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24화 하얀 거울 속 수여식 (2)

 ◈ 324화 하얀 거울 속 수여식 (2)




훈장 수여식은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났다.




홀에 꽤 많은 사람이 모여서 그것을 지켜보았지만, 루드거에게 기대 이상의 관심을 품은 사람들은 없었다.




대부분의 공은 파시우스가 가져간 덕분이었다.




이번 해방군의 테러 사건은 로열 가드인 파시우스를 필두로 또 다른 소드마스터인 테리나 라이언하울이 큰 공헌을 했다는 거로 결론이 났다.




정확히는 황실 측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진실을 덮은 쪽에 가까웠다.




물론 모든 진실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었다.




‘지상에서 벌어진 검은 폭풍의 경우에는 목격자가 너무 많았으니까.’




악마 바사라가 황실까지 피난을 가던 학생들을 습격해 모두를 기절시켰다.




그 이후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고 제3 광장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아무리 정보를 차단하려 해도 이러한 진실마저 덮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벌써부터 기자들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을 꼽으라면 당시 휘말렸던 학생들이 그때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온전히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플로라 루모스.




리네.




그리고 에이단.




우선, 이 셋은 기억이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셋 중 둘은 기절하지 않았으며, 한 명은 금방 깨어나 사건의 한복판에 끼어들었으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플로라의 경우에는 루드거가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리네에게도 따로 언질을 줄 생각이었다.




남은 하나는 에이단이지만, 그쪽은 만델리나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만델리나의 평소 언행을 생각하면 불안함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시킨 일은 확실히 끝맺는 편이었다.




‘그랬으니 블랙옵스 알파팀에 소속되어 있었겠지.’




루드거가 그렇게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할 때 이쪽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시선의 방향을 향해 곁눈질하니, 그곳에 이쪽을 빤히 응시하는 남자가 보였다.




2황자 이벨론.




그는 홀에서 훈장을 받는 사람 중에서 유독 루드거에게 관심을 보였다.




루드거도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지만, 그의 눈빛을 한 번 마주한 뒤에 생각을 바꾸었다.




소문에 의하면 2황자는 마음이 여리고, 정치적인 능력이 썩 대단하지 않다고 했다.




대신 그림과 음악 같은 예술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본인도 그것이 좋아 황위 계승권을 포기했다고 할 정도.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2황자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만나 오고, 무수한 사건을 겪어 온 루드거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 안에 괴물을 품고 있군.’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루드거가 느끼는 감정을, 이벨론 2황자도 똑같이 느낀 것이 분명했다.




루드거를 향한 이벨론의 눈동자에 흥미의 감정이 담겼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오래 이어질 것 같았던 훈장 수여식이 끝났기 때문이다.




대표로 나서서 사람들의 관심과 박수를 받은 파시우스가 좌중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파시우스! 파시우스!”




“테리나! 테리나!”




사람들은 구국의 영웅들을 위해 환호했고, 꽃가루를 뿌렸다.




루드거는 그 뜨거운 반응에 내심 안도했다.




저 반응이야말로 이쪽의 연막 작전이 제대로 먹혔다는 증거였으니까.




루드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2황자에게서 시선을 쉬이 거두지 않았다.




* * *




수여식이 끝난 뒤, 루드거는 다른 교사들이 있는 곳에 합류했다.




“루드거 선생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돌아온 루드거와 크리스의 모습에 많은 교사가 관심을 보였다.




비록 전투가 아닌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 하지만, 두 사람이 위험한 곳까지 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고 훈장까지 받았으니,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셀리나에게 루드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별로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열심히 싸워 준 덕분이지요.”




실제로는 루드거와 크리스 모두 위험한 일을 겪은 것은 맞았지만, 그것마저 세세히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멀쩡해 보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다들 걱정 많이 했어요.”




그때 셀리나의 곁에 메릴다가 다가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요. 특히 셀리나가 루드거 선생님이 무사히 돌아와 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알아요?”




“메, 메릴다 선생님!”




“응? 왜. 나는 그저 실제로 일어난 일만 말했을 뿐인데?”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셀리나가 얼굴을 붉히더니 루드거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루드거의 귀에 들어간 것이 보통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자 셀리나의 얼굴빛이 화악 밝아졌다.




감정의 변화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정.




메릴다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쿡쿡거리며 웃었다.




셀리나가 도끼눈으로 메릴다를 쏘아보자, 메릴다는 아 뜨거워! 하는 표정으로 셀리나에게서 슬쩍 멀어졌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루드거에게 말했다.




“아무튼, 저도 루드거 선생님이 멀쩡히 돌아오셔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저기 저 양반은 좀 아쉽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메릴다의 시선은 귀족 출신 교사들에게 둘러싸인 크리스를 향했다.




“저 사람 혹시 어디 다친 데는 없죠?”




없어도 제발 있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말.




당연한 반응인 것이, 크리스가 평소 이쪽을 무시하는 언행을 보였던 걸 생각하면 메릴다의 적대감도 이상할 건 없었다.




“흠. 뭐, 다친 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군요.”




“어, 정말요? 그냥 농담 삼아 말했는데 진짜일 줄이야. 나쁘지 않은데요? 그래서 어딜 다쳤대요?”




“마음입니다.”




“예?”




메릴다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루드거는 그 이상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언제 다시 세오른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건 저희도 아직 몰라요. 자세한 일정은 아무래도 총장님께서 공지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셀리나는 현재 엉망이 된 현장 학습 때문에 세오른 교무처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해 주었다.




“그 때문인지 저희는 황실에서 머무르면서 그쪽의 답변이 나오길 기다리는 입장이고요.”




“과연 그렇군요. 게다가 학생들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니, 아무래도 수도에 조금 더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네. 그것 때문에 향후 학사 일정이 많이 꼬였어요. 밀린 수업 내용을 얼마나 빼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셀리나는 루드거를 향해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하다는 겁니까.”




“제가, 무언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요.”




루드거는 굳이 그런 것까지 죄송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셀리나의 표정을 보면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루드거 선생님께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했어요. 선생님은 학생들을 구해 주셨고, 테러범들이 있는 지하 수로까지 내려가셨죠.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었는데도.”




“셀리나 선생님.”




“저는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어요. 저는 황실에서 안전한 곳에 가만히 있고, 바깥에 학생들이 힘들어하는데 도움 하나 주지 못했어요.”




셀리나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세오른의 교사로서 못 할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람 된 도리로서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직접 나섰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물론 셀리나의 책임이 아니다.




황성에서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은 탓이었으니까.




하지만 셀리나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침울한 어조로 고개를 숙이는 셀리나.




루드거는 그런 셀리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셀리나 선생님. 이번 수도에서 벌어진 사건은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다친 학생은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세오른 학생들은 기적적으로 희생자가 나지 않았다.




전부 멘토들이 최선을 다해 지켜 준 덕분이었다.




키메라의 습격으로 인해 약간의 부상을 입은 학생은 있지만, 치명상을 입은 학생은 없었다.




바사라의 정신파에 당한 학생들은 많았지만, 그마저도 후유증이 없이 금방 털어 낼 수 있었다.




실질적인 인명 피해는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무사해도 피해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수도에서 사는 시민 중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어요. 다수가 집을 잃기도 했고요. 그 사람들은 지금도 구호 막사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는걸요.”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일을 돕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려요. 적어도 제가 나섰더라면 최소한 몇 사람은 더 살렸을지도 모르니까요.”




“…….”




셀리나의 말이 맞았다.




뛰어난 정령사인 그녀가 나섰다면, 피해는 지금보다 분명 줄었으리라.




사람의 죽음이란 참으로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무감각해 한다.




안타까움은 느낄지언정, 진심 어린 슬픔과 조의를 표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셀리나는 달랐다.




그녀는 얼굴 모를 사람의 죽음마저도 슬퍼했다.




루드거는 문득, 셀리나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떠올렸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마을이 불탔다. 인세의 지옥을 두 눈으로 목도했다.




본래는 에스메랄다가 겪은 일이며, 셀리나와는 관계없었다.




셀리나는 에스메랄다가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만들어 낸 인조 정령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거짓된 인격.




즉, 가짜인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여 주는 저 감정과 마음이 과연 가짜일까.




그렇지 않았다.




“셀리나 선생님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결국에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그것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단지 그뿐입니다. 거기에 더는 매몰될 필요가 없습니다.”




의외의 말에 셀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렇게 매정하게 말을 하냐고 되물으려던 찰나, 루드거가 말을 이었다.




“수도로 오는 길에 바깥의 상황을 봤습니다. 부서지고 망가진 거리에, 인부들이 열심히 자재를 옮기고 잔해를 치우더군요.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진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건…….”




“그들이 이번 참상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슬퍼하고, 분노하고, 절망감을 느끼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재건에 힘을 쓰면서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셀리나가 망설임 끝에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결국에는 이겨 낸다는 겁니다.”




셀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반박했다.




“하,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예, 그럴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필요하겠죠.”




“그렇다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것은 결국 저희가 아닙니다. 그 역할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이웃, 친구, 혹은 가족이죠. 함께 슬픔에 진심 어린 공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




“그러니 저희는 슬퍼할 필요 없습니다. 단지 믿어 주는 겁니다. 그들이 잘 이겨 낼 수 있으리라고요.”




그 순간 셀리나는 루드거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말해 주는지 깨달았다.




그는 지금.




슬픔에 지나치게 매몰된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너무 스스로 자책하며 괴로움에 잠기지 말라고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셀리나에겐 그 배려 어린 마음이 매우 크게 다가왔다.




“제가 셀리나 선생님께 제대로 답변을 드렸는지 잘 모르겠군요.”




“……아니에요. 오히려 넘칠 정도예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제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봐요.”




셀리나는 그렇게 답하며 루드거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주변에서 꽃송이가 만개하는 것 같은, 따스한 봄날의 미소였다.




“저는 항상 루드거 선생님께 도움만 받는 거 같아요. 고마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루드거는 셀리나의 미소에 순간이지만 말문을 잃었다.




곧바로 이성을 되찾으며 답했지만, 그 찰나의 낌새를 몰래 엿듣던 메릴다가 놓칠 리가 없었다.




“어머, 어머.”




메릴다가 그런 추임새를 흘리자 셀리나가 뒤늦게 제정신을 되찾고 얼굴을 붉혔다.




“메, 메릴다 선생님!”




“응? 왜?”




“그, 그 반응은 대체 뭐예요.”




“무슨 반응? 나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셀리나, 찔려서 그러는 거 아니지?”




“그, 그건……!”




그때 멀리서 파시우스가 루드거를 발견하고는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아, 여기 계셨군요. 루드거 첼리시 선생님.”




이번 테러의 해결에 지대한 공을 세운 파시우스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모였다.




파시우스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드거에게 말을 건넸다.




“황녀님께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신 분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따로 뵙자고 하십니다. 한 분씩, 차근차근요.”




루드거는 알겠다고 답하며 셀리나와 메릴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는 그러면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루드거는 곧바로 앞장서서 걷는 파시우스의 뒤를 쫓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화려한 응접실이었다.




“왔느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일린이 루드거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창밖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태양 빛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을 밝게 비추었다.




아일린은 그 자체만으로 빛나는 보석과도 같았다.




절제된 행동부터 해서 표정 하나하나가 카리스마와 지배자의 자질이 돋보였다.




“기다리다 지쳤다.”




“이번에는 그날 본 정원에서 만나지 않는 겁니까.”




“모처럼 어머니와 동생들까지 움직인 마당이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필요는 없는 법이지. 나는 보여도 상관없다만, 그쪽은 아니지 않은가?”




요컨대 루드거의 입장을 배려해서 이런 귀찮은 일까지 감수하고 있다고 말한 셈이다.




“그렇습니까.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래. 더 고마워하도록. 그대는 나에게 빚을 졌으니까.”




“그 말만 안 했더라면 더욱 고마웠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으면, 그대는 끝까지 모른 척할 생각이었겠지.”




정곡을 찌르는 말.




루드거는 굳이 대답하는 대신 아일린의 맞은편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아일린은 보석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양손으로 깍지를 껴 자신의 턱에 괴었다.




“그래서. 지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이야기를 해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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