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2화 음흉한 산양 (1)
◈ 352화 음흉한 산양 (1)
플로라가 루드거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모스 가문과 관련된 일이다.
원래라면 플로라는 루모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관심을 끊었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러 무시했겠지.
자신의 가문이라 하더라도 허울뿐인 가문이다.
엮일 경우 피곤해지는 건 그녀만 될 테니까.
하지만 세오른, 아니 루드거 선생님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저도 잘 몰랐어요. 제가 이야기를 들은 것도 셰릴이 말해 줘서 알았거든요.”
“셰릴 바그너 말인가?”
“예. 바그너 가문이 어디인지는, 루드거 선생님도 알고 계시죠?”
루드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로부터 루모스 가문을 모셔 온 가신 가문이라 들었다.”
“셰릴은 바그너 가문에서 유일하게 제게 다가온 친구예요.”
바그너 가문은 루모스 가문의 사람들을 섬기지만, 플로라는 경우가 달랐다.
가문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가신 가문에서 그녀를 지원해 줄 리가 없었다.
플로라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셰릴이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빠도, 동생도 아닌 자신에게 친구가 되자고 다가온 셰릴.
그녀는 플로라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루모스 가문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 온 것도 셰릴의 공이었다.
“셰릴이 알려 줬어요. 저희 가문에서 최근 여러 기업의 총수들과 만났다고요.”
“귀족 가문의 가주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나.”
“그렇겠죠. 높으신 사람들이 친분을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니까요.”
당장 귀족들이 개최하는 연회장만 가더라도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온다.
의원, 유명 배우, 백만장자 사업가, 귀족 등등.
오히려 돈이 많은 기업은 어지간한 귀족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다.
그런 자들이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하나인 루모스와 친분을 지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만났던 사람들 전부가, 세오른에 돈줄을 대고 있던 사람들이라면요?”
플로라의 말에 루드거의 눈동자에 이채가 맴돌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우연은 흔치 않겠군.”
“게다가 만남을 가졌던 게, 이번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신빙성이 더 높아지지 않나요?”
플로라는 거의 확신에 찬 말투였다.
루드거도 그 말을 마냥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헛소문이라 하기엔 소문의 출처가 셰릴 바그너다.
‘대체 왜 루모스의 가신 가문이면서 루모스에 버림받은 플로라를 저렇게 신경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문의 진위성은 믿을 수 있다.’
셰릴은 세오른의 학생 중에서도 상당한 정보통을 자랑했다.
살갑고, 잘 웃으며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는 셰릴은 대부분 사람과 두루두루 친했다.
그것은 같은 동급생에서 그치지 않았다.
선배, 후배, 세오른의 사용인. 거기에 더해 교사들까지도.
셰릴은 플로라와 친하지만, 그녀 외에도 많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다양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세디나나 한스와는 다른 의미로 뛰어난 정보통이라 볼 수 있겠어.’
세디나와 한스는 개인이 지닌 마법과 특성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일을 한다.
한스는 짐승과 의사소통이 되는 체질.
세디나는 종이 마법.
하지만 셰릴은 달랐다.
그녀는 어떠한 마법적 특성도, 타고난 체질과 재능도 없이 순수하게 인맥으로 정보를 끌어모았다.
루드거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끼리 맞물리면서 관계를 구축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인 고역이다.
“그래. 내게 이런 소식을 알려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알겠다. 다만 지금 네 행동을 칭찬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플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칭찬받으리라 생각했는데, 루드거의 반응이 기대와는 달랐던 것이다
“……왜요?
“플로라. 네가 무슨 생각으로 찾아왔는지는 잘 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어. 네 행동은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제 가문의 일이라서 그런가요?”
“그래.”
플로라는 루모스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는 루모스의 사람이다.
“플로라. 네 행동은 너무 안일하다.”
플로라가 지금 한 행동은 어떻게 보면 가문을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
혹시라도 이 소식이 케이든 루모스의 귀에 들어간다면 플로라가 위험해진다.
케이든과 만난 것은 마법제전 때 한 번 마주한 것이 전부였지만.
루드거는 케이든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지금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루드거의 질책과 다르게 플로라는 살짝이지만 기쁜 기색이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고양이 같은 은은한 미소가 올라 있었다.
“플로라. 이번 건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네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아니요. 이것도 제 일이에요. 왜냐면 저희 가문에서 벌인 일이니까요.”
“네 행동은 네 가문을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배신이 어디 있어요?”
플로라는 당차게 말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이런 말을 입에 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플로라는 변했다.
플로라 본인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루드거는 그렇게 느꼈다.
“게다가 루드거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가문에서 받는 취급을요.”
“……하지만 반대로 너는 묵인할 수 있었다. 루모스 가문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가 태어난 곳이고, 자라 온 곳이니까. 못 본 척, 모르는 척 넘겨도 됐을 일이었어.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을 거다.”
“사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할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플로라는 작은 한숨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야 그렇잖아요. 가문에서 벌인 일이지만, 저를 버리다시피 방치한 곳인데. 그쪽이 뭘 하더라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오히려 신경 쓰는 것이 싫고요.”
“그런데 왜?”
“그래선 안 된다고 선생님이 가르쳤으니까요.”
“……내가 말인가?”
루드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플로라에게 그런 말을 해 준 기억이 없었다.
“직접 말씀은 안 해 줬지만, 행동으로 보여 줬잖아요. 선생님은 그렇게 느끼지 않으셔도, 그걸 본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걸요.”
“플로라…….”
“제 걱정을 해 주시는 것은 기쁘지만, 이럴 때는 그런 다그치는 말보다는 따로 할 말이 있잖아요?”
“따로 할 말?”
루드거가 정말로 몰라서 묻자 플로라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재촉하듯 말했다.
“고맙다고 해 주셔야죠.”
허.
플로라의 뻔뻔하기까지 한 말에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쪽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플로라의 눈빛은 전혀 장난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구나.”
“성장한 거죠. 누구 덕분에 말이죠.”
루드거는 자신이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신경 써 줘서 고맙구나.”
“뭐예요 그게. 진심이 안 느껴지잖아요. 완전히 엎드려 절 받기네.”
“도움이 됐다는 말은 진심이다.”
“그러면 부탁 하나만 드려도 돼요?”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루드거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걸 노린 건가?
“별거 아니에요. 그냥, 루드거 선생님의 마법수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내 마법수를?”
“네. 저도 이제 마법수를 소환했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의 마법수를 보면 혹시라도 뭔가 감을 잡을지도 몰라서요.”
“…….”
“안 되나요?”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안 될 것은 없었기에 플로라의 바람대로 마법수를 소환했다.
[아테르 녹터누스]
루드거의 어깨 위로 그림자로 이루어진 까마귀가 나타났다.
까마귀는 붉은 눈동자로 플로라를 빤히 응시했다가 이내 루드거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다른 여자냐?
루드거는 자기 마법수의 시선을 대놓고 무시했다.
플로라는 루드거가 소환한 마법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두 눈으로 마력의 색을 보았고, 후각은 마력의 잔향을 훑었다.
다시 맡아 보니 플로라는 자신이 착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이 향기.
이것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드거는 그날 밤, 침묵의 숲에서 몰래 움직였던 적이 있었다.
“이제 됐나?”
“네. 됐어요.”
하지만 플로라는 그걸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뭔가 감이 오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바쁘신데 죄송했어요. 이만 가 볼게요.”
플로라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아온 손님이 떠나자 루드거는 다시 업무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다음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 * *
루모스 공작령은 제국의 수도로부터 북쪽에 자리 잡은 고지대에 있다.
척박하지만, 그만큼 자연의 경관이 고스란히 남아 어디를 보더라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장소.
특히 가주를 위한 집무실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라 부를 만했다.
케이든 루모스는 매일 공작령의 경관을 내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일종의 반복 행위로 인한 습관이자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시간에, 오늘은 방해꾼이 끼어들어 있었다.
“케이든 공작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
케이든이 창가로부터 시선을 뗐다.
그의 싸늘한 눈동자가 집무실에 찾아온 손님을 향했다.
“분명 이렇게만 하면 세오른의 이권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란팔츠의 회장 드라헨 란팔츠.
그는 최근 벌어진 일 때문인지 안색이 수척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눈가는 거뭇했고, 핏발까지 서 있었다.
“드라헨 란팔츠 회장. 그걸 왜 나에게 따지는 거지?”
“뭐, 뭐라고요?”
“나는 단지 조언을 했을 뿐이네. 그 말을 듣고 행동을 한 것은 순전히 자네의 선택 아니었나?”
드라헨은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즉, 케이든의 말대로라면 이번 일에 자신의 책임은 없으니 가만히 있겠다는 소리였다.
“지, 지금 그게 이 상황에서 할 소리입니까?! 저희 란팔츠 사가 지금 얼마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인지 모르시는 거냔 말입니다!”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뭣……!”
드라헨은 뻔뻔하기까지 한 케이든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드라헨은 이 이상 따질 수가 없어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케이든 공작님. 저는 당신과 꽤 가까운 사이였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친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그래. 나 또한 그랬네.”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제가 루모스 공작령에 준 이득은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이 저택! 이 집무실! 이곳에 제 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고맙게 여기고 있네.”
“그런데 저를 버리시는 겁니까!”
드라헨의 울분에 가득한 외침에도 케이든은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시선으로 드라헨이 무슨 말을 할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드라헨은 그 시선 때문에 더욱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주 조금만 도움을 주셔도 좋지 않습니까! 적어도 저희를 지지한다고 성명이라도 발표해 주시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야 저희는 이전부터 동맹을 맺었으니…….”
그 말에 케이든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차가운 북풍과도 같은 조소였다.
“동맹이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는 대등한 관계일 때 동맹이지. 하지만 지금 란팔츠는 전혀 그런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군.”
“이제 와서 저희를 버리시겠다는 겁니까?”
케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나. 엄연히 실패한 것은 그쪽인데, 왜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말하지?”
“부추긴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드라헨의 목에 핏대가 솟았다.
그는 지금 당장 뒷목이라도 잡고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마치 영혼이 빨려 나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세오른에 약점이 생겼고, 그걸 빌미로 이권을 쟁취하라고 했던 것은! 케이든 루모스 당신의 지시가 아니었습니까!”
“그 말은 어폐가 있군. 드라헨 란팔츠 회장. 우린 전까지 대등한 관계였는데, 어찌 지시를 내리고 말고가 있지?”
결국, 드라헨 란팔츠 회장은 케이든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공작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조금 전까지는 울분에 차서 화를 내더니, 이제는 무릎을 꿇고 비는 건가?”
“지금까지 알고 지내 온 정을 봐서라도, 도움을 주십시오. 많이는 안 바랍니다. 아주 조금이면 됩니다.”
드라헨은 대기업의 총수이자 회장이다.
비록 상대가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일각을 다투는 수장이라 해도,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보통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를 내려다보던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나 케이든은 그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드라헨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미 관련 업계에 소문이 다 났고, 주가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고 했지.’
란팔츠를 비롯해 여러 기업이 빠지면서 생긴 후원금의 공백을, 황실에서 직접 일부 충당해 준 것이 문제였다.
그 행동은 황실이 은연중에 세오른을 지지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란팔츠는 황실과 반대의 노선을 탄 셈이었다.
비록 대기업이 제국에서 갖는 위상은 대단하지만, 아직까지 황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쓸모가 없지는 않군. 세오른을 뒤에서 비호하는 새로운 세력을 알아냈으니까.’
현재 레더벨크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성장하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의 기업이라기보다는, 여러 소상공인의 집합체.
하지만 케이든은 안다.
그 크고 작은 퍼즐 조각 같은 하층민들의 연합이, 단 한 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황금 거리의 주인. 올리버.’
그들은 지금 란팔츠사의 주식을 열심히 공매도하며 란팔츠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란팔츠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체급의 차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드라헨 회장이 직접 와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란팔츠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거물이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헤이백 카다투샨. 이 음흉한 노인네가.’
케이든이 드라헨을 바로 도와주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평소에 가만히 있던 그 노인이, 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오른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 * *
“내가 뭐 와서는 안 될 곳에 왔나?”
인상이 좋은 노인이 루드거를 향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루드거는 그런 상대를 말없이 응시했다.
헤이백 카다투샨.
제국에서 손꼽는 거물이 난데없이 손님으로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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