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8화 하이에나와 목줄 (2)

 ◈ 358화 하이에나와 목줄 (2)




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루드거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당장 떠오르는 것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다 알고 찾아왔어.’




눈동자를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했다.




발뺌할까? 다른 사람이 한 거라고 꼬리를 잘라? 아니면 란팔츠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휴고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루드거는 그런 휴고의 속내를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미 수세에 몰렸는데도 끝까지 도망칠 궁리부터 하다니.




참 한결같은 남자다.




“피차 시간을 낭비하는 짓은 여기까지만 하지. 휴고 부르테그 선생. 내가 왜 찾아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리라 생각하네.”




“그건…….”




“아니면 기획처장으로서 내 입으로 직접 말해 줘야 하나? 그쪽이 러셀 란팔츠의 돈을 먹고서 내부에서 프락치 짓을 하려 했다고?”




“…….”




자신의 행동이 전부 탄로 나자 휴고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은연중에 눈치챈 것이다.




그 모습에 루드거는 속으로 웃었다.




과연,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기가 막힐 정도로 감이 좋은 인간이다.




그야말로 탄광 속 카나리아와 다름없다.




“휴고 부르테그 선생. 그렇게 권력을 부리던 예전의 자리가 좋았나? 외부의 사람에게 고개를 조아려가며 충실한 개가 될 정도로?”




“……말조심해라.”




“말조심? 그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 해야 하는 일이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모양인데, 당신은 지금 잘못을 저지른 게 걸린 상황이야.”




“증거. 그래, 증거 있어? 내가 란팔츠와 모종의 거래를 맺었다는 증거 말이야!”




휴고는 속으로 웃었다.




있을 리가 없겠지. 애초에 증거라고 할 만한 것을, 고작 세오른에서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아무리 루드거가 기획처장이라 하더라도, 그의 계좌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이 모든 것이 심증뿐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루드거는 휴고의 얼굴 앞에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그쪽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러셀 회장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로군.”




러셀은 친절하게도 자신이 휴고에게 돈을 건넨 증거를 모아 두고 있었다.




휴고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귀신을 마주친 사람처럼 얼빠지고 말았다.




“이, 이게 어, 어떻게…….”




“믿을 사람을 믿었어야지. 러셀 란팔츠가 당신을 이용한 뒤 그냥 놔두리라 생각했나? 그와 거래를 트고 충실한 개가 되기로 한 시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목줄을 찼다는 걸 눈치챘어야지.”




아니면 그걸 알면서도, 세오른 내에서는 떵떵거리며 지내길 바란 걸지도 모른다.




철옹성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병사보다는, 비록 모래성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군림하는 왕이 되고 싶었던 거겠지.




“나, 나는…….”




휴고는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몸을 덜덜 떨었다.




이전에는 귀족 파벌 교사들을 본인이 쳐 냄으로써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휴고 부르테그 선생. 나와 총장이 왜 당신을 그냥 놔뒀다고 생각하지?”




뜬금없는 물음에 휴고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루드거를 바라봤다.




“우리가 당신을 가만히 놔둔 것은 그쪽이 처리하기 곤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야.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쫓아낼 수 있었지.”




“그, 그럴 리가 없어.”




“믿기 싫다면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그쪽을 가만히 놔두었어. 이유가 뭔지 아나? 최소한 귀족들을 제어할 머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야.”




“뭐, 라고?”




“휴고 부르테그. 당신은 교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그렇게 썩 뛰어난 인물은 아니지만. 파벌 정치에 한해서는 없으면 안 될 필요악이었거든.”




휴고는 귀족 파벌 교사들의 구심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휴고를 쫓아내면, 귀족 교사들일 일제히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휴고가 자기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던 것은 그가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총장이 괜히 벌집을 들쑤시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놔뒀을 뿐이었지.




“같은 귀족 파벌이라면, 그쪽이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쉬쉬하면서 덮어 주려 하겠지.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하지만 이번 러셀 란팔츠와 관련된 사건은, 같은 귀족들조차 덮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계속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면 적어도 언젠가 기회가 왔을 텐데. 왜 스스로 화를 자처하고 나서는지 모르겠군.”




그 비아냥이 휴고의 인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네놈이, 뭘 안다는 말이냐! 귀족으로서, 평민들이 세오른에 발을 들이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을!”




“그게 문제였나?”




“문제냐고? 그래! 문제지! 그것도 아주 빌어먹을 문제! 예전이었다면 세오른에 들어오기는커녕, 바깥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할 놈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당당하게 안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감히 귀족들과 맞먹으려 들고 있어!”




휴고에게 마법이란 선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권위를 증명하는 학문이었다.




마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귀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귀족.




평민에겐 절대로 허락할 수 없는, 특권이었던 셈이다.




세월이 흐르며 그 특권을 빼앗기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휴고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피눈물이 흐르는 상황이었다.




“…….”




루드거는 악에 차서 외치는 휴고를 가만히 바라봤다.




휴고의 말도 안 되는 궤변에 일일이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여기서 루드거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휴고는 그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두 사람은 살아온 길이 너무 달랐다.




평생을 좋은 집안, 좋은 대접을 받으며 귀족으로서의 자만심을 주입받으며 자라 온 휴고다.




그에게 ‘세상은 바뀌었고, 당신은 변해야 한다’라는 말을 해도 이해할 리가 있나.




자기 삶의 근간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더 격렬히 저항한다.




자신이 옳다고, 너희가 틀리다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그것이 신분을 넘어 세대 간의 갈등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빌어먹을! 전부 너 때문이야! 너랑 그 총장 년만 아니었더라도 내가 이렇게 되는 일은 없었다고! 대체 왜 그런 특권을 지녔으면서, 남들에게 베풀려고 하는 거지? 그렇게 세간의 평가가 중요했나? 나는 적어도 베풀 줄 아는, 그런 선량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려고?!”




휴고는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는지 거칠게 들썩이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제길. 나는, 나는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란 말이다.”




화를 내봤자 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미 전부 끝나 버렸는데.




“휴고 부르테그. 그쪽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나는 모른다.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고. 그건 그쪽도 피차일반 아닌가?”




“…….”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전혀 모르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걸 따진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그쪽이나 우리나, 똑같은데. 그러니 쉽게 정리해 주지.”




“뭘, 쉽게 정리한다는 거냐?”




“당신은 우리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명확한 진리는 이 하나뿐이라는 거지. 이보다 명료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




“무슨 숭고한 사명이니 적합한 이유이니, 그런 건 처음부터 필요 없었어. 싸웠고, 난 이겼고 그쪽은 졌다.”




루드거의 말에 휴고가 눈을 부릅떴다.




“결국, 세상사가 그런 거 아닌가. 패배했으면 끝. 무엇보다도 간단명료한 세상의 진리지.”




“제길.”




휴고도 그 말만큼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근처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하. 제길. 그래. 그런 거였군. 이미 다 끝났다는 건가.”




힘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던 휴고가 들었던 고개를 내리며 루드거를 응시했다.




그는 체념과 후회로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서 나를 세오른에서 쫓아내기라도 할 건가?”




“그것도 방법 중 하나지.”




“그만한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이번 결정에 반감을 품는 자들이 적지는 않을 거야.”




“그쪽의 처분은 사실상 정해졌다.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이미 난 결정을 알려 주기 위해서일 뿐.”




그게 무엇이든 최소한 세오른에서 쫓겨나는 것은 확정으로 보였다.




“휴고 부르테그. 우선은 축하한다고 말해 두지.”




“축하한다고? 지금 누구 놀리나?”




“적어도 그쪽은, 세오른 교사라는 직위만큼은 여전히 유지하게 될 거다.”




“뭐?”




휴고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볼을 씰룩였다.




당장에 해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인데, 직위가 그대로 유지되다니?




“물론 감봉과 더불어 수업에 필요한 경비 지원, 연구비 지원은 대폭 감축되겠지. 그리고 그쪽이 다른 연구 시설과 동아리 지원에 지닌 전권을, 손에서 놔줘야겠어.”




“허.”




사실상 직위만 유지하는 거지, 팔다리는 모두 잘라 버린다는 소리였다.




머리와 몸통만 남아서 살아남는다 한들 그게 과연 사는 것일까.




하지만 루드거는 안다.




휴고 부르테그라는 인간은,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싶어 한다는 걸.




“……그게 조건인가?”




“왜. 너무 후하다고 생각하나?”




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 기회에 완전히 쫓아내는 것도 고려해 봤다. 하지만 곧장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지.”




“왜지?”




“그쪽을 쫓아낸다고 한들, 언젠가 새로운 휴고 부르테그가 나타날 테니까.”




휴고는 그게 무슨 의미냐고 따지지 않았다.




이건 정말 현실적인 일이었다.




휴고를 쫓아내고, 거기에 반대하는 교사들도 하나둘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전부 평민 출신 교사들로만 채울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귀족들의 후원이 줄어들 거고, 학생 중에서 세오른에 오려는 귀족들 또한 사라질 테니까.




게다가 그를 쫓아내는 건 세오른의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바깥에 알리는 꼴이다.




그러기엔 지출이 너무 컸다.




“그러면…….”




절망에 빠졌던 휴고의 얼굴이 희망과 안도의 기색이 어린다.




루드거는 그런 휴고를 향해 가볍게 일갈했다.




“너무 좋아하지 말도록. 그쪽이 잘해서 남도록 하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나를 대체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없지는 않지.”




루드거는 피식 웃으며 바깥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이만 들어오지.”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휴고는 그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크, 크리스 베니모어 선생?”




크리스는 대체 왜 네가 여기에 있냐고 묻는 휴고의 시선을 무시했다.




대신 대답해 준 것은 루드거였다.




“휴고 부르테그. 앞으로 크리스 베니모어 선생이 당신의 자리를 대신 이어 나갈 거다.”




“뭐, 뭐?”




“같은 귀족에, 집안도 꿀리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온건파에 가까우니 가장 제격인 셈이지.”




휴고가 그게 정말이냐는 시선으로 크리스를 바라보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습니다.”




“크리스 선생. 대체, 대체 왜…….”




“언제까지고 내부에서 이런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미 없는 싸움이라니…….”




휴고는 자신의 투쟁을 같은 귀족인 크리스가 부정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크리스는 자신의 말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바깥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는지, 그날 지하 수로의 싸움에서 겪었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학생들이 거기에 휘말리게 된다면 얼마나 나약한지도.




루드거가 크리스를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였다.




강요는 없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크리스 베니모어였다.




휴고는 결국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이제 과거의 영광은커녕, 앞으로 세오른에서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결과는 휴고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으니까.




“저대로 놔둬도 되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는데.”




“누구보다도 자기 보신에 진심인 사람이라, 그런 짓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겁니다.”




“무서울 정도로 상대를 꿰뚫고 있군.”




“칭찬 감사하군요.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이제 이곳의 주인이 되셨군요.”




휴고가 차지하고 있던 넓은 집무실.




휴고가 쫓겨난 이후, 이제 크리스가 이곳의 주인이다.




“흥. 애초에 난 이런 걸 바라지도 않았어.”




“이번 일이 아직도 불편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예전처럼 매달릴 생각도 없다. 휴고 선생님은 정도를 넘어섰고, 이 결과 자체는 나 또한 동의하니까.”




다만, 머리로는 그걸 이해해도 감정은 그러지 못했다.




같은 귀족으로서 서로 친하게 지내던 시절은 있었을 테니까.




비록 그것이 계산으로만 이루어진 관계였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이걸로 빚은 갚았다.”




“무슨 빚 말입니까.”




“그녀와 다시 만나게 해 준 거 말이다. 다시금 고맙다고 말해 두지.”




언행 자체는 여전히 이쪽을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은근하게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기쁨의 감정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 예.”




벨라루나를 다시 만나게 해 준 것만으로 이런 귀찮은 일을 자처하다니.




루드거는 크리스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 *




곧 [신비의 밤]이 개최된다.




자리를 비우는 것은 채 며칠도 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루드거는 마지막으로 로열 스트리트의 점검에 나섰다.




지난번 파블로 가문의 사람들을 처리한 이후로, 아직은 수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란팔츠를 집어삼킨 이후로, 이쪽을 경계하고 동맹을 맺으려는 사람이 더 늘었다는 좋은 소식뿐.




‘나쁘진 않군.’




배웅해 주겠다는 한스의 호의를 거절하며 루드거는 밤중의 거리로 나왔다.




이곳에서 몇 블록 너머의 거리는 어두운 날씨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중이다.




그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루드거가 서 있는 거리는 더 짙고 어둡게 느껴졌다.




“……이런.”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어둡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근방만 유독 어둡다.




언제부터인가, 주위에 돌아다니는 행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의 손님인가.




루드거가 고개를 돌려, 어느새 자신을 포위한 녹색 로브의 불청객들을 응시했다.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깃든 것은.




짙은 정취가 나는 풀 냄새.




“먼 곳에서 손님들이 오셨군.”




설마하니 아직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엘프 암살자들이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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