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299화 세컨드 (2)

 ◈ 299화 세컨드 (2)




해방군을 비롯한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성에 적들이 침입했음을 깨달았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지하 수로에 놔두었던 키메라들을 빠른 속도로 처치하며 오는데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기세를 보건대 적들이 곧바로 자신들이 머무르고 있는 지하 시설로 들이닥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방군은 먼저 손을 썼다.




적들이 들어오는 순간 지형을 바꾸어 탈출로를 막은 뒤, 이쪽의 병력을 보내 놈들을 없앨 생각이었다.




“그 결과가 이것인가?”




베로니카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게 됐는지 곧바로 짐작했다.




그녀는 검을 뽑아 들고 눈앞에 있는 적을 지그시 응시했다.




평소 활기찬 모습과는 다른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




그것은 뼛속마저 얼어붙을, 북부의 오랜 한파와도 같은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눈앞의 상대가 ‘악’이라는 것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그것을 마음속으로 규정한 순간 베로니카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이 되었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해방군은 이쪽이 정예로 꾸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어중이떠중이로 상대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듯, 적이라고 나타난 자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길목이 넓지 않아 다수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은 힘들다. 그나마 총화기를 사용한다면 시간은 끌겠지만, 이 정도 실력자들에게 총은 무의미하지.’




그러니 놈들도 괜한 소모전을 택하는 대신 확실한 방법을 택한 것이리라.




“준비하십시오.”




베로니카가 정면에 서자 그녀와 함께 붙은 마법사, 황실 출신의 종군 마법사가 술식을 준비했다.




아케인 체임버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또한 이 자리에 참여할 정도의 실력 있는 마법사.




베로니카가 등을 맡기기엔 충분한 자격을 지녔다.




마법사가 넘실거리는 불길을 일으켰고, 베로니카의 검에 냉기가 감돌았다.




* * *




곳곳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루드거는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지가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인지를 가늠했다.




‘아무래도 각자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은 모양이군.’




루드거는 주위에 흩뿌린 마력을 다시금 흡수하며 안전하게 갈무리했다.




푸르스름하게 번졌던 안개가 루드거의 몸으로 스펀지처럼 빨려 들어갔다.




안개가 가라앉으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폐허 그 자체였다.




힘 조절을 한 탓에 주변 지형이 무너지거나 붕괴한 곳은 없었지만, 곳곳에 새겨진 상흔은 싸움이 평범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루드거의 주위에는 조금 전까지 그와 싸우던 해방군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 숫자는 총 다섯.




총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에서 이들 또한 이미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한 강자였지만, 기상천외한 전투를 선보이는 루드거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미쳤군.’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루드거의 싸움을 지켜본 크리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전투를 상기해 보았다.




루드거의 싸움법은 마법사이되 마법사답지 않았다.




보통 마법사란 자리에 고정된 채로 술식을 그리며 마법을 발동한다.




현대의 전투 교범으로 따지면, 마법사는 강력한 화력으로 적들을 휩쓰는 포대와 같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임에도 몸소 움직이며 적진을 휘젓는 자들도 있었으니까.




대표적으로 워 메이지라 불리는 군에 몸을 의탁한 종군 마법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루드거의 싸움법은 크리스의 입장에서 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워 메이지들도 결국 마법사로서 한층 더 발전한 수준에서 그쳤을 뿐, 루드거처럼 뭔가 근본부터가 다르다는 느낌을 풍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군에서 복무를 했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저 정도의 실력을 보일 수가 있나?’




루드거의 싸움은 상당히 다채로웠다.




처음에는 원거리에서 적들이 보이기 무섭게 곧바로 마법을 쏘았다.




속성은 화염.




크지 않은 길목에서 적들을 한꺼번에 태워 버리기에는 적합한 마법이었다.




당연하게도 상대방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방어에 돌입했다.




5명 중 2명이 마법사였는데, 두 마법사가 힘을 합쳐서 방벽을 사용해 루드거의 공격을 방어한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불길이 넘실거리며 시야를 가리는 순간 루드거가 적진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불길은 그들의 시야를 가려 이쪽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속임수.




안쪽에 돌입한 순간 루드거는 전신의 마력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밀도 있는 푸른빛 안개가 주위로 퍼져 나갔고, 적들의 시야가 가려졌다.




그리고 루드거는 그곳에서 적들의 사이를 누비며 마법과 근접전을 펼쳤다.




루드거는 규모가 큰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용한 것은 정말로 기초적인 마법들, 예시로 들면 1, 2위계에 지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간단한 1위계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말도 안 되는 컨트롤로 우위를 점했다.




‘마법의 위력이 강한 것이 아니야. 믿기지 않은 마력의 응집력과 활용도, 전투 센스, 1c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정확성까지. 도대체 이 남자는…….’




게다가 자신이 흩뿌린 마력 장악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저렇게 마력 안개를 내뿜고 그것을 완벽하게 회수할 수 있다고?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루드거가 마법제전에서 교사들끼리 대련을 할 때도 그가 대단한 실력자인 것은 알았지만.




이건 격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때 보여 준 것도 본인의 진짜 실력이 아니었다는 건가.’




하지만 크리스는 놀라서 당황하기보다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납득을 하는 모종의 체념 단계까지 돌입하고 말았다.




“정리는 끝났습니다. 애석하게도 크리스 선생님께서 나설 기회는 없었군요.”




“……됐다. 어차피 서로 안 맞는 합을 억지로 맞추며 싸울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쪽을 돌아보며 말을 하는 루드거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크리스.




그런 크리스의 뒤에 숨어서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지켜보던 벨라루나는, 불현듯 시체에 시선을 고정했다.




“……!”




벨라루나의 다급한 시선을 본 루드거와 크리스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벨라루나가 허리춤의 작은 파우치에서 약병을 꺼내더니, 그것을 곧바로 시체를 향해 집어 던졌다.




모종의 장치가 돼 있는 약병은 날아가던 도중에 폭발, 안쪽에 있는 투명한 액체를 시체 위에 끼얹었다.




그 순간 놀라운, 바꿔 말하면 썩 보기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액체에 닿은 시체가 기포를 일으키며 빠르게 녹아내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루드거와 크리스가 속으로 놀라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액체가 닿지 않은 시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걸 보는 순간 두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꾸드득!




시체는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기괴하게 움직였다.




피부가 보랏빛으로 물들고 눈이 붉어지며 입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단순히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등 뒤로 날카로운 가시가 솟아난다거나 손톱이 길어진다거나.




죽었던 시체가 부활한 것도 놀라웠지만, 녀석은 변이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캬아아악!




그 숫자는 총 2마리.




그마저도 액체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서 기습은 실패에 돌아갔다.




벨라루나가 미리 시체를 녹이지 않았더라면 죽은 줄 알았던 적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기습을 가했을 것이다.




“이건 무슨…….”




상식을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자 크리스가 목소리가 떨려 왔다.




반대로 루드거는 눈에 힘을 주며 부활한 적을 노려보았다.




‘흑마법사가 손을 봤군. 시체를 움직이니 사령술을 사용한 것 같지만, 그것만 사용한 것은 아니야. 다른 걸 많이도 섞었어.’




시체의 몸이 변화를 맞이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순수한 네크로맨시는 시체 자체를 부활시킬 뿐, 형태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이 녀석들은 죽을 생각으로 온 모양입니다.”




“뭐?”




“놈들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저 힘. 키메라와 비슷합니다. 아마 키메라 연구를 통해 얻어 낸 인자를 몸에 주입한 거겠죠.”




“인체 실험을 했다고? 그것도 살아 있는 자신의 몸에? 그런 미친 짓을 대체 누가…….”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저 모습을 설명할 수 없을 텐데요.”




“……제길. 그것도 그렇군.”




캬아아악!




그 순간 기회를 잡은 적들이 이제는 인간의 언어조차도 잃은 채 루드거와 크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찢어지듯 벌려진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했다.




이제는 인간의 형상마저도 벗어던진, 숫제 괴물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놈이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드는 와중에 루드거가 속 편하게 말했다.




“다행인 일 아닙니까. 크리스 선생님도 드디어 싸울 수 있게 됐으니까요.”




“지금 그런 말을 할 상황인가?”




“조금 전까지 아쉬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적 없다!”




“그렇다면 지금 보여 줄 때군요. 뒤에서 벨라루나 씨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 자식이……!”




크리스는 욱하면서도 지척까지 다가온 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말하는 것보다 빠르게 크리스의 손이 움직였다.




삽시간에 손가락 사이의 시약병을 낀 그는 그대로 눈앞의 적을 향해 집어 던졌다.




캬악!




크리스에게 달려들던 괴물은 날아오는 시약병을 보더니 몸을 한계까지 낮추어 그것을 피해 냈다.




‘피해?’




시약이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모를 텐데도 이걸 피하다니.




게다가 순간이지만 보였던 기괴한 움직임.




신체가 변이한 부분에서 추측은 했지만, 놈들은 이미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크리스는 이를 악물면서도 미리 준비해 둔 마법을 발동시켰다.




어차피 집어 던진 시약은 처음부터 시간을 벌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진짜는 미리 준비한 마법이었다.




콰드득!




크리스와 괴물 사이의 지면이 일렁이더니 날카로운 바위 송곳이 솟아올랐다.




몸을 바짝 낮춘 괴물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




그러나 녀석은 길게 늘어난 두 팔로 지면을 강하게 밀어내더니, 이윽고 허공으로 몸이 붕 떠올랐다.




바위 송곳은 목표를 놓쳐 아무것도 꿰뚫지 못했다.




“무슨……!”




설마 이쪽에서 준비한 마법까지 피할 거라고는 크리스는 예상하지 못했다.




허공에 떠오른 괴물이 크리스를 향해 추락하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길게 늘어난 양팔의 끝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변이한 뼈가 칼날처럼 바뀐 것이었다.




“우습게 보지 마라!”




크리스는 눈을 부릅뜨며 마력을 일으켰다.




마력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거칠게 펄럭이며 그의 등 뒤로 반투명한 형상이 떠올랐다.




연녹색 마력을 머금으며 크리스의 뒤에서 거대한 꽃이 피어올랐다.




라우 블로메라는 이름을 지닌 그것은 크리스 베니모어가 다루는 [마법수]였다.




촤르르륵!




정체를 알 수 없는 꽃으로부터 무수한 넝쿨 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허공의 괴물을 붙잡았다.




아무리 반응 속도가 좋다 하더라도 발판이 없는 허공에서 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는 법.




넝쿨에 붙들린 괴물이 발버둥을 쳤지만, 넝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꽃봉오리가 만개하듯 활짝 펼쳐지더니 중심에 마력을 머금기 시작했다.




샛노란 마력이 한 점에 모이며 최대한 압축되더니, 커다란 부채꼴을 그리며 정면을 향해 쏘아졌다.




궤적에 휩쓸린 괴물은 그대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괴물을 쓰러뜨린 크리스는 마법수를 해제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다 정리했습니까?”




그런 크리스의 곁으로 루드거가 다가오며 물었다.




크리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모습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루드거의 어깨너머, 그에게 달려든 괴물이 미간과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었다.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냥 마법으로 잡았습니다.”




“…….”




이쪽은 개고생해서 잡은 녀석을 저리도 쉽게 처리했다고 말하다니.




크리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하면서도 애써 그것을 티 내려 하지 않으려 했다.




“그보다 방금 그거, 마법수였습니까?”




“……그래. 마력을 너무 잡아먹어서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게다가 크리스가 자신의 마법수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꽃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냉철하고 이지적이어야 할 자신의 마법수가 꽃의 모습이라니, 누구에게도 차마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위력 하나는 대단해 보이더군요. 넝쿨로 적을 붙잡을 수도 있고. 꽤 유용해 보입니다만.”




“……뭐, 마력을 많이 소모하니까.”




그때 벨라루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세상에! 방금 그 마법수 뭐였나요? 정말 멋졌어요!”




“그, 그랬습니까?”




“네. 제가 엘프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되게 친숙한 느낌이었고, 뭔가 크리스 선생님과 어울려서 되게 멋있었어요!”




“크흠. 별거 아닙니다.”




‘…….’




이쪽이 물었을 때는 어떻게든 설명 안 하려고 시선을 피하더니, 벨라루나가 물어보니 안달이 난 것이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이젠 이런 온도 차는 슬슬 익숙해졌기에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제압한 시체를 바라보았다.




‘다시 살아나면서 이성은 사라지지만, 육체 능력은 가히 초월적으로 변하는군. 그 때문인지 직감도 매우 뛰어나고, 반응 속도가 극한까지 올라갔어.’




반응 속도도 속도지만, 상대방의 공격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피하려 하는 그 움직임이 심히 거슬렸다.




게다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움직임까지 보이니.




‘어지간히 빠르지 않으면 못 잡겠군.’




무엇보다 거슬리는 것은 시체에서 미약하지만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악마의 힘이 깃든 거겠지.’




흑마법사들은 악마의 힘을 인간의 몸에 주입할 정도로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건.




놈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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