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4화 이의 제기 (1)

 344화 이의 제기 (1)




루드거는 자신 앞에 선 학생을 바라보았다.




1학년 학생 중에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귀족 가문 출신인 마틴 칸다크였다.




루드거는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몇몇 귀족 학생들이 마틴의 강단 있는 행동에 응원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대표로 한 놈이 나온 셈이로군.




루드거는 혹시나 손가락을 가볍게 딱! 하고 튕겼다.




루드거와 마틴의 주위로 소리 차단의 장막이 형성됐다.




이제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는 그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으리라.




마틴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루드거는 이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드거는 자신의 앞에 선 학생을 바라봤다.




루드거가 말없이 응시하자 마틴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살짝 후회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듯했다.




“그래. 마틴 칸다크.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그렇습니다.”




“이유는?”




그 이유를 꼭 물어야 하나?




마틴은 속으로 불만을 품으면서도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이런 무의미한 행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워서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저는 세오른의 학생입니다. 그리고 귀족이기까지 하죠. 그런 제가, 어째서 이런 곳에서 땀을 흘려 가며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죠?”




마틴은 가문에서 대접을 받으며 자라 왔다.




세오른에 와서 넓은 세상을 보게 되고, 이곳에 있는 평민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는 했다.




그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무식하게 몸만 굴리는 훈련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특강 담당교사가 루드거라서 참고 견딘 거지만, 마땅한 성과가 나오지 않자 조바심과 더불어 인내심이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더라도 마법수 소환은 언젠가…….”




“마틴. 하나 묻지. 너는 이번 현장 학습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꼈나?”




마틴은 그 말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현장 학습에서 벌어진 테러.




많은 학생이 거기에 휘말려 다쳤다고 했다.




마틴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테러에서 다치지 않았으며,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소식은 들었다.




키메라들이 들이닥쳤다거나, 검은 폭풍이 몰아쳤다거나.




그 때문에 병실 신세를 진 학생들이 많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남의 일이었고, 자신은 이렇게 멀쩡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없는 것도 그를 안도하게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걸 왜 물으시는 거죠?”




다만, 그걸 대놓고 인정하는 것은 적잖게 자존심이 상했다.




“정말 위험한 일을 겪은 녀석이라면, 이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강짜를 부리지 못할 테니까.”




“그건…….”




“다만, 너의 그 반응은 이해한다.”




마틴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응시했다.




솔직히 이런 말을 꺼내면 엄청나게 욕을 먹으리라 생각했다.




그 모든 걸 각오하고서 그만두겠다고 한 것인데, 루드거는 오히려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답답할 것이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고된 육체의 고통. 그럼에도 지지부진한 과정까지. 그런데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하나둘 앞서 나가고 있으니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마틴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루드거의 말은,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확했다.




마틴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더 강하게 반발했다.




“저는 단지 이 수업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말했을 뿐입니다.”




“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그러지 않으면 왜 제가 아직까지 이곳에서 땀범벅이 돼 가며 달리는 겁니까.”




“내가 못 했으니, 수업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루드거는 아직까진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을 의외라고 여기면서도, 마틴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꺼냈다.




“저는 가문에서 어린 시절부터 마법에 대한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제 재능이 비록 세오른에서 최고는 아닐지언정, 배워 온 과정과 시간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마틴의 시선이 자리에 앉아서 명상에 빠진 몇몇 학생을 향했다.




자신과 같은 귀족이 아닌.




평민 학생들을.




마틴이 내면에 품고 있는 불안과 열등감은 바로 여기서 기인했다.




어째서 더 많이, 더 오래 배워 온 자신이 뒤처져야 하는 것인가.




상대가 귀족이면 이해라도 한다. 그들 또한 자신처럼 조기 교육을 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평민은 다르다.




세오른의 보조 지원금을 받아 가며 겨우 수업을 듣는 녀석들이 아닌가.




그런 놈들에게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다는 건가? 자기 딴에는 열심히 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루드거의 싸늘한 목소리가 바로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마틴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소한 행동을 하는 데도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내야만 했다.




그럴 것이, 눈앞의 상대는 그 루드거 첼리시다.




세오른의 신입 교사.




하지만 누구도 그를 신입이라 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세오른에 온 이후로 온갖 새로운 마법을 가르치며 널리 알렸고, 삽시간에 기획처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총장이 신임하고 있으며, 이번 테러 사건에서도 큰 활약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키메라 군단으로부터 루드거가 구해 준 일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 때문에 루드거를 고깝게 여기지 않았던 귀족 학생 중 다수가 루드거에 대해 좋은 인상을 품기까지 했다.




그의 차갑고 쌀쌀맞은 행동은 이제 하나의 개성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그래도 마틴은 루드거에게 말을 해야 했다.




“네.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잘못됐습니다.”




그만두겠다를 넘어서, 당신의 이번 방법은 틀렸다고.




분명히 이것은 선을 넘는 발언이었다.




마틴도 그걸 알았다.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루드거에게 엄청나게 깨지리란 것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다.




루드거는 잠자코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틴의 불끈 쥔 주먹의 안쪽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루드거는 이제 어떻게 할까.




자신을 쫓아낼까? 아니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줄까? 어쩌면 억지로 더 굴릴지도 모른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에서 소용돌이쳤다.




마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땅바닥을 향했다.




그때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알겠다.”




“네?”




마틴은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그는 지금 루드거가 한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걸 수긍한다고? 이렇게 쉽게?




뭔가 괜히 걱정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라고 싫은 녀석에게 억지로 힘든 일을 시킬 정도로 매정하진 않다. 이걸로 안 된다면, 그것은 내가 틀린 거겠지.”




다만, 하고 말을 끊은 루드거가 마틴을 응시했다.




그 눈동자는 너무나도 깨끗해서 이쪽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너의 진심이라면 나는 내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겠다.”




“진심, 이라니요?”




“타인에 의해서 반쯤 강요받아서 억지로 내뱉는 말을, 나는 진심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




마틴은 숨을 삼켰다.




“왜 그러지?”




“아, 아니요. 그건…….”




마틴은 속으로 생각했다.




루드거는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그의 말대로, 마틴이 루드거에게 용기 있게 나선 것은 정말로 이 수업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육체를 혹사시키는 방식? 솔직히 처음엔 싫었지만, 하다 보니 느끼는 바가 있었다.




조금이지만 관조를 통해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걸.




자신보다 더 앞서 나가는 평민?




그것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맞다.




하지만 마틴은 마법수에 관해서는 재능과 감각의 영역이 더 탁월하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 대신 자신은 조금 더 이론적인 부분에 강세를 보였고, 실제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는 아직 학생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해서 적어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루드거에게 이렇게 나선 것은.




외부의 압박 때문이었다.




‘수업을, 망치라고요?’




자신을 따로 호출한 휴고 부르테그.




세오른의 교사 중 귀족 파벌을 이끄는 수장이자, 상당히 강한 권세를 지닌 원로 교사 중 하나.




그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루드거의 수업에서 못 하겠다고 뛰쳐나가라고.




‘마틴 학생.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냥 포기하겠다고 말하며, 몇몇 학생들을 선동해 주기만 하면 돼.’




‘……루드거 선생님 수업에서 그런 짓을 하면 뒷감당은요?’




‘그건 내가 도와줄 거다. 안 그래도 이번 특강과 관련해서 총장에게 공식으로 항의할 거야. 너무 무리한 강행군으로 학생들을 혹사시킨다고.’




마틴은 휴고가 뭘 원하는지 알았다.




그는 학생들을 혹사시키는 총장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을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너무 휘두르려는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지.




하지만 마틴은 그런 휴고의 제안을 쉽사리 쳐 낼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와 연줄이 있어서였다.




‘마틴. 자네 아버지는 잘 지내시지?’




‘……예.’




‘그래. 잘 지내야지. 우리 부르테그 가문이 뒤를 봐준 덕분에, 부쩍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




휴고의 말대로, 마틴의 가문 칸다크는 휴고가 신경을 써 준 덕분에 귀족들 사회에서 나름 요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휴고의 눈 밖에 나는 순간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한번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가문이, 고작 이런 별거 아닌 이유로 흔들릴 일은 없다.




마틴의 아버지가 이런 부분에서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협박에 허점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마틴은 어렸고, 거기까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틴 학생. 네가 이번 일만 잘해 주면, 나는 너를 특별 우대생으로 추천해 줄 수 있어. 그게 뭐냐. 졸업 이후에 어디를 가도 대우를 받는다는 거야.’




‘그건…….’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냥 좀 나이에 맞게 생떼 좀 부리고 뛰쳐나가면 돼. 이딴 수업, 의미 없다고 말이지.’




마틴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휴고는 그런 마틴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자신의 콧수염을 매만지며 혀를 찼다.




‘휴, 휴고 선생님. 저는…….’




‘반응이 썩 못 미덥군. 쯧. 모처럼 기회를 주려고 해도 싫다고 하다니.’




‘그건…….’




‘어차피 이건 자네 말고도 할 사람이 많아. 그런데도 내가 자네를 먼저 부른 건, 칸다크 가주와 친분이 있어 서지. 그런데 자식이 이렇게 나오면, 칸다크 가주에게도 적잖게 실망할 수밖에 없겠어.’




마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겠, 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틴은 회상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얌전히 수업을 듣던 학생이 난데없이 그만두겠다고 말하는데, 그걸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 하지만 저는 80명의 수강생 중 고작 한 명일…….”




“무려 하나지. 내 수업을 듣는, 80명이나 되는 학생 중 하나.”




마틴은 몸을 보르르 떨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부렸으니 보통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루드거는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보고 있었을까.




뒤에서 누가 시킨 대로,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하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았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정말 역겨운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로서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창백하게 질려 말을 잇지 못하는 마틴에게, 루드거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틴 칸다크. 나는 너를 우수한 학생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너를 탓하고 책망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대답해 줬으면 한다.”




“그게, 그게 뭔 데요?”




“너는 정말로, 이 수업을 그만두고 싶나?”




루드거가 투명한 시선으로 그렇게 물었다.




너는 정말 그걸로 좋냐고.




마틴은 그 질문에 이미 충분한 대답을 했잖아요, 라고 말하려는 걸 꾹 참았다.




루드거는 형식상의 대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듣고 싶은 거지.




“……저는 그냥, 이 수업을 계속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의견은 의미 없는 거잖아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 수업에 의문을 품을 거예요.”




“그렇겠지. 너에게 그런 일을 시킨 사람은 내가 이 수업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너로 안 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일을 시키겠지. 너는 그럴 바에는 네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거고.”




마틴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드거는 그런 마틴을 나무라지 않았다.




“내 수업이 아직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그게 맞겠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네?”




“저길 봐라.”




마틴을 루드거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마법수?”




명상을 위해 모여 있던 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한 마리의 마법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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