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48화 울타리 너머의 승냥이 (1)

 ◈ 348화 울타리 너머의 승냥이 (1)




루드거의 마법수 특강은 세오른에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특강에 참여한 학생들 전원, 마법수 소환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언젠가 걸음마를 떼게 되듯, 마법사가 마법수를 소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된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오른에서 마법수의 소환은 3학년이 돼야 배운다.




그 과정도 최소 반년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상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루드거의 특강은 그것을 몇 배 이상이나 단축했다.




물론 그만큼 수업 초창기에 과한 강도 때문에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기는 했다.




평소에 운동과 담쌓고 지내던 학생들이 흙과 땀범벅이 되었으니, [아카식 레코드]에도 악평이 도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을 빌미로 루드거의 특강은 실패할 거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것을 뒤에서 부추기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소문은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대체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지?’




소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로 뒤집히자, 파급력도 그만큼 컸다.




휴고 부르테그는 개인 집무실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의도적으로 루드거의 수업을 망치려 들었는데, 루드거는 오히려 보란 듯이 수업을 성공리에 마쳤다.




휴고는 그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성공을 했으면 한 번쯤은 실패해도 되지 않나?




대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찔러 댔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저 야만스러운 수업에 지체 높은 귀족들의 자제들마저 적응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아.’




마법수를 소환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킨다면, 가장 먼저 반발하는 것은 귀족 학생들이다.




평생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대접만 받으며 살아온 아이들이다.




바닥을 기는 지렁이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여야만 했다.




그런 새들이 흙투성이가 되어 땅 위를 달리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고?




그 수업에 3황녀도 있고, 루모스 공작가의 자녀도 있으며, 마탑의 기재인 줄리아도 있었다.




그중 누구도 루드거의 수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루드거 첼리시, 그 인간은 무슨 최면술이라도 배운 건가?




그래. 백번 양보해서 거기까진 이해한다.




그래서 일부러 몇몇 학생이 루드거의 수업에서 깽판을 치게끔 압박을 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루드거 첼리시, 그 몰락 귀족에게 정말 무언가 있단 말인가?




휴고는 학생들이 루드거를 진심으로 따르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그에게 교육이란 누군가를 진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 존속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휴고에게 닥쳐온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지금의 상황이었다.




‘그분께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이제 어쩌면 좋지?’




루드거 첼리시.




그놈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안 그래도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맞춰 놓은 균형을 단번에 무너뜨린 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자리를 꿰차고, 귀족 파벌에 씻을 수 없는 균열을 남긴 당사자.




귀족 파벌의 꼬리를 자신의 손으로 잘라 내야 했던 수모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일은 성공해야 했는데.




‘그분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으니 휴고로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휴고의 파벌은 루드거가 기획처장의 자리에 오른 이후로 세가 기울었다.




신뢰를 잃은 자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도 휴고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제법 있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




하지만 이미 권력의 맛을 본 휴고는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한번 맛본 권력의 달콤함은 뇌에 강한 자극을 준다.




지나치게 높아진 역치는 결국 사람의 정신을 망가뜨린다.




휴고도 그랬다.




그는 무언가 타협을 하거나 혹은 손에 쥔 것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잃었다면 그만큼 되찾아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을 거머쥐어야 속이 풀렸다.




그래서 휴고는 외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바로 세오른에 매년 거대한 자금을 지원해 주는 큰손.




그들과 접촉한 것이다.




큰손은 휴고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에게도 총장이 세오른의 권력을 쥐고 강하게 나간다면 개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을 대신 수행해 줄 창구가 필요했고, 휴고는 그 일에 딱 적합했다.




그때 휴고의 앞에 놓인 수정구에 불빛이 일렁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수정구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는 애써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허. 갑자기 이렇게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패했다 들었네.]




다짜고짜 날아오는 말에 휴고는 말문이 턱 막혔다.




긴장감 때문에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집무실이 무거운 고요로 가득 찼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




“그, 완전한 실패는 아닙니다. 아직 기간이 남아 있으니…….”




[내게도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있다네. 휴고 선생. 당신 말고도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많다는 소리지.]




수정구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번 일이 실패한 것에 대해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하다.




사실 처음부터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거라면?




한때 한 파벌의 수장이었던 휴고다.




누군가의 아래에 들어가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자존심을 버려야지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부하를 자처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시작부터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아, 아닙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러라고 내가 그쪽을 뒤에서 지원해 주고자 돈줄을 댄 것이 아니니까.]




“그, 그렇죠.”




[하지만 곤란하게 됐군. 루드거 첼리시의 수업은 성공했고, 내부에서 조금씩 생기던 불만은 자취를 감췄으니 말이니.]




휴고나 큰손에게 있어서 이번 현장 학습 테러 사건은 큰 기회였다.




세오른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학생 중 사망자는 없어도 많은 학생이 다쳤다.




그리고 총장은 무리하게 학사 과정을 조율하려고 일을 벌이고 있다.




이보다 더한 기회가 어디에 있을까.




[본래라면 외부에서 압박을 가하면서 안쪽을 동시에 흔들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방식을 바꿔야겠군.]




“방식을 바꾼다고 하심은…….”




[뭐 크게 있겠나. 지원금을 삭감하는 것으로 협박해야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휴고 부르테그 선생. 이번 일에 투자자가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그 말에 휴고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큰 손은 한 명이지만, 그의 뜻에 동조하는 투자자들은 훨씬 많았다.




애초에 세오른은 고작 한 명이 흔든다고 해서 흔들리는 곳이 아니다.




큰손의 투자자?




그런 자가 1명 정도면 얼마든지 바꿔도 상관없다.




세오른에 돈을 대고 싶어 하는 조직은 많았으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총장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예로부터 세오른은 귀족들을 위한 배움의 장이었다.




특권 계층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징검다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평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신분의 고하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것이 지금의 총장인 엘리사 윌로우다.




그만큼 그녀의 수완은 탁월하다 못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인해 세오른이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엘리사는 기자들을 매수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자신이 건재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의 투자자들이 공격을 가한다고 해서 과연 눈 하나 깜짝할까?




[이런. 휴고 선생. 아무래도 내 말을 잘못 들은 거 같군. 내가 뭐랬지? 이 일은 나 혼자가 아니라고.]




“예.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휴고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설마 더 있는 겁니까?”




더 있냐고 하는 말은 비슷한 규모의 큰손이 하나 더 있냐는 물음이었다.




큰손 하나와 작은 손 여럿은 빠져나가도 큰 타격이 없다.




하지만 큰 손이 둘. 혹은 또 다른 지원 세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답인지, 과연 수정구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세오른의 투자자로서 상당한 이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투자자들은 세오른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혜택을 받는다.




주는 것이 있는 만큼 세오른 또한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이다.




[휴고 선생. 투자라는 것은 말이야, 결국엔 다 돌려받기 위한 행동이야.]




“그건, 그렇죠.”




[세오른에 거금을 투자한 만큼 그만한 이익을 얻는다. 그거라면 대단한 투자자의 소리를 듣기 좋지. 그렇다면 위대한 투자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예? 그건 저도 잘…….”




휴고라고 투자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과 비교하면 많이 모자랐기에 대답을 아꼈다.




[바로 집어삼키는 거야.]




큰손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서로 주고받으며 이익을 도모한다. 좋지. 이상적이네. 하지만 너무 안일해. 진정으로 대단한 투자자가 되려면, 오히려 상대방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만 있어야 한다는 거야.]




휴고는 속으로 기함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지금, 세오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을 쥐락펴락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하지만 손을 잡고 일을 벌인다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당장에 세오른을 집어삼키지는 못하겠지만, 서서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한 번 뚫는 것은 어렵지만, 길을 터놓는 순간 그것을 점차 크게 벌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만간 재미있는 소식이 하나 들릴 걸세. 그때는, 안쪽에서 잘 흔들어 주길 바라지.]




“예. 알겠습니다.”




단둘만의 거래는 고요하게 진행됐다.




* * *




루드거는 오랜만에 같은 동료 교사들끼리 식사를 나눴다.




“루드거 선생님, 요즘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네요.”




메릴다의 장난스러운 말에 루드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습니다.”




“마법수 소환 특강은 어떤가요? 할 만해요?”




“예.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겸손도 하셔라. 학생들이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되는 거 아니잖아요? 그쵸? 셀리나 선생님?”




“네?”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밥을 깨작깨작 먹던 셀리나가 놀라서 어깨를 움찔 떨었다.




메릴다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셀리나 선생님도 정령 소환을 가르치잖아요? 같은 소환 계열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그거요…….”




셀리나도 그제야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루드거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깨달았다.




그때 잠자코 있던 브뤼노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 소식 들었습니까? 최근 세오른 외부가 시끄럽다고 하더군요.”




무언가를 말하려던 셀리나는 다시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브뤼노가 이렇게 주제를 먼저 꺼내는 일은 흔치 않아서였다.




그렇기에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관심이 가고 말았다.




“외부가 시끄럽다니요?”




“이번 현장 학습 테러 사건 때문에 투자자들 상당수가 발을 빼려고 한다고 합니다.”




“네? 투자자들이요?”




“그거 때문에 올 하반기 예산 편성이나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예상 편성이라고?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세오른의 교사들은 수업 내용에 관련해서 일정 금액 이상의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령학을 가르치는 셀리나는 괜찮겠지만, 원자잿값이 들어가는 골렘을 다루는 브뤼노나 저주와 해주를 가르치는 메릴다에겐 꽤 무섭게 다가왔다.




그밖에도 약제학이나 마법을 부여할 물건이 필요한 인챈트 등.




돈이 필요한 수업은 넘치고 넘쳤다.




‘예산 문제라고?’




루드거는 기획처에 돌아가면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 * *




식사를 끝마친 루드거는 기획처에 들르기 전 먼저 총장실에 방문했다.




총장이 호출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들었죠?”




“투자자들 말씀입니까?”




엘리사는 다짜고짜 물었고, 루드거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 말에 엘리사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벌어진 일을 빌미로 어떻게든 물어뜯으려는 하이에나들이 많아져서 곤란하단 말이죠.”




“무시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이번에는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대형 투자자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손을 잡고 압박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무려 셋이나 된단 말인가.




과연, 그러면 예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은 메우기 힘들 것이다.




“요구가 뭡니까?”




“세오른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더라고요.”




“정신이 나갔군요.”




“맞아요.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들은 손을 떼겠다고 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아무리 총장이 뛰어난 초인이어도 돈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루드거를 부른 이유도 해결 방안을 물색해 보자는 것보다는, 기획처장이니까 일단 알아 두라는 의미가 강했다.




“들어주실 겁니까?”




“일단 시간을 두고 타협을 봐야겠죠. 그쪽이 이렇게 작정하고 크게 나온 이상,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체할 다른 투자자들이 당장에 있지 않은 이상에야…….”




“흠.”




루드거는 잠시 고민해 보았다.




답은 금방 나왔다.




“무시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투자자를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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