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15화 어둠 속의 길 (2)
◈ 315화 어둠 속의 길 (2)
만델리나의 말을, 에이단은 아직도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기를 뚫고 가자니.
저 검은 폭풍은 대체 또 뭐고…….
“아!”
에이단은 뒤늦게 자신이 왜 기절을 했는지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레오는? 테이시랑 이오나는?
두리번거리던 에이단은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상태를 확인하려는 순간, 만델리나가 에이단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멈춰. 굳이 상태를 살피려 하지 않아도 돼. 저 아이들은 지금 기절해 있으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어.”
“네?”
“그보다 놀랐네. 좀 세게 때리긴 해도 바로 깨어나다니. 내가 가르쳐 준 마법은 열심히 연습했나 봐?”
에이단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고 자못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스승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설명하자면 길어.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기 저 폭풍이 몰아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거지.”
만델리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본인은 썩 내키지 않는 말투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나와서 나에게 경고를 했는걸.’
멀리서 거대한 힘의 분출을 발견했을 때.
만델리나가 가장 먼저 선택한 행동은 바로 도주였다.
뭔가 위험한 게 터졌다. 그러니까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가 상황이 끝나면 돌아와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시도하려던 만델리나의 도주는 채 3초도 가지 못했다.
땅속에서 불쑥 솟아나 검은 그림자의 남자 때문이었다.
루드거 첼리시.
그를 발견한 순간 만델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만델리나. 마침 잘됐다.
-네, 네헵!
-지금 상황이 썩 좋지 않다. 길게 설명할 시간 없으니 요점만 말하지. 너의 반마법이 필요하다.
-제 마법이요?
-내가 시간을 벌도록 하겠다. 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그냥 길만 열어 주면 된다.
-길이라니. 누구에게?
-보면 알 거다.
할 건가 말 건가.
루드거의 물음에 만델리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다시 저기로 가라고?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루드거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만델리나는 울상이 된 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 할게요.
-좋다.
루드거는 그 말만 남기며 다시 그림자에 스며들듯 사라졌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마법이다.
그림자를 매개로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다니?
이래서야 어디로 도망을 친다 해도 곧바로 따라잡힐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아악! 짜증 나!
만델리나는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비비다가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에이씨.
만델리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루드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 먼 곳에서 몰아치던 폭풍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대신 더 큰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마치 수도 전체를 다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거라면 혼자의 힘으로 힘들다.
반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때마침 수도에 한 명 있었다.
“에이단. 할 거야?”
만델리나가 진중한 눈빛으로 에이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솔직히 에이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만일을 위해 대비를 하려는 것일 뿐.
굳이 필수는 아니었다.
에이단이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스승으로서 만델리나는 에이단을 자리에 두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을 정도로 올곧은 제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보다.
“해야죠. 안 하면 위험하잖아요?”
“누구. 네 친구들?”
“아뇨. 스승님이요.”
“…….”
만델리나는 일순 말문을 잃었다.
이쪽을 바라보며 헤프게 웃는 에이단의 모습에 만델리나는 피식 웃으며 제자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악!”
“그런 표정 짓지 마.”
“무슨 표정이요?”
“모르면 됐어. 하여튼.”
만델리나는 곧바로 에이단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몸 상태는?”
“음. 괜찮은 거 같아요.”
“나빠도 상관없어. 네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봐주는 거 없이 빡세게 부려먹어 줄 거다.”
“스승님은 참 변함이 없으시네요.”
“너도 마찬가지거든?”
만델리나는 허리춤의 지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 또한 에이단과 같은 검의 형태로 이루어진 지팡이였다.
칼의 흉내만 낸 에이단의 것과 다르게, 날카롭게 벼려진 금속.
사실상 진짜 검이나 다름없었다.
‘준비는 다 됐고.’
지금 저 폭풍의 안쪽에는 그 남자가 있을 것이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루드거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리라.
“가자.”
“네!”
만델리나가 에이단과 함께 폭풍으로 향했다.
* * *
루드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폭풍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천 근처럼 몸이 무겁다.
호흡조차 쉽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다.
폭풍의 거센 풍압 때문에 전신을 몽둥이에 두들겨 맞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루드거를 괴히는 것은 감정의 동요였다.
철벽과도 같이 견고하던 루드거의 정신도, 쉬지 않고 가해지는 정신의 공격에 조금씩이지만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왜 네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네놈이 모든 걸 망쳤어!
-어째서 나를 구해 주지 않은 거야?
과거에 스쳐 지나갔던
그럼에도 루드거는 멈추지 않고 바사라를 향해 다가갔다.
“대단하네.”
바사라는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폭풍 속에서는 자아를 유지하기 힘들다.
어디 그뿐일까.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는 순간 폭풍에 휩쓸려 전신이 갈가리 찢길 것이다.
몸과 마음. 모든 것을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공격인 셈이다.
그럼에도 루드거는 버텼다.
어디 버티고 있을 뿐일까. 오히려 이쪽을 향해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이 폭풍에는 폭풍의 눈이 없다.
중앙으로 다가간다고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오히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몸과 정신에 쌍방으로 가해지는 부담은 급격하게 상승한다.
다가와 봤자 더 괴로울 뿐일 텐데.
그럼에도 루드거는 멈추지 않았다.
“왜 계속 오는 거야?”
바사라는 물었다.
그것은 순수한 의문이었다.
“영웅이라도 되려는 거야? 세상을 지키기 위해, 순수한 신념만으로 내게 대적하려고?”
하지만 은연중에 느껴지는 루드거의 태도에서, 바사라는 그가 영웅심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걸까.
바사라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풍부한 감정을 지니게 된 지금, 루드거가 대체 무슨 감정으로 움직이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면 내가 차지한 몸의 주인 때문인가?”
“…….”
처음으로 루드거에게 반응이 왔다.
찰나에 흔들리는 눈동자.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묘한 반응이었지만, 이 공간 자체를 지배하에 둔 바사라는 알 수 있었다.
바사라의 입가에 긴 호선이 맺혔다.
“하하하. 정말 우습네. 당신 정도의 실력자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동기가,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라니.”
바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이제 와서 선생 노릇이라도 해 보려는 거야? 딱히 이 아이가 어떻게 되건 말건 신경도 안 썼잖아?”
“…….”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느낄 수 있어. 이 아이는 세상 모두를 미워해. 그야 그럴 것이, 이런 재능을 지녔음에도 그 누구도 이 아이를 인정해 주지 않았거든.”
바사라는.
아니.
플로라는 웃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태어나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출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지.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멸시와 핍박을 받았어. 주변에선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도 않았지.”
루드거는 눈을 부릅뜨며 바사라를 노려보았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그곳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바사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선생님. 이 아이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하지 않았지. 애초에 제대로 인정을 해 본 적이라도 있을까?”
루드거의 몸에 두른 그림자가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물리적인 충격에 강한 아테르 녹터누스라 해도 장시간 동안 폭풍의 누적되는 대미지를 견디지는 못했다.
폭풍은 이윽고 옷가지를 찢으며 루드거의 피부에 자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대체 무슨 낯짝으로 구하겠다고 온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아이는 따로 있으면서. 차라리 플로라에게 관심을 주지 말지 그랬어.”
바사라는 플로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녀의 감정이 자신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럴수록 잠재력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폭풍이 서서히 크기를 넓혀 가며 광장을 넘어 주변 건물 일대를 삼키기 시작했다.
콰가가각!
광장 인근 건물의 지붕이 분해되듯 뜯겨 나가고 벽돌이 갈려 나갔다.
외벽의 황동 파이프나 튼튼한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도 포기해. 이 아이는 이미 다 포기했으니까. 오히려 지금이 행복할걸? 유일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아니, 사람은 아닌가?”
바사라는 자기가 말해도 재미있는지 배를 잡으며 웃었다.
“인간이면 어떻고 악마면 뭐 어때. 자신을 이해해 주는 게 중요하지. 그러지 않아? 신도 사람도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지.”
루모스 가문은 신을 따르는 루멘시스 교를 믿는다.
신의 가르침이 진정한 진리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행동이 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악행을 정당화한다.
플로라 루모스는 그런 가문에서 자랐다.
모두가 그녀를 버렸다.
아버지와 형제자매, 가문의 사람들.
하물며 인간을 구원해야 하는 신의 존재마저도.
“당신의 실력을 생각해서 내가 마지막 기회를 줄게. 멀리 떠나. 이곳에서 벗어나서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그러면 살려 줄 수 있어.”
바사라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 육신의 주인에 대한 내 나름의 보답이야. 나는 널 죽이고 싶지만, 이 아이는 너를 별로 죽이고 싶어 하지 않은 모양이니까. 내 마지막 자비인 셈이지. 너희가 말하는 악마의 자비라니, 인어의 눈물만큼이나 귀한 것 아니겠어?”
어느덧 루드거는 바사라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손을 뻗기만 해도 닿을 거리에서.
루드거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바사라의 지척 거리에 선 지금, 검은 폭풍의 힘은 최대치에 육박했다.
나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고,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바사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제안했다.
“자, 대답해. 포기하겠다고.”
“…….”
“어서. 그렇게만 말하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어. 이 아이도 기대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
“그냥 간단하게 대답하면 돼. 포기하겠다고. 어려운 건 아니잖아? 그러면 살려 준다니까?”
루드거의 얼굴에 뒤집어쓴 까마귀 가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쪽 뺨에서 피를 흘리며 루드거가 입술을 달싹였다.
바사라는 루드거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걸 알고 귀를 곤두세웠다.
바사라가 보기엔 루드거는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몸도 정신도 이미 마모되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고작일 것이리라.
오히려 저 상태로 아직까지 두 다리로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그래.
어서 말해. 포기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면 전부…….
“말이 많군.”
“뭐?”
“그렇게까지 티를 내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나.”
“그게 무슨…….”
여기까지 와서도 포기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바사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 순간.
루드거가 있는 힘껏 외쳤다.
“만델리나!!”
그 직후.
───!!!
수도를 집어삼키려던 검은 폭풍이 반으로 갈라졌다.
“뭐?”
바사라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이해되지 않았다.
단순히 악마의 힘을 넘어, 극상의 재능을 지닌 육체의 힘으로 마력까지 머금은 폭풍이었다.
설사 소드마스터라 하더라도 이 폭풍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바사라의 시선이 폭풍의 끝자락을 향했다.
그곳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한 명은 플로라의 기억에 있는 학생.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두 사람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불가해한 힘을 본 바사라가 중얼거렸다.
“안티 매직?”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마법.
힘의 크기가 얼마나 되던, 상성에서 무조건적인 우위를 점하는 말도 안 되는 마법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반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둘이나 한 장소에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기적 같은 [특이] 마법조차도 몰아치는 폭풍을 아주 일순간 잠재웠을 뿐이었다.
폭풍은 다시금 움직일 거고 주춤했던 파괴의 재해는 계속 지속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생긴 공백은 전황을 송두리째 바꾸기 충분했다.
처음부터 루드거가 노린 것은 이것이었다.
“거기 있었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폭풍이 잦아든 덕분에 루드거는 볼 수 있었다.
이쪽을 보며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 바사라의 모습.
바사라가 저항을 하기도 전에 루드거는 오른손을 뻗어 바사라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지옥으로 몰아내소서(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
[엑소시즘(exorki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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