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6화 무속성 마력수 (1)
◈ 346화 무속성 마력수 (1)
마법수 소환 특강이 진행되고 있는 연마장.
평소와 다르게 연마장은 꽤 북적북적했다.
자리에 모인 학생들이 저마다 마법수를 하나씩 끼고 있어서였다.
‘설마 전부 다 성공할 줄이야.’
루드거는 학생들이 소환한 마법수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대부분 가장 흔하다는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수는 마법사의 마나에서 태어난 동반자이나 사역마.
마법사가 지닌 사역마라는 인식은, 기본적으로 키우는 동물에 미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남청색 재규어를 소환한 플로라.
그 옆의 셰릴 바그너의 어깨 위에는 자신의 머리색을 닮은 앵무새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학생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소요가 일었다.
그 중심에는 에렌디르가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녀의 한쪽 팔뚝에 위치한 마법수 때문이었다.
영롱한 빛을 내는 황금빛 독수리.
보기만 해도 고고하고 제왕의 품격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녀석은,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화려함이 있었다.
지금 소환한 마법수들 사이에서 겉모습만 놓고 본다면 독보적이었다.
루드거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마법수는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거늘.’
그 사실을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에렌디르가 소환한 마법수가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리라.
루드거는 에렌디르의 모습을 슬쩍 살폈다.
주위에서 평소와 다르게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것을 애써 티 내지 않으려 힘을 주고 있지만, 조금씩 뺨이 씰룩이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과연 저게 제국을 이끄는 황가의 핏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뭐, 지금은 즐기게 놔둘까.’
평소의 루드거였다면 마법수의 겉만 보고 좋아하지 말라며 가볍게 타박했을 것이다.
지금 그러지 않은 것은, 드발크 황성에서 에렌디르의 딱한 처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첫째 언니인 아일린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집요하게 괴롭힘당하기까지 했으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으리라.
‘정작 아일린 본인은 애정 표현이라고 말하는데.’
그 표현하는 방식이 과하고 뒤틀린 것이 문제였다.
평범한 사람에겐 귀엽다고 손가락으로 누르는 행동이, 햄스터에게는 자신의 몸을 뭉개는 충격이 될 수도 있다.
루드거는 지금 이 순간이라도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마음껏 만끽하라고 에렌디르를 가만히 놔두었다.
하지만 운명의 농간이 에렌디르를 놓아주고 싶지 않은 걸까.
학생들의 시선과 관심은, 곧이어 다른 학생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어, 어? 저건 뭐야?”
“마법수인데…… 검의 형태라고?”
학생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자신의 마법수를 가만히 응시하는 에이단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의 마법수와 다르게 에이단이 소환한 마법수는 도구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것도 한 자루의 날카로운 장검.
희미한 마력의 선으로 이루어진 검은 에이단의 앞에 가만히 떠 있었다.
학생들은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으로 에이단을 응시했다.
그 모습에 레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여간, 또 사람들 시선 모으는 데는 도가 텄어요.”
그렇게 말하는 레오의 어깨에는 그의 머리색과 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목을 두르듯 앉아 있었다.
레오 자신은 퍽이나 평범한 마법수를 소환했다 생각하며 테이시를 슬쩍 쳐다봤다.
테이시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에이단의 마법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테이시의 머리 위에는 해바라기 꽃이 피어올라 있었다.
식물 형상의 마법수인가.
평소 테이시의 모습을 생각하면, 해바라기라 하니 뭔가 참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평범한 해바라기는 아니다.
은은한 붉은 빛이 돌며, 꽃잎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테이시의 마법수도 생김새로 친다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실제로 테이시 본인도 자신이 소환한 마법수에 내심 뿌듯해했다.
이것으로 평소 자신을 무시했던 녀석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역할은 자신과 같이 다니는 에이단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마법수를…….”
“저, 테이시. 진정해. 마법수는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루드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에이단은 분해하는 테이시를 애써 진정시켰다.
“후우. 그래. 에이단 네 말이 맞아.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지. 그래도 도구 형태의 마법수는 흔하지 않다고 했잖아.”
“테이시의 마법수도 충분히 자랑할 만해. 진짜라니까?”
“……정말?”
에이단의 칭찬에 테이시는 조금이지만 마음이 풀어진 듯했다.
그러나 한층 밝아지려던 테이시의 표정은, 이오나를 보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그녀의 양팔에 채워진 건틀릿 때문이었다.
“어떻게…… 도구 형태의 마법수가 둘이나…….”
이오나의 마법수 또한 에이단과 마찬가지로 도구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테이시가 절망하고 있을 때, 레오는 이오나에게 다가가 말했다.
“마법수 멋지네.”
“아, 응. 고마워. 네 마법수도, 귀여워.”
“귀엽기는. 입에 발린 말 하지 않아도 돼.”
“진짜인데.”
그 일련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드거는 속으로 나지막이 감탄했다.
‘저 넷 중에서 무려 둘이나 도구 형상의 마법수를 소환한 것인가.’
의인 형상의 마법수를 소환한 마틴도 그렇고.
80명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특이한 마법수를 소환하면 그것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그 외에 다른 학생들은, 딱히 뭐 없군.’
대부분 동물 형상의 마법수였다.
새나 개, 고양이, 생쥐.
간혹 거북이나 물고기같이 눈에 띄는 마법수도 있었다.
‘그나마 특이한 걸 꼽으라면, 줄리아 플룸하트의 마법수인가.’
몇몇 학생들도 루드거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줄리아의 마법수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뛰어난 마법 재능과 속을 알 수 없는 미소, 타인이 쉽게 다가올 수 없게 하는 줄리아의 태도를 생각하면.
그녀가 소환하는 마법수는 비록 그것이 동물의 형상이라 하더라도 화려한 녀석이리라 생각했다.
공작새라거나 혹은 설산의 백색 호랑이 같은.
하지만 줄리아의 마법수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해파리라니. 영문을 모르겠군.’
새하얀 허공을 하늘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또 멀리서 보면 새하얀 의복을 입은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신비로운 분위기가, 얼핏 줄리아와 닮아 보이기도 했다.
그 밖에 다른 학생들은 식물 형상이 주를 이루었다.
‘의인 형상도 나왔고, 도구 형상도 2개나 나왔으니, 더는 놀랄 만한 건 없겠…….’
그렇게 생각하려던 루드거는 마지막 학생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그 시선의 끝에는 리네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소환한 마법수가.
‘저건, 뭐지?’
루드거가 그 마법수를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의문이었다.
루드거는 마법수를 전공하지 않았다.
당연히 전문가와 비교하면, 그 지식의 깊이와 넓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란데르의 철저한 교육으로 루드거는, 전문가에는 미치지 못해도 일반 마법사들은 모르는 여러 지식을 탐독할 수 있었다.
그런 루드거로서도 리네의 마법수 같은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저런 걸 뭐라고 하지? 도형?’
그것은 동물도, 식물도, 도구도, 의인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떤 마법수도 보인 적 없는 형태였다.
허공에 떠오른 그것은 3차원적인 도형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반투명한 도형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는데, 루드거는 이성을 되찾은 뒤에야 저 모습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저건, 다면체다.’
그것도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준정다면체.
전체적인 형상은 동그란 형태지만, 분명 십이면체를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면체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는 거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정육면체에서 육팔면체로, 거기서 또 정팔면체에서 십이면체로.
이러한 형태의 마법수를 소환한 본인도 놀랐는지, 리네가 루드거를 돌아봤다.
“저, 선생님. 제 마법수가…….”
리네가 그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리네의 마법수에게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도형의 형상을 한 마법수가 바르르 떨더니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챙그랑!’ 하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무언가 깨진 것일까?
그런 의문이 채 풀리기도 전에 주위 마법수들이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왜 이래?”
“지, 진정해! 가만히 있으라니까?”
“으악! 제어가 안 돼!”
이 자리에 모인 마법수들은 사람으로 치면 갓 태어난 아이나 다름없었다.
리네의 마법수가 뿜어낸 알 수 없는 파장에 풋내기 마법수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불현듯 루드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베테랑 마법사가 소환한 마법수라도, 여기서는 놀라지 않았을까 하고.
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법수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주변은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
루드거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마법수를 소환했다.
[아테르 녹터누스]
녀석은 루드거의 의지를 느끼고는 의복의 형태가 아닌 까마귀의 형상으로 그의 어깨 위에 나타났다.
“부탁하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기다란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아테르 녹터누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의 형상이 무너지며 루드거의 지팡이에 스며들었다.
마법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마법수의 주인이다.
하지만 소환한 당사자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그때는 외부의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마법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같은 마법수가 가장 효과적이었다.
쿵.
아테르 녹터누스를 머금은 지팡이가 연마장 바닥을 찍었다.
지팡이 끝에서 검은 그림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깨끗한 담수에 새까만 물감을 통째로 부은 것처럼, 검은 웅덩이가 루드거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졌다.
루드거는 지팡이에 깃든 아테르 녹터누스에게 마력을 더욱 불어넣었다.
마력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그림자는 이제야 만족하며 자신의 덩치를 더욱 크게 불렸다.
삽시간에 새까만 그림자가 연마장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날뛰기 시작하려던 마법수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자신보다 더 강력한 상위 마법수의 존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포식자의 앞에서 공포에 질린 것처럼, 갓 태어난 마법수들은 힘의 본능 앞에서 무력했다.
일부 마법수들은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역소환이 되기까지 했다.
“마법수들이 얌전해졌어!”
“어, 어어? 이 검은 건 또 뭐야.”
당황하던 학생들도 그제야 루드거가 무언가 조치를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에.”
플로라는 루드거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그 옆에서 그녀의 마법수가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그르렁거렸다.
이 자리에는 80마리의 마법수가 존재했다.
그 마법수 중 70마리가 넘는 숫자가 패닉에 질려 난동을 피울 뻔했다.
자칫 큰 사태로 번질지도 모르는 일을, 루드거는 단 혼자서의 힘으로 억누른 것이었다.
‘게다가 이 향기는…….’
플로라가 그림자에게서 풍겨 오는 풍미 깊은, 그러면서도 익숙한 냄새를 느낄 무렵.
고개를 들어 올린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전부. 가만히 있어라.”
루드거가 흉흉한 시선으로 좌중을 쓱 훑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마법수들은 루드거의 눈빛이 닿기 무섭게 자신의 주인의 등 뒤로 숨어 버렸다.
‘어우, 무슨 눈빛이.’
‘기세만으로 마법수를 겁먹게 한다고?’
‘그보다 이 검은 그림자, 루드거 선생님의 마법수야?’
학생들은 처음으로 루드거가 보여 준 마법수의 위용에 경악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마법수를 이렇게 거대하게 만들어 주변을 뒤덮을 수 있을까.
그것도 엄청나게 넓은 연마장을 절반 가까이 말이다.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루드거 선생님의 실력?’
‘게다가 이거, 아직 전력이 아닌 거 아니야?’
이미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놀랄 것이 또 있었다니.
학생들이 루드거를 향해 경외 어린 감정을 품었다.
정작 당사자인 루드거로서는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어지럽군.’
아테르 녹터누스를 본래 형상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다른 형태로 바꾼 것도 모자라.
녀석에게 마력을 잔뜩 불어넣어 마법수들을 겁먹게 했다.
이 단순한 행동 자체만으로도 루드거는 실시간으로 막대한 마나를 소모해야 했다.
이 마나가 다 소모되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 했다.
“리네.”
루드거가 리네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 정체불명의 마법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다행인지 리네의 마법수는 처음 이상 행동을 보인 이후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아테르 녹터누스의 존재감에 겁에 질린 걸지도 몰랐다.
뭐가 어찌 됐든 다행이라 생각하려던 그때.
리네가 루드거를 돌아봤다.
“선생님.”
그녀의 눈동자는 루드거의 봉인 마법을 뚫고 찬란한 빛을 품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한쪽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왜, 제게 그런 감정을 보이시는 거예요?”
“…….”
루드거가 뭐라고 하려던 그때, 리네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픽 쓰러졌다.
주인이 의식을 잃자 특이한 마법수 또한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루드거는 리네가 쓰러지기 전, 그림자를 불러일으켜 그녀의 몸을 받쳐 주었다.
상태를 살펴보니 호흡도 고르고 안색도 괜찮다.
단순한 기절이었다.
“…….”
루드거는 사방으로 흩뿌렸던 그림자를 다시 회수했다.
휘오오오.
시간을 역행하듯 검은 그림자가 루드거의 지팡이 끝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림자는 지팡이의 끝에서 까마귀의 형상으로 변했다.
빨려 들어가는 그림자를 좇던 모두의 시선이 루드거에게 집중되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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