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06화 비색의 마법사 (1)
◈ 306화 비색의 마법사 (1)
“너, 짜증 나는군.”
루이폴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루드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상태로 루드거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루이폴트의 신형이 옆으로 퉁 하고 튕겨 나갔다.
‘뭐지?’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고통에 루이폴트가 당황했다.
날아가는 와중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주먹을 뻗은 로테론의 모습이 보였다.
이쪽을 노려보는 짐승의 동공과도 같은 황금빛 눈동자.
그 찰나의 틈새를 비집고서 로테론이 주먹을 내지른 것이었다.
아마 자신의 몸에 타격을 준 것은 로테론의 등 뒤에 아른거리는 푸른 인간의 형상이리라.
이쪽을 부리부리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푸른 형상은 영혼을 울리는 거대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강령술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급이 높았다.
그렇다는 것은 [특이] 계열 마법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강렬한 허기가 밀려왔다.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긁어모은 허기짐은 그의 탐욕을 부채질했다.
루이폴트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저것을 먹는다면.
어쩌면 자신도 같은 마법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그 순간 루이폴트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에 상념에서 깨어나야 했다.
등을 찌르는 살기.
가늘고 날카로운 무수한 가시들이 자신의 전신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린 루이폴트의 눈에 비치는 것은 검은 제복에 백발을 지닌 여검사의 모습이었다.
양손에 검을 쥔 테리나 라이언하울이 루이폴트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녀가 지나친 궤적을 따라 거미줄 같은 새하얀 실선들이 그어졌다.
찰나의 순간에 화려하게 펼쳐진 검술이 루이폴트의 몸을 뒤덮었다.
지면에 착지한 테리나는 표정을 구겼다.
‘검 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얕다.’
검기를 두르고 휘둘렀음에도 루이폴트를 베는 데 엄청난 저항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루이폴트의 몸에는 깊지 않은 자상만 무수히 새겨졌을 뿐, 치명상이라고 할 것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상처마저도 눈에 띄는 속도로 빠르게 복구되었으니, 사실상 타격은 없다시피 했다.
기회를 엿보던 파시우스가 나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높게 도약한 파시우스가 허공에 떠 있는 루이폴트의 몸 위에 올라탔다.
왼발로 복부를, 오른팔로 어깨를 밟은 뒤.
역수로 쥔 검을 들어 올려 힘차게 꽂았다.
일반적인 오러와 다르게 명백하게 검의 형상을 띄는 압축 오러가 그의 검에 맺혔다.
마스터의 상징이라 부를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콰직!
백색으로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루이폴트의 심장을 꿰뚫었다.
일반적인 검기에 자상밖에 입지 않던 루이폴트의 튼튼한 육신도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심장이 꿰뚫린 루이폴트가 파시우스와 함께 지면 위로 추락했다.
쿠웅!
흙먼지가 일어나며 지면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쩍쩍 그어졌다.
파시우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으며 오러를 강하게 방출했다.
콰드드득!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새를 따라 새하얀 오러가 분출되며 파괴된 지면의 조각들이 허공에 비산했다.
소드마스터가 펼치는 고출력의 공격.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러 입자에 세포 단위로 갈려 나갔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아프잖아.”
루이폴트는 분해되기는커녕 눈살을 찌푸리며 파시우스를 노려보았다.
심지어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오러 블레이드를 움켜쥐기까지 했다.
치이이익!
용솟음치는 오러 입자가 루이폴트의 두 손을 녹였다.
하지만 녹아내린 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재생하더니, 오히려 오러 입자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콰득!
악마의 마력을 머금어 검게 물든 손이 이윽고 파시우스의 검을 완전히 쥐는 데 성공했다.
루이폴트가 팔에 힘을 주어 파시우스의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파시우스가 눈을 크게 떴다.
두 팔에 힘을 더욱 주며 밀려나지 않으려 했지만, 검이 뽑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두 팔의 완력만으로 이 정도의 힘을……!’
인간을 초월한 소드마스터의 힘이 밀리다니.
루이폴트의 신체 능력은 이미 기사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때 루이폴트의 한쪽 어깨에 달린 얼굴이 파시우스를 응시하더니 입을 쩌억 벌렸다.
파시우스는 혀를 차며 검을 뽑아 들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직후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공동의 천장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파시우스의 몸은 저 바람에 걸려 갈기갈기 찢겨 나갔을 터.
루이폴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반투명한 넝쿨이 날아와 그의 사지를 속박했다.
크리스의 마법수인 라우 플로메였다.
“지금입니다!”
크리스가 외치자 종군 마법사가 조금 전부터 계속해서 끌어 올린 마력을 해방했다.
공동 전체가 붉은 색감으로 물들었다.
루이폴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둥그런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군 마법사는 타락해 버린 자신의 옛 전우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듯 거대한 불덩어리를 떨어뜨렸다.
루이폴트는 몸에 힘을 줘서 넝쿨을 찢어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루드거가 아니었다.
지팡이로 지면을 쿵 하고 찍자 땅이 움직이더니 루이폴트의 몸에 수갑을 채우듯 겹겹이 둘러쌌다.
루이폴트가 힘을 주자 그 수갑마저도 금이 가며 부서졌지만.
공동 위에 떠오른 태양이 떨어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
5위계 최상위 화염 속성 마법.
[선 폴(Sun Fall)]
지하에 태양이 강림했다.
태양은 루이폴트의 몸을 집어삼키며 지면에 안착.
거센 폭풍과 같은 빛무리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콰아아아!
폭발과 함께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불기둥.
종군 마법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마력의 운용에 집중했다.
동심원을 그리며 확산하려던 불길이 방향을 틀더니, 자리에서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크기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던 열기는 안쪽에 갇히며 내부를 더욱 뜨겁게 태웠다.
열기의 확산이 멈췄는데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피부가 후끈해질 정도.
이윽고 소용돌이가 압축된 장소에는 샛노란 불길로 이루어진 구체가 형성됐다.
직경 3m의 화염구.
모습만 보면 자그마한 태양이 땅 위에 내려앉은 모양.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 안쪽에는 상상하기 힘든 열기가 넘실대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름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마법이었다.
“대단해.”
마법에 문외한인 벨라루나는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선 폴은 위력만 놓고 보면 6위계의 대마법에 필적했다.
준비 시간이 아주 길다는 단점이 존재했지만, 주위에서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무사히 시전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아무리 루이폴트라도 필시 쓰러졌을 터.
그러나 자리의 누구도 함부로 기뻐하지 않았다.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오한이 조금 전부터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저 작은 태양이 루이폴트를 집어삼킨 이후로 더 심해졌다.
샛노란 태양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중심부에 새까만 점 같은 것이 생기더니, 그 크기를 점차 넓혀 가 이윽고 태양 전체를 집어삼켰다.
눈 부신 태양은 삽시간에 일식을 맞이한 것처럼 검은 구체로 변했다.
화염이 사그라지자 나타난 것은 단단한 표피를 이루는 새까만 알이었다.
알의 중심으로부터 금이 가더니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그 안에서 루이폴트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알 속에서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의 모습은 멀쩡하다 못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하던 회심의 일격이 먹히지 않자 종군 마법사는 아연실색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최고 화력의 공격이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것이다.
절망.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루드거 첼리시였다.
무수한 빛줄기가 여러 각도로 꺾이며 루이폴트의 몸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일순 절망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그 마법에 겨우 제정신을 되찾았다.
눈을 어지럽히는 현란한 빛줄기는 루이폴트를 중심으로 별자리와 같은 흔적들을 그렸다.
루이폴트는 그걸 무시하려고 했다. 이쪽의 몸에 크게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두 줄기의 빛이 그의 안구를 가격했다.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동공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기에 루이폴트는 짜증 어린 말을 뱉기 위해 입을 벌렸다.
“이……!”
그 벌려진 입 안쪽을 빛의 창이 꿰뚫었다.
입 안에서 거대한 광량이 꿈틀거리며 그의 목 안쪽을 태웠다.
루이폴트가 처음으로 몸을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테리나가 외쳤다.
“밀어붙여!”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테리나는 그렇게 외치며 루이폴트를 향해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루드거는 그 와중에 빛의 움직임을 조절하여 테리나에게 닿지 않게 만들었다.
루이폴트는 자신의 몸을 베어 오는 공기의 떨림을 느끼고는 뒤로 물러났다.
직후 테리나의 검이 깊게 파여 있는 지면을 장작을 패듯 찍었다.
지면에 한 줄기 금이 쩍 하고 갔다.
안구를 빠르게 재생한 루이폴트가 그런 테리나를 보며 비웃었다.
“애석하게도 빗나갔구나.”
“아니. 빗나간 것이 아니다.”
루이폴트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갈라진 지면의 틈새 아래에서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면이 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 진동은 이윽고 지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커졌다.
뭐지?
루이폴트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며 갈라진 지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직후 테리나가 만들어 낸 균열을 통해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하수?”
루이폴트가 그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설마 조금 전 공격은 일부러 저 아래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 올리기 위함이었나?
“날 익사시킬 생각이기라도 하나?”
그래 봤자 고작 이 정도의 물로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허공을 향해 끝없이 치솟는 물줄기를 바라보던 루이폴트는 이질감을 느꼈다.
물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물은 다시금 아래로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솟구치는 물줄기는 떨어지기는커녕 허공에 흩날리듯 나풀거리며 퍼져 나갔다.
마치 물이 자체적으로 의지를 지니고서 움직이는 것 같은 광경.
불가해한 현상에 루이폴트가 처음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으로 물을 생성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존재하는 물을 저렇게 움직인다고?
루이폴트의 뇌리로 한 가지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이 대륙에 그런 마법사들이 존재했다.
이윽고 루이폴트의 시선이 케이시 셀모어를 향했다.
물에서 느껴지는 마력과, 무엇보다 머리색부터 물과 관련이 있다는 듯 눈에 띄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터라 인지하는 것이 늦고 말았다.
루이폴트가 경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색의 마법사였군.”
“천재 명탐정이라 불러!”
케이시는 그렇게 대꾸하며 루이폴트를 향해 팔을 뻗었다.
허공에서 나풀거리던 물들이 일시에 정지했다.
루이폴트는 눈을 부릅떴다.
그 방대한 질량의 물들이 무수히 많은 창으로 변한 것이다.
케이시가 루이폴트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앞으로 부를 일은 없겠지만.”
케이시가 루이폴트를 향해 내뻗은 활짝 핀 손을 움켜쥐는 것과 무수한 물의 창이 루이폴트를 향해 쏟아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촤자자자작!!
사방에서 날아오는 창에 루이폴트는 전신에 검은 마력을 둘렀다.
그 위를 물의 창이 소나기처럼 때렸다.
우산 위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악마의 힘에 보호받는 루이폴트의 육체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시의 공격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번 내질러진 창은 다시금 허공으로 돌아가 새로운 창으로 변해 루이폴트를 향해 쏘아졌기 때문이다.
“귀찮게 굴지 마라!”
루이폴트는 검은 마력을 강하게 확장시켰다.
그를 중심으로 검은 돔이 형성되며 창들을 튕겨 냈다.
루이폴트의 몸에 달린 입이 쩍 벌어지며 마법이 발동됐다.
거대한 번개의 줄기, 뜨거운 불덩어리,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공동 전체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펼친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위력의 다중 원소 공격.
거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일개 개인이 저 정도의 위력을 선보이다니.”
“그런 말을 중얼거릴 시간에 더 물러나십시오.”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리는 크리스의 뒷덜미를 루드거가 잡아끌었다.
물러나면서도 루드거의 시선은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케이시를 향했다.
지하에서 계속 솟구치는 거대한 지하수.
그 물을 마력과 의지로 다루는 그녀는 본격적으로 루이폴트와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거대한 불덩어리 번개가 충돌하며 뿌연 수증기가 일어났다.
그러한 마력의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공동 내부를 울리는 굉음과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충격파.
마치 거대한 괴수들이 치열하게 물어뜯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 동등해 보이던 싸움은 시간이 흐르자 케이시에게 유리하게 변해 갔다.
루이폴트의 공격은 한계 시간이 존재했지만, 케이시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수에서 물이 끝없이 공급되었고, 여러 마법에 의해 흩어진 물은 다시금 방울방울 모여 거대한 흐름에 동참했다.
‘대단하군.’
루드거가 솔직하게 감탄했다.
충분한 환경이 갖춰졌을 때 단일 속성 마법사가 갖는 두려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원소가 존재하는 한, 그들의 공격은 가히 끝이 보이지 않게 된다.
특히나 물은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원소이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대기 중의 수증기.
억수처럼 내리는 비.
흐르는 강.
지하 암반층에 고이는 지하수.
끝없는 바다.
물의 가장 큰 강점은 이 모든 것들이 끝없이 돌고 도는 순환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원소가 끝없이 공급되는 곳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케이시는 절대자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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