 선점하는 마법.




화기가 발달한 현대전에서 판도 자체를 뒤집어엎어 버리는 사기적인 마법이었다.




해방군들에게도 정예 전력은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수도에 모인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닐 터.




“예전이었으면 그랬을 겁니다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놈들은 특별한 화약을 사용할 겁니다.”




“특별한 화약이라. 그대의 입에서 특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필시 평범한 것은 아니겠군.”




“예.”




“그리고 그것이 조금 전에 말했던, 내게 알려 준다는 정보로군. 어디 들어 보자꾸나.”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입에 담았다.




“놈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불의 침묵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화약입니다.”




“불의 침묵에 억제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마법에 억제되지 않는 화약이라 총기류를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좀 위험하군.”




아일린은 어떻게 자신도 몰랐던 것을 이 남자가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언제부터 알았던 거지?”




“3년 전부터 델리카 왕국에서 준비한 것으로 압니다.”




“3년…….”




게다가 저 발언을 보아하니, 루드거는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나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만의 착각이었는가.’




아일린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눈앞에서 선명하게 마주 보고 있는 이 남자가, 언제든지 바로 사라져 버릴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것이 착각일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본 것인지 아일린은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단 이 무시무시한 능력의 소유자가 당장은 그녀의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보다 그대의 부하들은 괜찮나? 지하에 뭐가 있을지 모를 텐데.”




“그건 뭐.”




루드거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겁니다. 한 녀석은 겁쟁이지만, 그 녀석에게 괜찮은 사람을 한 명 붙여 뒀으니까.”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엘프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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