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91화 제국의 황제 (1)
◈ 291화 제국의 황제 (1)
황제가 행차한다는 말에 막사 내부는 일순 소란이 일었다.
“폐하께서?”
“어찌 연락도 없이…….”
수도에서 벌어지는 사건 때문에 방문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연락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다니.
바깥이 일순 소란에 휩싸이더니, 막사의 입구를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막사 내부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집어삼켰다.
갑옷을 입은 호위 기사들에 둘러싸여 모습을 드러낸 한 남성.
눈부시게 찬란한 금발과 나이가 40이 넘었음에도 티가 나지 않는 주름 없는 피부.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을 지녔지만, 황족 특유의 권위와 카리스마가 넘실거리는 외모.
그가 바로 현 제국의 정점, 황제 아우비스타스 폰 엑실리온이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막사 내부의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황제를 향한 예를 다했다.
아우비스타스는 손을 내젓는 것으로 그들의 예를 치하하며 일어나도 좋다고 말했다.
모두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의 황제는 유약하고 실권이 거의 없다고 알려졌지만, 저 분위기를 보면 마냥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저 사람은.’
황제 다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 옆에 있는 여인이었다.
황제의 옆에서 고고한 기품을 내뿜는 그녀는 차기 황제라 불리는 1황녀 아일린 폰 엑실리온이었다.
황제가 태양이라면, 1황녀는 푸르스름한 하늘 위에 떠오른 만월과도 같았다.
‘황제 폐하와 1황녀님이 함께 나오시다니.’
‘그만큼 지금 사안을 심각하게 보시는 건가.’
마지막으로 거구의 덩치를 지닌 노인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사자 갈기 같은 갈색 머리카락과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을 알아본 기사들이 잔뜩 긴장했다.
‘루터스 워도트 단장!’
루터스 워도트.
극소수의 기사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로열가드의 수장이자, 현 제국 최강의 검사.
날카로운 대검 한 자루가 자리에 우뚝 서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환갑이 넘었음에도 넘치는 근육과 아직도 윤기를 자랑하는 갈색 머리카락과 수염은, 그가 여전히 정정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 루터스가 지금 황제와 1황녀의 호위를 위해 함께 온 것이다.
다른 호위 기사단을 이끌고서.
기사들이 그를 보며 두려움과 동시에 존경을 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나이트크롤러의 단장 테리나조차도 루터스를 보며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루터스 또한 고개를 가볍게 까닥이는 거로 그녀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같은 마스터임에도 급의 차이는 존재했던 것이다.
“만나서 반갑네.”
아우비스타스 황제가 입을 열었다.
여리고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가벼운 인사도 나누기 힘들어 보이는군. 경들도 알다시피 제국의 안뜰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네. 소식은 나 또한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이곳까지 직접 행차했네. 내게도 알려 줄 수 있겠는가.”
황제의 말에 때마침 상황을 정리하던 나이트크롤러 기사단 소속인 로이드가 나섰다.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의 로이드라고 합니다.”
“그래.”
“우선 이번 일은 해방군이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고 벌인 대대적인 테러입니다. 1차적으로 해방군들이 총기류로 사람들이 많이 밀집한 지역에 테러를 가해 혼란을 야기한 뒤, 지하에 숨어 있는 키메라들을 풀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 했습니다.”
로이드는 막사 한쪽에 마련된 지도를 가리켰다.
“크게 10여 곳이 넘는 구역의 하수구 안에서 키메라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로 인해 일대는 혼란에 휩싸였고,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사전에 기사단이 주변을 순찰하며 경계를 강화했기에 망정이었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야말로 대량의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다.
“현재는 구역마다 바리케이드를 쌓아 놈들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키메라들도 이 이상은 무리인지 물러나는 추세고요. 행동 패턴을 보면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따로 있는 거로 보입니다.”
“흑마법사로군.”
루터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세오른의 아카데미의 학생들 또한 와 있다고 들었네. 나의 사랑스러운 셋째가 다니는 곳이기도 하지.”
막사의 사람들은 어째서 황제가 직접 행차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혹시 에렌디르는 어떻게 됐는지 소식은 없는가?”
“그것이…….”
로이드는 잠시 망설였다가 단장인 테리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우선 3황녀님께서는 로이나 파블리니 멘토와 함께 수정궁에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정궁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교통편이 용이한 곳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대로변을 잠식한 키메라들이 더 많이 들이닥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황제의 지적은 예리했다.
실제로 수정궁은 지금 키메라의 습격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렉서러 등급 마법사가 함께 있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에렌디르에겐 그렇겠군.”
황제의 그 말은, 결국 에렌디르는 멀쩡해도 다른 사람은 그러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특히 수정궁에 방문한 많은 시민.
6위계 마법사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수정궁 내부의 그 많은 사람을 전부 보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황제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어두워졌다.
물론 수정궁 자체에도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사설 경비가 따로 있었고, 일부 기사들 또한 수정궁 주변을 순찰했기 때문에 키메라 무리에게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키메라의 숫자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기에 무언가 일이 틀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 그건 괜찮을 겁니다.”
그때 나서며 말을 한 것은 작은 체구의 양 갈래 머리의 여인.
캐롤라인 모나크였다.
주변에서 캐롤라인을 알아본 사람들이 당황했다.
귀족과 왕정주의를 혐오하는 그녀가 황제의 앞에 저렇게 당당하게 나섰다는 부분에서 불안감이 절로 엄습하게 된 것이다.
혹여라도 여기서 갑자기 캐롤라인이 황제에게 모욕을 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난리가 나고 만다.
“자네는…….”
“캐롤라인 모나크입니다. 황제 폐하.”
“알고 있네. 모나크 용병단장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자신을 알아보는 황제의 말에 캐롤라인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그녀가 알기론 지금의 황제는 사실상 허수아비라 했는데, 황제가 보여 주는 언행에서는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았다.
‘역시 소문이란 마냥 믿을 게 못 되는가.’
캐롤라인이 그렇게 생각할 때 아우비스타스 황제가 말했다.
“어째서 괜찮을 거라 말했는지 이유를 들어도 되겠는가.”
“로이나는 저희 6위계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말석에 지나지 않는 다소 모자란 아이입니다.”
“그 말은 오히려 안도를 시켜 주기보다는 불안감을 부추기는 말 같은데.”
“하지만 현장에 뛰어난 실력자 한 명이 함께 갔으니 괜찮을 겁니다.”
“뛰어난 실력자?”
아우비스타스 황제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흥미라는 감정이 담겼다.
6위계 마법사 캐롤라인 모나크에 대해서는 그 또한 들어봤다.
용병단이지만, 어지간한 기사단에 맞먹는 전력을 지닌 자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싸움판을 겪었기에 성미가 포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캐롤라인 모나크는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 당연히 그녀의 성격 또한 비슷한 부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순수하게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니.
아우비스타스 황제로서는 흥미가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누구인가.”
“그자는…….”
캐롤라인이 입을 여는 그 순간이었다.
막사의 바깥이 한 차례 또 소란스럽게 변했다.
황제가 행차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소란에 모두의 시선이 의아함에 휩싸였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게.”
황제가 근처 호위 기사 중 한 명에게 말하자 그는 곧바로 답하고는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가 돌아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수정궁의 생존자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수정궁의 생존자가?”
수정궁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대부분 사람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생존자가 있냐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살아남았느냐가 중요했다.
황제의 그 시선을 느낀 기사가 곧바로 답했다.
“생존자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정확히 몇 명이나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원래 있어야 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극히 적다고 합니다.”
“에렌디르는?”
“셋째 황녀님께서도 멀쩡하십니다. 함께 있던 로이나 파블리니 마법사님과 더불어 세오른 아카데미의 학생들도 멀쩡하고요.”
연달아 들리는 낭보에 막사 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황제의 시선이 다시 자연스럽게 캐롤라인을 향했다.
“아무래도 그대가 말한 뛰어난 실력자가 도착한 것 같구나.”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막사 안쪽의 사람들도 전부 그 뒤를 따라나섰다.
바깥은 생존자 집단의 합류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사망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많은 사람이 무사히 귀환했다는 소식은 한창 암울해지려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황제가 생환자 무리를 발견했듯, 생환자 무리에서도 황제를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아버님!”
3황녀 에렌디르가 황제를 보더니 기뻐하며 그에게 달려왔다.
황제 또한 에렌디르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들은 새삼 에렌디르의 머리색이 황제의 것을 빼다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에렌디르는 황제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감격하면서도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뒤늦게 안색을 굳혔다.
“이런이런. 체통을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동생은 이 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가 보구나.”
“아, 아일린 언니.”
아일린의 모습을 본 에렌디르의 표정이 천적을 발견한 그것처럼 공포에 질렸다.
아일린은 그런 에렌디르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에렌디르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 언니는 슬프구나. 동생이 아버님만 찾고, 곁에 있는 언니에게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다니.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한 거려나?”
“그, 그것이 아니고요…….”
“그만들 하거라. 이 기쁜 자리에서 꼭 동생을 괴롭혀야 하겠더냐.”
두 사람의 대화는 황제가 끼어듦으로써 무산되었다.
황제는 두 사람이 이런 것이 처음이 아님을 알기에 부드럽게 어르고 달랬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막사 내부의 사람들은 황제라 해도, 결국 자식을 신경 쓰는 사람인 것은 같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에렌디르.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위험한 일은 없었더냐.”
“그…… 없지는 않았습니다.”
에렌디르는 무언가 말하려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로이나 멘토의 활약으로 처음에는 어떻게든 키메라 군세를 견뎌 냈지만, 점차 힘이 빠지며 희생자들이 나오기 시작한 일.
그러다 키메라들이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서 멀리서 가시를 쏘기 시작하고, 전황이 위험한 상황까지 치달았던 일까지.
심각해지던 황제의 표정은 에렌디르의 다음 말에 풀렸다.
“그분이 없었다면 저희는 그 자리에서 모두 죽었겠죠.”
“그자가 누구지?”
황제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에렌디르가 아니라 아일린이었다.
“아버님. 때마침 저기 오네요.”
아일린의 말에 아우비스타스 황제의 시선이 생환자 무리의 한곳을 향했다.
때마침 그 남자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호오…….”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그 발걸음 자체에 타고난 기품이 있었다.
주변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고귀함과 여유를 잃지 않은 모습에 아우비스타스는 속으로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저자는 어디의 귀족인가.
황제로서 많은 고위 귀족을 만나 왔다고 자부했던 황제조차, 지금 다가오는 루드거의 모습을 보니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 루드거가 황제를 보더니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를 향한 예를 표하는 모습조차 절도가 넘치고, 사소한 실수조차 없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신 루드거 첼리시, 생환자들을 이끌고 막 돌아온 참입니다.”
* * *
생환자 무리 중에서 세오른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합류하게 됐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누구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안도한 것은 리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걸 깨닫다가도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리네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그…….”
플로라 루모스.
남청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리네는 이윽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이 살아 돌아온 사람치고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아서였다.
오히려 어딘가 기분이 나쁘다는 듯, 그럼에도 자신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른다는 듯 표정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
플로라는 리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리네는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플로라? 플로라!”
셰릴이 옆에서 따라붙으며 플로라를 불렀지만, 플로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전 수정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모두가 위험에 빠지던 그 순간.
루드거는 하늘에서 빛과 함께 나타나 모두를 구해 주었다.
그의 마법은 너무 놀라웠다.
그야말로 신위(神威)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빛과 바람, 불길과 얼음을 연달아 일으키는 그는 마법에 대해 아는 사람조차도 대마법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힘을 보였으니까.
물론 루드거가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마력약을 입에 머금고 있었는지 몰랐기에 그렇게 생각하기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키메라들을 쓸어버리고, 놈들이 도망치는 걸 확인한 루드거는 곧바로 하늘에서 내려와 생존자들에게 다가왔다.
마력의 잔향이 남긴 감미로운 향기와 눈을 어지럽히는 아름다운 색채와 함께 말이다.
루드거는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더니, 이윽고 플로라가 있는 곳에 다가왔다.
플로라는 그 순간 기대하고 말았다.
루드거가, 자신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며 잘했다고 칭찬해 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학생의 신분으로 그녀는 용기를 내서 훌륭한 공을 세웠으니까.
하지만 루드거가 다가간 사람은 플로라가 아닌, 바로 그 옆에 있던 리네였다.
-리네.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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