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18화 구원의 삶 (2)

 ◈ 318화 구원의 삶 (2)




“플로라. 잘 봐 둬라.”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기에 앞서, 루드거는 플로라의 이름을 불렀다.




플로라는 눈물을 닦으며 루드거를 빤히 응시했다.




“보라뇨. 뭘요?”




“지금부터 내가 사용하는 마법은, 여태까지 내가 수업에서 보여 줬던 것과는 다를 거다.”




“다르, 다뇨? 설마 조금 전에 보였던 그 빛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 다른 녀석들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지만, 너라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다. 너의 재능은 그만큼 뛰어나니까.”




“그건…….”




“그러니 잘 봐 두라는 거다. 언젠가 너도, 이와 비슷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플로라는 순간 루드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슷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자신이? 루드거 선생님이 펼친 그 기적과도 같은 힘을?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상식을 파괴하는 마법을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루드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단순히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루드거는 상대의 기분을 봐 가며 말을 가려 해 주는 성격도 아니다.




결국, 루드거의 모든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플로라가, 자신의 마법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의 재능을, 더 나아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믿었기에.




다른 학생들이 보지 못한 마법을 선보이려는 거였다.




“……!”




플로라는 그 말에 괜히 또 울컥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다만.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은 지금까지 흘린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플로라는 결연한 눈동자로 루드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루드거는 희미하게 웃으며 공중에 떠올랐다.




꽈르릉!




그의 몸이 이윽고 자색의 번개에 휘감기며 저 멀리 있는 바사라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플로라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깜빡임조차도, 지금의 그녀에겐 사치였다.




‘보는 거야. 전부 보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




플로라는 루드거가 악마에게 패배하리라는 생각을 추호도 갖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루드거가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하다니.




그것을 넘어서, 지금 루드거가 선보이려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마저 들었다.




슬픔은 사라지고 자리에 남은 것은 열망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더 나아가 저 사람을 뛰어넘고 싶다는 새로운 삶의 목표가, 지금 이 순간 플로라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졌다.




‘단 하나도 놓치지 마.’




이윽고 번개로 화한 루드거가 저 멀리 떨어진 바사라에게 직격했다.




거리가 워낙 멀었지만, 바사라의 덩치가 커서 뚜렷하게 보였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루드거의 공격이 워낙 강력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아! 대체 왜 계속 날 방해하는 거냐! 왜!]




자신을 향해 성토하는 바사라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인 루드거는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새까만 허공 속에서 거대한 힘이 모이더니, 이윽고 루드거의 손에 눈 부신 번개의 창이 쥐어졌다.




신화와 전설, 전승된 이야기를 통해 원본의 것을 흉내 내는 가짜에 불과했지만.




이 정신세계에서는 확고한 신념 하나만으로도 그것은 ‘진짜’에 가까운 힘을 지니게 된다.




바로, 이 번개의 창처럼.




“가라. 천둥의 울음.”




루드거의 손을 떠난 번개의 창이 눈 부신 빛과 함께 사라졌다.




바사라는 그 창의 위치를 쫓으려다 자신의 복부에 느껴지는 통증에 고개를 숙였다.




태산과도 같은 육신의 가슴팍에 터널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 이 위력은 뭐란 말인가.




그 불상의 장타를 연달아 얻어맞아도 겉만 조금 상했던 육체가, 엄청나게 큰 타격을 받았다.




바사라는 이를 악물며 재생력을 끌어 올렸다.




이쪽도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상처를 재생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바사라는 이론상 불멸과도 다름없었다.




루드거 또한 바사라가 상처를 회복하는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 여겼다.




그래.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면 재미없지.




“제자 앞에서 떵떵거리며 나왔는데, 너무 쉽게 끝나면 내가 더 부끄럽지 않은가.”




루드거는 이 세상에서 바사라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에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고양감도, 환희도, 기쁨도 없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담담함만이 있을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바사라의 고함과 함께 검붉은 마력이 터져 나와 해일처럼 루드거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이제는 봐주는 것 없이, 자신이 지닌 힘을 모두 쏟아부어서 루드거를 빠르게 제거할 의지가 가득했다.




루드거는 이번에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으려는 자세를 취한 그의 머리 위로 불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범한 불이 아니었다.




지옥의 염화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타오르는 그 불길은.




한때 거인이 아홉 세상을 모두 불태워 버리기 위해 휘두른 마검이었다.




────!!!




세상을 불사르는 대파괴가 루드거의 손에서 펼쳐졌다.




쩌억!




그리고 세상이 갈라졌다.




루드거가 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일직선으로 쭈욱 나아가며 바사라의 공격을 반으로 갈랐다.




불꽃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사라의 오른팔을 완전히 잘라내 버렸다.




바사라는 눈을 부릅뜨면서 잘려 나간 팔의 단면을 내려다보았다.




재생을 시키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상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잘려나간 팔이 왜 재생하지 않는단 말인가.




바사라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상처가 왜 낫지 않냐고 나에게 묻는다 한들, 답은 네가 알고 있을 거 아닌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오행의 원소를 연달아 일으키며 바사라를 공격했다.




물, 불, 나무, 금속, 바위.




다섯 원소가 운석처럼 바사라의 몸을 때렸다.




그 공격을 막아 내면서 바사라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지만 진실을 애써 부정해 본들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이곳은 정신세계.




바사라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절대로 죽지 않는 불멸의 힘을 지닌다.




바꿔 말한다면,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그 불멸성은 사라진다는 소리였다.




[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겁에 질렸다고?]




그는 감정을 조종하는 사도다.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고, 그들의 마음을 손에 쥐며, 부정한 감정을 마구 부추기는 존재.




누군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지언정, 누군가에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어야 했다.




바사라는 자신이 절대 겁에 질린 것이 아니라고,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것은 루드거가 사용하는 알 수 없는 마법 때문이라고 애써 부정하려 했다.




루드거가 다음 공격을 펼치려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눈 부신 빛이 연달아 번뜩였다.




천지를 아우르는 천둥소리가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속성은 이번에도 번개.




조금 전 사용했던 번개의 창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그것은 ‘무기’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다만, 창은 아니다.




무언가를 찔러 꿰뚫는 것에 특화된 무기와 다르게, 이번에는 더 뭉툭하고 묵직한 이미지였다.




[망치?]




그건 번개로 이루어진 망치였다.




그리고 조금 전 번개의 창과 필적하는 힘을 머금고 있었다.




바사라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허망하게 입을 벌렸다.




처음에 루드거가 사용한 마법에 휘둘리다가 그 힘의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저 마법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떠한 힘인지.




[네놈, 인간이 어찌…… 신의 힘을?]




저것은 신의 힘이다.




증오하는 루멘시스와는 다르다.




녀석의 힘과 루드거가 사용하는 저 뇌정의 망치는 무언가 질적으로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망치가 신의 힘으로 빚어졌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사도도 아닌 인간이! 어찌 그런 힘을 사용한단 말이냐!]




루드거가 사용하는 힘은 바사라의 역린을 건드림과 동시에 공포를 심어 주었다.




[오오! 지엄하신 나의 신이시여! 간악한 루멘시스에게 버림받은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 당신의 사도를 도우소서!]




바사라는 숫제는 헛소리까지 하기 시작했다.




“미친 척한다고 봐주는 건 없다.”




그 행동은 루드거의 행동을 단 1초도 지체시키지 못했다.




루드거의 손짓을 따라 뇌정의 망치가 바사라의 미간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사라는 죽음이라는 공포에 본능적으로, 남은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견고한 방패를 만들어 냈다.




그 위에 푸르다 못해 하얀빛을 내는 망치가 충돌했다.




거대한 힘이 부딪치며 자아내는 폭발은 없었다.




오히려 바사라가 펼친 방패는 너무나도 손쉽게 망치의 앞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아.]




바사라의 두 눈동자가 망치의 모습을 담았다.




뇌정의 망치. 그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존재의 힘에서 무언가 한 광경을 보았다.




그것은 유구한 천상.




한때 자신이 섬기던 자가 상주했던 아름다운 낙원에서 내려온 그 힘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직후 새하얀 번개가 폭발하듯 퍼져 나가며 바사라의 거대한 몸을 집어삼켰다.




어두운 세상이 새하얀 섬광으로 가득 찼다.




한차례 거친 폭풍이 휘몰아쳤다.




폭발이 끝나고 빛이 가라앉으며 고요한 안식이 찾아왔다.




꽃밭마저 증발한 폭심지의 중심.




육체 대부분이 소실되어, 이제는 머리밖에 남지 않은 바사라가 있었다.




[정말로 놀랍군.]




바사라는 루드거에게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의 머리는 끝부분부터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어떠한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이 신의 힘을 다루다니. 정신이 망가지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야. 아니, 오히려 그래서 내 공격에 멀쩡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




[아이러니한 일이야. 천상의 일좌(一座)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한 것이 인간이었을 텐데. 이단이나 다름없는 힘을 사용하다니.]




바사라는 루드거가 다루는 힘이, 루멘시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깨어나고 너를 만나서 패배한 것은 필연이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할 말은 그걸로 끝이냐?”




루드거의 가차 없는 말에 어느덧 머리의 절반 가까이 소실된 바사라가 눈웃음을 지었다.




[네놈의 앞길이 얼마나 가시밭일지 보이는구나.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뭐 기대감으로 남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할 말 다 끝났으면 가라.”




[사도들을 조심해라.]




처음으로 제대로 된 경고의 말에 루드거가 반응을 보였다.




[플로라의 육신을 차지하면서 한차례 확장된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약했지만, 너희들이 악마라 부르는 존재가 나 말고도 이 세상에 더 남아 있다는 걸.]




“서로 친하지는 않나 보군.”




[너희 인간들은 우리를 같은 존재로 묶었지만, 우리는 본래 별개의 존재다. 서로 적대하기도 하지. 하지만 바꿔 말하면 손을 잡을 때도 있다는 말이지만.]




“그 사도라는 놈은 몇이나 있지?”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바사라는 그것만으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줬다는 듯 마지막 말을 남겼다.




[뭐가 어찌 됐든 너라면 해낼 수 있겠지. 어디 한번 열심히 세상을 뒤흔들어 봐라. 영웅이여.]




그 말을 끝으로 바사라의 모든 육신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루드거는 그런 바사라의 최후를 지켜보며 답했다.




“영웅은 무슨. 난 일개 교사일 뿐이야.”




루드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싸움이 끝난 걸 알아차린 것인지 플로라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던 플로라는 루드거의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루드거를 향했다.




수업을 들을 때는 항상 새침하고 퉁명한 얼굴이더니, 지금은 희미하지만 존경심이 엿보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라고 진짜 마법을 보여 주면서 악마를 때려잡은 것이 아니던가.




루드거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꽃밭을 보았다.




이곳의 원래 주인이 사라졌으니, 이 세상 또한 종말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플로라.”




“네, 선생님.”




“이만 가자.”




* * *




만델리나와 에이단은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검은 폭풍을 바라봤다.




신호를 준 대로 있는 힘껏 일격을 날리기는 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폭풍은 타격을 입은 듯 순간 멈칫했지만, 금세 피해를 복구하더니 더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크기를 키우거나 하지는 않게 됐지만, 저것이 계속 광장 중심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만델리나는 저걸 어떻게 막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반마법을 극도로 끌어 올려 날린 공격으로도 고작 몇 초를 지연시킨 것이 전부였다.




저것이 다시 움직인다면, 그때는 이쪽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만델리나가 다리를 떨며 초조해하고 있을 그때였다.




“스승님! 저길 봐요!”




에이단이 손가락을 들어 폭풍의 중심을 가리켰다.




만델리나도 폭풍에서 벌어진 변화를 알아차렸다.




“폭풍이, 잦아들고 있어?”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검은 폭풍이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새까만 매연 같은 것도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지며 안쪽의 풍경이 서서히 비쳤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절하듯 누워 있는 플로라와 상처투성이인 채로 서 있는 루드거였다.




“서, 선생님!”




“엇! 야! 에이단!”




아직 폭풍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뛰쳐나가는 에이단의 모습에 만델리나는 못 말리겠다면서 함께 달렸다.




루드거도 이쪽을 발견한 것인지 뒤를 돌아봤다.




“드디어, 끝났군.”




그 말을 끝으로 루드거는 기절하듯 풀썩 쓰러졌다.




* * *




루드거는 눈을 떴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주위는 어두워서 사위분간이 어려웠다.




잠시 시간을 두니, 눈이 서서히 어둠에 적응했다.




루드거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인을 위해 많은 것이 구비된 병실.




수도 중앙병원의 VIP실이 분명했다.




몸 상태를 살펴보니 자잘한 상처도 없고 아픈 곳도 없다.




자신이 기절한 사이에 치료를 끝낸 모양이었다.




다만 루드거가 눈을 뜬 이유는, 모든 것이 다 회복되어서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루드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밤중에 환자를 찾아올 정도로 여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쩔 수 없는걸. 지금이 아니면 찾아올 기회가 없을 테니까.”




어둠 속에서 무언가 일렁이더니 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검은 로브에 얼굴에 가면을 쓴 남자.




루드거는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로 오더.”




“이런. 이젠 내게 높임말도 하지 않는 거야?”




제로 오더는 가면 아래로 미소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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