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04화 실험체 서드 (1)

 ◈ 304화 실험체 서드 (1)




공동에 접어든 루드거 일행은 곧바로 둘로 나뉘었다.




테리나와 크리스, 벨라루나는 안드레이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러 갔다.




남은 루드거와 케이시는 둘이서 안드레이에게 들키지 않게끔 숨어서 몰래 이동했다.




케이시가 물의 장막을 펼쳐 주위의 시선을 차단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안드레이의 관심을 끌어 준 덕분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악마의 힘인가.’




루드거는 안드레이가 뿜어내는 검은 기운을 보며 보통 위험한 힘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어째서 지하를 확인하라고 넌지시 운을 띄웠는지 알 것 같았다.




악마의 힘이라면 스승님이 관심을 가질 법도 했다.




물론 그 힘은 아직 세계수에 봉인되어 있었고, 그란데르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힌트를 주는 것으로 넘어갔을 뿐.




‘뭐가 어찌 됐든 지금 놈이 한눈판 사이에 실험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없애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케이시와 따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괜찮을까?”




케이시는 싸우고 있는 동료들이 지원이 필요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둘만 남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말투는 다시금 반말로 돌아가 있었다.




“괜찮을 거다. 마스터가 둘에, 그에 상응하는 전력이 모였지. 아무리 안드레이 세모프가 악마의 힘을 쓴다고 해도 밀리지는 않을 거야.”




“……그래. 그렇겠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케이시도 다짐한 듯 분주히 움직이는 흑마법사들을 눈에 담았다.




그러면서도 간혹 루드거를 힐끔거리며 살폈지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실없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간다.”




“……그래.”




루드거가 마법을 준비하고 케이시 또한 거들었다.




순식간에 술식이 완성되고, 삽시간에 마법이 펼쳐졌다.




동시에 케이시가 둘러싼 물의 장막이 해제되며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흑마법사들과 해방군들은 갑작스러운 마력의 파장을 느끼고는 적이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거대한 화염의 마법이 부채꼴로 넓게 펼쳐지며 파도처럼 넘실거리듯 실험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범위가 넓은 만큼 위력이 밀집되지 않아 적을 죽이지는 못하지만, 키메라를 양산하는 배양 시설과 실험체들에게 타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막아!”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해방군들과 흑마법사들은 도망치는 대신 맞서 싸우는 걸 택했다.




그중 이미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던져 가며 화염의 파도를 밀어냈다.




그 찰나의 틈새 동안 마법사들이 술식을 완성하여 방어 마법을 펼쳤다.




가장 먼저 몸을 던진 해방군들은 새까맣게 타 버렸지만, 그 덕분에 나머지는 방어 마법을 통해 지켜 낼 수 있었다.




루드거가 펼쳐 낸 불길의 화염은 본래 목표로 했던 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불에 타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 몸을 던지다니.’




그야말로 광신도들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이쪽의 공격은 애초에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움직인 것은 케이시 셀모어였다.




화염의 파도 다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얇게 저민 물의 칼날이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물의 참격은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마력을 담고 있어서, 그 앞에 걸리는 무엇이든지 잘라 냈다.




서걱! 철퍽!




방어 마법이 힘없이 깨져 나가며 물의 칼날이 배양 시설을 부수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관이 날카로운 단면을 유지한 채 잘려 나갔다.




안에 담긴 정체 모를 액체와 함께 미처 완성되지 못한 키메라와 세컨드 실험체의 살덩어리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안 돼!”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그 모습에 해방군들이 충혈된 눈동자로 케이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케이시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마법사가 한 번 마력을 방출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그녀는 단일 속성 원소 마법사다.




한 번 사용한 물은 몇 번이고 재사용이 가능했다.




케이시의 의지를 따라 물의 칼날이 다시금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그녀의 주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했다.




케이시에게 달려들려던 해방군은 조금 전 보았던 참격의 위력에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그 찰나의 망설임이 케이시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물의 칼날들이 한 장소에 무수히 뭉치더니 10여 개의 대포를 만들었다.




케이시가 손을 앞으로 뻗어 정면을 가리키자 대포가 불 대신 물을 뿜었다.




투콰앙!




거대한 수압을 지닌 물대포는 해방군을 일거에 날려 버리고, 아직 남은 배양 시설들을 파괴시켰다.




“제길! 남은 실험체 싹 다 풀어!”




“하, 하지만 아직 조율 단계가……!”




“지금 그럴 시간 없으니까 어서 풀라고! 그리고 서드는 무조건 지켜!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라고!”




이 정도 상황이라면 전의를 상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해방군과 흑마법사들은 오히려 더 강렬한 분노를 불태우며 맞서고자 했다.




자신들은 두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흑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드디어 이룩하고자 하는 궁극의 실험체가 완성됐다는 지식의 충족감에.




해방군들은 혐오스러운 적들을 죽일 수단이 완성되길 바라는 증오 때문에.




그것이 신념이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핀다는 점은 동일했다.




캬아아악!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실험체들이 일어나며 루드거와 케이시에게 달려들었다.




그 형태는 불완전했으며 실시간으로 육체가 붕괴되고 있었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은 벌어 준 거 같은데!”




케이시는 적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루드거에게 외쳤다.




1차 공격은 루드거가, 2차는 케이시가 맡고 다시금 3차를 루드거가 이어 나갈 예정이었다.




“술식도 빠른 남자가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




케이시가 다급하게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눈부신 빛이 폭사했다.




마주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광량.




만일 이것을 정면에서 쳐다봤다면 삽시간에 눈이 멀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키메라와 실험체들이 눈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 듯 자리에 멈춰 섰다.




동시에 막대한 마력이 빛과 함께 뒤섞이며 마법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폭발하는 빛.




사방으로 뻗어져 나가는 빛줄기는 이윽고 무수한 창으로 변해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움직였다.




루드거가 지상에서 키메라들을 쓸어 버릴 때 사용한 빛 마법의 강화판.




더 많은 마력을 머금고 더 강력한 위력으로 적들을 일거에 꿰뚫기 위한 마법.




5위계 광속성 마법.




[천사의 사다리]




그것은 창보다는 거의 레이저에 가까웠다.




적들은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형상조차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적들은 공격을 인지하는 순간 이미 하얀 궤적이 자신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마법에 당한 것은 심상치 않은 광량에 본능적으로 방어 마법을 펼친 흑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마법은 한 점에 집중된 마력으로 빚어진 고밀도의 열량의 창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눈부신 빛 때문에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빛은 모든 걸 뚫으며 비추었다.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기 위한 하늘의 벌처럼.




일선에서 가장 먼저 달려들던 키메라들과 세컨드 실험체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곧이어 이성을 지닌 실험체들과 실험을 돕던 해방군들이, 마지막으로 흑마법사들까지 모두 차례로 쓰러졌다.




빛이 번쩍이고 많은 사람이 도미노처럼 주르륵 쓰러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에 가까웠다.




대체 뭘 하냐고 따지려던 케이시조차도 눈앞의 광경에 말문을 잃었을 정도.




“아니, 이러면 뭐…… 좀 오래 걸릴 만했네.”




괜히 뻘쭘함이 드는 것과 동시에, 3년 전에 보았던 그의 실력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심지어 나와 싸울 때 두르던 검은 그림자는 사용조차 않았어.’




그림자를 두르면서 빛 마법까지 사용할 줄 알다니.




이 남자는 대체 몇 가지 속성의 원소를 다룰 수 있는 걸까.




‘전부 다? 설마, 아니겠지. 전부는 아닐 거야.’




단일 속성 원소 사용 마법사도 한 손으로는 꼽지 못할 정도인데, 전 속성 사용 가능 마법사라니.




그런 것은 정말 전설을 넘어 신화 속에서만 들어 볼 법한 존재였다.




케이시는 상념을 씻어 내고 상황을 확인했다.




총 3차례에 걸친 기습적인 마법 공격으로 인해 멀쩡하게 서 있는 적들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배양 시설과 시험관들도 파괴했으며 남은 것들도 겨우 형상을 유지하는 것들뿐.




단 하나.




아직까지 멀쩡하게 남아 있는 시험관이 하나 있었다.




여타 시험관들과 다르게 녹색 액체가 아닌 붉은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거대한 유리관.




그 안쪽에 한 남성이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잠겨 있었다.




이 난리 속에서도 저것이 부서지지 않은 것은, 그만큼 흑마법사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목숨을 던져 가면서라도 말이다.




루드거도 그것을 발견하고는 다시금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스가 말한 가장 위험한 실험체가 저것인가. 용케도 부서지지 않았다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더는 지켜 줄 사람도 없는 실험체가 완성되기 전 빠르게 부수려는 순간이었다.




“이놈드으으을!!”




멀리서 고함과 함께 검은 마력을 줄줄 흘리는 안드레이가 루드거를 향해 날아왔다.




루드거는 공격에 사용하려던 마력을 자연스럽게 전환하며 방어 마법을 펼쳤다.




안드레이의 검은 팔과 루드거가 펼친 육각형 마력 방벽이 서로 충돌했다.




‘무슨…….’




안드레이 세모프가 어째서 여기에?




설마 테리나와 파시우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당했다는 건가?




루드거의 의문은 안드레이의 상태를 보는 순간 풀렸다.




이쪽을 향해 공격을 가하는 안드레이의 모습은 빈말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으니까.




몸 곳곳에 새겨진 새하얀 서리와 참격의 흔적들.




그것이 아직 채 재생되지도 않았는데, 안드레이는 루드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저것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못한다!”




안드레이는 별동대가 실험실을 파괴하는 걸 깨닫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마스터인 파시우스와 테리나, 그 외의 사람들은 그런 안드레이를 붙들기 위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안드레이는 그 공격 중 정말로 치명적인 것만 회피와 방어에 전념하며, 나머지 공격은 허용하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육체를 개조하고 악마의 힘을 다룬다 해도 고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육신의 통증마저 견딜 정도로 안드레이는 실험체를 최우선으로 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진정으로 분노했다.




감히 같잖은 것들이 자신이 평생 일구어 놓은 실험을 무용지물로 되돌리려 한다는 사실에.




그래서 안드레이는 일부만 억제하듯 다루던 악마의 힘을 더욱 강하게 끌어 올렸다.




“다 죽여 주마!”




잘려 나간 한쪽 팔과 몸에 새겨진 모든 상처가 재생됐다.




한쪽 팔만 잠식하고 있던 검은빛이 안드레이의 상체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일부는 나뉘어 넝마가 된 의복과 합쳐져 검은 로브를 만들어 냈다.




검은 로브가 펄럭이더니 이윽고 그곳에 노란색 눈동자가 무수히 돋아났다.




파아앗!




눈동자들이 바르르 떨리며 암흑 파장을 쏘아 냈다.




상대방의 정신을 뒤흔드는 공격. 이것은 어떠한 방어 마법으로도 쉽게 막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케이시가 나섰다.




그녀는 얇은 물의 막을 펼쳤다. 그것이 한 겹 두 겹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10겹이 넘었다.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퍼진 파장은 물의 장벽을 통과할 때마다 그 위력이 크게 감소했다.




그렇게 10겹의 장막을 넘어온 파장의 힘은 처음에 비하면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악마의 힘은 무시무시해서, 방벽을 펼친 케이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껴야 했다.




뇌리에서 수많은 이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환각, 착란, 공포.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자라나는 와중에 케이시가 버럭 외쳤다.




“지금이야!”




그 외침은 루드거를 향한 것이었고, 루드거는 그 부름에 응했다.




그는 삽시간에 술식을 완성시켰다. 소스코드를 통해 찰나의 시간에 구성된 마법은 엄청난 속도로 실험체를 향해 쏘아졌다.




위력은 낮아도 상관없다.




저 시험관만 파괴할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어림없다!”




안드레이는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술식을 짜내 시험관 주위에 방어 마법을 겹겹이 펼쳤다.




보랏빛 마력 장벽은 루드거가 쏘아 낸 마력의 탄환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악마의 힘을 다루면서 마법까지? 둘이 말 그대로 별개의 힘이라 이건가.’




때마침 지원군이 도착했다.




케이시와 힘겨루기를 하던 안드레이는 압축된 오러에 휩쓸린 검기에 등을 베였다.




“이, 빌어먹을 제국의 개들 같으니!”




소드마스터의 오러에 담긴 검에 직격당하고도 그는 입가에 검은 피를 한 번 흘렸을 뿐 죽지 않았다.




개조한 육체와 더불어 악마의 힘에 의해 보호받는 그의 육신은 이미 인간의 것을 초월한 지 오래.




심장과 뇌를 파괴시켜도 죽지 않으며, 그 재생의 원천은 끝없이 치솟아 흐르는 검은 마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패배감을 느끼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최우선 목표는 안드레이의 사살이 아닌, 악마의 힘을 이용한 그의 실험을 저지시키는 것이었다.




‘지금이다.’




지원군이 와 준 덕분에 또다시 시간을 벌게 된 루드거는 다시금 마법을 사용했다.




“어림없다!”




안드레이는 마력 장벽을 더욱 견고히 세웠다.




그가 무슨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절대 뚫리지 않게끔, 자신의 몸이 검에 난도질당하는 와중에도 장벽의 강화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이윽고 펼쳐지는 루드거의 마법에 그는 눈을 부릅떴다.




루드거의 완성된 술식의 마법이, 자신의 방벽을 뛰어넘어 실험체가 담긴 관의 코앞에 생성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안드레이의 허망한 중얼거림도 잠시.




콰칭!




완성된 루드거의 마법인 빛의 창이 시험관을 부수며 안쪽에 잠든 실험체의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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