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82화 불평등한 평등 (1)

 ◈ 282화 불평등한 평등 (1)




린데브루뉴의 어두운 골목.




관광의 도시이자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한 린데브루뉴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구역이 동등하게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빛이 강하게 드리우면 그림자도 강해지는 법.




레더벨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린데브루뉴에도 너저분한 뒷골목은 존재했다.




레오는 그 골목길을 누비다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쓰읍.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반응이 왔다.




드르륵.




쇠로 된 문 위의 자그마한 미닫이창이 열리더니 사람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눈동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향해 레오를 발견했다.




덜컹!




미닫이창이 닫히더니 이윽고 문이 활짝 열렸다.




“좀 늦었군.”




평범한 바지와 면 셔츠를 입은 사내였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노동자처럼 보였지만, 그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기세는 일반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방군 소속 정보요원 칼.




그는 레오를 보며 턱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할 건가?”




“바쁜데 그냥 여기서 해.”




레오의 퉁명스러운 대답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부분에서부터 레오는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그 대답에 칼이 눈살을 찌푸렸다.




“듣는 귀가 있을 텐데.”




“어차피 이 근처에 사람 없는 걸 확인하고 자리를 잡은 걸 내가 모를까 봐?”




“그거야 얼마 전의 일이지. 최근 제국 첨병들의 시선이 아주 날카로워졌어. 그리고 오늘은…….”




“알아. 나이트크롤러 기사단과 콜드스틸 기사단까지 나타났잖아.”




그중에서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은 제국에서 암약하는 해방군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공포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래. 자칫 잘못하면 꼬리를 잡힐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야.”




“그걸 아니까 나를 따로 부른 거겠지. 너희가 세오른에 학생으로 잠입시킨 것은 나 혼자니까. 그래서 들키지 않을 거라 확신한 거고.”




“…….”




레오의 말에 칼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여기서 실랑이해 봤자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 꼴이야. 정말로 빨리 끝내고 싶으면 용건만 빨리 말해.”




“……세오른 학생들의 루트는 어떻게 되지?”




“그걸 알아서 뭐 하게?”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니까.”




“뭐?”




레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미치기라도 한 거야? 지금 상황에서 계획을 진행하다니.”




“미쳤냐고? 아니, 이건 숭고한 행동이다.”




“숭고한 행동? 폭탄 달고 자폭하기 위해 달려드는 게 대체 어디가 숭고한 건데.”




“우리 목숨 하나로 위정자 한 명을 제거한다면, 수많은 동포가 편하게 살 수 있어.”




“세상살이가 그렇게 편한 산수 놀음으로 굴러가는 줄 알아?”




레오가 쏘아보며 따졌지만, 칼은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떳떳하다 여기고 있어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레오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자신이 무슨 설득을 해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도처에 나이트크롤러 기사단과 콜드스틸 기사단이 깔렸어. 숨어서 훗날을 도모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강행하겠다고?”




“그렇기에 지금이 적기지. 적들은 우리가 알아서 사리고 숨어 주길 바라겠지만, 역으로 나서면 당황할 테니까.”




“어중이떠중이나 그러겠지, 상대는 제국의 3대 기사단에 이름을 올린 자들이야. 그야말로 정예 전력이라고. 그 사람들이 고작 그 정도에 놀라서 당황할 것 같아? 정신 차려.”




레오는 이 미친 짓을 막아야 했다.




솔직히 해방군들이 몇 명이 죽어 나가도 레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상 반 강제로 해방군 딱지를 받게 된 입장에서 동료애라는 것이 생길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무턱대고 계획을 감행한다면, 그때는 레오도 남일 보듯 볼 수 없게 된다.




도처에 기사단이 깔려 있는데 테러를 벌인다?




물론,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는 피해 규모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가 없다곤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생기는 사망자 중에서 에이단이나 테이시, 이오나가 섞여 든다고 생각하면.




레오는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친구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우정을 호소할 수는 없었다.




원체 성격이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눈앞의 상대가 그런 설득이 전혀 먹히지 않는 사람인 이유가 컸다.




“게다가 지금 학생들은 멘토들과 함께 있어.”




“멘토라면 더할 나위 없는 목표로군.”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멘토들은 5위계 마법사들이 많아. 그리고 심지어 이번에는 역대 최대의 6위계 마법사들이 모였지. 개개인이 전략 병기에 맞먹는 렉서러 등급의 마법사라고. 설마 그들의 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




칼은 처음으로 레오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침묵을 고수했다.




아무리 숭고한 의지대로 싸운다고 한다지만, 6위계 마법사까지 있는 것은 규격 외였기 때문이다.




레오는 이때다 싶어서 몰아쳤다.




“그들이 펼치는 [불의 침묵]만으로 너희가 지닌 폭약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될 거야. 애초에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그러니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니, 강행한다.”




칼의 단호한 말에 레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네 말은 제대로 들었다. 하지만 이건 애초에 내가 내릴 판단이 아니야. 이미 위에서는 강행하겠다고 결정지었어. 그러니 너도 협조해라.”




“뭐? 웃기지 마! 내가 거기에 따를 거 같아?”




“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해야 할 텐데.”




“…….”




칼의 말에 레오가 입을 다물었다.




“네가 우리에게 비협조적인 것은 안다. 하지만 그건 알아 둬야 해. 네 가족의 안위가 누구에게 달렸는지.”




으득.




레오가 이를 악물고 칼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칼은 레오를 향한 어떠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일견 뿌듯한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짓을 저지른다고?”




“우리에겐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다.”




“이…….”




미친놈들, 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레오는 불현듯 무언가를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작전은 계획대로 진행될 테니까. 그러니 어서 정보나 뱉어.”




“잠깐. 이미 흩어진 사람들의 루트를 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야.”




레오는 현실적인 한계를 들먹이며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 속을 모를 리 없는 칼은 레오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였다.




“레오. 애초에 우리가 네가 주는 정보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나?”




“뭐?”




“처음부터 주 정보요원은 네가 아니었단 소리다.”




레오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충격을 받아 이를 악무는 레오를 보며 칼이 이죽거렸다.




“물론 네가 정보요원으로서 뛰어난 것은 맞지만, 제대로 부리지 못할 말을 우리라고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거든.”




“너……!”




“뭐, 신고하고 싶으면 해도 돼. 하지만 사람들이 과연 널 믿어 줄지 모르겠군. 오히려 우리와 같은 한패로 여길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야.”




칼은 그렇게 말하더니 킬킬거리며 웃었다.




“무엇보다 네 가족의 안위는 보장할 수 없을 테니, 싫어도 따라야 하지 않겠어?”




“…….”




“그럼 이만 가 보라고. 멋대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지 알리라 믿지.”




칼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쾅 닫았다.




홀로 남겨진 레오는 하염없이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레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저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가면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진다.




‘아무리 해방군이 증오에 미친 녀석들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에 무턱대고 들이받는 성격은 아니야. 저 확신에 찬 반응을 보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해.’




레오는 새삼 깨달았다.




자신은 세오른과 해방군,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소속되지 못하고 버려진 처지라는 걸.




레오는 자신이 하염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의지가 있어도 움직일 힘조차 없는.




그저 흐름에 따라 거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그런 부유물.




‘나는…….’




그렇게 얼마나 힘없이 걸었을까.




레오는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레오.”




“에이단?”




여기엔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던 레오는 에이단의 표정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항상 순진하게 웃기만 하던 그의 친구의 얼굴에 미소가 없었다.




오히려 이쪽을 향한 충격과 걱정이 뒤섞인 시선만 있을 뿐.




레오는 깨닫고 말았다.




에이단에게 자신의 정체와 지금 상황을 전부 다 들켜 버렸다는 것을.




* * *




“그래서 이제부터 어쩌실 생각입니까? 선배님.”




“그 선배라는 소리부터 집어치웁시다.”




루드거는 자신을 이상한 칭호로 부르는 파시우스에게 정색하듯 말했다.




파시우스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 전대의 사람이라기에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로열가드가 더러운 일을 맡고 있는 것도 신기하군요.”




보통 로열가드 정도 되면 충성심을 위해 움직이지만, 그렇다 해도 기사로서의 명예도 지닌 자들이다.




그들에겐 검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에 걸맞게 기사도도 중요시했다.




테리나 라이언하울이 로열가드에 들어갈 실력을 지녔음에도 그 자리를 거절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장인 그녀는 기사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했으니까.




그 진흙이 로열가드라는 이름을 먹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는데 설마 황녀의 그림자 비수가 로열가드일 줄이야.




다른 기사들이 알게 된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그래서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황녀님과 저만 알고 있는 일이죠.”




“이제 저도 알게 됐군요.”




“어차피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닙니까? 그리고 제 전대 비수였으니 마냥 남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선배라는 말로는 부르지 말고 그냥 이전처럼 부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부끄러움이 많으신 타입?”




“…….”




“알겠습니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정색하며 노려보던 루드거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루드거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곧바로 지하로 들어가실 생각인가요?”




“괜히 벌집을 들쑤시는 취미는 없습니다. 저들이 아래에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르는 이상, 먼저 들어갔다가는 저희만 피를 보겠죠.”




“그것도 그렇죠.”




“기다리면 됩니다. 제 부하가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니까요.”




“괜찮은 거 맞습니까? 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부하들을 보내는 거로 마음이 놓일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야 평범한 사람들을 보냈다면 그렇겠죠.”




루드거는 그 한마디로 자신의 부하들의 유능함과, 그런 부하를 믿는 굳건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파시우스도 그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면 당장은 가만히 있을 건가요?”




“…….”




그 질문을 받은 루드거는 파시우스를 응시했다.




파시우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하.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알면서도 일부러 떠보는 짓은 그만뒀으면 좋겠군요.”




“아, 이런.”




파시우스는 걸렸다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였다.




“파시우스 경이 바라는 대답을 하자면, 일단은 수도 근처를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저들이 노릴 만한 곳은 주로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곳일 테니까요. 그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수색해 보면 무언가 잡힐 겁니다.”




“동감합니다. 놈들이라고 전부 다 지하에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도시 어딘가에도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계속 있겠죠.”




“예. 다만 나이트크롤러 기사단과 콜드스틸 기사단이 나선 상황이라, 놈들도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찾기 힘들겠군요.”




“그쪽이 최대한 조심한다면 이쪽은 최대한 유심히 찾아보면 그만입니다.”




말처럼 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니 파시우스는 묘한 신뢰감을 느꼈다.




‘흐음. 역시 황녀님께서 괜히 점찍으신 분이 아닌 건가.’




7년 전 파시우스는 로열가드가 아니었다.




나름 재능은 있었지만 그렇기에 자만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훗날 쿠데타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이 수호하려던 황실이 위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수호기사단이라는 자가, 나라의 위기가 코앞까지 왔는데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쿠데타를 해결한 것이 당대의 무능한 황제가 아닌 1황녀 아일린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지지기반도 없는 아름답지만 가녀린 여인이, 직접 황실을 벗어나 바깥을 돌아다니며 제국을 위험에서 구해 낸 것이다.




그 순간 파시우스는 아일린 폰 엑실리온을 향한 충성을 다짐하기로 했다.




그렇게 노력의 끝에 그는 로열가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1황녀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런 파시우스에게 아일린 또한 신뢰를 보냈고, 그렇기에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쿠데타를 해결했을 때 도움을 받았던 한 남자에 대해서.




모든 영광을 얻을 수 있음에도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린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파시우스는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당사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일은 어찌 될 줄 모른다더니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때 루드거가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고, 파시우스 또한 반사적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루드거 선생님?”




파시우스가 물었지만, 루드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말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파시우스도 호기심이 동해 그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반대편 길거리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학생들과 멘토 한 명을.




케이시 셀모어.




그녀가 길 건너편에 서 있는 루드거를 발견하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의 표정에는 복잡한 감정이 맹렬히 소용돌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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