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0화 마법수 소환 (2)
◈ 340화 마법수 소환 (2)
“그러면 잘 부탁해요.”
총장은 부담이 가득한 말을 남기며 떠났다.
홀로 남겨진 루드거는 조금 전 대화를 곱씹었다.
‘마법수의 소환 수업인가.’
엘리사 총장은 루드거가 학생들에게 마법수 소환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말이 좋다는 거지, 사실상 루드거를 담당 교사로 확정 지은 셈이었다.
물론, 엘리사는 친절하게도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루드거 선생님. 실제로 마법수 수업은 3학년 이후부터 받는 거 아시죠?
-그렇다면 해당 교사에게 가르치도록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분들은 바쁘시잖아요.
-저도 바쁩니다만.
-얼마 전까진 그러셨지만, 루드거 선생님의 수업은 최근 학사 과정 변동으로 인해 많이 줄었잖아요.
그 말대로.
루드거가 맡은 이론을 가르치는 수업은 이번 학사 변동에 의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루드거의 수업은 이론에 기반한다.
실제로는 조금 실용성이 높은 내용까지 함께 강의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표면상 루드거가 가르치는 과목은 엄연히 ‘이론’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루드거는 뜻하지 않은 여유가 생겼고, 엘리사는 그런 빈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수업을 권한 것이었다.
-저는 기획처장의 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도 있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번에 기획처 사람들을 추가로 많이 뽑았거든요!
과연. 자신이 없는 사이에도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그 사람들을 고용할 시간에 새로운 교사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습니까.
-농담이시죠? 서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은 100명을 구해도 마법수 교육이 가능한 사람은 1명도 구하기 힘들어요. 차라리 남는 인력 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것이 제일 낫죠.
세오른은 교사를 함부로 뽑지 않는다.
뽑는 기간도 정해져 있으며 그 과정 또한 절차가 복잡하다.
세오른의 교사라는 직책이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것은, 이런 철저한 구분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작정하고 정체를 숨긴 사람이나, 혹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완전히 걸러 낼 수는 없지만.’
공고를 내고도 채용 과정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수상한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그걸 감안한다면 차라리 남는 인력 중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을 새로운 수업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물론, 교사들도 각자 특기나 계열이 나뉘어 있기에 함부로 시킬 수는 없었지만.
-루드거 선생님은 가능하시잖아요?
요사스럽게 눈을 빛내며 이쪽의 의중을 묻는 엘리사.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알고서 묻는 게 분명했다.
‘이래서야 거절할 수도 없고.’
사실 마법수 수업을 먼저 건의했던 것도 루드거 본인이었다.
따지고 보면 화를 자초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인 셈.
게다가 마냥 총장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엘리사 총장은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경영인으로서의 면모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남는 사람의 인력을 최대한 쥐어짜 내며 최적의 업무 효율을 뽑아내는 거니까.
‘이쯤 되면 1황녀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더 편해지기는커녕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처지라니.
상황 자체는 퍽이나 아이러니했지만, 루드거는 그것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그 대신, 이쪽도 조건은 하나 내걸었다.
-수업 방식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엘리사 총장은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건 루드거 선생님의 자유예요.
어떻게 보면 모두 떠넘기는 듯한 무책임한 말.
하지만 루드거에겐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었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요.
그 말을 끝으로 총장은 떠났고, 루드거의 의식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마법수 소환 수업이라.
예정에는 없던 일이지만, 일정상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그것을 다 안배해서 엘리사 총장이 제안한 걸 테니까.
‘상사로 모시기엔 참 힘든 사람이야.’
아일린 1황녀가 타고난 카리스마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며 철저하게 휘두른다면.
엘리사 총장은 도망칠 길을 전부 차단한 뒤에 은근하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업의 내용은 순전히 나의 자율에 맡긴다는 거다.’
루드거도 학생들에게 실전 마법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만약 세오른 측에서 수업 방식에 대해 공지를 했다면 오히려 난처했을 것이다.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루드거는 수업과 관련된 내용에 관해서는 무조건 자신이 정하기 때문이었다.
총장도 그것을 알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루드거에게 위임했다.
다음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이왕 맡게 된 수업.
루드거는 할 수밖에 없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 *
“으허어. 죽겠다.”
레더벨크로 돌아온 한스는 내리 반나절 이상을 자신의 침대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아지트 집무실에 나와서도 한스는 여전히 피로에 절어 있었다.
그래도 좀 쉬니까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 스트레스의 근원이 같은 아지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얌전하네.’
그란데르는 레더벨크에 돌아온 뒤 자신의 방에 얌전히 있었다.
뭔가를 가져오라고 고집을 부리거나, 혹은 동물로 변해 보라고 이빨을 들이미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긴. 급하게 장만한 수도의 아지트와 비교하면 여기만 한 곳이 없기는 하지.’
지금 그란데르가 머무는 곳은 아지트에서도 최상층이자 최고의 시설을 지닌 곳이었다.
방도 넓고, 온갖 화려한 물건들로 내부를 꾸며 놓았다.
적어도 전처럼 지루해하며 짜증을 낼 일은 없다는 것이 한스의 판단이었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한스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한스는 황급히 책상 뒤로 몸을 숨겼다.
“……뭐 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한 비올레타였다.
코드네임 [메리 포핀스]이자 <하우스 오브 베르디>의 지배인.
그녀는 뻔히 보이는 한스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숨는다고 해서 숨은 것 같은데,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그란데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크흠. 그냥 잠시 몸이 찌뿌둥해서 그랬소. 그래서 무슨 일로?”
“수도로 떠나기 전에 저희 거리를 몰래 주시하는 자들에 대해서 조사해 달라고 했잖아요.”
“아, 그랬지.”
오웬즈의 창시자이자 리더는 당연히 루드거다.
이곳에서 루드거는 [올리버]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하지만 루드거는 여러 신분을 지녔기 때문에, 총지배인 올리버의 행세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자주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고, 그 빈자리를 한스가 대신했다.
오웬즈 중에서는 이런 쪽으로 일 처리가 가능한 사람이 한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스는 수도로 떠나기 전, 자신 다음으로 일 처리가 능숙한 비올레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음. 확실히 제대로 모아 온 것 같군.”
한스는 비올레타가 가져온 서류들을 빠르게 훑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비올레타는 상당히 세밀한 정보까지 정리해서 가져왔다.
그것은 루드거가 사전에 만들고자 했던 촘촘한 정보망 덕분이었다.
어린아이와 노인들로 구성된 조합 [올드키즈]
여성들로만 구성된 [검은 장미의 여인들]
이 두 조직은 전부터 정보를 모으는 데 상당히 특화되어 있었다.
그랬던 조직이 하나로 합쳐지며, 거기에 더해서 체계성까지 갖추게 되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옷가게의 여직원.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
가난한 예술가.
세탁소의 아줌마까지.
하나의 거리에서 시작한 정보의 망은 거미줄처럼 도시 레더벨크 전역을 뒤덮었다.
이제 도시의 소식은 전부 그들이 듣고 주워 담는다.
“역시 수상한 놈들이 많이 꼬였군.”
한스는 비올레타가 가져온 정보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로열 스트리트가 커지면서 이쪽에 수작을 부리려는 놈들이 많이 늘었다.
그런 놈들까진 그래도 괜찮다. 이쪽이 역으로 힘과 재력으로 억누르면 되니까.
“다만, 귀족 가문이 엮이면 귀찮게 된단 말이지.”
한스의 말에 비올레타가 약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응? 아아, 됐소. 걱정하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상대는…….”
비올레타는 말을 삼켰다.
지금 로열 스트리트 근방에 자리를 잡은 일부 사람들은 파블로 가문에서 보낸 자들이었다.
한스도 비올레타가 파블로 가문과 어떻게 엮였는지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잊었소?”
“뭘 말이죠.”
“일전에 형님은 이곳을 자신의 성채로 만들겠다고 했소. 그때 그쪽도 함께 들었을 텐데.”
“예. 저도 다 들었죠. 그날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걱정을 하는 거요?”
“그야 상대는 귀족의 가문이니까…….”
루드거가 자신을 위해 알베르트를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은 고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역시 위험한 선택이지 않았나 걱정됐다.
한스는 그런 비올레타의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흥. 아무래도 제일 마지막에 들어와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제대로 들으시오.”
“……뭐죠.”
“나 같은 삼류 비렁뱅이도 제집에서는 한 세 수는 먹고 들어가는 법이오. 그런데 형님은 어떻겠소. 그리고 형님은 이곳을 자신의 성채로 명명했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소?”
비올레타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스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이 거리에서만큼은, 우리는 누구라 하더라도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파블로 가문이건 뭐건 상관없소. 이곳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철옹성. 형님이 그렇게 말했으면, 우리는 그 뜻을 지키면 되는 거요.”
한스의 목소리에는 루드거를 향한 신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동시에 자신의 지위와 책임에 대한 자부심도 은연중에 드러났다.
“여기 이 서류에 적힌 놈들을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찾아온 거겠지?”
비올레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모습과 달리 한스는 매우 진중하고, 또 어딘가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다면 보여 주지. 형님이 이곳을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한스는 곧바로 근처를 배회하는 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황금의 거리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드디어 저들에게 보여 줄 때가 왔다.
* * *
파블로 가문에서 보낸 사람들은 각기 여러 팀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그중 1팀은 근처 주점에 모여서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총책임자의 행방은 찾았나? 그 올리버라는 남자.”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가면을 썼다는 것부터 해서, 정체를 감추고 있어서 여의치 않습니다.”
“계속 행방을 수소문해라. 썩어도 파블로 가문의 핏줄을 건드린 자다. 그렇게 하면 무슨 꼴을 겪게 되는지 경고는 해야지.”
“예.”
그때 주문했던 요리와 함께 술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심각한 대화를 나눈 사람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로 주인에게 팁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맥주를 들이켜는 순간.
“푸흡!”
“크헉!”
그들은 피가 섞인 맥주를 뿜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살려……!”
그나마 술을 조금만 마신 남자는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뒤이어 그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다.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문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어서였다.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이쪽을 향한 무기질적인 시선은,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런…… 제길.”
파블로 가문의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주점 내부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시체를 포대에 싸 밖으로 끌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주점은 삽시간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누구도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이와 비슷한 일들이 도시 곳곳에서 연달아 벌어졌다.
호텔에서 곤히 잠을 자는 사람의 이불 위에 칼날이 찍히고.
골목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사방에서 날아온 쇠뇌에 꿰뚫렸으며.
위기감을 느끼고 도망치려던 사람이 램지어 강물에 빠져 익사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로열 스트리트는 전에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을 내며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발걸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황금의 거리에 모인 군중들의 뜨거운 생명력과 활기가 내뿜는 무대.
커튼과 소품의 산더미 너머에 가려진 무대의 뒤편에 고요한 죽음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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