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1화 란팔츠 (2)

 ◈ 351화 란팔츠 (2)




루드거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모르도는 뱀 앞에 선 쥐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무언가를 따지려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고가 정지한 것이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루드거가 마력을 거두자 그제야 모르도는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루드거는 싸늘한 시선으로 모르도를 바라보았다.




그거 마력을 거둔 것은 일단 대화를 더 나눌 필요성이 있어서지, 동정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모르도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란팔츠를 무시하고도 괜찮으리라 생각하는 건가!”




“이미 대체할 후원자를 구했는데, 우리가 굳이 그쪽에 목을 맬 필요가 있어 보이나?”




“지금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과연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이제 막 급하게 성장한 기업이, 오랜 세월을 버텨 온 우리 기업의 역할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보나?”




모르도는 일종의 확신을 품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그 로열 스트리트의 오너가 란팔츠를 대신해서 후원금을 다 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러지는 못할 거라고.




알아서 고꾸라질 것이다.




버텨도 상관없었다.




이쪽이 고꾸라지게 만들 수 있으니까.




감히 란팔츠의 먹이를 탐내는 놈들에겐 본보기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 노골적인 속내를 읽지 못할 루드거가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대기업 란팔츠. 철, 석탄, 구리, 금 같은 광물 산업부터 해서 증기 기관과 석유 원료를 바탕으로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정유 기업이지. 이곳저곳 문어발을 뻗은 루크 사와는 달리 한 우물을 판 케이스고.”




루드거의 입에서 자신의 기업 이야기가 나오자 모르도는 그럼 그렇지 하고 의기양양했다.




“그래. 제국을 넘어 세계적인 대기업인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야 알겠나?”




“그래 봤자 마법과 관련된 세오른과는 전혀 다른 곳이지.”




“뭘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란팔츠 사는 마석과 관련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래 봤자 로쉔에 비할 바는 아니지.”




“시작을 마법과 밀접하게 연관된 로쉔과 비교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 뒤를 바짝 추적하고 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나? 성장력에 있어서 란팔츠가 훨씬 더 뛰어나다는 말이지.”




그 말에 루드거가 조소를 머금었다.




“나를 바보로 아나? 애초에 란팔츠가 시작한 마법 자원 사업은 전부 세오른 덕분이었을 텐데.”




루드거의 입에서 란팔츠 사의 과거가 흘러나오자 모르도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란팔츠는 루드거의 말대로 정유 기업이다.




정유 기업은 석유와 석탄을 바탕으로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곳.




순수한 산업의 시대였다면 란팔츠는 대단한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발전한 과학과 쌍벽을 이루는 마법이 존재했다.




마법과 관련된 자원에서 필수 불가결한 에너지 자원인 [마령액(魔靈液)].




마석을 제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마령액은 마법 사업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였다.




란팔츠는 어떻게든 마법 사업에 연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기에 수십 년 전, 전전대 총장에게 막대한 로비를 넣음으로써 세오른의 후원자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후원자라는 명목으로 세오른과 손을 잡고, 세오른에서 나오는 특허와 일부 마법 사업권을 자신들이 가져간 것이다.




그 덕분에 란팔츠는 당시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라이벌 기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들을 찍어 눌러 인수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부풀려 대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세오른의 덕을 받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놈들이, 이제 와서 세오른을 배신하고 오히려 집어삼키겠다?”




“……도움을 받았다지만, 실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




“세월이 흐르니 이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는지도 모두 까먹은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어디 그 잘난 실력으로 살아남아 보지 그러나.”




“우리 란팔츠를 무시하지 마라. 이미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마법 지식에 대한 노하우만으로도, 우리 마법 사업은 건재해.”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과연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그때도 과연 건재할까?”




모르도는 루드거를 향해서 했던 말이 자신에게 똑같이 돌아오는 것에 아연해졌다.




“마법은 실시간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지. 마치 과학처럼.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지. 과연 세오른의 손을 떠난 란팔츠는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건…….”




“세오른은 매년 새로운 마법 아이템과 사업, 특허를 만들 것이다. 옛날의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하겠지.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은, 앞으로 들어올 후원자들을 위한 선물이 될 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란팔츠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쌓아 온 것으로 자리를 지키겠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란팔츠는 시대의 저편으로 쓸려 나가리라.




“애, 애초에 우리가 아니었다면, 그 기술을 제대로 활용이라도 했겠나! 거리에서 서비스업이나 종사하는 나부랭이들이 마법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질척이는 석유나 만지던 놈들도 이 높은 자리까지 오르게 했는데, 다른 자들이라고 그러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지. 아니, 오히려 확신이 드는군.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하, 하지만…….”




“구질구질하군.”




애초에 세오른은 란팔츠의 후원을 받아 성장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란팔츠가 세오른을 후원을 빌미로 많은 이권을 타간 것이다.




하지만 란팔츠는 그 고마움을 잊었다.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존중을 벗어던졌다.




동등한 거래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관계를, 한순간의 욕심 때문에 파기해 버린 것이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란팔츠의 행동은, 기업적인 측면에서는 옳았으니까.




더 많은 이윤, 더 큰 사업의 확장.




돈을 더 벌 기회를 마다하는 기업은 없다.




그렇기에 세오른이 내외적으로 흔들리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해 주는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실패를 했으면, 그 리스크도 짊어져야지. 대기업이라는 작자들이 그런 것도 잊었나.”




“…….”




“그러니 당장에 우릴 협박하느니 억지를 부리느니, 그런 되지도 않는 행동은 집어치워. 그보다는 내일 당장 떨어질 너희 회사의 주가를 걱정하도록.”




모르도는 식은땀을 흘렸다.




안 그래도 이번 후원자 탈퇴 건으로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다.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이미 저 물밑에서는 소문이 알음알음 번져 나가고 있었다.




그 소문이 완전히 수면 위로 부상하는 순간, 란팔츠의 주가는 곤두박질칠 것이다.




기업의 핵심 비전 사업인 마법 사업이 완전히 날아가게 생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미 둑에 금은 갔다.




그것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보수 공사를 해야 했지만.




란팔츠는 그 마지막 기회를 지금 이 순간 놓치고 말았다.




“돌아가서 회장에게 그대로 전해라. 본인이 직접 와서 무릎을 꿇고 빌어도 우리 입장은 바뀌지 않는다고.”




“이, 이……!”




“화를 내고 보복을 해도 상관없다. 다만 그때는 더 큰 손해를 감안해야 할 거다.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원인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것보다는, 당장에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물론 란팔츠 기업이 지금까지 쌓아 온 걸 생각하면, 화재를 어떻게든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저택의 절반은 날아가게 될 것이다.




“사업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지. 현실의 화재는 집 자체를 태워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지만, 사업은 타 버린 잔해를 누군가가 주워 가서 성장의 기회로 삼거든.”




“…….”




“경쟁사를 걱정하는 것이 어떤가 싶군. 평소에 준비해 둔 것이 많다면 모르겠는데, 그쪽이 하는 행동을 보면 여간 적이 많은 것이 아니겠고. 상대도 철저한 준비를 갖추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모르도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루드거가 이미 이쪽의 입장을 모두 꿰뚫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바로 머리를 숙여도 부족했는데,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너무 오기를 부리고 말았다.




“제, 제발 기회를……!”




“기회? 기회 같은 소리 하고 있군. 너희가 학생들을 볼모로 삼아서 우리를 협박했다는 것까지 직접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




“알아들었으면, 딱 한 마디만 더 하지. 꺼져.”




결국, 모르도는 이렇다 할 항변을 하지 못한 채 집무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떠나가는 그의 발걸음은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동정하지 않았다.




란팔츠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썩어도 이 자리까지 올라온 놈들이다.




이런 상황을 대체하기 위한 매뉴얼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잘만 처신한다면, 최소한 절반 이상은 지켜 내겠지.’




그것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을 때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걸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거든.’




이미 한스와 비올레타에게 언질을 넣어 두었다.




조만간 란팔츠 사에 큰 재난이 닥칠 테니,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자금을 총동원해서 공매도를 때리라고.




놈들의 주가가 곤두박질을 치는 상황에서, 로열 스트리트가 벌어들인 자금을 총동원한다면.




난쟁이의 돌팔매로도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다.




‘불안의 씨앗은 남겨 놓으면 안 되지.’




세오른의 견고한 성벽에 금이 가자 그걸 약점 삼아 배신한 놈들이다.




그런 기업이 이번 위기를 수습하도록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밖에서 계속 그렇게 기다릴 건가?”




루드거가 그렇게 말하자 문밖에서 놀라는 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루드거는 새로운 손님의 존재를 계속 감지하고 있었다.




란팔츠에서 온 모르도와 대화를 나누던 그때부터 말이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플로라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알고 있었어요?”




“오히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구나.”




플로라는 불현듯 이와 비슷한 과거 일들을 떠올렸다.




그걸 긍정하고 싶지 않아서 플로라는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방금 그 사람……. 외부에서 온 손님이었죠?”




“그래.”




“그,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다 듣게 됐는데요.”




루드거는 그런 플로라를 슬쩍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차피 저쪽이 소리를 너무 질러서,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렸을 거다. 그걸 탓할 생각은 없다.”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 아니었어요?”




“저들 입장에서야 그러겠지. 우리는 엄연히 피해자. 놈들의 만행이 더 널리 퍼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플로라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루드거가 넌지시 물었다.




“놀랐나?”




“네. 이런 일까지는 하고 계신 줄은 몰랐거든요.”




그야 그럴 것이다.




학생들에게 세오른은 가르침을 받는 장소일 뿐.




주어진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 뒤에 존재하는 암투에 눈이 갈 리가 있나.




“몰라도 상관없다. 이런 건 어른의 세계니까.”




루드거의 말에 약간 자존심이 상했는지 플로라가 쀼루퉁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어른이에요.”




“어른은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인정은 필요하지 않거든요.”




“인정을 바라지 않는 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지.”




“…….”




반박할 수 없었다.




루드거는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플로라의 표정을 슬쩍 살피곤 입을 열었다.




“굳이 어른이 되겠다고 억지 부릴 필요는 없다. 순수한 학생 시절이 나중에 가면 더 소중한 법이니까. 그러니 지금을 만끽해라. 후회하지 말고.”




“왜죠? 어른이 되면 더는 그렇게 될 수 없어서요?”




“세상을 알게 되면, 사람은 더는 순수해질 수 없거든.”




그 말에 플로라는 조금 전 나갔던 모르도를 떠올렸다.




탐욕에 눈이 멀어 고함을 치던 중년의 사내를.




“……저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왜냐면, 보통은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늘어나고 지식이 쌓이니까요. 더 의젓해지고 배려심이 생길 줄 알았죠.”




플로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힐끔힐끔 루드거를 살폈다.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어른이 저기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작 루드거는 플로라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어른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야.”




“왜요?”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니까. 그냥 그 사람들도 어쩌다 보니 된 것에 불과해.”




사람은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다.




오히려 고집만 더 늘어날 뿐이다.




“선생님도 그런가요?”




“그래.”




루드거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또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른 취급을 받고 있을 뿐.




루드거는 아직도 자신이 훌륭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야. 어떤 사람이 되냐는 거지.”




어딘가 아련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플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기획처까지 따로 온 거라면, 내게만 긴히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




아, 맞다.




자기도 모르게 깜빡하고 만 플로라는 잠시 심호흡했다.




묘하게 몸이 경직된 반응에서 그녀가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루드거는 가만히 플로라를 기다려 주었다.




“저희 집안에서 무언가를 꾸민 거 같아요.”




“무언가를?”




“네. 특히 이번에 세오른과 관련이 있는 사태도, 루모스 가문과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 말에 루드거는 양손에 턱을 괴며 자세를 달리했다.




“더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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