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05화 실험체 서드 (2)
◈ 305화 실험체 서드 (2)
털썩!
시험관이 부서지며 안쪽에 잠들어 있던 루이폴트의 신형이 힘없이 지면에 쓰러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액체가 그 주위에 흐르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피를 흘리는 것만 같았다.
“이, 이 무슨…….”
안드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루드거를 바라봤다.
대마법으로도 뚫기 힘든 견고한 방벽을 무시하고 목표를 타격한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만일 루드거에게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대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루드거는 그것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 또한 이러한 기술이 있다는 걸 들키면 안드레이가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가, 그 찰나의 틈에 공격을 성공해 냈다.
안드레이가 방심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인 것이었다.
‘설마 지하 시설의 기관 장치를 부순 것도……!’
날카로운 비수를 지녔음에도 그것을 절대 허투루 드러내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지르다니.
안드레이는 루드거가 절대로 평범한 마법 교사가 아님을 깨달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감히! 감히──!!!”
안드레이는 검게 물든 노란 눈동자로 루드거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자신의 일생일대의 걸작을 망친 적을 어떻게든 죽이기 위한 살의가 넘실거렸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끝 모를 증오.
그것을 마주하면서도 루드거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깊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로 안드레이를 응시하기까지 했다.
안드레이는 루드거가 자신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보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묘하게 거슬렸다.
본래의 눈동자 색이라고 보기에는 그의 동공의 푸른빛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무언가로 보였던 것이다.
“네놈. 그 눈은…….”
안드레이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지금 와서 이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저자가 자신의 연구를 망쳤다는 거고, 이제 자신의 손에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안드레이가 검은 마력을 일으키자 모두가 긴장하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실험체가 깨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저지한 것은 다행인 일이었지만, 안드레이가 남아 있었으니 전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누군가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기만 해도 곧바로 충돌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상황.
거기서 제일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존재였다.
꿈틀!
루이폴트.
해방군의 간부이자 생명공학파 흑마법사들에게 자처하여 실험체가 된 6위계 마법사.
그의 몸이 아주 약간이지만, 분명 움직이는 것이 맞았다.
모두가 경계심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상황이라 그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루이폴트가 움직였다.
사후 경직이 아니었다.
직후 루드거와 케이시의 마법이 발동했다.
파시우스와 테리나 또한 검기를 주욱 늘려 루이폴트를 향해 찔러 넣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그러니 어서 죽여야 한다는 걸.
그러나 직후 루이폴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마력의 방출에 모든 공격이 밀려나 버렸다.
“무슨?”
테리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루이폴트를 응시했다.
아무리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이라지만, 무려 마스터의 기사의 일격이다.
그것을 단순한 마력 방출로 밀어내다니.
대체 마력량이 얼마나 높아야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놀라는 와중에도 루이폴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숫제 거대한 소용돌이가 치듯 마력이 요동쳤고, 루이폴트의 몸이 천천히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루이폴트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갈색 머리를 지닌 3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듬성듬성 자란 수염을 정리하지 않아서, 마법사라기보다는 어디서 부역하는 노동자라 해도 믿을 정도.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 자리의 모두가 긴장할 정도의 거대한 존재감이 넘실거렸다.
공중에 떠오른 루이폴트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일반적인 사람과 별로 차이가 없는 모습. 그러나 한쪽 눈이 악마의 힘을 주입한 안드레이처럼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요동치는 마력이 일제히 멈추더니 루이폴트의 몸으로 스펀지처럼 빨려 들어갔다.
조금 전 폭풍은 온데간데없이 주변 일대에 새벽녘의 잔잔한 호수와 같은 고즈넉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천천히 지면에 착지한 루이폴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그의 태도에 파시우스가 움직였다.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은밀한 움직임.
소드마스터가 기척을 죽이고 암살자처럼 움직이니 그 안드레이조차도 순간 그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였다.
이윽고 파시우스가 루이폴트의 목에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루이폴트의 등에서 얼굴이 하나 돋아나더니 파시우스를 응시했다.
“무슨…….”
그 믿기지 않는 모습에 경험이 많은 파시우스조차 당황하는 순간, 압축된 바람의 탄환이 파시우스를 향해 쏘아졌다.
돋아난 얼굴이 입을 벌리자 벌어진 일이었다.
파시우스는 휘두르려는 검을 회수해 방어에 돌입했다.
직후 검을 때린 바람의 탄환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며 파시우스를 멀리 튕겨 내 버렸다.
빗겨 나간 바람의 탄환이 세계수의 뿌리 틈새를 스치듯 지나가 공동의 천장에 착탄했다.
콰가가각!
탄환이 확장되며 무수한 바람이 주변의 벽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파시우스 경!”
베로니카가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 끝에서 폭발한 냉기의 오러가 초승달의 형태로 루이폴트를 향해 쏘아졌다.
루이폴트는 날아간 파시우스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공격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변은 이번에도 벌어졌다.
루이폴트의 가슴팍에 얼굴이 하나 떠오르다니 다시금 입을 쩍 벌린 것이다.
화르륵!
이번에는 불길이 일어났다. 재빠른 술식으로 구성된 마법의 화염은 베로니카의 오러와 충돌했다.
불길은 오히려 베로니카의 냉기가 담긴 오러를 집어삼키며 허공에서 산화했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오직 안드레이만이 감격의 얼굴로 루이폴트를 응시했다.
“오오오! 드디어……!”
실패한 줄 알았던 실험체가 제대로 눈을 떴다는 사실에 안드레이는 차오르는 기쁨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실패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과는 제대로 빛을 본 것이다.
루이폴트의 한쪽 눈만 검게 물든 것을 보면 아직 불완전해 보였지만,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어디인가.
반면, 토벌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파시우스의 기습을 파악한 것도 그렇고, 베로니카의 일격을 쉽게 막아 낸 것도 그렇고.
루이폴트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몸에 돋아난 저 사람의 얼굴.
저것이 입을 벌리는 순간 마법이 발동됐다.
‘사전에 들은 정보로는, 루이폴트는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는데.’
루드거를 비롯한 사람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그 부분이었다.
루이폴트는 본디 바람 마법을 바탕으로 얼음과 번개를 다루는 마법사였다.
그는 화염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모든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원소가 정해져 있다.
마법을 처음 배우는 처지도 아니고서야 갑자기 화염 원소를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얼굴이야.”
케이시가 입을 열었다.
“저 얼굴이 루이폴트 대신 마법을 사용한 거야.”
그 말이 정말이냐는 시선으로 케이시를 응시할 때 안드레이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보기보다 눈썰미가 있구나. 그렇다. 녀석은 우리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만들어 낸 걸작 실험체. 저 안에 들어간 재료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재료, 라고?”
크리스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안드레이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연 것은 테리나였다.
“……마법사를 갈아 넣었군.”
테리나는 루이폴트가 보여 준 모습과 안드레이가 한 말에 무언가 확신을 느꼈다.
“최근 소속 없이 활동하는 마법사들이 행방불명 된 사건이 있었지. 그런 자들이야 어딜 가서 급사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지만, 그중에는 5위계 마법사도 한 명 섞여 있어서 제국의 정보부에서 관심을 갖기도 했다.”
“허어. 역시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장이로군. 소식이 빨라.”
안드레이의 말은 사실상 테리나의 말을 긍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료가, 마법사라고? 설마 그렇다면 지금 저 인간의 몸에는…….”
“그래. 행방불명된 마법사들, 그것이 몇 명인지 모를 그들이 저 한 몸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안드레이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래. 어디 그뿐이겠느냐. 악마의 힘과 세계수의 세포까지. 우리가 실험을 통해 깨우친 모든 정수를 저기에 담았지. 저 녀석은 이제 해방군의 간부인 루이폴트가 아니야.”
궁극의 실험체.
통칭 ‘서드’.
“어지럽군.”
그때 가만히 있던 루이폴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배가 고파. 이 알 수 없는 허기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루이폴트의 시선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이 만찬을 맞이한 미식가처럼 미소가 번졌다.
“여기엔 먹을 게 많아 보이네.”
그 눈빛은 도저히 같은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질 것이 아니었다.
히죽 웃으며 얼굴에 주름이 진 그 모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꺼림칙함으로 가득했다.
“너…… 정말 루이폴트가 맞는 거냐?”
그때 루이폴트를 보며 베로니카와 함께 온 종군 마법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본디 과거 루이폴트와 함께 군에서 복무했던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그와 같은 전우라 볼 수 있었다.
서로 사이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루이폴트가 탈영하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틀어졌다.
그래서 그는 과거 전우로서 이 모든 일을 끝내기 위해 이번 일에 지원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금 마주한 루이폴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루이폴트?”
그 말에 루이폴트는 의문을 품었다.
“아, 그렇군. 그거 내 이름이었지. 아니? 아닌가? 나는, 누구지? 루이폴트? 데이빗? 이름이 계속 떠올라. 갤라우드. 체이드. 제나.”
루이폴트의 입에서 영문 모를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가 혼란스럽다는 듯이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안드레이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쯧 하고 찼다.
지금 루이폴트가 중얼거리는 이름들은 전부 그의 몸에 이식된 마법사들의 이름이었다.
여러 마법사를 몸에 이식한 나머지 기억에 혼동이 온 모양이었다.
‘뭐, 차라리 잘됐어. 루이폴트를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얻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 데이터를 얻을 실험 대상체는 이곳을 침입한 불청객들이 되리라.
안드레이는 루이폴트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실험체 서드.”
“으으으. 서, 드?”
안드레이의 목소리에 루이폴트가 반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그의 동공이 안드레이를 향했다.
“그래. 너는 서드다. 그리고 나는 너의 주인인 안드레이지.”
“나는, 나는…….”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나? 지금 눈앞에 먹잇감이 넘친다. 그걸 먹는 것이 우선 아닌가.”
안드레이의 말에 루이폴트의 떨림이 우뚝 멈췄다.
혼란이라도 온 것처럼 중얼거리던 그의 입도 다물어졌다.
마치 무언가 극적인 변화라도 온 것처럼.
이윽고 손을 머리에서 뗀 루이폴트의 표정은 처음 마력을 방출했을 때와 같은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내가 누구인지는 당장에 중요하지 않지.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허기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니까.”
“그래. 그거다, 서드. 그러니 먹어 치워라. 그것이 네가 만들어진 이유니까!”
안드레이는 그렇게 외치다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하복부에 루이폴드의 손이 박혀 있었다.
거리가 멀었음에도 루이폴드의 팔이 주욱 늘어나 안드레이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었다.
이상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루이폴드의 팔 위로 검은 핏줄이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안드레이의 몸에서 힘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너, 너 대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는 안드레이를 보며 루이폴트가 히죽 웃었다.
“그쪽이 제일 맛있어 보이는군.”
“이, 이 미친놈! 주인을 물다니!”
루이폴트는 지금 안드레이의 몸에 담긴 악마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이를 악물고 견디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리 사람이 헤엄을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정제된 악마의 힘을 주입한 안드레이는 보다 본질에 가까운 악마의 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루이폴트가 흡수하는 것은 악마의 힘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악마의 힘과 더불어 안드레이의 마력까지 흡수하려 들었다.
“이노옴!”
안드레이가 고함을 치며 두 손으로 루이폴트의 팔뚝을 쥐었다.
이대로 쉽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그의 눈동자는 강렬한 의지로 번들거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압축된 바람의 칼날이 루이폴트의 늘어난 팔을 잘라 냈다.
흡수가 멈추자 안드레이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루이폴트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루이폴트는 늘어난 팔을 되돌리며 자신의 잘려 나간 팔의 단면을 살폈다.
잘려 나간 팔은 삽시간이 재생됐다.
루이폴트의 시선이 방해꾼을 향했다.
조금 전부터 이쪽을 거만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흑발의 미청년을.
“너…….”
식사를 방해받은 것이 기분 나쁜지 루이폴트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그 모습을 본 루드거는 서늘한 비웃음을 날렸다.
“적의 성장을 기다려 주는 바보도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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