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59화 그늘 속 추적자들 (1)

 ◈ 359화 그늘 속 추적자들 (1)




주위에서 살기가 흘러넘친다.




과연 바깥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는 엘프 특공대라 그런 걸까.




날이 얇고 예리한 단도로 피부를 자근자근 찌르는 것 같다.




‘언젠가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빨리 올 줄이야.




뭐 의회를 소집하고, 바깥으로 보낼 놈들을 추리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린다더니?




루드거는 벨라루나의 말을 괜히 믿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채 남아 있는 의문을 씻어 내지 못했다.




그들이 벨라루나의 흔적을 읽고서 뒤쫓아온 곳은 수도가 아니었다.




레더벨크, 그것도 바로 로열 스트리트까지 온 거다.




그것까진 그러려니 하지만, 문제는 왜 자신을 노리느냐다.




“내게 무슨 용무라도 있나? 사람을 착각한 것 같은데, 나는 엘프에게 척을 질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혹시라도 대화의 여지가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눌러쓴 녹색 후드의 틈새로 보이는 눈빛은 이쪽과의 대화를 일절 거부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적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는 프로 의식은 아니다.




오히려 이쪽을 깔보는 의도가 강했지.




‘그러고 보니 엘프들은 인간을 싫어하면서도 깔본다고 했지.’




엘프는 태생부터 인간보다 많은 것을 타고난 종족이다.




수명, 외모, 자연 친화력, 마법과 정령술에 대한 재능까지.




그들의 몸은 나뭇잎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가볍기까지 하다.




엘프들은 인간을 단명종, 혹은 열등종이라 부른다.




그 차별적인 생각은 엘프 왕국이 폐쇄적인 사회가 되면서 더 심해졌을 터.




“이거 참.”




뭐가 어찌 됐든 루드거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작은 한숨과 함께 루드거는 지팡이를 꺼내 쥐었다.




까마귀 장식이 새겨진 지팡이를 꺼내기 무섭게 등 뒤의 엘프로부터 화살이 날아왔다.




쐐액!




사각을 노리는 기습이었지만, 루드거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지팡이로 가볍게 땅을 찍자 마법이 발동되며 땅이 불쑥 솟아올랐다.




화살이 연달아 대지의 벽에 박혔다.




보통이라면 활대가 부러져야 정상인데, 화살은 뿌리까지 벽에 박혀 바르르 떨었다.




총알보다 속도도 빠르거니와 위력은 훨씬 더 강하다.




그만큼 지금 이곳에 있는 엘프들이 상당한 정예라는 뜻일 터.




‘화살에도 기운이 서려 있군.’




화살은 그냥 날아오지 않았다.




바람 마법, 혹은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린 것인지 공기의 저항도 없이 막대한 회전력까지 머금고 있었다.




‘이래서야 총 든 갱단보다 더 상대하기 힘들겠어.’




갱단이야 불의 침묵 한 번이면 대부분 제압이 되지만, 대놓고 활을 쏘는 놈들은 다르다.




‘게다가 근접전을 벌이는 놈들도 있고.’




루드거는 고개를 뒤로 가볍게 젖혔다.




직후 그 자리를 날카로운 세검이 훑듯이 지나갔다.




조용하고 빠르다.




방어 마법을 펼치기도 전에 들어온 공격이었다.




이쪽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취할 수 있는 전법.




마법사를 상대로 절대 술식을 구현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걸, 이 엘프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공격을 가한 엘프 전사는 양손에 쌍검을 쥐고 있었다.




엘프는 팔을 교차시킨 뒤, 다시금 현란하게 휘두르며 루드거를 압박했다.




루드거는 그것을 피할까 했지만, 이대로 피하면 끝이 없으리라 생각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엘프는 그 모습을 보며 조소를 지어 보였다.




‘감히 마법사 주제에 전사를 상대로 근접전을 벌이려 해?’




카앙!




두 자루의 세검이 루드거의 지팡이와 충돌했다.




엘프는 지팡이 채로 루드거를 베려고 했다가, 칼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직후 루드거의 지팡이에서 소드스틱이 뽑혀 나왔다.




엘프는 눈으로 본 것을 판단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던졌다.




사악!




머리에 쓴 후드가 반으로 갈라졌다.




뒤로 착지한 엘프는 벗겨진 후드를 보고 손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얼굴이 세로로 쪼개질 뻔했다는 사실에 엘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떨리는 눈동자는 어떻게 마법사가 그런 무기를? 라고 묻고 있었다.




루드거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걸로 한 놈은 보낼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방심한 틈에 날린 기습과도 같은 일격이었다.




그런데 저 엘프는 타고난 반사 신경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했다.




역시 태생부터 남다른 종족이라 이건가.




그런 루드거의 태도가 자신을 향한 도발이라 느꼈는지, 엘프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한꺼번에 덮쳐!”




활을 쥔 엘프들이 루드거를 향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분명 활인데도 그 연사력이 총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루드거는 왼손으로 그래플링 건을 쏘아 위로 솟구쳤다.




루드거의 몸이 옥상이 있는 곳까지 붕 떴다.




설마 저런 도구가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엘프들이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투에 있어서 경험이 풍부한지, 곧바로 루드거를 쫓아 건물의 외벽을 밟고 옥상을 향해 뛰어올랐다.




건물 외벽의 창틀, 황동 파이프, 외부 계단을 밟는데도 그 소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허공에 도달한 엘프들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들은 보았다.




루드거의 몸이 그림자에 뒤덮이는 것을.




슈아악!




그림자로 뒤덮인 루드거의 몸이 자그마한 점으로 응축하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어, 어디지?”




“그 단명종은 어디냐!”




공중에 떠오른 엘프들은 당황했다.




상대방이 난데없이 허공에서 사라진 것이다.




모습만 감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의 기류를 읽는 엘프들은 숨어 있는 상대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으니까.




직후 그들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아래를 내려다본 엘프들은 사색이 되었다.




어두운 골목의 그림자 아래에서 몸을 일으킨 루드거가, 이쪽을 향해 술식을 겨누고 있었다.




[요동치는 불꽃]




푸화아악!




뜨거운 불길이 허공을 향해 강하게 분사되었다.




그것은 공중에 뜬 엘프들을 일시에 집어삼켰다.




그 민첩한 엘프들이라 하더라도, 발판 없는 허공에서 피할 방법은 만무할 터.




“흠.”




루드거는 완전히 꺼진 불길 너머의 풍경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마법에 직격당한 엘프들은 멀쩡했다.




아니,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화염의 피해를 무마하진 못했는지 로브 곳곳이 불에 그슬려 있었다.




열기에 의한 충격 때문인지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정령들 때문이로군.’




물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정령들이 엘프들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전 루드거의 마법을 막아 낸 것도 정령의 힘이었다.




“그래. 너희도 혼자서는 싸우지 않는다 이거로군.”




루드거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엘프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한낱 단명종을 상대로 정령까지 꺼내야 하나, 이런 회의감이 든 것이다.




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루드거는 다음 목표를 찾아 움직였다.




공중에 떠오른 놈들은 전부 손에 검을 쥐고 있는 근접 담당.




아직 활을 쏘는 녀석들은 지상에 남아 있었다.




까마귀 가면 속 눈동자가 활을 쥔 엘프를 빠르게 훑었다.




활을 쥔 엘프들은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거리를 벌려!”




“견제해!”




궁수들은 뒤로 후퇴하면서 활을 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아테르 녹터누스]를 두른 루드거는, 굳이 화살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몸을 두른 검은 그림자가 몇 번 큰 팔을 휘두르니 자연의 기운을 머금은 화살들이 힘없이 부서졌다.




루드거의 몸이 앞으로 훅 쏘아지며 도망치는 엘프를 삽시간에 따라잡았다.




“무, 무슨!”




엘프는 인간이 자신의 발놀림을 따라온 것에 적잖게 놀랐다.




그러나 당황한 것도 잠시, 곧이어 견제의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그림자에 의해 힘없이 튕겨 나갔다.




엘프는 이를 악물고 정령을 불러냈다.




반투명한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는 정령을 향해 외쳤다.




“친우여! 적을 물리쳐라!”




엘프가 그렇게 외쳤지만, 정령은 묵묵부답이었다.




“친우여!”




다시 외쳤지만, 정령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엘프는 대체 왜 그러냐고 물으려 했지만, 정령의 반응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정령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대자연의 존재인 정령이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을 두려워하다니?




하지만 지금 정령이 보여 주는 반응은 그것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푸욱!




그 순간 검은 그림자의 칼날이 정령의 몸을 꿰뚫으며 바로 역소환시켰다.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온 루드거의 모습에, 엘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 어떻게 정령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내 상대로 정령을 부르려면, 최소 중급 이상은 불렀어야지.”




루드거는 자리에 얼어붙은 엘프의 목을 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이, 이 단명종 따위가!”




주위의 동료 엘프들이 루드거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아테르 녹터누스]가 알아서 움직이며 모든 화살을 쳐 냈다.




활을 쥔 엘프들은 이를 악물고 정령을 소환했지만, 소환된 정령들은 루드거를 보더니 전부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루드거는 그런 엘프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동그란 눈 부분의 안광이 초승달처럼 휘어졌으니 웃는 게 분명했다.




“비키세요!”




그때 가녀린 외침과 함께 루드거의 몸이 한차례 들썩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리니, 단단한 땅을 뚫고 억센 나무뿌리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드루이드인가?”




엘프들은 태생부터 정령을 부리며 추가적으로 검 또는 활을 다룬다.




하지만 간혹 특출하게 자연의 힘과 마법을 잘 다루는 엘프들이 있다.




엘프 사회에서의 마법사이자 사제.




토착 주술과 마법, 신비의 힘을 다루는 그들을, 인간들은 드루이드라고 부른다.




드루이드는 루드거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있었다.




루드거의 발목을 조이던 나무뿌리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그의 전신을 옭아맸다.




“단명종! 당장 동포를 놓으세요!”




드루이드는 루드거가 아직도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엘프를 놓으라 엄포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기라도 할 생각일까.




웃기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런 녀석, 인질로 삼지 않아도 죽일 생각으로 온 거면서.




“그래. 놓아주지.”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엘프의 목줄을 틀어쥔 손에 마력을 모아 신체 능력을 강화시켰다.




강화된 악력에 힘을 가하자 엘프의 목이 두둑! 소리와 함께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




루드거는 시체가 된 엘프를 툭 놓았다.




그리고는 드루이드를 돌아보며 물었다.




“시킨 대로 놓았다. 그래서, 이제 누가 단명종이지?”




“잇……! 죽어!”




드루이드가 마력을 끌어 올리자 나무뿌리가 루드거의 몸을 억세게 조였다.




강철조차 우그러뜨릴 만한 위력.




그러나 루드거에겐 하품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테르 녹터누스]가 지켜 주는 이상, 고작 저런 나무뿌리로는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루드거가 힘을 주자 나무뿌리가 힘없이 끊어졌다.




드루이드는 이를 악물며 새로운 마법을 펼쳤다.




등 뒤로 거대한 꽃이 피어오르더니 이윽고 사방으로 녹색 가루를 흩뿌렸다.




가루가 닿기 무섭게 몸에 힘이 쭈욱 빨려 나갔다.




반대로 가루가 닿은 엘프들은 전보다 더 활기가 넘쳐 보였다.




드루이드는 한차례 비틀거리는 루드거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타앙!




드루이드의 이마가 뒤로 확 젖혀졌다.




주위의 엘프들은 어벙한 얼굴로 쓰러진 엘프를 응시했다.




“말이 너무 많군. 이런 건 예상 못 했나 보지?”




검은 리볼버를 손에 쥔 루드거가 숨을 거든 드루이드를 비웃었다.




마법사가 칼을 쓰는 것도 웃기는데, 여기서 총까지 뽑아서 쏘리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마법을 펼친 드루이드가 죽자 피어오른 거대한 꽃은 금방 시들었다.




허공에 나풀거리던 녹색 가루도 사라졌다.




“으아아아!”




“죽어라!”




그때 옥상에서 회복을 마친 엘프 검사들이 루드거를 향해 뚝 떨어졌다.




루드거는 엘프 검사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슬슬 나와라.”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엘프 검사들은 그것에 의문을 품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 이 단명종의 팔다리부터 잘라 내고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도 먼저, 거구의 무언가가 날아와 그들을 덮치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은 느렸다.




속도도 마찬가지였다.




그 거구의 남자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날아와 그들을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골목길에 강렬한 돌풍이 불어 닥쳤고, 몸이 가벼운 엘프들은 거기에 휩쓸렸다.




루드거도 아테르 녹터누스가 두 팔을 땅에 박아서 고정시키지 않았다면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등장 한번 요란하군.”




루드거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치렁치렁한 백발을 흩날리는 거구의 수인이 있었다.




아직도 쪘던 살을 완전히 빼진 못한 모양인지, 전체적인 체구는 여전히 둥그렇다.




하지만 조금 전 움직임과, 지금 풍기는 기세를 두고 과연 누가 그를 비웃을 수 있을까.




“판토스.”




루드거가 이름을 부르자 판토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루드거를 돌아보았다.




이전까지 권태에 찌들어 있던 그의 눈동자 안에는, 오랜만의 전투를 앞둔 전사의 야성이 깃들어 있었다.




“제일 대장인 한 놈만 빼고 다 정리해.”




판토스는 그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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