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02화 안드레이 세모프 (1)
◈ 302화 안드레이 세모프 (1)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간단한 견제기.
안드레이 세모프가 가슴팍에 마력을 모은 뒤 그것을 기둥처럼 쏘아 냈다.
속성조차 들어가 있지 않은 [마력 방출]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막대한 마력량은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폭력이 되어 베로니카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베로니카는 날아오는 마력을 향해 손에 쥔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흔들림 없는 정자세 베기.
검 끝에 맺힌 서릿발 같은 오러가 마력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쩌저적!
베로니카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지면에 새하얀 서리가 맺혔다.
그 모습을 본 안드레이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특이한 오러를 사용하는구나. 기사 중에서는 체질에 따라서 오러 자체에 속성을 머금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쪽도 그런 부류였나.”
“…….”
베로니카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에 호탕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은 적과 싸우는 순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적일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베로니카는 대신 검에서 피어오르는 냉기의 오러를 더욱 강하게 끌어 올렸다.
대화 따윈 섞을 가치도 없다는 건가.
안드레이도 그저 확인차 물었을 뿐, 크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귀찮은 상대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조금 전의 일격이 베로니카의 전력은 아닐 텐데도, 순간이지만 주변 온도가 티가 날 정도로 내려간 것 같으니까.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안드레이는 의도적으로 입으로 날숨을 내뱉었다.
새하얀 수증기가 허공에 맺히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의 주름진 눈가가 즐겁다는 듯 초승달처럼 휘었다.
“재미있구나. 단순히 얼음만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 이건가.”
게다가 이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베로니카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오러의 입자는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도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듯 흩어지는 오러의 입자는 계속해서 공간을 잠식해 나가며 주변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상대하는 입장으로서는 시간을 끌수록 추위로 인해 신체가 무뎌지고, 육체와 정신력 양면 모두를 갉아 먹힌다.
그야말로 대인전에 있어서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기술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본인도 이 냉기 속에서는 무사하지 못할 텐데.’
안드레이의 의문은 베로니카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풀리고 말았다.
“그래. 괜히 가장 차갑다는 북부에서 지내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 이건가.”
베로니카가 콜드스틸 기사단에 들어간 것.
그 차가운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양날의 검에 가까운 자신의 기술을 견디기 위함이었다.
‘이런 녀석들을 상대로 고작 세컨드 같은 실험체를 보냈으니 버티기 힘들었던 거겠지.’
안드레이는 자조하듯 웃으며 품속에서 시험관을 꺼냈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베로니카가 아니었다.
그녀가 신호를 주기 무섭게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군 마법사가 움직였다.
휘오오오!
로브를 뒤집어쓴 종군 마법사가 두 팔을 뻗었다.
삭풍과 같은 바람이 베로니카의 오러 입자를 머금으며 안드레이에게 향해 들이닥쳤다.
“흥.”
안드레이는 코웃음을 치며 마력 장벽을 펼쳐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흩어지는 오러 입자는 오히려 더욱 주변을 꽁꽁 얼리며 안드레에게 압박을 가했다.
쩌적.
안드레이의 로브 자락에도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귀찮은 기술이야.”
그러나 이런 냉기조차도 안드레이가 시험관을 완전히 꺼내서 시약을 섞는 것까지는 막아 내지 못했다.
시험관 안쪽에는 콩알처럼 작은 살덩어리가 담겨 있었다. 그것도 무려 3개나.
안드레이가 그것의 뚜껑을 열고 지면에 쏟자, 지면에 떨어진 살덩어리가 꿈틀대며 풍선처럼 팽창했다.
삽시간에 커진 살덩어리는 꾸물거리더니 이윽고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체구는 성인 남성의 덩치 정도. 눈코입은 없는 민머리에 피부도 상아색을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베로니카는 자기도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의 감각이, 저 실험체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놈들이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지금!’
베로니카가 자리에서 높게 도약하며 안드레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휘두르는 검에는 이전과 다른 농밀하게 압축된 오러가 넘실거렸다.
그대로 안드레이가 방어 마법을 사용해도 마법과 함께 반으로 쪼갤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검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실험체에 의해서 막히고 말았다.
카앙!
실험체가 내민 팔뚝이 베로니카의 검과 충돌하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베로니카가 눈을 부릅떴다.
‘이 정도의 오러가 담긴 공격을 맨팔로?’
베로니카는 자신의 일격이 실험체의 팔뚝을 가르지 못했음을 깨닫고 아연실색했다.
실험체의 팔뚝은 어느새 날카로운 갑각이 칼날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꽈드득!
물론 검 자체에 실린 냉기만큼은 어찌하지 못했는지 팔뚝 전체가 하얀 서리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직후 뒤로 훌쩍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에 다른 실험체들의 공격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베로니카의 검을 막은 실험체는 얼어붙은 팔뚝에 힘을 주었다.
후드득. 표면에 맺힌 얼음이 지면에 떨어졌다. 동시에 멍이 든 것처럼 보라색으로 괴사한 팔뚝이 빠른 속도로 상아색으로 돌아왔다.
동상을 입어 괴사한 신체를 단숨에 복구한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재생 능력이었다.
안드레이는 살짝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가. 나의 자랑스러운 걸작 실험체가. 예전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녀석들이지만, 세계수의 생명력 덕분에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지. 양산형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쓸 만할…….”
종군 마법사가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이번엔 화염 마법을 쏘아 냈다.
냉기가 먹히지 않는다면 반대의 속성으로 태워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불길의 파도.
3마리의 실험체 중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며 팔을 내민 것은 그때였다.
꾸드득.
팔뚝이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전신을 가리는 커다란 방패의 모습으로 변했다.
직후 방패 위로 불길이 작렬했다.
새빨간 불씨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열기가 후끈 몰아쳤다.
이윽고 서서히 불길이 가라앉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멀쩡하게 서 있는 실험체였다.
실험체는 표면이 새까맣게 탄 방패를 천천히 내렸다.
그 까맣게 탄 피부가 탈피를 하듯 벗겨지더니, 안쪽의 상아색 살이 빠르게 돋아났다.
안드레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단순한 발상 아닌가. 이 실험체들은 어떠한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네. 그야말로 생명체가 진화하기 위한 올바른 지표라 할 수 있지.”
안드레이는 자신의 실험체를 흡족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의 위대함이다. 우리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진화의 방향성이기도 하지. 화상도 동상도 입지 않으며, 어떠한 상처도 재생하고.”
안드레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불치병조차 극복할 수 있는…….”
안드레이는 고개를 저은 뒤 의기양양한 얼굴로 베로니카를 응시했다.
“어떤가. 이래도 계속 싸울 생각인가?”
“…….”
다시금 검을 고쳐 쥐는 베로니카를 보며 안드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 모른단 말인가. 이렇게나 완벽한 결과가 눈앞에 있거늘, 그것에 감탄하지는 못할망정 그저 적대감을 품기나 하는구나.
안드레이는 손을 들어 올려 실험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자 했다.
그러던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가라앉더니 반개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본 것은 그때였다.
황금 머리카락의 기사가 수직으로 우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깨닫는 순간 이미 늦었다.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그야말로 완벽한 기습이었다.
푸욱!
검이 안드레이의 미간을 정확히 뚫고 들어갔다.
직후 파시우스는 안드레이의 어깨를 박차고 뒤로 백 텀블링을 하듯 물러났다.
실험체가 휘두른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됐나?’
파시우스는 안드레이의 시체를 확인했다.
선 채로 미간이 꿰뚫린 그는 아직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세로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파시우스는 곧바로 뒤로 더 물러났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놀랍군.”
죽었어야 할 안드레이의 입이 움직였다.
부릅뜬 그의 눈동자가 굴러가며 파시우스를 향했다.
“방심했다면 곧바로 이쪽도 기습을 선사하려 했는데, 눈치가 빨라. 마스터라 그런가, 감각이 예리하군.”
물론 그 마스터가 설마하니 암살자처럼 기습을 가할 줄은 더욱 몰랐다.
파시우스의 입가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한 미소가 감돌았다.
“미간을 뚫리고도 살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심장을 찌를 걸 그랬나.”
“그래 봤자 소용없다. 이미 나의 육체는 인간을 아득히 넘어섰으니까.”
안드레이가 들어 올렸던 고개를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의 미간에 새겨진 상처는 삽시간에 아물었다.
그 모습을 본 파시우스가 중얼거렸다.
“그건 좀 비겁한데.”
“소드마스터가 기습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명예 따윈 챙기지 않는 실리적인 전투라니. 이 힘을 얻기 전의 나였다면 아차 하는 순간 당했겠군.”
“과분한 칭찬이야.”
“솔직히 놀랐다. 원래 이 비장의 패는 바로 까발릴 생각이 없었거든.”
안드레이는 파시우스를 응시하면서 다른 방향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의 손이 기이할 정도로 길게 늘어나더니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강하게 때렸다.
직후 윽!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은닉하고 있던 남자가 뒤로 튕겨 나가듯 날아가 지상에 착지했다.
철가면 로테론.
그는 투구 안쪽에서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안드레이를 응시했다.
“대기 중의 공기의 밀도를 조절해 모습을 왜곡한 것은 썩 좋은 방식이었다만, 그렇게 해서야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은가.”
안드레이의 그 말은 그의 피부에 의한 촉감이 대기의 미묘한 흐름마저 잡아낼 정도로 예민하다는 걸 뜻했다.
새롭게 합류한 파시우스와 로테론은 베로니카 일행의 곁에 서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안드레이는 겉으로는 여유를 가장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지막이 탄식을 흘렸다.
6위계 마법사에 마스터급 강자인 로열가드, 그리고 제국 기사단의 부단장에 종군 마법사까지.
그야말로 화려한 라인업이지 않은가.
아마 세계수를 발견하기 전의 그였다면, 이미 죽어도 몇 번은 더 죽었으리라.
‘이쪽도 방심은 할 수 없겠군.’
그는 곧바로 품 안에서 새로운 도구를 꺼냈다.
그것은 검은 액체가 담겨 있는 주사기였다.
실험체의 보호를 받으며 안드레이는 주사기를 자신의 가슴팍에 꽂았다.
몸에 주입된 검은 액체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심장까지 도달했다.
두근. 두근.
이미 인간의 내구를 초월한 심장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이의 피부 위로 검은 혈관이 울긋불긋 자라났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오오오.”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뒤이어 찾아오는 거대한 고양감에 안드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탄성을 토해 냈다.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검게 물들더니 이윽고 중심에서 샛노란 동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일행들이 잔뜩 긴장했다.
안드레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자못 변했다.
그전까지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범접하기 힘든 절대자의 느낌이 풍겼다.
“그런가. 과연 이 정도의 힘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군.”
정제한 악마의 힘.
정제라 해도 오히려 세계수에서 추출한 힘을 안정화될 때까지 희석시킨 것에 가까웠다.
세컨드 실험체들을 양산하면서 만들어 낸 그 힘을, 안드레이는 직접 자신의 몸에 주입한 것이다.
물론 성공작이라 해도 일반인은 한 방울만 혈관에 투여해도 몸이 찢어져 죽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안드레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생명공학의 기술로 자신의 몸을 개조한 상황에서 악마의 힘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안드레이의 몸 주위로 검은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 서로 재 보는 것 없이 최선을 다해 싸워 보자꾸나.”
직후 검은 마력이 부채꼴을 그리며 방사형으로 뿜어져 나왔다.
* * *
쿠우웅!!!
지하 시설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에, 루드거 일행은 순간 망가뜨린 기계 장치가 다시 가동하는 줄 알고 자리에 멈춰 섰다.
하지만 직후 진동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다는 것, 그리고 그 충격음이 조금 먼 곳에서 울려 퍼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희미한 통로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일행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은 무언가 거대한 폭발로 인한 충격파였다.
그 충격파에 실리듯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테리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소드마스터의 감각이 이 이질적이고 기분 나쁜 기운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표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저희 말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한 모양이군요.”
루드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쉬지 않고 움직였지만, 5명이나 되는 인원 때문인지 실험체들의 집중적인 방해 공작에 시간이 꽤 지체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 정도로 커다란 굉음에 기묘한 힘이라면.
흑마법사들이 악마의 힘으로 무언가를 꾸민 것이 분명했다.
‘이러면 귀찮아지는데.’
루드거가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이었다.
아주 희미한 마력의 신호가 루드거의 피부를 자극했다.
시선을 돌리자 지면에 종이로 이루어진 개구리가 있었다.
루드거는 그것이 세디나와 한스가 보낸 정보라는 걸 깨닫고, 곧바로 남들 몰래 종이 개구리를 주워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멀리서 느껴지는 힘에 한눈팔려 있어서 그 은밀한 행동은 들키지 않았다.
루드거는 펼쳐진 종이의 내용물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이쪽이 장악한 키메라 들통 나서 추가적인 정보 전달 불가. 현재 중앙 공동에서 특별히 위험해 보이는 실험체 하나가 준비 중. 생명공학파 안드레이가 시간을 끄는 중.]
내용을 확인한 루드거는 그것을 구긴 뒤 주머니에 넣었다.
“저희도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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