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2화 지옥 특강 (1)

 ◈ 342화 지옥 특강 (1)




커다란 연마장을 학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나로 육체를 강화해서 달렸기에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학생들조차 강화 마법 덕분에 잘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르자 생각이 바뀌었다.




마나는 무한하지 않다.




육체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마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달리며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몇 바퀴를 채 돌지도 못하고 마나가 바닥난 학생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고갈된 학생들은 이제 맨몸으로 달려야 했다.




강화 마법으로 보호를 받던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헉. 헉.




헥. 헥.




곳곳에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에 운동과 담을 쌓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시체를 연상케 했다.




문득 모두의 머릿속에 동시에 의문이 피어났다.




‘난 왜 달리는 거지?’




‘이게, 마법수의 소환을 도와준다고?’




‘이거 맞아? 진짜 맞아?’




그러나 누구도 달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조금 전부터 강렬한 시선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루드거 첼리시.




그는 혹시라도 농땡이를 부리는 녀석이 없는지 시종일관 학생들을 노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런 루드거 때문에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루드거는 그야말로 귀신 같았다.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늦추려는 학생이 있으면 비수 같은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름을 부르며 특유의 무거운 목소리로 압박까지 했다.




그것만으로 다 죽어 가던 학생은 야생의 토끼처럼 펄펄 뛰었다.




여학생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귀족도 안 봐주는데, 여자라고 봐주겠는가.




당연히 귀족 여학생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허억. 허억.”




테이시는 숨을 헐떡이며 미친 듯이 달렸다.




이제 슬슬 멈출 때가 됐는데도 루드거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계속 달리라 했으니, 일단은 계속 달려야 하는 것이었다.




“대체, 내가, 왜.”




호흡마다 숨넘어가듯 끊어지는 목소리.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이고, 전신은 벌써 땀범벅이다.




테이시는 당장이라도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레오 저 녀석은 왜 저렇게 열심인데!’




평소였으면 제일 뺀질거렸을 사람이 레오가 아닌가.




하지만 레오는 현장 학습 이후로 무언가 변화가 있던 것인지, 누구보다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힘들어하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달리는 레오의 모습을 보자니, 테이시는 뭔가 속이 끓는 기분이었다.




왠지 여기서 레오에게 지면 평생 패배자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테이시는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테이시. 괜찮아?”




그때 테이시의 곁에 발걸음을 맞추며 에이단이 다가왔다.




속도를 늦춘 게 아니라 이미 한 바퀴를 먼저 돌며 테이시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테이시는 대답하고 싶었지만, 호흡이 목 끝까지 차서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신했다.




“조금만 더 버텨 봐.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원래 일정 상태를 넘으면 약간 해탈하게 되거든!”




에이단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넌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니?




테이시는 그렇게 따지려 했지만,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테이시는 새삼 놀라운 시선으로 에이단을 곁눈질했다.




그는 조금 호흡이 가빠 보이는 걸 제외하면 여전히 멀쩡했다.




남들과 다르게 육체를 꾸준히 단련한 덕분이었다.




테이시는 문득 레오가 에이단을 향해 바보 체력 괴물이라고 불렀던 걸 떠올렸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참 에이단에게 어울리는 별명이구나 싶었다.




물론, 에이단 말고도 잘 뛰는 사람은 더러 있었다.




남들보다 연마장을 몇 바퀴나 더 먼저 돌고 있는 이오나가 그러했다.




수인족은 신체 능력이 우월하다.




이오나는 그중에서도 뛰어난 혈통을 타고났기에 그 수준이 남달랐다.




길게 뻗은 다리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재빠르게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오나의 모습에, 남학생들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창때 남학생들에게, 신체 능력에서 여학생에게 밀린다는 것은 자존심에 적지 않은 스크래치가 새겨지는 법이었다.




그 때문에 남학생들은 이를 악물고 계속 달리려 들었다.




‘진짜 괴물 같네.’




테이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이오나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때 테이시의 곁을 남청색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어?’




테이시는 그 뒷모습을 보고 순간 누구인가 싶었다.




뒤늦게 저 사람이 2학년의 천재인 플로라 루모스라는 걸 떠올렸다.




머리색이 약간 변해서 뒷모습만 보곤 바로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 선배, 원래 저렇게 운동 잘하는 사람이었어?’




플로라는 테이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잘 달렸다.




마법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은 있지만, 체력이나 그런 건 취약할 거라는 인식이었는데 의외였다.




힘든 것은 매한가지지만, 주변에 다 죽어 가는 학생들과 비교하면 자못 쌩쌩하기만 하다.




“헤엑. 헤엑. 프, 플로라.”




플로라의 옆을 따라 달리던 셰릴이 한 바퀴 뒤처진 끝에 플로라에게 다가가며 울먹였다.




“너, 너 뭐야. 왜 그렇게, 잘 달리는 건데.”




“그야…….”




플로라는 그런 소꿉친구의 물음에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플로라도 자신의 체력이 이렇게 좋아진 것에 놀란 참이었으니까.




솔직히 루드거가 일단 달리라고 했을 때 플로라는 죽을 만큼 힘들리라 직감했다.




그런데 막상 달려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원인을 꼽으라면, 아마 내 머리 색이 변한 것과 같은 이유겠지.’




악마 바사라는 그녀의 육체를 차지하며 자신의 힘으로 육체의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켰다.




이후 바사라는 완전히 소멸했지만, 한번 개화시킨 육체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플로라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다만, 마법적인 부분만 좋아지고 신체 전반적인 능력이 상승했으리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럴 줄이야.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플로라의 그런 만족스러운 표정을 읽은 셰릴이 물었다.




“플로라, 뭔가, 기뻐 보이네.”




“……그래?”




“응. 평소였으면, 제일 먼저, 짜증 냈을 거잖아. 헥헥.”




“내가?”




플로라는 그렇게 물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셰릴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의 그녀였으면, 이런 단순한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루드거에게 딴죽을 걸었을 것이다.




이제 그러지 않은 것은 루드거를 믿기 때문이었다.




‘루드거 선생님이 시킨 거라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예전의 플로라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변화.




셰릴은 그런 플로라의 모습을 수상하게 바라봤다.




“플로라 너…….”




“뭐가.”




셰릴의 불온한 시선을 감지한 플로라는 그녀의 눈빛을 피하며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어, 어? 프, 플로라! 같이 가!”




곳곳에서 자그마한 소요가 벌어지는 가운데, 루드거가 마력으로 강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명하는 학생은 달리는 걸 멈춰라.”




루드거가 이름을 부르자 해당 학생들은 곧바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속 달리던 학생들이 설마 자기 이름을 불러 주려는 건 아닐까 하고 발걸음을 늦췄다.




“누가 멈춰도 좋다고 했지? 내가 호명한 자들만 멈추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여기서 평생 멈추고 싶나?”




물론 서릿발 같은 루드거의 회초리가 떨어져, 다시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지친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 마력 회복에 신경 쓰도록.”




“허억. 허억. 서, 선생님. 이 과정이 정말 마법수를 소환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한 남학생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 말에 주위에 다른 학생들도 대답을 바라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슬슬 궁금할 때가 됐지.




“회복하면서 들어라.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소환 계열의 마법수는 일반적인 학문과는 다르다.”




학문은 기본적으로 앉아서 머리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이론을 입증하는 과정일 뿐.




하지만 마법수는 그러지 않았다.




마법수는 학문과 거리가 멀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법수는 체득(體得)이 필요한 과목이다. 마법수를 소환하는 데 이론적인 기발함이나 발상의 전환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력의 본질을 느끼는 것이지.”




“본질, 이요?”




“그래. 너희들이 평소 별생각 없이 운용하던 너희들의 마나.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마력이 지닌 ‘자아(自我)’를 찾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 말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나에 자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들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군.”




“그야, 마나에 의지가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이 안 되는 것은 없다. 마나란 본디 신비로운 에너지이자 세상의 근원 중 하나. 그것을 인간의 사고로는 절대로 정의할 수 없지. 역사상 위대한 마법사들도 그걸 함부로 정의하지 못했는데 오죽할까.”




“그, 그렇지만 마법은 그런 마나를 이용하는 거잖아요.”




“그 마법조차, 마나라는 개념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루드거는 그렇게 설명하면서도 달리는 학생들을 눈여겨보다가, 체력이 다한 학생들을 호출해서 연마장 중심으로 불렀다.




그 광경에 먼저 와서 휴식을 취하던 학생들은 나지막이 감탄했다.




루드거는 마치 눈에 측정기라도 단 사람처럼 한계에 도달한 학생들을 귀신같이 잡아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 이름을 불리면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그 정확함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회복하면서 자신의 바닥부터 차오르는 자신의 마나를 세세히 느껴라. 그 과정을 반복하면, 너희도 무언가 가닥을 잡게 될 것이다.”




루드거는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하며 조금 전의 설명을 계속 이어 갔다.




“알다시피 에너지로 구성된 정령은 자연의 힘이 모여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런 정령에게도 자아는 있지. 상위정령일수록 더욱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자아를 지닌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루드거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마나로 이루어진 마법수는 자아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자아가 존재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말에 학생들은 서로 멀뚱히 눈치만 살피며 섣부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그래. 리네.”




에렌디르와 함께 휴식을 취하던 리네가 곧바로 대답했다.




“마법수에는 자아가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마나는 결국 포괄적인 에너지일 뿐. 거기에 자연과 같은 의지가 깃들 수 있을까?”




“자연의 의지는 깃들지 않겠지만, 마법사의 의지는 깃드니까요.”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오오.




학생 중 몇몇은 리네를 다시 봤다는 시선으로 응시했다.




마지막까지 달리던 이오나가 자리에 착석했다.




이제 다 모인 거 같군.




“다들 궁금할 것이다. 내가 왜 너희들을 이렇게까지 육체적으로 혹사시키는지.”




안 그래도 학생들은 그게 궁금하던 차였다.




“나는 마법수가 학문이 아닌 체득의 과정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에게 묻겠다. 체득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아나?”




그 말에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에 빠져들었다.




체득이란 결국, 몸으로 직접 실천해야 하는 과정.




그것의 큰 특징이라고 해 봤자, 학생들에겐 ‘아주 힘들다’라는 감상이 전부였던 것이다.




“모르는 모양이군. 답을 알려 주도록 하마.”




학생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루드거의 답변을 기다렸다.




“체득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바로, 하면 할수록 는다는 거다.”




……그게 전부?




학생들은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다.




루드거도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었다.




“오래, 그리고 많이 할수록 성장한다. 그것이 체득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너희 선배들이 3학년이 돼서 마법수를 소환할 수 있는 것은, 지난 2년 동안 세오른에서 여러 마법을 배워 가며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는 그러지 않지.”




3학년도 마법수 수업을 배우면, 그 학기가 끝날 때까지 소환하지 못하는 학생이 절반 이상이나 될 정도다.




하물며 세오른에서 2년을 겪지 않은 지금의 신입생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너희에겐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애석하게도, 이번 특강은 너희들이 이번 학년이 끝나기 전에 성공적으로 끝맺어야 하는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




“무, 무조건 올해 안에 끝내야 한다고요?”




“그래. 하지만 나는 그것도 길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학사 과정을 생각하면, 너희는 최소 방학 전까지는 마법수를 소환할 줄 알아야 한다.”




방학 전까지?




아직 4차 테스트가 남긴 했는데, 그걸 감안해도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안에 최고의 효율을 볼 수 있을 것 같나.”




“…….”




학생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대답하지 않은 것이었다.




“답은 시간의 밀도를 올리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들여도 배로 노력을 하면, 그만큼 습득 속도도 빨라진다. 이게 체득의 또 다른 장점이지.”




시간의 밀도를 올린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그냥 남들보다 훨씬 더 빡세게 굴린다는 뜻이었다.




“다들 표정을 보니 슬슬 체력을 회복한 거 같군.”




학생들은 그 말에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왔다.




루드거는 그런 학생들의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다.




“다시 뛰어라.”




지옥의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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