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88화 키메라 군단 (1)

 ◈ 288화 키메라 군단 (1)




해방군 잔당들은 미리 파 놓은 땅굴을 통해 도심 곳곳으로 흩어졌다.




천장에서 모래 먼지가 부스스 떨어지고 오래된 주홍빛 전등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의 앞마당인 것처럼 신속했다.




“1지부가 당했다고 합니다.”




앞장서서 가던 해방군 1급 요원의 뒤에서 정보 요원이 조금 전 접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칼은?”




“생포된 것 같습니다.”




“놈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이야. 몇 명이 들이닥친 거지?”




“그, 그것이…… 한 명이라고 합니다.”




“뭐? 고작 한 명?”




“예. 그것도 세오른의 교사 중 하나인 루드거 첼리시가 직접 나섰다고…….”




그냥 개인도 아니고 일개 교사란다. 그것도 마법사.




1급 요원은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무리 루드거 첼리시가 꽤 유명인사라 하지만, 고작 아카데미의 교사가 혼자서 지부 하나를 습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멀리서 기습을 가한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이쪽이 총을 쏘기 전에 제압할 수 있었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러납니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은데.”




“아니. 우리는 작전을 그대로 진행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두면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1급 요원이 그렇게 말하자 뒤따르던 해방군들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도 이 세상을 향한 더 큰 증오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던 대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실패를 두려워해서 물러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들 모두가 죽음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선두에 선 1급 요원의 말에 뒷사람들이 복명복창하듯 똑같이 중얼거렸다.




의지를 다잡은 해방군들은 갈림길 앞에서 다시금 흩어졌다.




각기 조를 짠 그들은 무기를 점검한 뒤 지상으로 올라왔다.




맨홀로 위장한 구멍을 통해 은밀하게 올라온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밝은 대로변에는 많은 사람이 평화롭게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더러운 자식들! 누구는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죽으려 하는데!’




해방군 소속 행동대원인 빌헬름은 이를 으득 갈았다.




아직 젊은 나이인 그는 병든 어머니와 함께 지내 왔다.




빌헬름은 어떻게든 약을 사기 위해 매일같이 일했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급료는 푼돈에도 못 미쳤다.




약값을 벌기 위해 잠을 줄이고 밥까지 굶어 가며 일했으나 원하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의 늙은 어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빌헬름은 아직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품에 안은 채 울부짖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세상을 증오했다.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과연 자신처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이라도 쳐 봤을까?




밤을 새워 가며 공장에서 기름때 가득한 기계를 만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흙무더기를 날라 봤을까.




노동자들은 잠을 잘 때 관에 누워서 잔다.




그건 차라리 나았다. 심각한 경우에는 줄 하나에 몸을 기대서 시체처럼 잠을 자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유복한 자들은 그런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저 태어나길 좋게 태어났을 뿐이지 않은가.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하다.




그리고 빌헬름은, 이 불공평한 세상은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해방군에 들어왔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를 마쳤다.




‘아직이다.’




그들이 노리는 자들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멘토로 온 마법사를 필두로 그 뒤를 옹기종기 모여서 움직이는 세오른 아카데미의 학생들.




오늘 해방군이 노리는 목표가 바로 저들이었다.




귀족들과 돈 많은 부유한 상인의 자식들.




그중에는 빌헬름과 같은 평민도 섞여 있겠지만, 빌헬름은 그것까진 고려하지 않았다.




이미 증오가 골수까지 미친 터라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 알았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을 합리화했을 것이다.




‘왔다.’




빌헬름은 다른 골목길에 숨어 있는 동포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오른 학생들이 그들의 공격 거리 내에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잠시 멈춘다.”




선두에 선 철가면을 쓴 멘토가 그렇게 말하며 학생들을 살짝 뒤로 물렸다.




신 마탑 소속의 마법사 철가면 로테론.




6위계 마법사인 그를 아는 해방군들은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으로 인해 고민에 빠졌다.




‘어쩌지?’




‘기다릴까?’




‘그러다가 기회를 놓치면?’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현장의 책임자이자 가장 높은 등급의 요원이 이를 악물고 수신호를 보냈다.




‘진행한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힘들 거라는 판단이었다.




해방군 요원들은 그 신호를 받자마자 골목길에서 우르르 빠져나왔다.




갑자기 골목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지나다니던 행인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이 평화로운 거리에 갑자기 들이닥친 자들이 지닌 악의를 알지 못했다.




가진 자들을 향한 적의는 이윽고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로 격발되었다.




증오라는 탄환을 쏘아 내는 것으로.




투타타타!




무수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이 자리의 모두를 죽이겠다는 듯 총알 세례가 쏟아졌다.




그리고 주로 총알이 쏘아진 곳은 세오른 학생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총알에 맞아 쓰러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뭐, 뭐야.”




총알을 모두 소모한 해방군 한 명이 눈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장벽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해방군 전체를 둘러싸듯 펼쳐진 장벽은 그들이 쏜 모든 총알을 막아 낸 것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현장에 있는 유일한 6위계 마법사.




철가면 로테론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야기가 다르잖아!”




해방군은 당황했다.




로테론이 이 정도 총기류를 막을 실력자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왜 그가 [불의 침묵]을 사용하지 않고 구태여 물리 공격을 막아 내는 마력 장벽을 펼쳤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은 수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 어떻게!”




해방군이 벌이려던 대규모 테러는 시작부터 큰 난항에 부딪혔다.




그들이 쏘아 낸 총알은 마법사들이 펼친 장벽에 가로막혀 사람 목숨 하나도 빼앗지 못했다.




기습은 소용없었다.




오히려 마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해방군의 총을 방어하고 곧바로 대응에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도 움직인 건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잠복하고 있던 나이트크롤러 기사단과 콜드스틸 기사단은 해방군이 나타나기 무섭게 현장을 들이닥쳐 그들을 제압했다.




마법사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닌 그들은 해방군이 미처 저항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 이게 뭐냐고!”




해방군은 당황했다.




이 상황은 상대방이 이쪽의 움직임과 비장의 수단을 모두 꿰뚫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은 특제 화약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기사단은 그들이 어디에서 테러를 벌일지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아, 진짜.”




해방군과 맞닥뜨린 것은 캐롤라인 모나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껄렁한 자세로 서서 짜증 어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캐롤라인의 주위에는 어디 한두 군데씩 부러진 해방군들이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캐롤라인은 바닥에 떨어진 총기 한 정을 쥐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쏘아진 총알이 지면에 처박혔다.




“진짜였네.”




그녀의 한쪽 손은 불의 침묵 술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정말로 해방군들은 불의 침묵에 영향을 받지 않은 화약을 사용한 것이었다.




‘만약에 총을 보는 순간 마력 장벽으로 응수하지 않고 불의 침묵부터 사용하려고 했다면?’




6위계 마법사라 하더라도 까닥했다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나마 초인급인 6위계 마법사니까 그 정도다. 그보다 위계가 낮은 마법사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캐롤라인은 그걸 떠올리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불의 침묵은 현대 마법사가 총기를 앞에 두었을 때 가장 기초적으로 사용하는 교범 수칙이다.




하지만 그 상식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녀는 조금 전 모든 멘토에게 날아온 통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루드거 첼리시입니다. 멘토분들께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 연락망으로 들고 다니던 휴대용 통신기.




루드거는 멘토들에게 자신이 알게 된 사안을 전달했다.




-수도에 해방군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테러를 기획하고 있죠. 당연하게도 테러의 대상은 세오른의 학생들입니다.




곧 테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멘토들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 동요는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학생들이 혹시라도 통신을 듣지 못했는지 확인을 한 뒤 루드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테러리스트들은 특별한 화약을 사용합니다. 마력에 억제당하지 않는 화약으로, 당연하게도 불의 침묵을 통한 화기 금지가 먹히지 않습니다.




그 말에 멘토들은 깜짝 놀랐다.




테러리스트들이 그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도 놀라웠지만, 일개 교사인 그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는 점이었다.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멘토는 케이시 셀모어뿐이었다.




‘그 남자.’




케이시는 루드거를 마주했던 일을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사 한 명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는데, 설마 뒤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멘토분들은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주십시오. 학생들에게 알리고자 하신다면 알려도 됩니다. 모든 부분은 멘토분들의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말해 주며 그럼에도 대응 자체는 멘토에게 자율권을 넘겨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




루드거가 세오른의 중진의 자리까지 올랐다 해도 멘토 중에 대부분은 마법에 있어 루드거의 선배 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말하자 멘토들은 숫제 감탄까지 느꼈다.




루드거의 행동은 정말 덜어 낼 것도 더할 것도 없이 깔끔했으며, 그 사이에 이쪽을 향한 배려와 존중까지 담겨 있었다.




-다만, 테러리스트들과 교전하게 되신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십시오. 감히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넘보는 자들에게 절대로 자비를 베풀지 말아 주시길.




루드거의 통신은 그걸로 끝났다.




“허, 참.”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던 휘론은 통신기를 집어넣으며 피식 웃었다.




이쪽은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아서 테러의 위험은 없었지만 남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수도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수도에 있는 고위계 마법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휘론은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따라온 세오른의 학생들이 모두 체육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자식.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는 기개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허억. 허억.”




프로이덴 울부르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휘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고고한 늑대 그 자체.




휘론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라면 책임지고 저 녀석들을 데려갈 수 있겠지.”




“허억. 무엇을, 말입니까.”




“곧 한바탕 난리가 벌어질 거다. 이 체육관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곳이라 어지간한 녀석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움직이는 놈들은 꽤 간덩어리가 부어오른 모양이라서 말이야.”




프로이덴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라 눈빛이 자못 진지해졌다.




“학생들을 데리고 가라.”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황궁으로.”




황궁이라는 말에 프로이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안전한 곳이라 하면 확실히 안전하지만,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도 모른다. 다만 통신에 의하면 그쪽으로 오라 했으니, 가는 게 맞겠지.”




“멘토님께서는 지금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나는 조금 전 운동으로는 몸이 안 풀려서 말이다.”




휘론은 씨익 웃으며 벗어두었던 겉옷을 챙겨 입었다.




“오랜만에 땀 좀 빼고 오지.”




* * *




다른 멘토들과 기사단이 움직이는 동안 루드거와 파시우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루드거는 자신이 습격했던 1지부와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해방군을 그대로 습격했다.




파시우스가 다가오며 말했다.




“이쪽은 정리 다 끝났습니다. 그쪽은요?”




“진작 끝났습니다. 이곳이 사실상 마지막이군요.”




두 사람의 주위에는 총도 제대로 뽑지 못한 해방군 테러리스트들이 쓰러져 있었다.




고작 단둘이서 30명이 넘는 테러리스트들을 단번에 제압한 것이다.




“대, 대체 어떻게.”




대부분 정신을 잃었지만 단 한 명.




현장의 책임자인 1급 요원은 루드거가 신경을 써서 기절시키지 않고 자리에 묶어 두었다.




그는 자신들의 계획이 시작도 전에 물거품이 돼서 흩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지 꽤 어벙한 표정이었다.




“네놈들의 테러는 끝났다. 마력에 억제되지 않는 특제화약은 아무런 빛도 보지 못했지.”




화약까지 이야기가 나오자 1급 요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대측에서 이미 이쪽의 비밀 병기를 알고 있으니, 기습에 가까운 테러도 의미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대부분 테러리스트는 제압당했으며 그들은 누구도 죽이지 못했다.




그나마 폭탄을 터뜨려가며 함께 죽고자 했던 자들이 있었지만, 현장에 모인 기사단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기물 몇 개를 파손하는 거로 끝났다.




제국의 수도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를 이례적인 참상이 단 한 사람에 의해서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난 것이다.




“다 알고 있었구나.”




1급 요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파시우스는 그 모습에 오랫동안 준비해 온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에 절망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큭, 큭큭.”




1급 요원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자 이상함을 눈치챈 파시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다행이야.”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1급 요원의 얼굴에는 조금 전 보였던 절망은커녕 희열과 미소가 담겨 있었다.




“이건 몰랐던 것 같으니까.”




그와 동시에 가까운 하수구의 맨홀 뚜껑이 폭발하듯 튕겨 나갔다.




루드거와 파시우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뻥 뚫린 맨홀의 구멍 안쪽.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와 함께 안에서 짐승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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