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32화 관계의 벽 (2)

 ◈ 332화 관계의 벽 (2)




루드거와 리네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같은 벤치에 앉았다.




리네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가지런히 모은 무릎 위로 치맛자락을 강하게 쥐었다.




그녀의 곁눈질하는 시선이 루드거의 모습을 담았다.




양손을 깍지 낀 채 상체를 약간 숙인 그의 모습은 고요한 호수의 수면처럼 평온해 보인다.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모습.




그 때문인지 리네는 그 옆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루드거의 저 모습이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잘생겨서, 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다.




리네는 루드거의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딘가 그리움과 아련함을 동시에 느꼈다.




왜인지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




자신은 분명 과거에 루드거를 만난 적이 없었을 텐데도, 그를 보면 옛날에 만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만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리네.”




“네, 네?!”




그때 루드거가 말을 걸자, 혹시나 훔쳐보던 것이 들켰나 싶어서 리네는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러지?”




“아, 아뇨. 아무것도.”




의아해하는 루드거의 모습을 보니 딱히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리네는 그제야 루드거도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리네. 내가 너와 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는지, 너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건…….”




“그날 너는 보았을 것이다.”




리네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너에게 보여 준 그 모습은 내 마법 중 하나다. 정확히는 내가 다루는 마법수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마법수인 [아테르 녹터누스]를 소환해 보였다.




전부를 소환하면 시선을 잡아끌 것이 분명했기에, 루드거는 녀석을 소형화시켜서 선보였다.




루드거의 오른쪽 어깨의 의복 위로 검은 아지랑이 같은 까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는 리네를 홱 돌아보았고, 리네는 그 모습에 어깨를 움찔 떨면서도 까마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이게 선생님의 마법수예요?”




“그렇다.”




“좀…… 특이하네요?”




“아테르 녹터누스라는 녀석이다. 그림자를 매개로 움직이며, 지금은 이렇게 짐승의 형상을 취하지만 주된 모습은 의복에 가깝지.”




“의복이라면…… 아.”




리네는 그제야 그날 루드거가 취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림자의 외투를 걸친 것처럼 겉옷을 입은 모습.




거기다 얼굴에는 까마귀 형태의 가면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뭐라고 했더라. 역병의사 가면?




책에서 봤는데 상당히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 가면이 떠올랐다.




지금 루드거의 어깨에 앉은 그림자 까마귀를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도 이 마법수의 능력이에요?”




“정확히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거다. 아테르 녹터누스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나 또한 그걸 매개로 움직일 수 있지.”




“와, 그랬구나.”




리네는 그제야 루드거가 어떻게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을 구하러 올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러면 진짜 대단한 거 아닌가?




리네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물었다.




“만져 봐도 돼요?”




“상관없다.”




리네는 자연스럽게 까마귀 형상을 한 마법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까마귀가 붉은 눈동자를 부라리며 리네를 쏘아보았지만, 리네는 손끝을 한 번 멈칫할 뿐이었다.




리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자 아테르 녹터누스는 잠시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서서히 가까워진 손에 부리를 가볍게 비볐다.




“아.”




리네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촉에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과연 일반적인 까마귀와는 만지는 감촉부터가 달랐다.




마치 연기를 만지는 감각을 극대화시킨 것 같았다.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마력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딱히 틀린 표현도 아니리라.




루드거는 자신의 소환수를 신기하게 만지는 리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아테르 녹터누스의 소환을 해제했다.




리네는 삽시간에 사라진 마법수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아…….”




“오래 불러 놓을 녀석이 아니다. 저렇게 보여도 매우 욕심쟁이라, 마력을 지나치게 많이 소모하거든. 이런 밝은 태양 빛 아래에서라면 특히나 더.”




“아, 그랬구나.”




“마법수가 신기한가?”




“네. 있다고는 들어 봤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거든요.”




“확실히 아직 1학년인 너희에게는 마법수는 생소하겠지. 본격적으로 마법수 소환을 배우는 수업은 3학년 과정이니까.”




“아. 꽤 오래 걸리네요. 빨리 배워 보고 싶었는데.”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조만간 학사 과정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서 말이다. 그중 마법수의 소환 수업은 1학년 과정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




루드거는 가능성이라 말했지만 사실상 확신을 품고 있었다.




마법수는 마법사가 지니는 영혼의 반려자와 같은 것이다.




마법수는 소환하면 그만큼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엄청난 안정성과 전투력을 보장한다.




정령학이 태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음에도 마법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배워 두기만 하면 훗날 필히 도움이 된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상당히 컸다.




다만, 마법수를 소환하는 것은 단순히 이론적인 과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본능적이고 직감적이며, 깨달음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보통은 1, 2학년들의 경우에는 마법수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마법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미숙하기 때문이다.




마법수에 대한 기초는 자신의 마력과 많은 감응을 해야 겨우 뗄 수 있는 법.




그런 의미에서 1학년들이 마법수 소환을 배우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배우는 학생들로서는 매우 두근거릴 것이다.




자신이 지닌 마력에서 탄생한 특별한 존재를 소환한다는 것은 마법사답지 않게 꿈과 낭만이 있으니까.




물론, 그걸 가르칠 교사는 벌써부터 난처함에 머리를 싸매고 있겠지만 말이다.




‘대체 누가 가르칠지 모르겠지만, 고생깨나 하겠군.’




루드거의 충분한 설명에 리네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열심히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 말해 준 것은 표면적인 궁금증을 해결해 줬을 뿐, 아직 리네에게는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그날 자신을 덮치려 했던 검은 안개의 정체라든가.




자기 대신 희생한 플로라의 상태라거나.




“그, 플로라 선배는…… 괜찮으신가요?”




“플로라 말인가.”




“예. 분명 그날, 저 때문에 대신해서…….”




리네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만다.




그 검은 안개가 노리던 것은 분명 자신이었다.




만약에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자신이어야 했던 것이다.




“플로라는 괜찮다.”




“아, 예. 다행이네요.”




“그러니 너도 마음 쓸 필요 없다.”




이쪽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것 같은 루드거의 말에 리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안하다 생각하나?”




“……저를 구해 주려다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 이상한 안개에 몸을 빼앗기기도 했고요.”




“악마.”




“네?”




“그것은 악마다.”




그 말에 리네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루드거의 옆모습을 빤히 직시했다.




마치 그걸 자신에게 말해도 되냐는 눈빛.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네, 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애초에 그 악마가 왜 너에게 관심을 가졌으리라 생각하지?”




“그건…….”




리네는 말하려다가 불현듯 자신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 검은 안개, 루드거의 말대로라면 악마가 맞겠지.




악마는 자신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지금 각성한 자신의 눈동자 때문이라는 건,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때 그 악마는 나에게 성녀 어쩌고라고 말했어.’




성녀라 하니까 박물관에서 보았던 환영 마법이 떠올랐다.




신성 마법이라고 했던가. 그 마법을 사용하는, 기도를 올리는 한 여성의 모습.




이상하게 그 광경이 눈에 밟힌다 싶었는데, 설마 그것과도 연관이 있는 걸까.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군.”




“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제가 왜 갑자기 이런 일에 휘말렸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알고 싶다는 거고.”




“……예. 모르니까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제가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묻고 싶어요. 선생님은 제 상태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이쪽을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응시하는 리네.




그녀의 눈동자는,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넋을 잃고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매력.




총장의 매혹의 마안에도 저항하던 루드거가, 순간이지만 멍하니 지켜보게 되는 그런 눈이었다.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않았는데도 이 상태라면.




온전한 판정안을 지녔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




“선생님?”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너도 모른 채로 있기는 무리겠지.”




루드거는 무엇부터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다 말해 주기로 했다.




예전이었다면 비밀로 남길 생각이었지만, 이미 절반 이상 각성해 버린 이상 리네도 알 필요가 있었다.




“리네. 판정안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느냐.”




“판정안? 처음 들어보는 단어예요.”




“판정안은 옳고 그름을 구별해 내는 눈이다. 그것은 단순히 직관적인 영역에서만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한다.”




“아.”




리네는 루드거의 말에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학기 초부터 자신에게 위험이 되는 사람들은 귀신같이 가려낼 줄 알았다.




반대로 자신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구분할 줄 알았다.




다른 학생들은 아직도 무서워하는 루드거에게 리네는 스스럼없이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그 판정안은 예로부터 루멘시스 교에서 말하는 성녀만이 타고나는 고유한 권능이라 하지.”




“서, 성녀요?”




악마 바사라가 성녀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루드거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또 느낌이 달랐다.




“하, 하지만 저따위가 어떻게 성녀가…….”




“너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역대 판정안의 소유자는 거의 다 그랬을 테니까. 너처럼 각성하는 경우가 없어서 그렇지.”




“그, 그러면 저도 루멘시스 교단이 데려가는 건가요?”




“왜?”




“왜냐뇨. 그야 제가 성녀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지는 않을 거다.”




“정말요?”




“그래.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루드거의 그 말에 리네는 숨을 헙 삼켰다.




학생으로서 걱정돼서 하는 말이겠지만, 저런 말을 면전에서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그, 그런데 왜……?”




“루멘시스 교단을 너무 좋게 보는구나. 놈들은 성녀가 탄생한다면 추앙하고 우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사슬을 옭아맬 놈들이다.”




리네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볼까 했다가 루드거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묻지 못했다.




루멘시스 교단에 대해서도 그렇고, 판정안과 성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아는 걸 보면 루드거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그러면 저는 어쩌면 좋죠?”




“일단 숨겨라.”




“그게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까요? 제 눈동자 아무리 봐도 너무 눈에 띄는데.”




“그것도 그렇군. 리네, 이쪽을 한번 보겠느냐.”




“아, 네.”




리네는 루드거가 시키는 대로 했다.




루드거는 그런 리네의 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루드거의 사파이어처럼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마치 잔잔한 수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는 느낌이었다.




리네는 루드거가 말없이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루, 루드거 선생님?”




“가만히 있어 보거라.”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리네를 향해 조심히 손을 뻗었다.




“흣.”




루드거의 손길이 눈 근처에 닿자 리네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고 말았다.




루드거의 손은 딱딱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따뜻했다.




이쪽을 만지는 루드거의 손길은 오래된 귀중품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리네는 그 감촉이 딱히 싫지 않았다.




굳이 좋고 싫고를 따지자면 좋은 쪽에 가까웠다.




이대로 평생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가, 가슴이 너무 뛰어.’




루드거의 모습이 가깝다. 그의 조각 같은 얼굴도, 이쪽의 뺨에 닿는 손의 온기도.




리네는 루드거가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걸 알아차리면 어쩌지 하고 고민했다.




너무 시끄럽게 뛰어서 주체가 되지 않았고, 그것이 고스란히 루드거의 귀까지 울려 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됐다.”




루드거의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뺨에 닿던 손길이 멀어졌다.




리네는 그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물었다.




“뭐가 된 건가요?”




“보겠느냐.”




루드거는 허공에서 금속 마법을 펼치며 얇은 판을 만들어 냈다.




매끄러운 표면의 그것은 거울처럼 리네의 얼굴을 선명하게 비추었다.




리네는 그 간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어?”




놀랍게도 별빛처럼 반짝이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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