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3화 음흉한 산양 (2)
353화 음흉한 산양 (2)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차도 안 내주나?”
“드시고 싶은 차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차는 영 내 입맛에 맞지 않더군.”
“그러면 커피를 원하십니까?”
“커피? 그런 쓴 걸 왜 마시나? 게다가 마시면 잠이 잘 안 와서 힘들어.”
“다행이군요. 여긴 둘 다 없으니까요.”
그 말에 헤이백 공작은 한 방 먹었다는 듯 허허 웃었다.
“역시 선생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지금은 기획처장이라 불러 주십시오.”
“선생은 선생이지, 왜 기획처장이라 불러야 하는가?”
“왜냐면 지금 여기가 기획처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선생으로 부르고 싶으시다면, 제 교무실로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그거 아쉽군. 교무실에 있을 때 찾아올 걸 그랬어.”
“그래서, 이유가 무엇입니까?”
“흐음?”
헤이백은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 행동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는 할아버지 같았다.
자신은 마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모르는 척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공작님처럼 바쁘신 분이 구태여 가벼운 이유로 저를 보러 오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런. 조금 어폐가 있군그래. 나는 이미 일에서 손을 뗀 사람일세. 아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난 뒷골방 늙은이를 왜 그렇게 과대평가하는가.”
“그런 분이 란팔츠가 무너지도록 뒤에서 몰래 손을 쓰셨습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는지 헤이백 공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호오. 어떻게 알았는가?”
그는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다.
“저희도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돈을 끌어모으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해도 기획처장인 자네는 세오른 내부의 일에만 능하지, 외부의 소식은 잘 모를 텐데?”
“외부의 소식을 전해 주는 친구를 뒀습니다.”
“아. 혹시 그 친구가 요즘 뜨겁다는 올리버라는 사람인가?”
“…….”
이번에는 루드거가 헤이백 공작을 강하게 응시했다.
헤이백 공작은 이제 1대 1이라는 사실이 즐거운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세오른은 그래도 되나?”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교사가 겸직하는 것 말이야.”
역시.
이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루드거는 사람들이 왜 헤이백 공작을 어려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초연한 사람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정세의 흐름에 대해서 민감했다.
남의 비밀을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쿡쿡 찌르는 저 무신경한 행동도 그렇고.
그야말로 음흉한 사람의 표본 그 자체였다.
“자네, 지금 날 음흉한 사람이라 생각했지?”
“예.”
“……보통 이럴 때는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는 게 예의 아닌가?”
“언제는 서로 예의를 챙겼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헤이백 공작은 큭큭 웃었다.
“그래서, 총장에게 겸직 허가는 받았는가?”
“본디 세오른의 교사는 자신의 수업 시간 이외의 시간에 어떤 일을 해도 터치하지 않습니다.”
“허어. 월급도 잘 나오면서 겸직도 안 건드리다니.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군그래.”
“총장님께도 허가를 받았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고작 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응? 아니지, 아니야. 이건 그저 부차적인 목적일 뿐이네. 내가 선생을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야.”
“그렇다면 본래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루드거는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왜 고맙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자네가 케이든 루모스, 그 거만하고 건방진 치의 높은 콧대를 꺾어 주지 않았는가.”
“고작 그런 이유로 말입니까?”
루드거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묻자 헤이백은 살짝 당황했다.
“어라? 왜 놀라지 않는 건가?”
“왜 놀라야 합니까?”
“케이든 루모스 이름이 나오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 그것도 란팔츠에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 루모스 가문이었다는 충격적인 비밀이잖나. 응당 놀라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아. 그거 때문이었나.
루드거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10분 전에 말이다.
다만, 헤이백에게는 굳이 그런 것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끄응. 이번엔 확실히 놀라게 만들고 싶었는데, 역시 선생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군.”
방금 전에 루모스 가문의 사람이 와서 귀띔해 주었다고 말한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루드거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멈추며 말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신 겁니까? 같은 공작 가문의 사람에게 한 방 먹여 줘서?”
“뭐, 그런 셈이지. 물론 선생이 그걸 노리고 한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네.”
“저희는 그저 닥친 상황에 최선을 다해 대응했을 뿐이니까요. 거기에 루모스 공작이 있다는 것은, 우연히 얻어걸린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한 방 먹여 준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 자식, 아닌 척해도 속이 좁아서 분명 이 일을 담아 두고 있을 거네. 그러니 나로서는 속이 시원하지 않을 수 있겠나.”
헤이백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 역시 자네를 찾아온 진짜 이유는 아니네.”
“상자 속의 상자처럼 뭐가 자꾸 나오는군요.”
“양파 같다고 해 주시게. 아무리 까도 끝이 없는 것이 이 늙은이의 매력이지.”
“그거참 눈물 나게 맵군요.”
루드거는 비꼬려고 한 말이었지만, 헤이백은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는 궁금하지 않나? 다 늙어 빠진 이 늙은이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이런 정세를 세심하게 꿰고 있는지 말이야.”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그런 것이 습관이 된 거 아닙니까.”
“반쯤은 정답이군. 그래도 다행인가. 늙은이의 고약한 취미라고는 말해 주지 않아서.”
“절반은 틀렸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내가 이렇게 자네를 찾아온 것과 연관이 있지.”
그렇게 말하는 헤이백의 표정이, 일순 철없는 노인에서 냉철한 지도자처럼 바뀌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혹은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뒤바뀐 헤이백의 태도에 루드거도 덩달아 긴장했다.
“알다시피 내가 이렇게 여러 사건을 확인하는 것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야. 왜냐하면 이건 취미가 아닌, 나의 의무이기도 하거든.”
“의무, 말입니까?”
“그래, 의무지. 선생은 혹시 우리 카다투샨 가문이 뭘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나?”
“제국의 3대 공작 가문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가문의 상징이 산양이라는 것과, 여러 언론과 정보 조직과 연이 닿아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호오. 그 정도면 그래도 일반인 이상으로는 알고 있군. 그렇다네. 우리 카다투샨은 누구보다도 제국의 정세에 눈이 밝지.”
헤이백은 그 끝 모를 눈동자 속에서 이채를 흘렸다.
오래 살아온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혜광(慧光)이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높게 나는 독수리가 제국을 굽어 보기에 가장 정세를 잘 안다고.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야.”
루드거는 일순, 헤이백의 등 뒤로 한 짐승의 형상을 보았다.
기다란 뿔을 지닌 산양의 모습을.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장 잘 아는 것은 지상의 것이네. 가령, 그곳이 어떠한 까마득한 절벽이라 해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양 같은 존재 말이야.”
“…….”
“그리고 그곳의 가주인 나는, 당연히 제국의 여러 정보에 능통하다네. 예를 들면, 세오른에 새롭게 들어온 교사가 레더벨크 도시에서 빠르게 부유해진 뒷골목 주인과 동일인이라는 소식 같은 것 말이네.”
자못 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루드거의 어깨를 짓눌렀다.
헤이백은 마법사도 기사도 아니다.
말 그대로 기예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거대한 존재감이 있었다.
오랫동안 쌓이고 퇴적된 것이 이루어져 만들어 낸 태산과도 같은 까마득함.
그것은 긴 세월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으며 자리를 굳건히 지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권위였다.
“……그러신 분이 왜 수도에서 벌어진 일은 몰랐습니까.”
“허허허. 이거 참 아픈 곳을 찌르는군.”
헤이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수도는 제국 내에서 유일하게 우리 관할이 아니라네. 그곳엔 황실이 있고, 황실의 눈이 미치는 곳을 우리가 신경 쓰면 안 되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너무 유능하거든.”
“…….”
“농담이 아니네.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실의 일거수일투족도 잡아내 버리거든.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일개 공작 가문인데, 황제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만들어진 조약이 있다네. 수도는, 건드리지 않는 거로 말이야.”
다만, 하고 헤이백이 말을 이었다.
“수도를 제외한 곳에서, 제국의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자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나선다네. 그게 카다투샨 가문이거든.”
“그래서 저를 보러 오신 겁니까? 이 세오른에?”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세오른은 별개의 장소지만, 일단은 제국의 영토에 있기도 하고. 그러니 다시금 자기소개를 하겠네.”
헤이백은 그날 연회장에서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직위를 입에 담았다.
“전 정보국장, 전 나이트크롤러 총 책임자이자, 제국을 굽어 보는 눈. 헤이백 카다투샨이라고 하네.”
루드거는 가만히 헤이백을 응시했다.
이쪽을 향하는 그의 시선에 담긴 의중을 읽기가 힘들다.
‘평범한 노인네는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려 3대 공작가 중 하나의 기둥이다.
그런 자가 당연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이건 상상 이상으로 더했다.
“그렇게 존귀하신 분이 저를 찾아온 걸 보니, 제가 어지간히도 의심을 샀나 보군요.”
루드거의 말에 헤이백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어디 의심뿐일까. 심지어 믿기지 않는 결과로 연신 나를 놀라게 만들어 주었는데, 당연히 보통 사안이 아니지. 이렇게 놀란 것은 검은 여명회라는 놈들의 흔적을 찾은 이후로 처음이었어.”
“저를 그렇게 높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는 있는 그대로의 평가를 내릴 뿐이네.”
루드거는 깍지를 낀 양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상대가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할 정도로 진중한 이상, 아주 찰나라도 방심을 하는 순간 목을 물어뜯길 것이다.
“그래서 저를 잡으러 오신 겁니까? 제국의 안정을 위해?”
“그렇다면?”
헤이백이 일순 시선을 날카롭게 벼리며 루드거를 응시했다.
아주 순간이지만, 마치 가슴에 칼날이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그란데르로부터 온갖 기세에 면역이 있는 루드거가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루드거 또한 경험으로는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살아온 세월은 분명 눈앞의 상대에 비해 모자라겠지만.
그는 삶의 밀도가 달랐다.
“거짓말이시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랬더라면 진작 가문의 사람들을 끌고 와서 저를 생포했을 겁니다. 아니면 나이트크롤러 기사단을 부르든가요.”
“나 혼자만 와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 건가?”
“헤이백 공작님이 직접 나서실 정도라면, 이번 사안이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찾아와 이렇게 정체를 밝히시고 질문을 던지셨죠.”
루드거가 헤이백의 태도에 있는 묘한 이질감을 짚어 냈다.
“확인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제가 제국의 적인지 아닌지 아직은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
헤이백은 그 말에 무표정했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파이며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 이거 참. 선생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는군!”
“그래서 확인 절차는 다 끝났습니까?”
“절차? 절차야 진작에 끝났다네.”
헤이백의 말에 루드거가 눈썹을 꿈틀였다.
진작에 끝났다고?
“영 모르겠다는 눈치로군. 이보게 선생. 자네가 지금까지 해 온 행동들을 보게.”
“제가 뭘 했습니까?”
“허어.”
루드거가 진심으로 몰라서 묻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헤이백이었다.
“이렇게 자각이 없었던 건가? 이걸 안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없네. 오히려 그 반대지. 선생은 그 믿기지 않는 능력을 지녔으면서, 지금까지 제국에 위협이 될 짓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네.”
“그거참 과분한 칭찬이군요.”
“물론 겸직으로 뒷세계에서 이상한 짓을 저지르지만, 뭐 그런 거야 흔한 일 아니겠나?”
“보통 그런 걸 두고 흔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만.”
세상 어떤 교사가 정체를 감추고 뒷세계에서 일을 벌인단 말인가?
루드거는 그렇게 따지려다, 그것이 제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같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선생은 망해가는 거리를 살리고, 갱단을 정리했으며, 그러면서도 그 돈과 권력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네. 오히려 제국에 도움이 되면 됐지.”
“그렇습니까.”
“수도에서 벌어진 사건도 선생이 꽤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네. 거기에 아케인 체임버에서 새로운 마법 이론을 발표하고, 학생들에게 기존에 없던 마법까지 가르쳐 주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황실에서 자네를 믿고 있다는 거야.”
“그거야 뭐…….”
1황녀와 구린 거래를 맺었으니 그런 거고.
다만 헤이백이 그것도 모르진 않을 테니, 그 모든 걸 감안해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판단한 것이리라.
“제가 행한 이 모든 것이 사실 속이고 있는 거라면 어쩌실 겁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찾아온 거 아니겠나.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선생의 모습을 보니, 그럴 걱정은 접어 둬도 되겠어.”
“고작 그런 거로 결론을 내리신다는 겁니까?”
“그게 내 역할이고, 나의 일이라네. 그래도 틀렸다면, 내가 능력이 모자라다는 거 아니겠나.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장차 제국의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참으로 태평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선생이 일단은 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네.”
“……부탁 말입니까.”
“그래.”
헤이백이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싹 지우며 말했다.
“선생이 곧 있을 [신비의 밤]에 참여한다는 건 알고 있네.”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뭐, 이미 초대장이 온 시점에서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나는 선생이 그 [신비의 밤]에서, 사람을 한 명 죽여 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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