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6화 물에 비치는 미안함 (2)

 356화 물에 비치는 미안함 (2)




루드거는 레더벨크 시가지를 걸었다.




케이시 셀모어가 머무르고 있는 저택은 시가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도로에는 증기 자동차와 골렘이 이끄는 마차가 돌아다녔다.




맞은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었는데, 노인 한 명이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루드거는 자연스럽게 노인의 비어 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던지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케이시 셀모어 탐정은 아직도 자택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수도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병이 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무언가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군.”




“어디서 소식을 접한 건지 팬들이 선물을 싸 들고 많이 찾아오더군요. 함께 있는 자그마한 조수 아가씨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모두 내보내는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수고했다.”




루드거는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돈을 받아 든 노인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을 떠났다.




그는 이제 다른 어딘가에서 처량한 노인처럼 굴며, 남들이 말하는 소식을 듣고 정보를 전달해 주리라.




푸드덕!




모이를 주는 사람이 떠나자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루드거는 앉아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한 주택의 2층 유리창을 빤히 응시했다.




식물을 키우는지 2층의 철제 난간에는 새파란 이파리들이 폭포처럼 흐르듯 내려와 있다.




집주인이 저것을 허락했을 리는 없으니, 케이시 셀모어의 독단 행동이리라.




그럼에도 저 상태로 놔두는 것을 보면 집세를 적잖게 두둑하게 준 모양이지.




루드거는 벤치에서 일어나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입구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때마침 안쪽에서 누군가 나왔다.




“정말이지. 이렇게 많은 물건을 보내주면 처리하는 쪽도 곤란하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자신의 덩치의 3배 이상 되는 거대한 짐 덩이를 가볍게 들고나오는 소녀.




인간의 근력을 아득히 초월한 그녀는 겉보기는 작고 여린 소녀이지만, 실상은 강철과 기계 태엽으로 이루어진 오토마톤 인형이었다.




코드 베타.




지금 불리는 것은 천재탐정의 조수 베티.




베티는 케이시 앞으로 온 쓸모없는 팬들의 선물을 모조리 입구에 내려놓고는 손을 탈탈 털었다.




“음. 이건 그래도 챙길 만하겠네.”




베티는 짐 더미 위에 놓인 꽃다발을 챙겨 들었다.




아무래도 2층 난간에 키우는 식물의 주인은 케이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짐을 모두 정리한 베티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루드거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어라?”




처음에 루드거를 보고 누구인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한 번 본 것은 어지간하면 잊지 않는 베티는 결국 루드거를 알아보았다.




“루드거 첼리시! 맞죠?!”




“그래.”




“신문에서 봤어요. 사실 케이시가 자주 이야기해 줘서 아는 거지만요.”




베티에겐 루드거는 신문에 가끔 이름이 실리거나, 혹은 케이시가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남자였다.




“여기에 온 것은, 혹시 케이시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그래.”




“으음. 어쩌죠. 지금 케이시는 손님을 맞이할 상태가 아닌데.”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나?”




“몸은 멀쩡해요. 다만 정신이 좀 이상해서. 원래도 이상했는데, 더 이상해졌어요.”




원래도 이상했다니.




루드거는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서 실소를 흘렸다.




“그래도 루드거 첼리시 씨는 케이시와 아는 사이인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지금은 바빠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니, 저 대신 케이시를 간병해 주신다는 조건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어요!”




“조건도 필요하나?”




“그럼요! 케이시는 저렇게 보여도 인기가 많아서, 하루가 멀다고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거든요. 본인들은 그게 민폐인 줄도 모르는 모양이지만요. 생각해 보면 케이시에게 어울리는 팬이네요.”




“그렇군.”




“그래서 제가 전부 쫓아냈어요!”




베티는 자신의 한쪽 팔뚝의 알통을 자랑하듯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물론 겉보기로는 근육 하나 없는, 말 그대로 가녀린 아이의 팔뚝이었지만.




그녀의 진짜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는 루드거는 그 모습을 비웃지 않았다.




아마 베티의 힘이라면 맨손으로 그 튼튼하다는 공업용 증기 골렘도 우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루드거는 베티를 빤히 바라봤다.




‘아르파와 같은 강철의 합창단의 성공작.’




이름이 베티인 걸 감안하면, 그녀의 코드네임은 베타가 분명했다.




그날 불타는 실험장에서 자신이 미처 찾지 못했던 아이.




‘그렇다면 이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누구의 영혼이지?’




루드거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베티의 기계로 이루어진 몸 안에 깃든 영혼의 주인이 아르테의 여동생인 셀리일지도 모른다고.




“자요!”




그때 루드거의 눈앞에 꽃다발이 불쑥 내밀어졌다.




“이거 들고 안쪽에 가져다 놔 주세요.”




“그쪽은 어딜 가는 거지?”




“먹을 게 떨어져서 식사 재료를 사 오려고요. 가는 길에 공과금도 납부하고요.”




“……유능하군.”




“그럼 부탁해요!”




베티는 루드거에게 그 말만 남기며 쏜살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발걸음이 묘하게 가벼운 걸 보면, 귀찮은 일을 떠넘겼다는 사실에 약간이지만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거 참.’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케이시를 계속 살펴 준 것은 베티였다.




루드거를 이렇게 들여보내 주는 것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판단해서겠지.




‘과거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듣지 못했나 보군.’




케이시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루드거는 꽃다발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시가 머무는 집은 2층.




루드거는 카펫이 깔린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간 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두드려도 안쪽에 반응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티가 말한 거로 봐선 케이시는 분명히 안에 있다.




루드거는 혹시나 싶어서 문고리를 가볍게 돌려 보았다.




끼익.




잠기지 않아 너무나도 쉽게 열리는 문.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런 루드거의 생각은 안쪽의 풍경을 보고 쏙 들어갔다.




‘뭐지? 돼지우리인가?’




사방에 널린 책더미와 서류 다발, 신문 뭉치와 온갖 잡동사니.




청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흔적은 분명히 있었다.




아마 청소도 베티가 한 거겠지.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어지러운 것은, 청소의 속도를 웃돌 정도로 계속 어지럽히기 때문이리라.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




거주하는 하숙집에서 화약품 실험이라도 한 건가?




루드거는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피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 사람들은 미녀가 머무는 곳이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거나 청결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루드거는 방구석에 놓인 침대를 보았다.




이불을 덮은 채 누군가 누워 있었다.




흰색 이불보 밖으로 삐죽 흘러나온 물빛 머리색이 침대의 주인이 누구인지 넌지시 보여 주었다.




루드거는 가까운 서랍장 위에 꽃다발을 놓은 뒤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




‘뭔가 최근에도 이랬던 거 같은데.’




이 인생에 병자를 간호해 주는 팔자가 있을 줄이야.




루드거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목재 위로 덧씌워진 붉은 문양 벽지 때문인지 방의 분위기가 상당히 고즈넉해 보인다.




선반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병, 어디서 샀는지 모를 동상, 왜 있는지 모를 유리 도자기 등이 있었다.




그야말로 대륙 곳곳을 돌아다닐 때 온갖 것들을 사 모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




루드거는 볼록 솟은 이불을 슬쩍 보다가 이불 끝부분을 가볍게 들췄다.




곤히 잠들어 있는 케이시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불을 들춰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만큼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면, 그만큼 정신적으로 지친 걸지도 모르고.’




수도에서 돌아오고 난 뒤 꽤 시간이 흘렀을 텐데도 이 정도라.




루드거는 케이시의 안색을 살폈다.




잠에 푹 빠져서 세수도 하지 못했을 텐데 그녀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물을 다루는 사람이라 피부도 상시 촉촉하게 유지되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케이시의 눈 밑에 서린 거뭇한 다크서클을 눈여겨봤다.




잠들어 있지만, 악몽을 꾸고 있기라도 한 듯 케이시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자는 것이 아니다.




몸은 편해도 정신이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자도 자도 정신이 피로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계속 누워만 있게 된다.




저주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트라우마, 혹은 거대한 압박감을 느낀다는 소리.




웃기는 일이다. 그 케이시 셀모어가?




자아가 비대하고 천재 명탐정이라 불리던 그녀와 트라우마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사람에겐 남들이 모르는 저마다의 과거가 있는 법이니까.’




베개 근처에는 찢어진 약 봉투가 보였다.




너무 힘드니까 약을 처방받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담배나 독한 약에는 찌들지 않아서 다행인가.’




으으.




그때 케이시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몇 번 몸을 뒤척였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루드거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잡동사니 너머에 있는 세숫대야와 물에 적신 수건을 발견했다.




가볍게 손을 뻗어 「염동」 마법으로 수건을 띄우고 물을 짜내서 가져왔다.




루드거는 물수건으로 케이시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스윽. 슥.




그 손길은 세심했으며 또 부드럽기까지 했다.




꽤 도움이 된 것인지 케이시의 안색이 한층 더 나아졌다.




“무, 물…….”




바짝 탄 입술을 우물거리기에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물을 달라고 한다.




루드거는 이 상황이 웃긴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원한다면 사막에서도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물을 달라고 말하다니.




평소 간호해 주던 베티를 상대할 때에만 부리는 어리광인 걸까.




그 모습을 보며, 케이시의 상태가 정말 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루드거는 물 한 잔을 떠온 뒤, 냉기 마법으로 물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빨대는 덤이었다.




“여기 있다.”




루드거가 빨대를 내밀자 케이시가 그것을 물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쪼옥 쪼옥.




뭔가 아기 새에게 모이를 주는 기분.




케이시는 마른 목을 다 축였는지 빨대에서 입을 뗐다.




루드거는 반 정도 남은 잔을 탁자 위에 놓은 뒤 케이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볍게 기운을 불러일으키자 손끝에 희미한 기운이 어렸다.




내뻗은 기운은 케이시의 몸을 뒤덮었다.




현대 마법으로는 구현조차 힘든 기적과도 같은 치유의 힘.




오래된 화상마저도 지우는 힘이지만, 지친 정신마저 회복시켜 줄지는 루드거도 모른다.




다만 마냥 의미가 없는 행동은 아니었는지, 케이시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제대로 먹혔다는 의미였다.




케이시의 감겼던 눈이 희미하게 떠진 것도 그때였다.




“……당신.”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이쪽을 보는 순간, 루드거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리라 생각했다.




아니면 욕을 하면서 화를 내거나.




하지만 직후 케이시가 보여 준 반응은, 루드거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미안해.”




그녀가 꺼낸 첫마디는 분노도 추궁도 질책도 아닌.




사과였다.




“나 때문에, 오명을 쓰고 도망치게 해서…….”




루드거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됐다.




왜 사과를 하는 거냐고.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그 말을 꺼내기보다 먼저.




케이시가 사죄했다.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




동시에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아니야.




온갖 생각이 루드거의 머릿속에 거칠게 맴돌았다.




─네가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너를 이용하고, 너에게 그 행동을 이끌어 낸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야.




그 말을 그대로 전하면 된다.




그녀가 그 진실을 믿지 않더라도, 그것을 전한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괜찮다.”




“……!”




“사과를 받아들이지.”




루드거는 그리 답하며 물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케이시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사르르 눈을 감았다.




이내 안정적으로 변한 호흡이, 그녀가 이번에야말로 깊은 잠에 빠졌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도 어떠한 악몽도 없는 달콤하고도 감미로운 잠을.




탁.




루드거는 마법을 사용해 창문을 열어 내부의 탁한 공기를 환기했다.




그리고는 케이시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현관 밖으로 나오자 때마침 장을 보고 돌아온 베티와 마주쳤다.




“아! 케이시는 만나셨나요?”




“그래.”




“케이시 상태가 많이 안 좋죠? 죄송해요.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괜찮다. 그리고 지금은 한층 나아졌으니, 수면을 푹 취하게 해 주면 될 거다.”




“어? 정말요?”




그 말에 베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곧바로 케이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2층으로 후다닥 달려 올라갔다.




루드거는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흘린 뒤 자리를 떠났다.




케이시가 그로부터 눈을 뜬 것은,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저물기 시작한 저녁이었다.




“손님이 왔었다고?”




“네. 몰랐어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뭔가 내가 좋은 꿈을 꿨던 거 같기도 하고.”




케이시는 뺨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떼어 내며 물었다.




“그래서 누가 찾아왔는데?”




“그 사람이요! 케이시가 평소에 자주 말하던 사람.”




“내가 자주 말하던 사람이 누군데.”




“루드거 첼리시요.”




“……뭐?”




그 남자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그를 본 기억이…….




‘어……. 잠깐만, 설마?’




케이시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잠시 휘청거리다 다시 침대에 풀썩 누웠다.




“케이시? 얼굴이 빨개요. 혹시 어디 아파요?”




“아니, 그냥. 갑자기 좀 어지러워서.”




케이시는 그렇게 답하며 방 내부를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그 남자가 무언가를 훔쳐 갔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방 안에는 줄어든 물건은 없었고, 오히려 없던 것이 늘어나 있었다.




특히 시선이 가는 것은,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인 꽃다발이었다.




“베티. 이 꽃다발은 뭐야?”




“그거요? 손님이 가져온 거예요.”




손님이라면.




여기 찾아온 손님은 단 한 명뿐이지 않나?




‘그, 그보다 저거 꽃. 히비스커스 아니야?’




정열적인 붉은 꽃잎을 지닌 히비스커스 꽃.




그 꽃이 지닌 꽃말은.




‘아무도 모르게 간직해 온 사랑…….’




퍼엉!




케이시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지다 못해 그녀의 머리에서 김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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