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39화 마법수 소환 (1)

 ◈ 339화 마법수 소환 (1)




이른 아침.




루드거는 오랜만에 세오른의 개인 사무실에 출근하게 됐다.




테러 사태가 벌어지고 황성에서 머무르길 거의 열흘.




세오른에서 안내 지침이 내려왔고, 학생들은 꿀만 같았던 황성에서의 휴가를 뒤로한 채 다시 세오른으로 돌아와야 했다.




루드거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마시며 오늘 자 신문을 펼쳤다.




‘아직까진 조용하군.’




신문에서는 여전히 수도 린데브루뉴의 테러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블랙레터 글씨로 적힌 단어가 여전히 ‘테러’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까지 악마의 존재이니 하는 정보가 새어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브레투스 성국에서 파견된 제사장이 무언가 눈치채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들은 황성에 머물면서 여러 차례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제국에서 열심히 막아 세운 덕분이로군.’




브레투스 성국에서는 불경한 존재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명분은 제국이 더 우위에 있었다.




자신들의 안마당이라 할 수 있는 수도에서 테러가 벌어졌다.




당연히 조사를 해도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것을 빌미로 브레투스 성국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철저히 관리에 들어갔다.




물론 상대방의 반발을 생각해서 너무 억누르지는 않고, 적당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남겨 두었다.




‘대신 죽은 세계수의 뿌리가 있는 핵심 구역은 출입 금지를 시켰겠지.’




하지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이미 제국이 테러에 휩쓸렸다는 소식은 대륙 곳곳의 여러 국가에 흘러들어간 상황.




당장은 괜찮지만, 언제 갑자기 진실이 알려져 세계의 정세가 뒤흔들릴지 모른다.




‘그 제사장이 대체 무슨 꿍꿍이를 지녔는지도 잘 모르겠군.’




그쪽이 마음만 먹는다면, 일단 밀어붙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지 않나?




그런 것치고는 렘리아 제사장과 그 필두로 한 사절단들은 이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시한폭탄의 도화선이 될 불씨가 얌전하다는 것이 마냥 좋은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까.




차라리 대놓고 움직여 주는 쪽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훨씬 더 편하다.




‘할 일이 많아.’




루드거는 신문을 접은 뒤 앞으로 있을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곧 신비의 밤이 열린다. 본래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곳에 퍼스트 오더가 엮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게다가 제로 오더가 조만간 오더 시노드를 연다고도 했고. 엘프 왕국에서 언젠가 보낼 추격자들도 대비해야 하지.’




게다가 소소하게 신경 써야 할 일들도 산재해 있었다.




학생인 플로라와 레오의 상태도 지켜봐야 하고, 에이단 녀석도 혹시 모르니 눈여겨 살펴야 한다.




로열스트리트도 꾸준히 관리해야 했다.




이제는 이쪽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해 나가고 있지만, 큼직한 사건의 경우에는 오웬즈가 직접 나여야 했다.




‘그날 가게에서 난동을 피우던 파블로 가문의 망나니도 신경이 쓰이고.’




알베르트 파블로라 했던가.




녀석에게 공포를 각인했으니, 그 망나니가 직접 나서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파블로 가문이 문제였지.




가문에서는 반쯤 포기한 자식이라 하더라도, 바깥에서 맞고 들어오면 가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파블로 가문의 차기 가주는 색의 칭호를 받은 마법사.’




불을 주로 다루는 가문답게 알베르트의 차기 가주가 부여받은 색의 칭호는 적색(赤色)이다.




그 말은 즉 자연의 불꽃을 다룬다는 말이며, 모든 색의 칭호를 지닌 단일 원소 사용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력을 자랑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인간이 정신 나갔다고 거리를 통째로 날려 버리려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니까.




‘케이시 셀모어처럼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케이시가 본인의 가문에서 둘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지.’




아마 케이시도 셀모어 가문의 장녀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얌전하고 의젓하지 않았을까.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케이시에게도 생각이 미쳤다.




‘파시우스가 말하기를 상태가 안 좋다고 했지. 꾀병을 부린 거라면 파시우스도 눈치챘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로 어딘가 안 좋은 건가.’




어쩌면 바사라의 정신 공격 때문에 심하게 후유증이 남은 걸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무시해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케이시는 한 명의 마법사로서 이번 싸움에 참여했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케이시 본인도 그에 따른 마땅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올바른 일이었기에, 정의관과 가치를 세우는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던 거겠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바라고 그것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루드거가 아는 지금의 케이시는 그랬다.




3년 전과 다르게 정신적으로 꽤나 성숙해진 그녀는 지금의 루드거가 보아도 매우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싸움의 여파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면.




적어도 서로 비슷한 처지에서 자그마한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직접 가면 또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이러면 정체를 숨기고서 몰래 도움을 주는 것이 낫나.’




몰래 도움을 준다라.




마치 ‘제루샤 주디 애벗’을 지원해 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키다리 아저씨라 하니 문득 생각나는군.’




루드거는 탁자 위에 놓인 교사 전용 <아카식 레코드>를 들어 올렸다.




유일한 대화 기록을 살펴보는데, 상대 측에서 먼저 인사가 왔다.




[오랜만이에요.]




[그러네. 잘 지냈어? 최근에는 많이 바빴나 보네.]




[네. 좀 일이 있었거든요.]




두 사람은 처음 매칭 이후로 주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아직까진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정한 명칭을 이후에도 계속 사용해 왔다.




가명으로 역할극을 하는 지금의 즐거움을 이대로 놔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면, 전처럼 지낼 수 없게 되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것은 아카식 레코드 너머의 ‘주디’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바쁜 일이라면 현장 학습이었겠네.]




주디가 며칠 동안 접속을 하지 않았는지를 계산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주디도 그것을 알기에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네, 그랬죠.]




[고생 많았겠네. 혹시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어?]




[아, 그러지는 않았어요. 도움을 받았거든요.]




[도움?]




[그런 일이 있어요.]




아차, 너무 캐물으려고 했나.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주디가 이번 현장 학습에 참여했다는 말에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궁금증이 들고 말았다.




이쪽도 인솔 교사이자 책임자로서 수도에 갔었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주디는 1학년 또는 2학년 학생이라는 소리로군.’




어쩌면 이미 서로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




[미안. 내가 너무 캐물으려고 했던 거 같네.]




[아뇨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이건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말하기 힘들 뿐.]




그런 건가.




루드거는 턱을 한차례 쓰다듬은 뒤 다음 문장을 기입했다.




[고민이라면 들어 줄 수 있는데.]




루드거는 뒤늦게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부분에서 내심 묘한 감상을 품었다.




이상하게 주디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예전 생각도 나면서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르드거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왔다.




루드거에겐 자신에게 내리는 휴식이라는 정의가 없다시피 했다.




이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상대와의 자그마한 대화는, 그런 루드거에게 몇 없는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낮은 학년의 학생이라 하니, 어른으로서 조언이나 고민 정도는 들어 줄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도 있었다.




[정말이에요?]




[허투루 한 말 아니야.]




거기까지 답장을 보낸 루드거는 뒤늦게 자신의 사소한 실책을 깨달았다.




‘잠깐. 연애 관련된 질문이면, 이쪽도 딱히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는데.’




루드거는 전생부터 현생까지 연애와 완전히 담을 쌓아 왔다.




그런데 으레 신입생 아이들이 하는 고민이라는 것은 이성 간의 문제가 아니던가.




[그, 제가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는데요.]




아뿔싸.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연애 고민인가 보다.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루드거는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듣고 나서 판단해도 문제 될 건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뭔가, 자꾸 생각이 난다고 해야 할까. 좀 특이하거든요.]




[어떤 의미로?]




[뭔가 볼 때마다 어디선가 만난 게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느껴져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는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상한 거겠죠?]




흠.




루드거는 주디의 대화를 유의 깊게 살폈다.




반응만 본다면 신경 쓰이는 이성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학생의 전형이다.




저렇게 에둘러서 말하는 것은, 아무리 익명성이 보장된 대화라 해도 부끄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겠지.




‘연애인가.’




세오른에서 연애를 금지하는 교칙은 없다.




당장 지금도 세오른 내부의 정원이나 식당을 가면 커플이 된 남녀가 화목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루드거는 교사로서 그것을 쉬이 용납하기 힘들었다.




‘공부는 안 하고 연애는 무슨 연애야.’




학생 중에서 연애한 놈치고는 성적을 제대로 유지한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 바깥을 돌아다니는 커플들도 성적 대조를 해 보면 꽤 순위가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주디를 보면 꽤 공부에 열정적이고, 의욕도 넘치는 모범생 같은데 말이지.’




주디는 기본적으로 마법이나 수업 내용에 관한 것, 앞으로의 인생 진로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주로 꺼냈다.




보통 학생들은 놀고 싶다, 공부하기 귀찮다는 본심을 드러낼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주디가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고?




‘어떤 놈팡이야?’




필시 남자일 것이 분명했다.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그 신경 쓰이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신경 끄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조심히 접근해 봐야겠어.’




루드거는 곧바로 주디에게 물었다.




[그 사람, 공부는 잘해?]




[공부요? 잘, 하겠죠? 아뇨. 확실히 잘하죠. 못할 수가 없는 사람인데요.]




못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후한 평가를 내릴 수가 있나?




[얼굴은 어떤데. 혹시 잘생겼어?]




[……네.]




수줍은 듯 나온 짧은 대답.




그 한마디에, 루드거는 상대방의 외모도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겨?




이거 위험하다. 보통 그런 녀석일수록 성격이 뒤틀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딱히 근거는 없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 뿐.




루드거는 곧바로 메시지를 작성했다.




[일단 신경이 쓰여도 그게 순간의 감정인지 아닌지 모르니, 조금 더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가요?]




[그래. 보통 이런 경우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거든.]




[역시 그렇겠죠? 조언 고마워요. 계속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니 조금 낫네요.]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




[스미스 씨도요!]




학생에 걸맞은 활기찬 대답에 루드거는 피식 웃으며 <아카식 레코드>의 접속을 해제했다.




더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었지만, 벌써 약속한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었다.




똑. 똑.




“루드거 선생님? 안으로 들어가도 돼죠?”




“예. 들어오십시오.”




루드거가 그리 말하자 문을 열고 엘리사 총장이 들어왔다.




사전에 찾아오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루드거는 총장의 등장에 딱히 놀라워하지 않았다.




“현장 학습 이후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죠?”




“의도치 않게 휴식기를 가지게 됐으니까요.”




“이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실 때예요. 쉴 때 푹 쉬어 두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걸요?”




“안 그래도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어머나, 훌륭한 마음가짐이네요.”




엘리사는 자연스럽게 손님 접대를 위한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루드거도 업무용 책상에서 떨어져 엘리사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그래서 총장님께서 직접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를 호출하셔도 됐을 텐데 말이죠.”




“루드거 선생님은 이제 저희 세오른의 기획처장이잖아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드려야죠. 한 무리의 장인데, 제가 멋대로 오라 가라 하면 좀 그러잖아요?”




“어차피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엘리사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이번 현장 학습 테러 관련으로, 외부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자세히 살펴보니 방긋 눈웃음을 짓는 엘리사의 눈가 아래에 미약하지만 거무스레한 다크서클이 보였다.




젊은 나이에 총장의 직위까지 오른 엘리트 중 엘리트임에도, 지금 벌어지는 일의 피로감을 완전히 무마할 수는 없던 것이다.




“커피라도 드시겠습니까?”




“아, 그건 거절할게요. 제가 요즘 너무 커피를 많이 마셔서, 조금 자중할 필요가 있거든요.”




“그렇군요. 그래서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뀐 학사 일정의 경우에는 공문으로 따로 보내 주셔도 됐을 텐데 말이죠.”




“아, 그건 루드거 선생님께 따로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부탁 말입니까?”




“네. 이번에 바뀐 커리큘럼 중에 [마법수]의 이해와 소환 항목 있잖아요.”




“예.”




그것은 일전에 황성에서 통화를 나눌 때도 전했던 내용이었다.




이제 1, 2학년들도 마법수를 소환해서 실전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던가.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마땅한 교사를 찾았거든요.”




“그렇군요. 그게 누구입니까?”




새파란 학생들을 상대로 마법수 수업을 가르쳐야 한다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바쁘겠군.




“어쩜 농담도 잘하셔. 제가 왜 루드거 선생님을 찾아왔겠어요.”




“…….”




엘리사가 웃으며 하는 말에 루드거는 등 뒤로 불안의 식은땀이 흘렀다.




“접니까?”




“예.”




“저군요.”




“물론이죠.”




“저밖에 없습니까?”




“당연한 소리를요.”




엘리사의 미소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팍팍 전해졌다.




루드거는 이번만큼은 견디기 힘들어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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