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33화 백의의 사자 (1)
◈ 333화 백의의 사자 (1)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간단한 봉인 마법이다. 바깥으로 새어 나오려는 힘을 틀어막은 것이지.”
“간단, 이요?”
“완벽하지는 않으니 조심해라. 한번 각성한 너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질 거고,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봉인은 쉽게 깨질 테니까. 그래도 당장에 시간은 벌겠지.”
“봉인 마법이라니. 세상에.”
리네는 이렇게 보여도 이론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지식을 자랑하는 학생이다.
그런 그녀가 배우기를 봉인 마법은 상당히 고난이도의 마법이라 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세오른의 교사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마법이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곧바로 펼칠 수 있는 마법은 아니었다.
‘아니 뭐, 루드거 선생님이니까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걸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가벼이 여기는 루드거의 태도는 뭐랄까.
이쯤 되면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리네. 너에게는 전부 설명해 주었지만, 네가 판정안을 지녔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왜요?”
“네가 판정안을 지녔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루멘시스교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데려가려고 할 테니까. 그리고 이번에 나타났던 악마도 마찬가지다. 너를 노리려는 자가 또 없다고 보장할 수 없지.”
“그건…….”
리네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리네는 불현듯 자신의 변한 눈동자를 본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걸 떠올렸다.
“저, 선생님.”
“왜 그러지. 설마 이미 다른 사람에게 들켰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
리네는 자연스럽게 루드거의 눈을 피하며 식은땀 한 방울을 흘렸다.
“누구에게 들켰지.”
“따, 딱 한 명인데요. 에렌디르 선배요.”
“에렌디르 폰 엑실리온 말인가?”
“네에.”
“그건, 흠…… 그런가.”
둘이 자주 붙어 다녔기에 에렌디르라면 리네의 변화를 알아차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가 지닌 직위였다.
평범한 학생이었다면 루드거가 적당히 으름장을 놓을 수 있겠지만, 에렌디르는 황가의 핏줄이 아닌가.
아무리 루드거라도 사적인 일로 경고를 하자니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아일린 1황녀에게 부탁을 하자니, 그쪽에게도 판정안을 설명해야 하고.’
판정안의 존재는 아는 사람이 1명이라도 더 적은 것이 나았다.
아무리 아일린이라 하더라도 루드거가 그것까지 말해 줄 의리는 없었으니까.
오히려 아일린의 성격을 생각하면, 리네를 어떻게든 이용하고자 할 터.
숨기는 것이 맞았다.
“리네. 네가 보기엔 에렌디르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인가?”
“네? 저요?”
“네가 보기엔 어떻냐고 묻는 것이다.”
“저는…….”
리네는 무어라 대답할지 망설였다.
여기서 적당히 둘러댄다거나 혹은 거짓말로 넘길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리네는 루드거가 바라는 것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도 그런 면피성 발언을 원치 않았다.
“선배는…… 믿을 수 있어요.”
“그것은 온전히 네가 내린 판단인가?”
“네. 물론, 저라고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어쩌면 제가 모르는 선배의 일면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저는, 믿고 싶어요.”
리네는 솔직하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였다.
루드거라면 여기서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뭘 할 수 있겠냐며 날 선 비판을 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루드거는 그런 리네의 대답에 놀라울 정도로 쉽게 수긍했다.
“알겠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묻지 않으마.”
“어, 납득해 주시는 건가요?”
“네가 믿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긴 한데…….”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루드거는 리네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충분히 믿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판단력을 믿어서라기보다는, 판정안의 힘을 믿는 쪽에 가까웠다.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과 함께 붙어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리네로서는 루드거가 자신을 믿고서 저렇게 말하는 줄 알고 격한 감동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래도 리네. 네가 믿을 수 있다고 해도, 언제 갑자기 그 소식이 새어 나갈지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하도록.”
“네!”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경계부터 해라. 친절하게 대한다면 더더욱 의심하고.”
“네? 네.”
“먹을 걸 사 준다고 해서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다.”
“……선생님. 저를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시는 거 아닌가요?”
루드거는 순간 아차 싶었다.
리네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대하던 것처럼 말을 하고 말았다.
루드거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만큼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대비는 많이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리네는 루드거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그래도 만약에, 제가 위험해지면 선생님께서 저를 구하러 와 주실 거죠?”
“…….”
어딘가 기대감마저 품은 그 목소리에 루드거는 차갑게 대답했다.
“봐서.”
“네에? 그게 뭐예요.”
리네는 뺨에 바람을 넣어 부풀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피식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그 말에 리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루드거를 바라봤다.
“그런 일을 겪어서 많이 힘들어할 줄 알았다. 하지만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거 같구나.”
“위험한 순간에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플로라 선배에게도, 루드거 선생님에게도. 대체 몇 번을 감사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말이에요.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이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한 일이다.”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 가시는 건가요?”
“그래. 모처럼 만의 자유 시간이다. 너도 현장 학습이 무산된 만큼 황성에서라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즐기도록 해라.”
루드거는 그 말을 남기며 자리를 떠났다.
리네는 루드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벤치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하아.”
루드거가 보이지 않자 리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물어보지 못했네.’
이미 충분히 궁금한 것은 다 물어봤지만, 리네에게는 아직 다른 궁금증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정말로 우리가 과거에 만난 적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 * *
루드거는 황성 내 조성이 잘된 공원을 걸었다.
한 폭의 명화 속에서 나올 법한 광경이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세오른의 학생들이 저마다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루드거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예요!”
예전과는 다른 반응에 루드거는 잠시 얼떨떨해졌다.
처음에는 다른 교사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은 정말로 자신을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루드거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루드거에게 환호하는 학생들은 그날 수정궁 앞에서 루드거가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을 직접 본 목격자들이었으니까.
그 무수한 키메라 떼를 화려한 마법으로 처리하며 모두를 안전하게 구해 준 루드거는, 적어도 수정궁에 있던 학생들에게만큼은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루드거는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지나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받고는 했다.
아직도 루드거를 무서워하는 학생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전과 비교하면 그 비율은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훈장을 받으니,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그때 맞은편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세디나 조교로군. 잘 쉬고 있나.”
“네, 전부 루드거 선생님 덕분입니다.”
“혼자인가?”
“따로 친한 사람은 없어서요.”
세디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힐끔힐끔 루드거의 눈치를 살폈다.
본인은 애써 아닌 척하려는 것 같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보여 주는 세디나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도록.”
“네, 네?”
“그렇게 보여서 말이다.”
“저기, 그게, 그러니까…….”
세디나는 당황하면서도 조금 전 줄리아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줄리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루드거가 리네와 따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발견한 이후로, 그 불안감은 서서히 커져 갔다.
‘선생님. 정말로 선생님이 그 리네라는 학생의 어머니를 죽인 건가요.’
굳이 말하면 물어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루드거가 누구에게 들었냐고 추궁한다면 세디나는 줄리아의 이름을 꺼내야만 했다.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마른 지푸라기에 붙은 불처럼 크게 번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당장에 줄리아는 루드거를 매우 적대시하고 있었다.
세디나를 친구로서 걱정하는 줄리아에겐, 사람을 죽인 살인마인 루드거를 좋게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루드거는?
루드거도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상대를, 조금 과격한 수단을 동원해서 입을 틀어막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떡하지?’
세디나는 두 사람 중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두 사람 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관계였으니까.
“세디나 조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 아뇨. 그러니까…….”
세디나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물어볼지 말지 100번은 넘게 고민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무언가 착각을 한 거 같아서요.”
입술을 달싹거리던 세디나가 마지막에 내린 선택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루드거 또한 세디나의 행동이 무언가 어색하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세디나가 이렇게까지 행동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아, 아. 맞다. 한스 선배께서 연락을 보냈습니다.”
“한스가?”
“일단 대기 중이긴 한데, 최대한 빨리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빨리 보고 싶어 한다고?”
“예. 명확한 이유는 설명해 주시지 않았지만, 간절한 어투로 보아 아무래도 선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세디나의 말에 루드거는 한스가 겪을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생각보다 답은 금방 나왔다.
“아, 그건가.”
한스와 벨라루나가 지금 누구와 같이 있는지 떠올렸다.
그란데르.
제멋대로인 자신의 스승님이 지금 두 사람과 같이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께서 왜 나를 찾아오지 않나 싶었는데, 다른 괴롭힐 대상을 찾아서였군.’
안 그래도 전부터 그란데르는 한스를 꽤 신기하게 여기고 있었다.
짐승의 인자를 받아들여 그대로 변신하는 사람이라니.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란데르에게도 한스는 흥미로운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스승님께서 흥미를 품는다는 것이 당하는 입장으로서는 유쾌하지 않지만 말이지.’
한스가 급하게 보자고 하는 것도, 부디 스승님을 말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한스에게 미안하지만, 당장 이쪽은 황성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명분도 없거니와, 지루함에 빠진 스승님의 심심함을 달래 주는 일은 루드거에게도 상당히 벅찬 일이었다.
“한스에게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고 답장을 보내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세디나가 떠나고 혼자 남게 된 루드거는 또 무슨 일이 남았는지 떠올려 보았다.
없었다.
아일린으로부터 보상도 전부 받았고, 엘리사 총장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가장 마음에 걸렸던 리네와도 할 이야기는 다 끝냈으니, 사실상 황성에 머무는 동안의 할 일은 다 끝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남은 것은 크리스 선생님에게 벨라루나에 관한 소식을 보내는 것뿐인가.’
남은 시간 동안 일단 눈이라도 한번 붙일까.
그런 생각으로 자신에게 배정받은 숙소로 돌아온 루드거는, 입구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인형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내 방에는 무슨 용무지. 만델리나.”
“어, 어어?! 바, 방에 있던 거 아니었어요?”
“총장님과 대화를 위해 잠시 나갔다 왔다.”
“아, 외부 통신실 갔다 온 거구나.”
“그래서 네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뭔가 일이 있다는 말이겠지.”
“어, 그건 그렇긴 한데요…….”
만델리나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루드거의 시선을 피했다.
만델리나는 아직도 루드거가 거북했다.
당장 루드거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음에도, 기억의 깊은 곳까지 새겨진 공포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루드거도 굳이 그런 만델리나에게 마음을 놓으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저 인간은 한번 풀어 주면 한없이 풀어지는 성격인지라, 차라리 이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훨씬 더 나았다.
“그래서, 내게 무슨 볼일이지.”
“그, 볼일이라고 해야 할까.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왔거든요.”
“손님? 혹시 나를 찾아온 사람인가?”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찾아온 건 황제님과 1황녀님이거든요.”
황제를 직접 찾아올 정도의 손님이라니.
루드거는 만델리나의 태도와 그 말에서 묘한 불안감을 잡아냈다.
“황녀님께서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 걱정이 돼서요.”
“그래서, 누가 찾아온 거냐.”
만델리나는 망설임 끝에 답했다.
“브레투스 성국. 거기서 사자를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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