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5화 이의 제기 (2)
◈ 345화 이의 제기 (2)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마틴은 갑자기 등장한 마법수를 보더니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마법수를 소환한다고 빡세게 굴렸다지만, 이걸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해 버린다고?
‘최소 반년은 넘게 걸리는 과정일 텐데, 이게 이렇게 짧아도 되나?’
마틴은 황망한 얼굴로 루드거를 돌아봤다.
루드거는 현재 마법수를 소환한 학생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 플로라 루모스인가.’
마법수를 가장 먼저 소환한 것은 역시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고 알려진 플로라였다.
원래도 재능이 넘쳤는데, 이번 빙의의 영향으로 앞으로 개화할 미래의 가능성까지 가져다 썼다.
‘그걸 감안해도 마법수를 소환하는 건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든데 말이지.’
플로라는 자신이 마법수를 소환했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해 보였다.
루드거는 플로라의 마법수를 유심히 살폈다.
플로라의 마법수는 짐승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플로라의 머리색과 비슷한 짙은 남청색의 털을 지닌 재규어였다.
꽤 덩치가 큰 재규어는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플로라의 몸 주위를 배회하며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짐승의 형태인가. 가장 무난하군. 혹시나 플로라라면 조금 다른 독특한 마법수가 태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겉모습만 놓고 마법수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었다.
마법수는 결국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 능력은 타고난 마나에 영향을 받기에 직접 보기 전까진 능력을 짐작하기 힘들다.
‘그걸 제외하면, 의외로 플로라와 썩 닮긴 했어.’
플로라의 날카로운 눈매와 평소 행동을 생각하면, 그녀는 묘하게 고양이를 닮았다.
그런 주인의 특징이 반영된 것인지, 태어난 마법수도 고양이과 짐승이었다.
고양이치고는 너무 거대했지만 말이다.
기억하기로는 재규어가 고양이과에서 사자와 호랑이 다음으로 거대한 개체라 들었다.
‘일단 위압감 하나는 제대로 먹고 들어가겠군.’
플로라 주위 학생들도 플로라의 마법수를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다가가지는 않았다.
플로라의 마법수가 황금색 눈동자를 빛내며 으르렁거렸기 때문이다.
“마틴 칸다크.”
“……네? 네.”
“이만 자리로 돌아가도록. 네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하, 하지만 저는…….”
마틴은 플로라가 마법수를 소환한 시점에서 휴고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미 자신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루드거에게 항의의 기색을 내비쳤다.
반강제적으로 한 일이라지만, 마틴은 자신이 한 일에 나름의 염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수업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네가 조금 전 나와 나누었던 대화는 내가 마법을 통해 전부 차단한 상태다. 학생들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몰라.”
“그, 그렇다 해도 선생님과 저는…… 알고 있잖아요.”
“내가 말인가?”
루드거는 곧바로 소리 차단 마법을 해제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마틴을 향해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군. 마틴 칸다크. 수업 때문에 꽤 피곤했던 모양인데, 가서 좀 쉬면서 마법수에 대한 감각을 깨우치도록.”
의도적으로 내비치는 말에 마틴은 눈을 크게 떴다.
마틴이 무어라 말하려는 것보다 먼저 루드거가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칸다크 가문의 일원으로서 마법수를 소환하지 못하면 억울하지 않겠나. 자리로 돌아가라.”
“……예.”
루드거는 꿈을 꾼 사람처럼 힘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가는 마틴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고개를 들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기획처장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루드거는 휴고의 세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총장이 시켜서는 아니다.
이미 휴고를 비롯한 귀족 파벌에 밉보인 이상, 적대적인 그들의 세력을 조금 깎아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부분에서 휴고의 약점을 잡아 그를 이용하였으니, 현재 귀족 파벌은 내부의 균열 때문에 전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균열이 간 조직 내부의 결속을 예전처럼 다지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나?’
아니면, 사람을 부리는 휴고의 카리스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났던 걸까.
아니다.
타고난 가문을 제외하고 자랑할 구석이 없는 휴고에게 지도자의 자질이 있을 리가.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눈치가 없는 사람은 또 아니다.
지금은 사릴 때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이 이런 공작을 벌인다고?
‘이전까지 얌전했다가 갑자기 움직이게 된 계기는, 결국 현장 학습에 있었던 테러 사건이지. 그리고 그때 총장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루드거의 머릿속에 정답이 도출됐다.
‘휴고 부르테그. 뒷배를 얻었군.’
그 뒷배라고 하면 아마 세오른 아카데미에 매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후원자일 것이다.
그것이 다수일지 개인일지는 모르겠지만, 휴고가 그자들과 손을 잡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세오른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싶은 휴고 입장에선 썩 내키지 않은 동맹이었겠지만.’
이미 자신으로 인해 총장파와 귀족파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휴고는 차라리 악마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원자가 내미는 손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거겠지.
‘어차피 내가 갖지 못하게 될 바에는, 외부의 세력을 끌어 오겠다, 이건가.’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권을 챙길 생각이리라.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라. 이런 부분에서는 참 상황을 판단하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간이란 말이지.’
휴고를 밀어주는 후원자들의 생각도 뻔했다.
세오른은 거대한 하나의 조직.
그런 곳인 만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많은 후원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후원자라고 다 같은 후원자가 아니다.
당연히 지원해 주는 금액에 따라 후원자도 급이 나뉜다.
‘기업으로 치면 대주주 같은 자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세오른을 단순한 호의 때문에 후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것은 엄연한 ‘투자’.
그리고 자신들이 한 투자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길 원한다.
바로, 세오른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지금까지 내부에서는 잡음이 많았지만, 외부 세력만큼은 확실히 막아 내던 세오른이었다. 하지만 이번 현장 학습 건으로 크게 균열이 가고 말았군.’
루드거는 상황이 참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차라리 일개 신입 교사의 입장이었더라면, 이런 걸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엄연히 세오른의 기획처장이 되었으며,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대체 누구의 짓이지? 황실은 아닐 테고. 마탑도 마찬가지고.’
황실은 우선 아일린 1황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휴고와 손을 잡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아일린 또한 세오른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걸 원했지만, 그 자존심 가득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조금 다른 방식을 취했을 테니까.
마탑은 반대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견제 때문에 힘들 거라 보았다.
신 마탑과 구 마탑, 그리고 학파연합회.
이들이 세오른에 지닌 입김은 서로 동등하다.
완벽하게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현장 학습 건을 생각하면 더 지원해 주지 못해 안달이 났을 정도.
셋 중 하나라도 허튼 마음을 먹으면 다른 두 조직이 방해까지 한다.
그렇다고 셋이서 합심해서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합심하는 척하면서, 서로 배신할 생각을 하겠지.
세 조직의 관계는, 어떤 의미로 그 루드거조차 깊게 신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앙숙이었다.
소거법으로 꽤나 큼지막한 요소를 잘라 냈음에도 아직 용의자들이 많이 남았다.
당장에 단서가 부족한 지금은 어쩔 수 없다며 루드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
그때 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플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공했어요.”
무엇을, 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리라.
플로라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미세하게 씰룩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루드거는 알 수 있었다.
“그래. 그 누구보다도 이른 시간 내에 성공했구나.”
“그야 당연하죠. 저는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으니까요.”
“너의 성공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겠지. 다만 너무 자만하지 말도록. 마법수를 소환하는 것은 그 과정도 어렵지만, 소환 이후부터가 진짜니까.”
즉, 플로라는 이제 출발선에 선 셈이었다.
플로라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루드거에게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했을 뿐.
“……알았어요.”
플로라는 그런 루드거가 괜히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서로 어느 정도 마음은 터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만의 착각이었을까?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 등을 돌리려던 그때, 루드거가 플로라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다.”
“네? 지금 뭐라고…….”
플로라가 뭐라고 물으려 했지만, 루드거는 이미 발걸음을 옮긴 뒤였다.
“보다시피 이런 방식으로 훈련을 하면 그 효율성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 너희들도 감을 잡아 가는 단계이니,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플로라의 성공이 오히려 주변 학생들에게 득이 되었다.
이 수업에 대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플로라가 보란 듯이 씻어 줬으니까.
물론, 아직 몇몇 학생들은 플로라는 한 학년 선배이고 천재니까 빨리 가능했던 거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분명 수업의 분위기가 한결 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학생들은 다시금 눈을 감으며 명상에 들어갔다.
누군가 성공을 했다는 사실이 희망을 불어넣어 준 덕분일까.
그 누구도 대충하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특히 마틴 칸다크는 누구보다도 자리를 오래 버티며 제일 열심히 했다.
그 노력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어, 어어? 마틴, 너!”
평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놀랍다는 시선으로 마틴을 응시했다.
그러나 마틴은 그런 친구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신비로운 생명체에게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통 하나보다 더 작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몸은 작고 짧으며 머리는 유난히 컸지만, 그렇기에 어딘가 귀여운 인상이 강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소녀는 투명한 눈망울로 마틴을 바라보며 주위를 배회했다.
“의인(擬人) 형태로군.”
그때 마틴의 성공을 보고 다가온 루드거가 그의 마법수를 보며 말했다.
“의인, 이요?”
“그래. 마법수는 짐승과 식물, 도구의 형태를 띠지만, 간혹 이렇게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존재도 더러 나오고는 하지.”
루드거는 마틴의 마법수를 유심히 관찰했다.
“보통은 도구 형태보다도 더 희귀한 케이스지. 인형술(人形術)을 가업으로 삼은 칸다크에 걸맞은 마법수일지도 모르겠군.”
“……저희 가문에 대해서 아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이야 기계 공학의 발달로 인형보다는 오토마톤이 발달했다 하지만, 한때 칸다크는 인형 제조에 있어서 따라갈 자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지.”
마틴은 루드거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이 단순히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마틴의 가문은 오토마톤과 증기 골렘의 발달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예전처럼 마력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것은 너무 구시대적인 일이었으니까.
마틴의 아버지는 그런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여러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변화라는 것은 상당히 큰 에너지와 자금을 필요로 한다.
쇠락해 가는 칸다크 가문에 그만한 자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걸 지원해 준 것이 부르테그 가문이었으며, 그래서 칸다크 가문은 부르테그에 큰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의인 형태 마법수라면, 무언가 특별한 점이 더 있는 건가요?”
“마법수의 능력은 겉모습이 아닌 사용자의 의지와 마법 성향에서 나온다. 다만 보통 희귀한 것이 아닌 만큼,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크겠지. 지금까지 의인 형태 마법수가 약했던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마틴은 표정이 밝아졌다.
어지간하면 좋은 말을 하지 않는 루드거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특이한 케이스가 분명해 보였다.
“너무 기뻐하지 마라. 마법수를 소환해도 그것을 얼마나 유지할지, 그리고 마법수의 능력을 얼마나 끌어올릴지는 순전히 마법사 본인의 노력에 따라 갈리니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마틴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이 이상은 잔소리할 필요도 없어 보여서, 루드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었다.
마틴의 성공은 학생들의 의지에 그야말로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플로라까지야 그녀가 워낙 재능이 출중하니 납득하지만,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마틴이 성공할 줄이야.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마법수를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루드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력을 소모하겠답시고 연마장을 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루드거도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다.
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마틴과 플로라가 성공한 이후 3일 뒤.
루드거의 특강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자신만의 마법수를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고작 보름 만에 이루어 낸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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