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4화 음흉한 산양 (3)

 ◈ 354화 음흉한 산양 (3)




집무실 내부에 무겁고도 깊은 침묵이 맴돌았다.




루드거는 헤이백 공작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은 끝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잘못 들은 게 아니네. 분명히 그렇게 말했으니까.”




“……지금 세오른의 교사에게 청부 살인을 부탁하는 겁니까?”




물론, 루드거가 뒷세계에서 여러 일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청부 살인을 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당장 헤이백이 알고 있는 루드거의 다른 신분은 올리버가 전부다.




혹시 갱단과 마피아를 없앤 것 때문에 저런 의뢰를 한 거라면, 단단히 잘못 짚었다고 말해 줄 의향이 있었다.




“이런. 아무래도 내가 너무 다급한 나머지 설명이 조금 부족했나 보군.”




“조금이 아니라 많이 부족하셨죠.”




“내가 말한 것은, 단순히 선생이 사람을 잘 죽일 수 있어서가 아니야. 선생밖에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인 거지.”




“조금 전까지 저를 의심하셨으면서, 이제는 또 믿으시다니.”




“머리가 좋은 사람은 그때그때 판단이 빨라야 하네. 자기 생각이나 의견 정도는, 손바닥을 뒤집듯 바꿀 수 있어야 하지.”




자신이 한 말을 명예와 자존심 때문이라도 지키려 하는 귀족이 할 말은 아니다.




하물며 제국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명망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기에 대단하다.




헤이백 공작은 응당 귀족들이 신경 써야 하는 그런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지독할 정도로 실리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귀족으로서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다른 귀족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그가 쌓아 온 인망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소리겠지.




“자세한 설명을 들어 보겠습니다.”




“그래.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자네가 [신비의 밤]에 참가하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네.”




“예. 초대장이 왔으니까요.”




“신비의 밤이 어떤 곳인지는, 나보다는 마법사인 선생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네.”




“신비의 밤은 매년 세계 각지의 마법사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축제입니다. 대부분의 마법 학파가 모이는 행사이며, 미지의 신비를 탐구하며 마법의 발전을 추구하죠.”




“그리고? 뭔가 더 빠지지 않았나?”




헤이백은 혹시 뭐 더 없냐는 시선으로 물었다.




루드거는 한숨과 함께 답했다.




“마법사들의 가장 음흉하고 실리적인 그림자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죠. 서로 신비의 밤이 개최되는 땅의 비밀을 풀고자 혈안이 되어, 서로를 방해하고 때로는 동맹을 맺으며 지식을 향한 아귀다툼을 벌이는 마법의 각축장입니다.”




“정답이네!”




헤이백은 루드거가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 주었다는 듯 시원하게 웃었다.




“그래. 신비의 밤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썩 좋은 행사는 아니지. 조금만 깊게 살펴봐도, 그 내면에 도사린 것은 마법을 향한 마법사들의 끝없는 욕망과, 뒤틀린 도덕심이 뱀처럼 도사리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무얼. 문제 될 건 없지. 저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는다 한들, 내가 따로 신경이라도 쓰겠나?”




“그런데 왜…….”




“거기에 새로운 불순물이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네.”




본론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루드거도 진지하게 관심을 보였다.




“불순물 말입니까.”




“그렇다네. 섞이면 아주 위험한 녀석이지. 본래 신비의 밤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만 진행하지만, 그것이 딱히 외부에 어떠한 큰 파장을 몰고 오지는 않았네. 왜 그런지 아나?”




“신비의 밤이 열리는 장소의 특징 때문이겠군요.”




그렇네.




헤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신비의 밤이 개최되는 땅. 카사르라 불리는 그곳은 주위에 산들로 들어찬 산간 분지지.”




카사르라는 땅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사방에서 흐르는 거대한 지맥의 힘이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움푹 파인 그릇에 빗물이 고이는 것처럼, 땅속에 흐르는 거대한 지맥은 카사르 분지를 중심으로 몰렸다.




그리고 평균치를 아득히 상회하는 마나는 카사르 자체에 특별한 현상을 일으켰다.




공간 자체가 뒤틀려, 하나의 이세계(異世界)가 된 것이다.




현대 과학과 마법으로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온갖 신비로움이 가득한 공간.




그것이 지금 [신비의 밤]이 열리는 카사르 분지였다.




원인만 따지자면 세오른에 존재하는 ‘침묵의 숲’이나 ‘환몽의 숲’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규모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그 때문에 카사르 분지에는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밀도 높은 마나로 인해 안개가 가득하며, 함부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어지간한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카사르 분지의 신비의 힘을 연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행방불명되었다.




“그런 카사르 분지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정해진 기간뿐이네. 그것도 1년에 단 3일.”




헤이백의 말대로였다.




카사르 분지는 1년에 단 3일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넘기는 순간 출입이 불가능해진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면, 사실상 죽는다고 봐야 했다.




어떻게 보면 3일은 참으로 촉박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만큼은 마법사들에게 천금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풀리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미지의 땅.




그 신비로움을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 신비의 밤의 주목적이다.




“그런 곳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는 소리로군요.”




“그냥 일도 아니라, 어떻게 보면 대륙 전체가 시끄러워질 수도 있는 일이네. 그야말로 화약고에 불씨를 가져가는 셈이니까.”




카사르 분지는 제국의 영토 바깥에 존재한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헤이백 공작이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이번 사태가 제국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라는 말이겠지.’




온갖 마법사들이 모이는 곳인 만큼, 절대로 평범한 사건은 아닐 터.




“그래서 제게 그 불안의 불씨를 꺼 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럴 거라면 굳이 제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직접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마법사가 아닌데.”




“마법사가 아니라도 초청은 가능한 거로 압니다만.”




“그걸 감안해도 나는 바쁘네.”




“아니면, 다른 마법사들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마법사? 누굴? 구 마탑? 신 마탑? 아니면 학파 연합회? 그들은 모두 어딘가에 ‘소속’된 자들이네. 하지만 선생은 다르지.”




“저는 세오른의 소속입니다만.”




“여기까지 와서 뭘 숨기려 드는가. 아무리 그래도 나를 너무 바보 취급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네.”




헤이백에게 있어서 루드거는 가장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마땅한 소속도 없으며 그렇다고 제국의 적이 아니다.




마법적 능력이 뛰어나며 신비의 밤에 초대까지 받았으니, 까다로운 시선으로 봐도 이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선생이 신비의 밤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려는 자들을 막아 줬으면 좋겠네.”




헤이백은 루드거라는 개인에게 일종의 의뢰를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의심받을 일도 적고, 명분도 충분하며, 능력까지 뛰어나니까.




“대략적인 개요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게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제안이로군요.”




무언가 일이 터진다는 건 알겠다.




그것이 자칫 잘못하면 큰 불길로 번진다는 것까지도 알겠다.




“하지만 그게 제가 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헤이백이 루드거에게 제안을 하기엔 충분한 이유이지만.




이러한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루드거 본인의 자유.




애초에 머나먼 타지에서 벌어지는 일로 이렇게까지 부탁을 한다는 것부터 이상하다.




물론 루드거 본인이 신비의 밤에 참여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 소식을 들은 이상 오히려 가지 않아도 상관없어진 셈이니까.




루드거는 누군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걸 별로 원치 않았다.




헤이백도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나라고 염치없이 맨입으로 이렇게 부탁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자네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겠네. 나 헤이백 카다투샨의 이름을 걸고 말이지.”




“저는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만.”




“세오른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투자자에게 어찌 돈 자랑을 하겠는가. 다만 이 늙은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점을 하나 꼽으라면.”




헤이백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느껴 온, 오랜 삶으로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 정도가 있겠지.”




“그게 제게 무슨 도움이 되는 겁니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물어보게. 적어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대답해 줄 테니.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 주겠네.”




지식을 보수로 책정하다니.




그런 말이 안 되는 짓에 헛웃음이 나와야 정상이겠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루드거는 아직 헤이백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는 정보를 말해 주겠다 해도, 그 또한 이쪽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알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이쪽도 알기 힘든 걸 그가 알고 있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이마저도 함정이란 말이지.’




헤이백은 질문에 대해 확실한 답을 해 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는 보통 상당히 중요한 것을 물어보게 된다.




가령.




‘렐릭의 파편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라든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걸 물어보는 순간 헤이백에게 이쪽이 렐릭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음흉한 노인이 그 사소한 것을 놓칠 성격은 전혀 아니고.’




보기 좋은 떡처럼 보이는 기회지만, 이건 함정이다.




그러나 함정이라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기도 했다.




“흐음. 아직 고민하는 건가? 선생이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어딜 가서 떠벌리지 않겠네만. 나는 이런 부분은 확실히 함구하는 편이라서 말이지.”




“잠시 고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떤 정보를 물어봐야, 확실히 공작님께서 모르거나 틀릴지 말이죠.”




“허허. 이 사람 이렇게 안 봤는데, 아주 나를 탈탈 털어먹을 생각이었구만?”




너스레를 떠는 헤이백에게, 루드거가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헤이백이라 하더라도 알기 힘들 만한 것을.




“헤이백 공작님은 무속성 마력에 대해서 아십니까?”




“흐음. 무속성 마력이라. 선생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단순히 기본적인 지식의 범주 내에서 한 말은 아니겠고.”




재미있는 질문을 받은 헤이백은 씨익 웃었다.




마치 사탕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 보이는 미소였다.




“무속성 마력은 그 기원이 뚜렷이 정해져 있지 않지. 하지만 그 사용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네. 선생이 지금 가르치는 그 학생도 그렇고, 그전에도 말이야.”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헤이백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고자 팔방으로 노력을 한 여인이 있었단 말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구를 그만두고 사라졌더군. 듣자 하니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아이를 낳았다는 모양이야.”




헤이백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어디 보자. 그 시간이 아직 20년은 안 됐고. 한 18년 정도 됐겠군.”




“…….”




“그 이후로 간혹 그 여인을 봤다는 소식은 접했다네. 하지만 그마저도 10년 전쯤 완전히 소식이 끊겼지. 아마 죽은 것으로 보이네. 자신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대가인지, 혹은 삶을 비관한 자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살이라는 말에 루드거가 책상 밑에 내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이백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선생은 그 학생을 위해 무속성 마력에 대해서 알아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오히려 잘됐군.”




“왜입니까?”




“[신비의 밤]이 열리는 곳에 선생이 찾는 정보가 있거든.”




루드거가 눈썹을 치켜떴다.




그 사실을 당신이 어찌 아느냐는 형식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런 곳에 어떻게 무속성 마력에 대한 정보가 있냐는 것이었다.




“허허. 선생은 설마 신비의 밤에 참여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가?”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비의 밤은 소식으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루드거는 마법사의 신분으로 활동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신비의 밤의 기원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군?”




“공작님은 알고 계십니까?”




“아무렴. 이쪽이 내 밥줄인데, 그런 것 하나 모르려고?”




헤이백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 헤실헤실 웃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신비의 밤은 매년 한 번씩 개최되지. 그렇다면 올해 열리는 신비의 밤이 몇 번째인지 아나?”




“한 100번 넘은 거 아닙니까?”




“그 정도는 아니네. 아직 100년은 되지 않았지. 그래도 꽤 되기는 했어. 햇수로 치면 73년. 내 나이보다 많은 셈이지.”




73년이라.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그곳에 깃든 신비로운 기운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짧다.




“뭐, 짧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네. 식민지 전쟁 이후, 인류의 관심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넓혀졌으니까. 그것이 고작 80년 전이네. 한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역사의 시간으로 보면 짧지.”




“그게 무속성 마력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카사르 분지 안에 있는 저택에 대해서 들어 봤나?”




저택?




1년에 단 3일만 개방되는 땅에 저택이라니?




선발대들이 짐을 싸 가서 짓기라도 했던 말인가?




“당연히 그 저택은 그곳을 탐험하려는 사람들이 지은 것이 아니네. 오히려 그 반대지.”




“그 반대란…….”




“그 저택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네.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 이미 지어 놓은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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