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5화 물에 비치는 미안함 (1)
◈ 355화 물에 비치는 미안함 (1)
“그 저택이 대체 뭡니까?”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네. 애초에 그 신비로운 장소를 확인한 지 이제 73년이야. 한 해에 고작 3일, 실제로 그 장소에 머무른 시간을 다 합쳐도 아직 1년도 되지 않는다는 소리지.”
1년도 안 됐다고 하니, 그 시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짧다.
미지의 무언가를 탐구하는 데도 최소 몇 년은 걸린다.
그걸 감안한다면 카사르 분지는 아직도 무언가를 탐구하기에는 시간이 한없이 부족했다.
“물론, 그만큼 세계 각지의 마법사들이 모이니 3일이라 하더라도 그 밀도가 남다르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 저택이 알려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네. 이제 10년이 됐나?”
“생각보다 훨씬 더 짧군요.”
“저택까지 가는 길목조차도 전부 신비한 힘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일세. 심지어 그 카사르 분지의 신묘한 힘은 저택 내부에도 맴돌고 있지. 당연히 저택 자체도 마경이나 다름없고 말이야.”
저택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의 땅이 모두 미지로 뒤덮인 곳이라.
이렇게 들으니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누구인가? 미지의 마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작자들이지 않나.”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자들은 근 10년 동안 저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조사했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어떻게 지었는지. 그리고 밝혀진 바로는, 해당 저택은 지어진 지 최소 수백 년이나 되었다는 거야.”
“수백 년이나 말입니까?”
“그렇다네. 하지만 그 어떤 유지 보수 공사가 없음에도 저택은 멀쩡하다고 하더군. 게다가 저택의 주인은 마법사였던 것으로 추정되네. 그런 정황이 여럿 포착됐으니 말이네.”
저택을 탐사하던 마법사들은 내부에서 여러 마법에 대한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과거 소실된 고대 언어들이 대부분이라 해석에 애를 먹었지만, 일부 해석된 자료에 의하면 그것은 소실된 마법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듣기론 선생은, 최근 라르실어에 대해서 해석을 끝마쳤다고 했지. 그 해석 방법 또한 공개했고.”
“예. 그랬죠.”
“궁금하지 않나? 선생이라면 충분히 안쪽에 있는 책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을 테니까. 수백 년 전의 마법에 대한 지식을 알아낼 수 있을 걸세.”
흠.
루드거는 크게 내키지 않았다.
수백 년 전의 마법 지식이라는 것은 구미가 당겼지만, 그에겐 지금 수백 년 넘게 살아 있는 마법의 산 증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은 내게 너무 옛 마법은 가르쳐 주시지 않았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혹은 그마저도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인지는 모른다.
그란데르의 변덕은 내일의 기상 정보처럼 추측하는 것이 의미 없었으니까.
그걸 감안하면 직접 신비의 밤에 참여하는 것도 나쁠 건 없어 보였다.
“그곳에 무속성 마력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선생. 지금까지 무속성 마력을 지닌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 것 같나?”
“일단 헤이백 공작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2명이 전부로군요.”
“그랬지. 하지만 나는 그전에도 무속성 마력을 지닌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네. 그것도 3명이나. 말하지 않았나. 그들은 생각보다 여럿 있다고. 그리고 그들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었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죠.”
헤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무속성 마력 보유자들은 대부분 25살을 넘기기 힘들지. 안타까운 일이야. 일반인의 절반도 살지 못하는 삶이라니. 그런데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뭔지 아나?”
“또 뭐가 있습니까?”
“내가 아는 무속성 마력의 소유자들은 전부, 신비의 밤에 참여했다는 거야. 마치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이건 루드거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오래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의 운명을 짊어진 자들.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신비의 밤에 모였네. 그것이 뭘 의미하는 것 같나?”
“그 안에, 자신의 저주받은 체질을 개선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바로 그거라네.”
루드거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건 비약일 뿐입니다. 그 안에 정말로 무속성 마력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확신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확신이 아닌 희망을 품은 채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허허. 그렇게 말하면, 나 또한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지. 하지만 말이야.”
헤이백이 한층 깊어진 지긋한 시선으로 루드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것과,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네.”
“…….”
“그리고 그들이 과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들은 모종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불길에 이끌린 나방처럼 카사르 분지로 향한 거야.”
“아직 밝혀진 것도 제대로 없는 미지의 땅에 말입니까?”
“미지의 땅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겠지. 그리고 세세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도 큼지막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나. 저택이 오래전 지어진 것이며, 수백 년 전 마법의 지식이 존재한다고.”
루드거는 고민했다.
헤이백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수백 년 전 소실된 마법의 지식이 담긴 저택?
분명 매력적이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찾지 못한 지식을 알아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무속성 마력은 스승님조차 해결할 수 없는 체질이다. 그런데 카사르 분지에 있는 신비의 저택에 무속성 마력에 대한 자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스승님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대마법사이자 흡혈귀라 하지만, 그녀가 세상의 모든 마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긴 삶으로 인해 대부분의 세월을 권태롭게 보낸 분이다.
그걸 감안하면 신비의 밤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스승님 본인도 자신이 모든 마법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셨고.’
그렇다면 어쩌면.
정말로 신비의 저택에 해당 자료가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말이 수백 년이지. 그것도 단순히 추정일 뿐이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속성 마력 말고도, 또 다른 정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렐릭에 대한 자료라거나.’
흥미가 돋고 구미가 당긴다.
가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물론,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말이다.
‘헤이백 공작이 말한 그 불순물이라는 것은, 퍼스트 오더가 분명하겠지.’
퍼스트 오더 레슬리.
그는 신비의 밤에 침투해 마법사들을 없앨 모종의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제로 오더에게 그렇다고 말했으니 거짓은 아니리라.
그의 행동을 보면 규율을 중시하고, 제로 오더에게 충성하는 것 같았으니까.
당시에는 세오른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사건이라, 크게 신경은 쓰고 있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울릴 수밖에 없는가.’
루드거의 기색이 바뀐 것을 눈치챈 것인지 헤이백이 눈꼬리를 휘었다.
“이제 할 마음이 들었는가?”
“밑져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허허. 선수금으로 알려 준 정보가 마음에 들었다니 그거참 다행이로군. 그보다 선생. 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선생이 무속성 마력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필시 그 제자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네.”
루드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할 것이 있습니까?”
“아니. 선생이 학생을 위해 무언가 알아보는 것은 이상할 게 없지. 특히 선생이 지난번 연회장에서 루모스 가주를 상대로 보여 주었던 모습을 보면, 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모양이니까.”
“그렇게 아끼는 것은 아닙니다만.”
“선생이 그렇다면 그런 셈으로 치지. 하지만 이 늙은이가 나이를 먹다 보면 눈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다른 무언가가 보인단 말이지.”
헤이백은 훌훌 웃으며 말했지만, 그 눈빛은 루드거의 심중을 꿰뚫으려는 듯 예리했다.
“그런 나의 시선에, 선생은 단순히 제자를 위해서 무속성 마력의 자료를 찾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네. 오히려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지. 더 깊고, 더 감정적인 무언가가.”
“…….”
“그래서 나는 이런 추측을 해 보았네.”
루드거는 일순 긴장했다.
혹시 이 사람이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헤이백 정도 되는 자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바로 학생과 금단의 사랑에 빠진 것이네!”
“…….”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팔방으로 자료를 알아보는 것 아닌가. 이보다 더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는가?”
맞지? 내 말 맞지?
헤이백이 그런 시선으로 루드거를 바라봤다.
은근한 긴장감이 어렸던 루드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 이상으로, 상대방을 향한 시선이 한심한 것을 보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어라? 선생. 지금 나를 보는 눈빛이 뭔가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보는 것 같네만. 내 착각이겠지?”
“잘 알고 계시니, 제가 직접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허어. 그만큼 내가 정확하게 짚었단 말이로군.”
“완전히 반대입니다만.”
루드거의 목소리에 약간이지만 짜증이 담겼다.
“으음? 내가 틀렸다고? 이상하군. 보통 그 정도로 행동하면 무언가 사심이 깃들어 있지 않나?”
“그 아이는 학생이고, 저는 교사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로맨스! 흔한 이야기 아닌가?”
“흔하다고요? 그런 경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이 뭘 몰라서 그러는군! 놀랍게도 세오른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눈이 맞아서 사고를 치는 것이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라네. 당장 선생이 수업을 맡고 있는 담당 과목도, 전 교사가 학생과 정분이 나서 물러났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 이 자리가 공석이었던 것이 그런 이유였다고?
루드거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제 전 교사의 이야기는 딱히 궁금하지 않습니다. 저랑 관련이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 선생은 궁금해야 할걸? 왜냐면 그 전대 교사도 그랬고, 전전대도 그랬거든. 이상하게 발현 계열 교사들이 학생들과 자주 그렇고 그런 일들이 있다 하더군. 무슨 마가 낀 자리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 무슨 반드시 학생과 정분나는 자리도 아니고, 그게 대체 무슨 징크스란 말인가?
“그래서 저도 그렇게 되리라 보시는 겁니까?”
“아니겠나? 심지어 선생은 지금까지 그 어떤 교사보다 더 뛰어나지 않나. 얼굴도 잘생겼고, 능력도 뛰어나고. 내가 장담컨대, 선생에게 상사병을 앓는 여학생들이 아주 많을 게야.”
“저는 관심 없습니다. 어차피 애들 아닙니까.”
“지금 세오른에 다니는 아이들은 법적으로 성인이 아닌가. 이미 혼례를 치르기에도 충분한 나이일 텐데?”
“아주 저에게 마가 끼라고 고사를 지내시는군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때로는 자기 생각과 다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네. 뭐, 이전 교사들은 학생을 꾈 목적으로 발현계 수업 가르치러 세오른에 왔겠는가?”
미치겠군.
루드거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늙으면 오지랖이 늘어난다더니 헤이백이 하는 행동이 딱 그런 꼴이었다.
“아무튼, 저는 그런 일에 관심 없습니다.”
“허허. 그런가? 아, 혹시 그렇다면 내 손녀 한번 만나 보겠는가? 이래 보여도 가문을 이을 정도로 총명하고, 나를 닮아서 상당히 아름답기까지 하네.”
아니, 무슨 중매쟁이도 아니고 갑자기?
루드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실 이게 본론이었군요.”
“들켰군.”
헤이백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루드거는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나는 농담이 아니었는데?”
“……아무튼, 의뢰는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루드거는 이야기가 끝났다며 헤이백을 집무실에서 쫓아냈다.
더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면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
루드거는 레더벨크의 거리로 내려왔다.
이번에 막대한 자금을 운용했기 때문에 추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셨소?”
미리 언질을 준 탓인지 한스는 기다렸다는 듯 루드거를 맞이해 주었다.
“상황은 어떻지?”
“뒤에서 바람이 등을 떠밀어 주는 것처럼 순조롭소. 그 거대한 란팔츠 사가 개미에게 물어뜯기는 메뚜기처럼 처절하게 분해되고 있지.”
“란팔츠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다른 움직임은 없었나? 평소 정재계의 인맥을 이용해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혹시 몰라서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승기가 확실히 기운 것인지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소.”
다만, 하고 한스가 말을 이었다.
“란팔츠의 회장, 드라헨이 급하게 어디로 향했는데.”
“했는데?”
“거기가 3대 공작 가문 중 하나인 루모스의 영지였소.”
“그렇군.”
“……에계? 반응이 그게 전부요?”
한스로서는 꽤 큰 건이라 생각하며 무게 잡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영 심드렁하다.
“설마 알고 계셨소?”
“뒤에서 사주한 자가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칫. 괜히 나만 좋았군.”
“그밖에 다른 것은?”
“형님이 그때 쫓아냈던 놈 있잖소. 알베르트라고.”
“파블로 가문의 망나니 말인가.”
“그쪽에서 뭐 보복성 조치로 사람들을 몇 보냈소. 알베르트 그 망나니가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해질 정도로 망가졌으니까. 아비 되는 입장에선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았겠소? 물론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한 것은 아니고, 구린 방법으로 말이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본보기를 보여 줬소. 이쪽의 피해는 전무. 쥐새끼는 전부 잡아냈소.”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루드거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건드리면 안 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해라.”
“그보다 괜찮겠소? 보통 뒷골목 놈들은 이렇게 힘을 보여 주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지만, 명문가라는 자들은 그러지 않잖소.”
이번으로 안 된다면 다음에는 더 강한 전력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특히 마법사가 끼어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루드거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쪽도 슬슬, 정예 병력이 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기 힘들었거든.”
“그거라면 뭐.”
“그 외에 다른 건?”
“없소. 사업도 순조롭고, 돈도 잘 벌리니까. 아, 그런데 그건 하나 있소.”
“뭐가 말이지?”
“형님이 말했던 그 케이시 셀모어 있잖소. 혹시 몰라서 지켜보라 하셨던.”
“그랬지.”
여기서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올 줄이야.
한스의 표정을 살핀 루드거가 물었다.
“무슨 문제 있나?”
“음. 그 탐정 아가씨가 수도에서 돌아온 이후로, 계속 방에만 칩거하고 있소.”
“방에?”
“예. 일단 상대가 상대인지라 안쪽까지 감시는 하지 못하지만……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아 보이오.”
“그런가.”
루드거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
“한번 찾아갈 때가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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