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94화 공유되지 않는 비밀 (2)
◈ 294화 공유되지 않는 비밀 (2)
루드거가 속으로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회의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아일린 황녀가 나서서 상황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의견을 따르게 됐다.
“그렇다면 지하에 있는 놈들을 소탕하는 것으로 결정됐군.”
방어와 공격.
두 가지 선택 중에서 이들이 내린 결정은 결국 공격이었다.
상대가 함정을 팠으리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해방군과 흑마법사들은 지금 시간을 끌고 있다고.
키메라의 군세 또한 결국 눈속임이자 시간 벌기일 뿐.
그들이 진짜로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6위계 마법사도, 제국의 기사단도, 마스터급 기사도.
모두가 모여 있어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품게 만드는 무언가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인세의 지옥을 재현하려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니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누구를 보내느냐는 거지.”
그 말에 좌중이 침묵했다.
이번 작전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해방군과 흑마법사들이 포진한 지하 시설에 보낼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병사들을 함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해방군이 10명이 죽어도 제국의 병사 1명이 죽으면 그것은 제국의 손해로 이어진다.
하물며 저들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가며 자살 테러까지 벌이는 놈들이니, 이쪽은 더욱 조심해질 필요가 있었다.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선별할 때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베로니카가 말했다.
“최소한의 실력이 보장된 사람들이 가야 합니다.”
“최소한이 아니야. 강한 녀석이 가야 하는 거지.”
베로니카의 말을 받은 것은 캐롤라인이었다.
“내려간다면 혼자서 놈들 수십은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가 가야 해. 저쪽도 정예 병력이 있을 테니까. 어중간한 놈이라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고르기 쉽겠군. 이곳에 다 모여 있으니까.”
휘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재 막사에 있는 수뇌부 중 절반 이상은 어디를 가도 이름깨나 날릴 실력자들이었다.
6위계 마법사부터 해서 마스터급 기사까지.
이들이 움직인다면 그 자체만으로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의 전력인 셈이다.
“그냥 시원하게 다 밀어붙이면 안 되나요?”
테리나의 옆에 있던 여기사가 속삭이듯 말했다.
루드거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았다.
엔야 조이너스라 했던가. 알렉스의 동기이자 그와 좋지 않게 헤어졌던 기사였다.
엔야는 제 딴에는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다고 생각했겠지만, 주변이 워낙 고요했고 다른 사람들의 청각이 좋았기에 그녀가 한 말을 모두가 들었다.
엔야도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는지 두 손으로 합 하고 입을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옆에서 로이드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테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부하의 실책이니 단장인 이쪽이 수습해 줄 수밖에.
“모두가 다 내려가면 물론 편할 거다. 하지만 그것도 놈들이 노리는 점이라는 걸 간과할 수는 없다. 이쪽의 주요 전력이 빠진 틈을 타서 또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혹시 모를 양동 작전을 방비하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 모인 전력 중 절반은 지상에 남아야 했다.
“게다가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실력자인 만큼, 오히려 숫자는 적당한 게 제일 낫다. 2인에서 3인 사이에서 조를 이루는 것이 깔끔하겠군.”
이것은 그들이 싸워야 할 지리적 요건도 감안한 부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널따란 평지에서 싸웠다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가장 최고의 효율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할 곳은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지하 시설이다.
좁고 어둡고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여럿 모인다면 오히려 본래 실력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근접 1명에 원거리 1명으로 잡으면 되려나?”
“이 자리에 모인 실력자들이라면 그런 구분도 무의미하겠죠. 마법사라고 근접이 약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렇다 해도 전위는 필요할 텐데.”
“너무 과한 전력은 또 좋지 않습니다. 특히 지하는 좁기 때문에 대규모 마법이 용이하지 않거든요.”
“마법의 출력 한도가 정해지겠군. 이건 좀 좋지 않은데.”
이어지는 토론 속에서 작전의 윤곽은 서서히, 그러면서도 뚜렷하게 잡혀 갔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군. 2인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전위와 후위를 담당하는 거로. 다만 돌입을 할 팀이 얼마나 필요하냐는 건데.”
“전투조뿐만이 아니라 분석조도 필요합니다. 놈들이 세계수를 이용한다는 걸 알았으니, 그 부분을 대비해 막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오히려 이쪽이 역으로 세계수에 손을 써서 놈들에게 역공할 수도 있겠군.”
이번 작전에서 전투조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턱대고 적들과 정면에서 싸울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적들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세계수다.
그러니 그 분야에서 움직여 줄 사람이 따로 필요했다.
“하지만 세계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찾기 힘들 텐데.”
가장 큰 문제라면 고대종인 세계수의 전문가를 찾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수는 당연하게도 해당 분야에 지식을 지닌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루드거는 거기서 기회를 봤다.
‘흠. 이거라면 벨라루나를 데리고 가면 쓸모가 있을 거 같은데.’
벨라루나는 행동이 이상해도 순혈 엘프다.
누구보다도 식물에 대한 지식이 넘친다고 봐도 무방했다.
‘엘프라면 세계수에 대한 지식도 충분히 있을 터.’
여기서 적당히 외부의 전문가라고 소개하면서 데려간다고 말을 꺼내면 되지 않을까.
루드거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크리스 베니모어가 자진해서 손을 들었다.
가만히 있던 그가 입을 연 것도 놀라운데, 하물며 위험한 임무에 자원했다는 점에서 루드거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것은 다른 세오른의 교사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 크리스 선생님?”
“저희 베니모어 가문은 오랫동안 약제학을 전공해 왔습니다. 당연히 약초에 대한 지식, 그것을 넘어 식물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세계수는 평범한 식물과 다를 텐데.”
누군가 그 부분을 지적했지만, 크리스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 부분도 괜찮습니다. 저희 가문은 과거 세계수의 표본을 얻어 연구를 한 적이 있으니까요.”
“표본을?”
모두가 그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마하니 세계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루드거는 혹시라도 크리스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 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루드거가 크리스에 대해서 그나마 알고 있는 점은 평상시의 행동이 까칠하고 성미가 예민하다는 것.
그리고 귀족으로서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 정도.
크리스가 교사로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실력을 지녔는지, 그리고 약제학에 얼마나 깊은 성취를 지녔는지는 루드거도 자세히 모른다.
‘다만 본인이 저렇게 자신한다면 부족하지는 않을 테고. 세계수의 표본도 구해서 연구해 봤다고 했다면, 명분은 충분히 차고 넘친다.’
자연스럽게 분석조로 크리스가 발탁되었다.
그다음으로 크리스 베니모어와 함께 갈 사람을 누구로 꼽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더니 이윽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루드거를 향했다.
“……왜 저를 그렇게 바라보시는 겁니까.”
설마 교사인 이쪽을 함께 붙여서 가라는 뜻인가?
루드거의 생각이 맞다는 듯 캐롤라인이 나서며 말했다.
“루드거 첼리시 선생. 당신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휘론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니라 캐롤라인 님이나 휘론 님이 가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면 몰라도 솔직히 우리 둘은 안 될걸.”
캐롤라인의 입가에 자조적인 쓴웃음이 맺혔다.
“이 덩치 녀석이랑 나는 솔직히 말해서 출력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서. 싸움에 들어가면 힘 조절이 힘들어져.”
캐롤라인 모나크의 이명은 폭군.
그리고 휘론은 강력한 근육과 막대한 마력으로 적을 다 부숴 버리는 전투법을 구사했다.
두 사람의 싸움 방식은 좁은 지하 수로라는 환경에 어울리지 않았다.
싸운다면 힘 조절을 최대한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하 수로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인지라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루드거가 최적이었다.
그는 적은 마력 양으로도 어마어마한 효율을 내는 전투를 구사한다.
게다가 수정궁의 생존자들까지 무사히 데려온 부분에서 이미 실력은 충분히 검증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그쪽은 같은 직장 동료지 않아? 적어도 움직이는 데 있어서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가 낫지 않겠어?”
저희 둘이 그렇게 친하지 않습니다만.
루드거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의외로 가장 반발할 것 같았던 크리스가 별말 없이 얌전했기 때문이다.
이 양반은 뭘 좀 잘못 먹었나? 왜 이렇게 성격이 많이 죽었어?
물론 마법제전 끝자락에서 서로 약제학실에서 약초를 만들며 대화를 나누긴 했다지만.
솔직히 그걸 화해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저는 일개 교사일 뿐입니다.”
“황녀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앞에 ‘실력 있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교사지. 솔직히 여기서 당신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걸?”
캐롤라인이 주변을 둘러보자 누구도 그녀의 말에 반발하며 나서지 않았다.
루드거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 캐롤라인 모나크와 휘론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루드거의 신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한 로이나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렉서러 등급 마법사가 무려 3명이나 보증해 준 탓에, 루드거에 대한 의심은 사실상 없었다.
“어차피 댁은 전투조가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위험한 싸움보다는 세계수를 분석해 주는 쪽이니까.”
“적들이 득실대는 지하 수로에 가는 시점에서 무조건 안전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적어도 다른 전투조와 비교하면 큰 싸움은 없을 거야.”
루드거는 거절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막상 생각을 해 보면 오히려 그가 움직이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이 자리에 모인 전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또 몰랐으니까.
“그렇다면, 분석조는 확실히 정해졌군.”
* * *
갑작스러운 테러 사태에 수도의 시민들은 공포에 질렸다.
하지만 제국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견고했고, 사람들이 단체로 패닉에 빠지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중앙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리케이드를 쌓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며 미처 대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수색을 이어 나갔다.
그 광장의 한쪽에는 세오른의 학생들이 얌전히 모여 앉아 있었다.
모처럼의 현장 학습이 테러로 엉망이 된 탓에 학생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일부는 목숨의 위험을 느끼기도 했기에 그 충격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리네. 괜찮니?”
한쪽에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는 리네의 곁에 에렌디르가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아, 선배. 가족들과는 만나셨어요?”
“응. 내가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라 하시더라고.”
“멀리서나마 봤어요.”
“봤어?”
“네. 황제님 말고도 곁에 계시던 아름다운 언니분도요.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사이가 좋다니…….”
언니인 1황녀를 떠올린 에렌디르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안 그런가요? 저는 언니분이 선배를 되게 아끼시는 것처럼 보였는데.”
“……잘못 본 거 아니니? 언니는 나를 그저 장난감 정도로 보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으음. 그런가요. 저는 가족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
아무렇지도 않게 심각한 말을 하는 리네의 모습에 에렌디르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리네의 어머니는 분명 존재했다. 메모리 스토밍 현상을 통해 그 과거를 보았으니까.
‘하지만 리네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어째서일까.’
에렌디르는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할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주제를 꺼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야. 학생 중에서 누구도 죽지 않아서. 다친 사람은 조금 있지만.”
“그보다 여기에 없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은데,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아마 황성에 있을 거야. 광장 쪽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 간이 대피소거든.”
그렇게 답하던 에렌디르는 불현듯 수정궁의 일을 떠올렸는지 엄한 표정이 되었다.
“그보다 리네. 아까 왜 그렇게 했던 거야?”
“네? 아까라뇨.”
“키메라가 쏘는 가시를 막기 위해 달려 나갔잖아.”
아.
리네는 에렌디르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았다.
“물론 잘 막아서 다행이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네가 크게 다칠 뻔했어. 대체 왜 그랬던 거야?”
“그게,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서…….”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죄송해요, 선배.”
리네가 침울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에렌디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후배이자 친구가 이렇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여기서 더 잔소리할 수도 없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보다 플로라 루모스, 그 사람은 어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는지. 구해 줬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안 하는 게 말이 돼? 리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에? 아, 그…… 본인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리네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곧바로 루드거 선생님께서 구하러 와 주셨잖아요.”
“그래. 그랬지.”
“되게 멋있었죠.”
리네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에렌디르도 그 말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빛을 두르며 온갖 화려한 마법으로 키메라의 군세를 몰아내는 루드거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이야기 속의 구원자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에렌디르는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루드거를 떠올릴 때마다 짓는 리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설마?’
에렌디르는 불안한 상상을 떠올렸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이 여린 후배가 나쁜 남자에게 잘못 걸렸을 때를.
“리네.”
“네? 선배, 왜 갑자기 그런 심각한 표정이세요.”
“리네, 이건 알아 둬. 세상에는 말이야 루드거 선생님 같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루드거 선생님이 위험하다뇨. 좋은 분이시잖아요.”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는 몰라. 그렇기에 위험한 거라고. 루드거 선생님이 지금 가면을 쓴 거고, 사실 그 뒤에 끔찍한 범죄자나 살인자가 있을지 누가 알겠니?”
“어, 그건 너무 비약 아닌가요?”
“예시가 그렇다는 거야. 내 말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거지.”
그런데 그걸 왜 자신에게 말하는 건가.
리네는 또 에렌디르가 무언가 이상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경우가 하루 이틀도 아니었고, 리네는 이 상황을 넘기는 방법을 아주 잘 알았다.
“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하자 에렌디르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리네는 그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뭔가 친한 언니에게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에렌디르는 왠지 모르게 루드거 선생님을 경계했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남들은 몰라도 본인은 알 수 있다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리네는 여전히 루드거 첼리시를 믿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정궁에서 자신을 구해 줄 때.
그렇게 걱정이 가득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부르지 않았을 테니까.
그 순간 리네의 시선이 땅바닥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뭐지? 이 기묘한 느낌은.’
리네의 두 눈동자에 불가해한 힘이 아지랑이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리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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