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84화 강철 속의 자비 (1)
◈ 284화 강철 속의 자비 (1)
모든 진실을 말한 해방군은 곧이어 파시우스가 부른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남겨진 루드거와 파시우스는 조금 전 해방군 요원이 한 말을 곱씹었다.
“지하에 무언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는 건 문제가 꽤 크군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쪽도 그렇게 높은 직책은 아니라서인지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지만,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디일까요.”
“본인 말로는 3급 정보원이라 했죠.”
“예.”
파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해방군 요원은 3급 정보원으로서 몰래 움직이며 바깥의 동향을 알리는 역할이라 했다.
일종의 잘라 버릴 수 있는 꼬리.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루드거는 그것이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원한다면서, 정작 자기들끼리 등급을 매기며 차등을 주는군요.”
파시우스가 그 말에 쓰게 웃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이 미워하던 귀족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평등해졌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하지만 흑마법사와 손을 잡은 것은 확실히 선을 넘었습니다.”
“그만큼 전력이 부족했던 걸지도 모르고요.”
“해방군도 전력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도 간부급 인물들이 더러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 간부급 인물에 흑마법사들이 더해졌죠.”
“그런 셈이죠.”
파시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드거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 저를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네? 아, 그게…….”
“방금 해방군 요원이 한 말 때문입니까?”
파시우스는 조금 전 연행당한 해방군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해방군이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지하에서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그것만 말했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녀석이 내뱉은 다른 정보였다.
-세, 세오른! 세오른 학생 중에서 우리 요원이 숨어 있어! 난 원래 그와 접촉할 예정이었고!
절박한 얼굴로 외치는 해방군 요원의 그 말.
그것이 파시우스의 걱정을 부채질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분명 일부러 거짓말을 섞어서 저희를 흔들려는 겁니다.”
“억지로 위로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그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틀린 정보로 우릴 속일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루드거 선생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없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파시우스도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학생들의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상황에 맞게 처리해야죠.”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요.”
“당신은 교사이지 않습니까.”
“표면뿐인 신분이지요.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
루드거가 그렇게 강하게 말하자 파시우스도 그 이상 따지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그 학생을 찾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저들 말대로라면 1급 정보요원이라 하니까요. 아는 것도 많겠죠.”
루드거와 파시우스가 다시 큰 거리로 나왔을 때였다.
“루드거 선생님!”
이쪽을 발견하고 외치는 익숙한 목소리.
저 멀리서 에이단이 루드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에이단?”
멘토인 캐롤라인 모나크는 어디에 두고 혼자 온단 말인가.
이쪽을 찾아온 걸 보면 우연히 마주친 것도 아니다.
‘심지어 혼자도 아니야.’
에이단의 곁에는 평소에도 자주 붙어 다니던 그의 단짝인 레오도 함께였다.
이쪽에 뭔가 물어보기 위해 찾아온 걸까.
루드거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에이단과 레오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심각했던 것이다.
분명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해맑기만 하던 에이단의 표정이 지금은 다급함이 가득해 보였다.
“잠시, 학생들이 저를 찾는군요.”
“예. 다녀오십시오.”
파시우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루드거가 에이단에게 다가갔다.
루드거는 자신의 앞에 멈춰 서서 숨을 헐떡이는 레오와 에이단을 응시했다.
“에이단. 레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현장 학습 기간에 멘토와 함께 다니지 않고 따로 떨어져서 다니다니.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렇게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다니다니. 너희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건가?”
안 그래도 심각한 상황 속에서 두 학생이 독단 행동을 벌였으니 루드거로선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했다.
평소의 에이단이었다면 어색하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것이…… 꼭 루드거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무얼 말이지?”
“레오와 관련된 일이에요.”
루드거의 날카로운 시선이 레오를 향했다.
평소에 무덤덤하던 녀석이 지금은 유독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겉으로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불끈 쥔 주먹이 바르르 떨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그러했다.
루드거는 불현듯 조금 전 해방군 요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애써 그 불안한 생각을 지워 내며 루드거가 물었다.
“무슨 일인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해 봐라.”
“레오.”
에이단이 레오의 이름을 불렀다.
레오는 끝끝내 망설였다. 과연 말을 해도 되는지 본인도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었다.
그때 레오의 어깨 위에 손이 얹어졌다.
레오는 말없이 에이단을 응시했다.
그 한없이 올곧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레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이…….”
레오는 사실대로 루드거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 * *
약 1시간 전.
에이단은 레오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
“너…….”
레오는 에이단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화가 났다.
“……나더러 지금 괜찮냐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물어?”
“레오…….”
“난 해방군 소속이야.”
이미 들킨 이상 숨길 것도 없었기에 레오는 에이단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서 대대적인 테러가 벌어지고, 너희를 그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지. 알겠어? 네가 지금까지 친구라 믿었던 녀석은 사실 거짓말쟁이에, 국제적 테러리스트였다는 거야.”
“레오.”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
레오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지르고 말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은 레오답지 않은 모습.
반대로 말하면 이런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정도로 레오는 극한까지 몰려 있는 상태였다.
“뭘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건데! 지금 너는 바로 밖으로 달려가서 나를 신고해야 한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레오의 목소리는 자신의 모든 한을 풀어내듯 애절하기까지 했다.
“난 널 속였어! 테이시도, 이오나도! 전부! 그런데도 너는 나를 아직도 친구처럼 여기는 거냐!”
레오는 차라리 에이단이 시원하게 욕해 주길 바랐다.
대체 왜 그랬냐며 자신의 멱살을 쥐고 한 방 때려 주기라도 했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단은 묵묵히 들어 주기만 했다.
그 행동이 오히려 레오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하아. 하아.”
한참을 분노를 토해 내던 레오는 숨을 헐떡였다.
이제 그에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힘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병신같이. 여기서 이래 봤자 뭘 하겠어. 결국 다 끝났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어.”
에이단의 말에 레오가 이 멍청이가 또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레오. 너는 그 해방군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잖아.”
“……그게 뭐.”
“몰래 엿들은 건 미안해. 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아.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도 너는 끝까지 저항하려고 했어.”
“그게 무슨 소용인데. 이미 다 끝났다고!”
“아직 테러는 벌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정보가 있고.”
레오는 에이단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단순히 이쪽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는 듯 에이단의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에이단은 지금 진심으로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너…….”
“알려야 해.”
“누구에게? 애초에 학생인 우리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믿을 거 같아?”
“우리말을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돼.”
“그게 누구인데.”
“루드거 선생님.”
“…….”
레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미쳤어? 루드거 첼리시, 그 인간이 우리말을 믿어 주리라 생각해?”
“왜 아니라 생각하는데.”
“그 사람 성격상 오히려 나를 잡아서 감옥에 가두려 들 거야. 원리 원칙을 따지는 사람은 다 그러니까!”
“아니. 루드거 선생님은 그러시지 않을 거야.”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렇다면 루드거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은? 적합한 사람이 있어?”
“…….”
레오도 마땅히 그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교사에게 알린다 해도, 그 사람이 대신 전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로 다가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루드거라면 달랐다.
최근 아케인 체임버에서 단번에 명성을 끌어 올린 그는, 이번 현장 학습에 참여한 멘토들도 눈여겨보는 사람이었으니까.
“레오. 결정해야 해.”
“……이미 늦었어.”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돌이킬 수 있다고.”
“나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도와줄게.”
에이단은 한 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뭐?”
“내가 도와준다고.”
“……너 진짜 미쳤어? 나랑 연관되면 너도 위험한 거 몰라? 공범으로 잡혀갈 수 있어!”
“그럼,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겠지?”
“…….”
에이단의 넉살스러운 말에 레오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레오는 반쯤 포기했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짜 넌, 내가 봐 온 세상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멍청이야.”
“칭찬 고마워.”
* * *
레오는 루드거에게 모든 진실을 전했다.
자신이 어째서 해방군에 소속되게 됐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 수도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지도 전부.
솔직히 말해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루드거에게 말을 하면서도 레오는 중간마다 이래도 되나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에 전부 다 전했고.
설명을 끝내고 나니 말 못 할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레오의 말을 들은 루드거는 한동안 말없이 레오를 응시했다.
그 과묵하기까지 한 시선이 레오는 너무 무겁고, 또 두렵게만 느껴졌다.
숨 막히는 순간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레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네 가족이 지금 인질로 잡혀 있다는 거로군. 여동생과 어머니가 말이야.”
루드거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화를 내는 것도, 책망하는 것도 아닌 확인이었다.
“……예.”
“너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거고.”
“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한 행동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네가 세오른의 정보를 내부에서 바깥에 빼돌린 것은 맞으니까. 내 말이 틀리나?”
“……아니요. 전부 맞습니다.”
레오는 어차피 변명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에 겸허히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찾아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서.”
“……예.”
레오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다음으로 세오른에서 만난 친구들을, 그리고 지난 추억을 되새겼다.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기 힘들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 네 가족부터 구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했었다.
“네?”
레오가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왜 그러지?”
“그, 그것이 지금 제 가족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질로 잡혀 있다고 했으니까.”
“네. 그랬죠. 하지만…… 어째서요?”
레오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인질로 잡힌 것은 레오의 가족이다. 루드거의 가족이 아닌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루드거가 레오의 가족을 구해 줄 책임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구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레오. 내가 누구지?”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입니다.”
“그래. 선생이 학생을 돕겠다는데,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
레오는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루드거가 한 말은 당연한 말이었다.
선생이니까 학생을 돕는다. 당연한 말이다. 옳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걸 사람들은 하지 않았다.
레오는 눈앞의 남자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도 맞고, 다른 교사와는 뭔가 특별한 무언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루드거도 이 부분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같으리라 생각했다.
“레오.”
“……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고맙다고 하면 된다.”
레오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넘어오는 걸 느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돕지 않으리라 생각한 건 자신만의 편협한 사고라는 것을.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거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모든 것을 비웃어 온 자신이 틀리게 되는 거니까.
그야 웃기지 않은가.
누구도 도와주지 않으리라 말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간절히 도움을 바라고 있었다니.
이보다 모순적인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성적이고.
차분하고.
뭐든 계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말해 놓고 틀리면 부끄럽지 않은가.
정말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돕겠다고 나서는 에이단이나, 상황을 듣더니 알겠다고 말하는 루드거나.
이런 바보들과 함께 있게 되다니.
‘나도 정말 바보로구나.’
그리고 그런 바보들과 함께 있는 자신이, 레오는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뚝. 뚝.
고개를 숙인 레오에게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한 소년이.
처음으로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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