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90화 키메라 군단 (3)

 ◈ 290화 키메라 군단 (3)




“막아!”




한 기사의 외침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간이 바리케이드 뒤에 있던 경찰들이 가진 총알을 모조리 토해 냈다.




거리를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키메라 떼의 선두가 총알을 맞았다.




키메라 중 몇 마리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지만, 그 숫자는 극히 미미했다.




탄력 넘치는 근육과 단단한 가죽을 지닌 키메라들은 총알 몇 발 정도는 거뜬히 견뎌 냈다.




죽은 키메라도 운이 없이 눈을 관통당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총알을 뒤집어써서 쓰러졌을 뿐.




나머지는 너무나도 건재했다.




“쏴, 쏴라! 계속 쏴!”




경찰들은 사색이 되면서도 총을 계속 쏘아 냈다.




그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 뒤로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겁에 질린 채 모여 있었다.




여기서 뚫리면 시민들까지 죽는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기에 경찰들은 사력을 다해 저지선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총알은 갈수록 바닥이 났고, 반대로 키메라들은 그야말로 끝없이 몰려왔다.




총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모두 비키세요!”




그때 숨을 몰아쉬고 있던 마법사가 나섰다.




로이나 파블리니.




그녀는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거대한 마력의 장벽을 만들어 냈다.




키메라의 파도가 장벽과 충돌하며 주변에 거대한 진동을 자아냈다.




로이나는 이를 악물며 마력 장벽에 속성을 부여, 뜨거운 불길로 바꾸었다.




장벽 인근에 있던 키메라들이 삽시간에 타올랐다.




그러나 키메라들은 불길에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일부 놈들은 앞서 죽은 키메라의 시체를 밟고 불길로 변한 장벽을 뛰어넘고자 했다.




그럴 때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총을 쏘아 죽였다.




그때 로이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근처에서 지휘하던 콜드스틸 소속 기사가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저, 저는 괜찮아요.”




로이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안색은 창백했다.




경찰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굳었다.




‘많이 지치셨다.’




6위계 렉서러 등급이 지치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로이나가 이렇게 과하게 마력을 소모한 것은 이미 열댓 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수정궁 바깥에서 진지를 틀고 키메라들의 습격을 막았다.




안쪽에서 막기엔 그곳에서도 지하 통로를 통해 키메라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최대 관광지이다 보니 교통이 원활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막아야 할 길목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로이나는 그 모든 길목을 혼자의 힘으로 막아 냈다.




오히려 지금 와서야 지친 로이나가 대단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가 보여 준 몸을 불사르는 헌신 덕분에 기적적으로 아직까지는 희생자는 없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를 맞이했다.




로이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결국 다시 주저앉았다.




“일어나야, 하는데.”




키메라들은 지금도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그나마 기사들이 어떻게든 악전고투를 펼치고 있어서 로이나가 중간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미 전부 쓸려 나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로이나 님!”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세오른의 학생들이 나서려 했다.




그 선두에 선 것은 찬란한 금발을 지닌 에렌디르 3황녀였다.




“저희도 돕겠어요!”




“아, 안 돼요. 들어가세요.”




“저희 실력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힘을 합친다면, 적어도 시간은 끌 수 있을 거예요. 허락해 주세요.”




에렌디르와 함께 학생들이 결연한 의지로 말하자 로이나도 그 이상 그들을 만류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손길이라도 간절한 상황임은 그녀가 가장 잘 알았다.




“놈들이 다시 몰려온다!”




로이나의 마력이 다해 화염의 장벽이 무너지자 너머에서 침을 흘리고 있던 키메라들이 다시금 움직였다.




드드드드.




키메라들이 한꺼번에 내달리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했다.




핏발이 선 눈동자로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키메라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 그 자체였다.




실제로 키메라가 땅속에서 튀어나온 걸 생각하면, 지옥문이 열렸다 해도 믿어 의심치 않을 지경이었다.




“버텨라!”




현장 지휘자인 콜드스틸 기사단의 여성 기사가 목청껏 소리쳤다.




각 방향의 바리케이드마다 대기하고 있던 콜드스틸 기사들은 검을 뽑고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키메라들을 베어 넘겼다.




경찰들과 수정궁의 경비들도 응전에 나섰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총알을 모조리 퍼부으며, 바리케이드에 붙어서 머리를 들이미는 키메라를 향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세오른 학생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마법을 펼쳤다.




혼자의 힘으로 안 되니 역할을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한 명이 지면으로 벽을 만들어 길목을 차단하거나 공격을 막고, 다른 한쪽은 그걸 넘어오거나 우회하는 키메라를 요격한다.




괜히 세오른의 학생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들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극한의 상황.




그 덕분인지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키메라의 군세가 조금이지만 주춤해졌다.




가장 큰 역할을 맡은 로이나가 사력을 다해 막아 내는 것도 있겠지만, 기사단과 세오른의 학생들도 힘을 합쳐 싸우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지친 사람은 물러나! 교대한다!”




사람들은 희망을 품는 순간이었다.




크르르르!




갑자기 키메라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등을 따라 꼬리까지 자라나 있는 가시를 거칠게 흔들었다.




마치 무언가와 교감을 하듯.




그 기묘한 행동에 일선에서 싸우던 콜드스틸 기사단원 중 하나가 수상함을 느끼려는 순간이었다.




캬오오오!




선두에 선 키메라가 고개를 짓쳐 들고 고함을 내지르더니, 이윽고 허공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2개의 꼬리 끝에는 무수한 가시가 뭉쳐져 있었는데, 키메라가 그것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가시가 총알처럼 쏘아졌다.




그 행동을, 거리를 가득 채운 키메라들이 모두 똑같이 펼쳐 냈다.




“모두 피해라……!”




사태를 눈치챈 기사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날카로운 가시는 바리케이드를 뚫고는 그 뒤에 있는 경찰들의 몸을 꿰뚫었다.




키메라의 가시는 단순 위력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소총탄보다 훨씬 더 강했다.




“으아악!”




“커헉!”




경찰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일부 운이 없는 사람은 급소를 맞기까지 했다.




바리케이드의 저지력 덕분에 그나마 위급한 상황은 면했지만, 당장에 전투에 지장이 갈 상처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더욱 문제인 점은 키메라들의 공격은 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거리 공격이라고? 이건 아니잖아!”




“또 온다! 막아!”




거리를 가득 채우는 가시를 완전히 피할 수 없으니, 내릴 선택지는 방어뿐이었다.




그러나 개인 방어 수단이 준비된 기사단과 다르게 경찰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때 로이나가 나섰다.




“모두 숙이세요!”




그녀는 남은 마력을 모조리 긁어서 돔 형태의 마력 장벽을 만들어 냈다.




소나기가 우산을 때리듯 키메라들이 쏘아 낸 가시가 장벽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키메라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로이나의 장벽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장벽이 무너지려는 순간 플로라가 나섰다.




“셰릴!”




“알았어!”




서로 합을 오랫동안 맞춰 온 두 사람답게, 셰릴은 플로라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녀가 준비했던 술식을 발현시키자 물보라가 맺히며 해일처럼 우뚝 섰다.




그 물의 장벽 위에 플로라의 마법이 더해졌다.




휘오오오!




새하얀 냉기가 물의 장벽을 스치고 지나가자 거대한 빙산의 벽을 만들었다.




그 빙산의 벽 위로 가시가 우수수 박혔다.




“플로라! 이걸로는 오래 못 버텨!”




셰릴이 그렇게 외치기도 전에 플로라의 다음 마법이 발현됐다.




그녀의 주위로 번개의 구체 10여 개가 생성되었다.




이윽고 번개의 구체가 길게 늘어나더니 창으로 바뀌었다.




플로라가 지팡이를 쥔 손을 휘젓자 뇌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가시를 쏘아 내는 키메라들에게 떨어졌다.




푸른 번개가 거미줄처럼 퍼지며 사방으로 전류를 흩뿌렸다.




키메라들의 군세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와아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함성을 내질렀고, 같은 세오른 학생들 또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플로라 루모스가 세오른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이런 실전에서도 마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단해.’




리네 또한 플로라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플로라는 괜히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마법을 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술식의 선이 떨리지도 않으며 구성이 잘못되지도 않았다.




마력의 소모는 최소한 자제하며 적재적소에 필요한 마법을 귀신같이 사용했다.




멘토인 로이나마저도 그 모습을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였다.




‘어?’




그 순간 리네의 시야에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플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리네는 보았다.




키메라 중 몇 마리가 건물의 외벽을 기어 올라가 지붕 위로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키메라들이 왜 지붕으로?’




이윽고 지붕 위를 조용히 이동하던 키메라가 플로라를 바라보며 2개의 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리네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말았다.




“위험해요!”




리네의 경고와 함께 옥상의 키메라가 가시를 쏘아 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플로라 또한 뒤늦게 키메라를 발견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리네가 마법을 사용했다.




술식을 이용한 단순화한 마력 장벽이었다.




어떠한 속성도 포함되지 않은 무속성 마력.




평소였다면 사용하는 데 애를 먹었겠지만, 루드거 덕분에 마력 방출량이 늘어난 지금, 마법은 바르게 발현되었다.




은회색의 원형 방패가 플로라의 앞에 생겨나며 가시를 막아 냈다.




일부는 방패에 튕겨 나가고, 일부는 방패를 반쯤 뚫고 들어와 박혔다.




하지만 완전히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플로라는 멍한 눈동자로 마력 방패를 보다가 이윽고 리네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




“몸은 괜찮으세요?”




“…….”




이쪽을 걱정스럽게 보는 리네에게 플로라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리네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었다가, 뒤늦게 아직 키메라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또 와요!”




“알고 있어.”




플로라는 그렇게 답하며 대응에 나서려 했다.




옥상 위에서 가시를 재차 쏘아 내려던 키메라가 불현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직후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냅다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키메라가 저런 행동을 하는지 현장의 사람들은 순간이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직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으니까.




그 빛은 일직선으로 쭈욱 떨어지다가 무섭게 방향을 꺾더니, 도망치는 키메라의 몸통을 관통했다.




깨갱!




키메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저길 봐!”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점을 향했다.




“루드거, 선생님?”




리네는 물론이거니와 플로라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루드거 첼리시.




부유 마법으로 허공에 뜬 그 남자는 마치 지휘자처럼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옥상의 키메라를 꿰뚫었던 빛줄기가 손끝에서 무수히 터져 나오며 지상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세상에.”




그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한 광경에 에렌디르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수한 빛들은 허공에서 꺾이고 움직이며 키메라들을 관통했다.




마력을 통해 만들어진 흉내 낸 빛이라지만 빛은 빛이다.




그 속도는, 고작 짐승의 인자를 섞은 키메라 따위가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캬오오오!




키메라들도 반격에 나섰다.




놈들은 허공에 떠 있는 루드거를 향해 일제히 가시를 발사했다.




순식간에 허공을 까맣게 채우는 무수한 가시들.




그 모습을 본 루드거의 행동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그저 절도 있게, 다른 한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 순간 소용돌이 같은 마력이 맺히며 루드거의 주위를 둘러싸 맹렬히 회전했다.




날아가던 가시는 거기에 휩쓸려 목표를 꿰뚫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 나갔다.




일전 루드거가 그란데르와 싸울 때 보였던 방어 마법을, 아테르 녹터누스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 마력으로 펼쳐 낸 것이다.




마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람이 불었다.




허공에서 우수수 떨어지던 가시들이 바람을 타고 거대한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키메라들이 쏘아 낸 가시는 반대로 루드거가 부리는 바람에 붙들렸다.




루드거는 곧바로 바람으로 모은 가시를 키메라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쏴아아아!




바리케이드도 관통하던 가시의 소나기가 역으로 키메라에게 쏟아졌다.




깨갱! 깽!




키메라들이 피를 뿌리며 우르르 죽어 나갔고, 그 광경을 본 시민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때마침 저 멀리서 새로운 증원이 속속히 도착했다.




키메라들도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를 드러내면서도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루드거는 곧이어 부유 마법을 해제하며 시민들이 모여 있는 바리케이드 안쪽에 착지했다.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시민들과 학생, 기사단과 경찰들을 보며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모두 무사하나?”




* * *




수도의 중앙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번 대대적인 테러 사건 때문에 피난소가 세워진 것이다.




그중 중앙 막사에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 상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시민들의 대피가 끝났으며, 놈들이 돌아다니는 주요 길목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방어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서니 키메라들도 함부로 달려들지 않습니다. 지휘 개체가 있는 모양입니다.”




“숫자를 줄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무의미한 소모전만 지속될 거 같습니다.”




해방군에 이어 키메라의 대대적인 테러로 인해 수도는 하루아침에 아비규환의 장이 되었다.




다행히도 마법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경찰과 위병들이 나선 덕분에 겨우 사태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해방군 놈들. 설마하니 키메라까지 만들었다니.”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의 부관 로이드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자리의 한쪽을 차지하던 테리나는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한쪽에는 베로니카가 단원들로부터 여러 전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그때 막사 바깥이 웅성거리며 한차례 시끄럽게 변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막사의 입구를 바라볼 때 누군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 외쳤다.




“화, 황제 폐하께서 행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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