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29화 오밸리 (1)

 ◈ 329화 오밸리 (1)




아티팩트의 소개문에는 [흐르는 은]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만 놓고 보면 수은과 흡사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액체 금속이라. 예전에 빅터 드레드풀이 사용하던 리퀴드 골렘이 떠오르는군.’




리퀴드 골렘 또한 마법과 과학을 극한까지 섞어서 만들어 낸 인공품.




이 은빛 아티팩트의 존재도 그렇게 이상할 건 없었다.




루드거는 가볍게 손을 뻗어 흐르는 은에 가져다 댔다.




전시대 위에 가만히 있던 은은 루드거의 손끝에 닿는 순간 휘감기듯 그의 손을 타고 움직였다.




그것은 시간을 역행하듯 흐르는 물 같기도 했고, 살아 움직이는 은빛 뱀 같기도 했다.




루드거는 손바닥 위에 고인 자그마한 은색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접촉하는 순간 녀석의 사용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촤악!




흐르는 은이 순식간에 팽창하더니 날카로운 세검으로 변했다.




루드거는 그 세검을 쥐고서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검 끝부터 손잡이까지 전부 은색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예기와 손에 느껴지는 단단함은, 이 금속이 절대 은처럼 무르지 않다는 걸 주장했다.




루드거는 세검을 다시 동그란 액체로 되돌린 뒤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었다.




루드거의 손바닥 위에 있던 흐르는 은이 아래로 주욱 늘어났다.




마치 엄청난 점액 덩어리가 손바닥에 눌어붙은 느낌.




루드거가 머릿속으로 새로운 형상을 떠올리자 은이 꾸물거리더니 무수한 꽃을 피웠다.




‘겉으로 보이는 부피보다 더 커다랗고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건가.’




루드거는 다시금 손바닥을 위로 왼손으로 손뼉을 치듯 덮었다가 두 손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흐르는 은이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흐트러지며 허공에 나풀거렸다.




루드거가 손끝을 당기자 은사(銀絲)는 팽팽하게 당겨지며 장력을 머금었다.




루드거는 그 은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번뜩이는 은사는 그 자체만으로 날카로운 검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여기에 종이를 가져다 대면 파쇄기에 넣은 것처럼 잘게 갈려 나가리라.




그럼에도 손에 감긴 은사의 부위는 아프거나 조이는 감각도 없다.




“훌륭하군.”




2번째 물건은 이걸로 정했다.




루드거는 머릿속으로 형상을 떠올렸다.




흐르는 은은 루드거의 오른손을 휘감으며 심플한 디자인의 팔찌로 바뀌었다.




루드거는 그걸 만족스럽게 바라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물건을 얻게 됐지만, 아직 남은 마지막 선택권마저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각. 또각.




고요한 공간에 루드거의 구둣발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을 홀로 거닌다는 것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런 곳에 영약 같은 것도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던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비고 같은 곳에 영약을 보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굳이 영약을 바란다면 따로 아일린에게 부탁해야 하리라.




‘……하지 말아야겠군.’




아일린이라면 기꺼이 영약을 내어 줄 것이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한 감당은 온전히 루드거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아마 최소 5년 이상은 노예 계약으로 묶이지 않을까.




실력에 걸맞은 대접은 받겠다만, 아일린은 실력자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노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붙들리는 순간 루드거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온갖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치 대학원생들처럼.




‘그럴 수는 없지.’




루드거는 영약에 대한 욕망을 싹 지웠다.




어차피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수준.




영약을 대신해서 약발로 버티는 거야 충분히 가능하니까.




특히 이번에 벨라루나가 만든 최종 실험작은 그야말로 대성공이기도 했고.




그렇게 걷던 루드거는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봐야 하나.’




아니면 굳이 이쪽이 사용할 걸 고르지 않아도 됐다.




오웬즈 멤버 중에서 어울리는 물건을 발견하면 선물해 주면 될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더 둘러보길 잠시, 루드거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외눈 안경?’




금색 테두리에 금빛 와이어 링까지.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는 단안경이지만, 이런 곳에 평범한 물건이 놓여 있을 리가 없다.




단안경 앞에 놓인 설명 문구를 읽는 순간 루드거의 눈빛이 흥미로 가득 찼다.




‘가능성의 눈. 그 사람이 지닌 잠재력이나 혹은 지금의 실력을 측정하는 물건이라.’




놀랍게도 이 물건은 세오른의 초대 학장이 만들어 낸 아티팩트라고 한다.




본인의 사후, 이 물건을 황실에 기증한다는 말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루드거는 단안경을 쥐었다.




얼굴에 착용을 해보자 단안경 자체가 딱 맞게 크기가 조절되었다.




‘착용감은 나쁘지 않군.’




루드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특수한 마법 처리를 한 렌즈가 아티팩트를 감지하는 순간, 그 안에 내장된 마력을 푸르스름하게 보여 주었다.




“호오.”




루드거는 감탄사를 흘리며 여러 아티팩트를 확인했다.




무언가를 측정한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듯, 보여 주는 아티팩트마다 전부 담긴 힘의 크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루드거는 전시된 물건들을 확인하는 것을 통해 [가능성의 눈]의 효능을 실험했다.




그리고 몇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내재된 마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완전하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아티팩트 중 하나는 현재 마력량이 5고, 다른 하나는 10이다.




당연히 10짜리 마력을 지닌 아티팩트가 훨씬 더 강하게 비친다.




그러나 이 5짜리 아티팩트는 사실 출력을 올릴 수 있으며, 올릴 경우에는 최대 2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가능성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5가 한계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힘을 작정하고 숨긴다면 가능성의 눈으로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겠군.’




물론, 그걸 감안해도 [가능성의 눈]이 지닌 성능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현재 지닌 힘을 표면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이니까. 이제 남은 것은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본다는 건데.’




아티팩트는 물건이다 보니 잠재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용한다면 최소 사람에게 써야 할 터.




루드거는 당장에 시험해 볼 대상이 없다는 것에 아쉬웠다.




‘그래도 이 자체만으로 큰 쓸모가 있다.’




초대 학장이 사용하던 아티팩트를 이런 곳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단순한 우연인지 혹은 운명의 인도인지.




루드거는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상황이 참 재미있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비고의 출구로 향했다.




* * *




거대한 석문이 드르륵 열리며 루드거는 밖으로 나왔다.




“늦다.”




바깥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일린이 루드거를 보는 순간 곧바로 일갈했다.




“감히 제국의 황녀를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하다니. 이 정도면 황족 모욕죄로 잡혀 들어가도 할 말이 없을 거다.”




“환영 인사가 참 거치시군요.”




“그래서, 안쪽에서 무엇을 가지고 나왔지?”




“보시면 모릅니까?”




“모른다. 애초에 나라고 비고 안쪽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황제의 자리에 즉위한다면 알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렇습니까. 일단 하나는 뭘 고를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조각 말이더냐.”




“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단안경이로군. 뭐, 퍽 어울리기는 하다만.”




루드거가 [가능성의 눈]을 얼굴에 걸치자 아일린은 팔짱을 낀 채 품평하듯 중얼거렸다.




루드거는 대답하는 대신 가능성의 눈으로 아일린과 파시우스를 살폈다.




‘흠. 과연.’




[가능성의 눈]을 통해 본 아일린은 그야말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보석이었다.




세상에 어떤 보석을 가져와 견주더라도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만들 지고의 보물.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으며 그 가치를 감히 금액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다.




오히려 값을 매기는 행동 자체가 모독으로 느껴질 정도다.




다른 비교 대상인 파시우스를 살피자, 이쪽도 상당히 만만치 않았다.




겉으로 보여 주는 힘은 잘 갈무리해서 숨기고 있지만, 로열가드로서 지닌 가능성은 매우 차고 넘쳤으니까.




하지만 그런 파시우스조차 아일린의 빛에 비하면 모자란 감이 있었다.




오히려 아일린의 빛이 파시우스를 휘어 감는 느낌마저 지우기 힘들었다.




그 꿈틀거리며 스멀거리는 빛은 주변을 잠식하며, 루드거의 몸도 집어삼키려는 듯 군침을 다시고 있었다.




“…….”




루드거는 아찔함을 느끼며 눈에 착용한 [가능성의 눈]을 벗으며 안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아일린이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수상하다는 듯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무엇이냐. 방금 몰래 뭘 본 거 같은데.”




“착각입니다.”




“착각은 무슨. 방금 착용한 단안경은 안에서 가져온 물건이니 아티팩트 같은데. 무언가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대답해라. 대체 뭘 본 거지?”




“정말 별거 아닙니다.”




“나는 대답하라고 말했다.”




자신이 남을 뜯어보는 것은 괜찮지만, 타인이 자신을 뜯어보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걸까.




아니, 어쩌면 아일린 본인은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마음이 어떻건 간에 그것을 진심 어린 방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루드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보았습니다.”




“뭣…….”




그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아일린의 뺨이 미세하게나마 붉게 상기되었다.




“오.”




옆에서 파시우스가 진심으로 감탄 어린 탄성을 흘렸다.




아일린은 이내 헛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흥. 됐다. 그래서 다른 하나는 무엇을 챙겨 왔느냐?”




루드거는 대답 대신 오른 손목의 은빛 팔찌를 보여 준 뒤, 그것을 곧바로 기다란 세검의 형태로 바꿔 보였다.




다시 원래 팔찌로 돌아가는 [흐르는 은]을 본 아일린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딱 네게 어울리는 물건들로 골랐구나. 그래서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어차피 일들도 모두 끝났겠다. 다시금 교사로서 업무를 처리할 생각입니다.”




“황성에서 당장에 처리할 업무는 없을 텐데? 당장 학생들도 부상자들까지 생각하면, 이곳에서 며칠은 더 머물러야 한다.”




아일린의 말대로였다.




이곳에서 기획처장인 루드거가 무언가를 하려면, 세오른 측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그저 대기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어지간한 일들은 황실에서 전부 다 처리해 줬기 때문이다.




“그대도 고생은 고생대로 했을 텐데,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건…….”




“보아하니 항상 일을 달고 사는 모양인데, 사람은 때로는 휴식을 취해 주지 않으면 망가지고 만다.”




“……!”




아일린이 루드거를 설득하고자 한 말에 놀란 것은 파시우스였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파시우스가 눈을 크게 뜨며 아일린을 곁눈질했다.




마치 ‘그걸 황녀님이 말하는 겁니까?’라고 따지는 시선.




아일린 본인은 아랫사람들을 영혼까지 쥐어짜 내며 부려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사람이 휴식의 중요성을 운운하고 있으니 듣던 파시우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일 수밖에.




그러나 그걸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뒷감당이 되지 않는다.




파시우스는 이런 부분에서 눈치가 빨랐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시선에는 약간이지만, 연민과 동정이 깃들어 있었다.




* * *




에이단과 그 친구들은 열심히 황성 구경을 했다.




주로 테이시 프리아드가 앞장서서 여기저기를 구경하면, 그 뒤를 에이단과 레오, 이오나가 따르는 구도였다.




테이시는 안 그래도 잔뜩 기대하던 현장 학습이 불발된 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바사라의 정신파의 여파에 기절해서 깨어난 뒤, 몸을 완전히 회복한 테이시는 남은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자며 친구들을 강제로 끌고 나왔다.




“……나는 그냥 좀 더 쉬고 싶은데.”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던 레오는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지만, 그러면서도 잠자코 따라와 주었다.




“그보다 에이단. 너는 괜찮냐?”




“응? 뭐가.”




“아니, 그…… 아니다.”




레오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말았다.




기절했던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레오는 혼자서만 유일하게 멀쩡하게 서 있던 에이단을 보았다.




남들처럼 머리를 싸매지도 않으며 이 상황을 당혹스러워하지도 않는 표정.




누가 보더라도 조금 전 벌어진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에이단과 오래 붙어 있었던 레오이기에 쉽게 눈치챘다.




물론, 넌지시 물었을 때 에이단은 자기도 모르겠다고 얼버무렸지만 말이다.




그 모습에서 티가 났지만, 레오는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 녀석이 나쁜 짓을 벌일 리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고마움을 느낀 것도 컸다.




비록 타의에 의해서라지만, 해방군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그들의 정보 요원으로 활동한 자신을.




에이단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도와줬던 것이다.




‘그리고 루드거 선생님도.’




그전까지 루드거 첼리시라고 이름으로 불렀던 레오이지만, 이제는 뒤에 선생님이라고 붙일 수 있게 됐다.




물론 아직은 어색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입에 익게 되리라.




그보다 소식을 듣자 하니 해방군은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마지막 발악으로 무언가 일을 터뜨렸지만, 그마저도 실패.




로열가드이자 소드마스터인 파시우스 경이 나서서 정리했다고 했던가.




‘진짜 다 끝났구나.’




정말 파란만장했던 현장 학습이었다.




세오른 학생 중에서 부상자는 있지만,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없다.




정말 이렇게 좋게 끝나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어차피 남들이 어떻게 되는지 무슨 상관이야. 그냥 이 바보 녀석들만 무사하면 되지.’




레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오나를 슬쩍 살폈다.




그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이오나?”




“어.”




항상 묵묵히 이쪽과 함께하던 이오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어느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황성의 커다란 산책로 너머의 숲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뭐라도 있어?”




“응.”




“진짜?”




“나 잠시 가 볼게.”




이오나는 그 말만 남기더니 쌩하고 숲으로 향했다.




첫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하는 레오를 뒤로하고, 이오나는 숲 안쪽으로 들어간 뒤 자신을 바라본 눈빛을 쫓았다.




“나와.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어.”




사박.




그 말에 상대방은 처음부터 숨을 생각이 없었는지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로테론 마법사님?”




이오나는 그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Komentar

Postingan populer dari blog ini

PUA - 398화 강철의 마법사 (1)

PUA - 391화 잔해 속에서 피어오르는 것 (2)

Ch.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