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17화 구원의 삶 (1)
◈ 317화 구원의 삶 (1)
[하하하. 재미있네. 지금 상황을 두고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이제는 인정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바사라는 루드거를 향해 소리 내서 웃더니, 이윽고 새하얀 눈동자를 샐쭉 휘었다.
퍼억!
직후 지면의 꽃잎이 확 폭발하면서 새까만 가시가 루드거의 등을 뚫으려 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던 것은 온전히 루드거 본인의 반사 신경 덕분이었다.
몸을 회전시킨 루드거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피한다고 했지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한 것인지, 가시로 인해 등에 가로로 긴 상흔이 새겨졌다.
당연히 걸치고 있는 옷가지 또한 쭈욱 찢어졌다.
이곳이 정신세계라는 것에 안도하던 루드거는, 바깥의 육신이 걸친 옷 상태도 별반 다를 거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 중요한 건 녀석의 공격.’
바사라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공간 자체가 녀석의 세계이다 보니,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순간 바사라의 거대한 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촤라라락!
붉은 꽃들을 밀어내며 휘둘러지는 팔은 마치 검은 벽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루드거는 양손을 정면으로 뻗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삽시간에 5겹이나 되는 마력 장벽이 생성됐다.
채채채채챙!
그러나 바사라의 팔은 5중 장벽을 순식간에 유리처럼 손쉽게 파괴했다.
장벽을 부수면서 팔의 궤적이 틀어진 틈을 타, 루드거는 몸을 최대한 낮춰 가까스로 바사라의 팔을 피했다.
믿기지 않는 위력.
루드거는 숙였던 몸을 펴며, 그 반동으로 뒤로 훌쩍 물러났다.
바사라는 그런 루드거를 그저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기만 했다.
추가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신감.
이 공간 내에서 바사라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권한을 지녔다.
그렇기에 그는 루드거의 발악을 지켜보았다.
이 작은 벌레가 어디까지 발버둥 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나를 가지고 놀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는군.’
루이폴트의 육신을 차지했을 때는 감정이 없어서 몰랐는데.
감정을 가지게 된 악마라는 녀석은 상당히 악질이었다.
물론, 다른 악마를 만나 본 것은 아니라서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루드거는 바사라를 향해 오른손을 쭈욱 뻗었다.
삽시간에 술식이 완성되며, 용의 머리를 한 불길이 바사라를 향해 날아갔다.
바사라는 가당찮다는 듯 입김을 후 불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용의 머리가 훅 꺼졌다.
‘무슨.’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을 끄는 것도 저것보다는 더 쉽게 못 끄리라.
루드거가 찰나의 망설임을 보이는 그때, 바사라는 자신의 나풀거리는 팔을 각기 3개씩 늘렸다.
양팔에 3개씩. 총 6개나 되는 팔이 루드거를 향해 채찍처럼 길게 뻗어졌다.
막을 수 없다.
루드거는 날아오는 손의 궤도를 눈으로 계산한 뒤, 비스듬하게 마력 장벽을 연달아 생성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루드거는 정면으로 내달렸다.
콰칭!
힘을 최대한 흘리기 위해 비스듬하게 세운 장벽이 너무나도 쉽게 박살 났다.
땅이 지면을 내리치며 퍼진 충격파가 루드거의 등을 때렸다.
주변 꽃들이 바람에 휩쓸리며 붉은 꽃잎을 허공에 수놓았다.
루드거는 그 틈새를 누비며 달리려 했지만,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검은 뿌리 같은 것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드거는 극소 부위에 마력을 집중하여 발목을 붙든 뿌리만 정확하게 태웠다.
그야말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마력 컨트롤.
그러나 불에 타서 사라진 뿌리는 이윽고 몇 배나 더 많은 수로 불어나, 루드거의 종아리까지 속박했다.
게다가 주변에 흩날리는 꽃잎의 흐름이 뭔가 이상했다.
춤추듯 내려오는 그것들은 어느덧 허공에 고정되더니, 가늘고 길게 늘어나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했다.
흩날린 꽃잎들 전부가 말이다.
그리고 그 뾰족한 송곳의 머리가 향하는 곳은 전부 루드거였다.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볼까?]
“선생님!”
플로라가 다급히 외쳤지만, 바사라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무수한 꽃잎들이 루드거를 향해 쏘아졌다.
플로라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끔찍한 광경이 떠올랐다.
플로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이, 그녀의 감은 눈을 다시 뜨게 만들었다.
“눈을 돌리지 마라. 플로라.”
놀랍게도 루드거는 멀쩡했다.
등 뒤로 후광을 두른 그 모습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초월자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플로라는 루드거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너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또 그 이상한 마법이냐!]
바사라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루드거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단순한 고함이 아니라 엄청난 물리력을 머금은 충격파 공격이었다.
루드거는 다가오는 꽃잎을 머금은 폭풍을 가만히 응시했다.
등 뒤에 흘러나오는 후광이 이윽고 커다란 나무의 형상을 이루었다.
세피로트의 나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만한 힘이 바사라의 충격파를 와해시켰다.
바사라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과연.”
루드거는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식으로 쓰는 거로군.”
지금 그는 마력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하는 것은 순수한 상상력.
애초에 이곳은 정신세계다.
정신세계에 마력의 총량이니 뭐니 하는 것이 정해져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에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정신력일 터.
그렇기에 루드거는 정신세계에 걸맞은 방식으로 힘을 다루었다.
몇 차례 마법을 사용하며 겨우 잡은 감각이다.
이제 날카롭게 벼릴 일만 남았다.
“정신세계에서 싸운다고 너만 유리한 게 아니지.”
마력의 총량이 유일한 약점이었던 사람이.
더는 그 약점에 휘둘리지 않게 됐으니까.
“우선, 내 학생에게서 떨어져 주겠나?”
루드거는 바사라를 향해 손을 가볍게 뻗었다.
바사라는 그 단순한 행동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거다.
루이폴트의 육신을 지녔던 자신을 한 방에 소멸시킨 일격.
루드거의 등 뒤로 눈부신 광채가 흘러나오며 거대한 불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정신세계라서 그럴까.
바깥에서 봤던 것보다 그 크기와 위용이 훨씬 더 컸다.
이미 거대해진 바사라가 다시금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그것이 바사라의 심기를 자극했다.
[내가 당할 것 같으냐!]
네놈의 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고, 내가 신이다.
바사라가 몸을 부풀리며 덩치를 더욱 거대하게 키웠다.
하늘거리던 몸이 근육질이 됐고, 머리에서는 뿔이 솟아났다.
3쌍의 팔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지만, 전보다 훨씬 더 두꺼워졌다.
[여기서는 내가 곧 신이다!]
불상이 바사라를 향해 신장(神掌)을 내밀었다.
바사라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주먹을 뻗었다.
쿠우웅!
거대한 두 힘이 충돌했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바사라는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바사라의 힘이 조금 더 강했다.
바사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보았느냐? 네 그 잘난 공격도 이젠 먹히지 않는다!]
“확실히. 한 번으로는 부족하겠군.”
루드거는 기고만장해하는 바사라를 향해 친절하게 경고를 날려 주었다.
“그렇다면 천 번은 어떨까?”
[뭐?]
바사라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불상으로부터 변화가 일었다.
불상 자체의 모습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 뒤.
뒤에 펼쳐진 광배(光背)가 손의 형상을 띄기 시작한 것이다.
쥘부채를 활짝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불상의 등 뒤로 무수한 손이 생성됐다.
“이것도 전부 막을 수 있나?”
「보탈락카(potalaka)의 천수천안(千手千眼)」
[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무수한 손이 바사라를 향해 뻗어졌다.
바사라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팔을 늘렸다.
팔의 근육이 폭발하듯 팽창하며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연달아 내질렀다.
무수한 충격파가 허공에서 연달아 터졌다.
귀를 시끄럽게 만드는 굉음과 함께 검붉은 빛과 새하얀 광휘가 연달아 명멸했다.
땅이 뒤집히고 무수한 꽃잎이 바깥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훅 퍼져 나갔다.
그야말로 신화 속의 대결이라 봐도 좋을 싸움.
그 치열한 힘겨루기는 서서히 어느 한쪽의 승기를 드리웠다.
[어떻게……!]
바사라는 몇 배로 늘어난 주먹으로 저항하듯 내질렀지만, 천 개나 되는 손을 전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점차 몸에 하나둘 타격이 오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뚫리고 말았다.
한 번 뚫리니, 마치 둑이 무너진 것처럼 공격이 한 번에 몰아쳤다.
새하얀 섬광이 바사라의 몸을 북처럼 두들겼다.
플로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거대해진 악마와, 다른 의미로 거대한 기묘한 조각상의 싸움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상으로 그녀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 아름다움에 있었다.
허공을 누비는 무수한 손바닥.
그것은 하나하나가 극한까지 완성된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마법이다.
플로라의 눈은 지금 저것을 마법이라 보고 있었다.
마력을 보는 눈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뒤이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바사라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플로라의 그림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바사라가 밀려난 것이다.
그 밀려난 충격과 함께 향기가 훅 끼쳐 왔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향기.
플로라는 난생처음 맡은 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향이 어떠한 꽃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연꽃에 대해서 아느냐?”
그런 플로라의 정신을 다시 되돌린 것은 지척에서 들려오는 루드거의 목소리였다.
저 멀리 날아간 바사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루드거가 플로라에게서 등진 채로 말했다.
“본디 연꽃은 물 위에 떠 있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다르다. 실제로는 더러운 늪지의 진흙에서 자라지. 그럼에도 연이 피어 낸 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이제염오(離諸染汚)라는 말이 있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부조리함으로 가득 찼다 하더라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다.
“플로라. 나는 너 또한 그런 길을 걸었으면 좋겠구나.”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고한 길을 걸었으면 했다.
“고작 그런 무지한 자들 때문에 네가 포기하기엔, 너라는 아이가 너무 아깝지 않느냐.”
“선생님…….”
플로라는 루드거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의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뒤늦게 발견해 버리고 만 것이다.
루드거의 옷의 일부가 찢어지면서 드러난 그의 맨 등.
그곳에 새겨진 문신 같은 것을.
“등에 그건, 그건 대체…….”
“아. 이거 말인가?”
플로라가 왜 그러는지 짐작한 루드거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
“선생님, 그 문양은 설마…….”
“그래. 네가 제대로 본 게 맞다.”
루드거의 등에 새겨진 문신.
아니, 절대 씻을 수 없는 상흔과도 같은 그것은 낙인이었다.
그것도 루멘시스교가 사생아에게 새길 때 쓰는 낙인.
“대, 대체 왜 그걸 선생님이…….”
믿기지 않아 손끝을 바르르 떠는 플로라에게, 루드거가 답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 또한 너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그건…….”
이건.
이건, 비슷한 수준이 아니잖아요.
플로라는 낙인이 새겨질 뻔했지, 실제로 새겨지지는 않았다.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린 나이의 플로라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하지만 루드거는 어떤가.
그는 등에 완전한 낙인을 달고 있었다.
찢어진 옷으로 보이는 크기를 감안한다면, 등의 절반 이상을 뒤덮을 정도일 터.
보통 루멘시스교는 사생아가 채 8살이 되기 전에 낙인을 찍는다.
그렇다는 것은, 루드거는 어린 나이에 저만한 낙인을 새겼다는 말이었다.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플로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이 고통은 자신만 겪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그 누구도 나의 고통을 이해해 줄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플로라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선생님께……!”
“그만.”
무어라 외치려는 플로라의 말을 루드거가 끊어 냈다.
“플로라. 나는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자 여기까지 와서 저 괴물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네가 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널 찾아온 것은 더욱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너는 눈물로서 나를 욕보일 건가.”
“끄윽.”
플로라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대답해라.”
“……무슨, 대답이요.”
“다시 바깥으로 나가고 싶냐고 물었다.”
바깥이라는 말에 플로라는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
“제가 나간다고 하면요……?”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와주겠다.”
“정말로, 제가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도와주시나요?”
“물론이다.”
플로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요? 왜 그렇게까지 해 줘요? 저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잖아요. 저는, 애초에 태어나서도 안 됐는데.”
“세상에…….”
루드거는 플로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은 없다.”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플로라의 마음이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언정, 너에게도 분명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생길 거다. 내가 장담하지.”
플로라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가까스로 오열하려는 것을 참으며.
플로라는 간절히 부탁했다.
“그렇다면…… 도와주세요.”
“얼마든지.”
원하는 답을 들은 루드거는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크아아아아아───!!!
붉은 꽃밭의 지평선 너머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노호가 터져 나왔다.
붉은 꽃잎이 폭발하듯 터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신체의 일부가 소실되어 만신창이가 된 바사라가 거대한 육신을 일으켰다.
[여긴 내 세상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희번덕거리던 뜬 새하얀 눈이 루드거 뒤에 주저앉은 플로라를 노려보았다.
[플로라는, 절대로 여기서 나가지 못해!]
그 말에 루드거는 차라리 알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널 여기서 박살 내면 되겠군.”
Komentar
Posting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