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62화 플란테 (2)

 362화 플란테 (2)




신비의 밤이 개최되기까지 앞으로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마법수 소환 특강을 끝마친 루드거는 교무실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마법수 수업은 이제 완전히 궤도를 탔다. 소환한 시점에서 내 손을 떠났고, 앞으로의 발전은 학생들의 재량에 달려 있어.’




마법수는 소환의 과정이 까다로울 뿐, 소환만 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다고 해야 할까.




각 마법수에 깃든 저마다의 「특성」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차차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곧 있을 신비의 밤에 참석하는 것과.




세디나 로쉔에 관한 일이었다.




“여기 커피입니다.”




때마침 따뜻한 커피를 타온 세디나가 루드거의 앞에 잔을 놓았다.




“보고할 업무는?”




“없습니다.”




“그 밖에 다른 일은?”




“로열 스트리트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스 선배님께서 열심히 해 주신 덕분이죠.”




“그렇군.”




후르륵.




루드거는 가볍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세디나는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어쩜 커피 한 잔을 마실 뿐인데, 그 자체만으로 그림이 된다.




화사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업무를 시작하는 루드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세디나가 조교로서 지닌 즐거움 중 하나였다.




‘만약에, 선생님께서 결혼하신다면 누구랑 할까?’




루드거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정말 대단한 여자들이 줄을 설지도 몰랐다.




자신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겠지.




‘나는 지금도, 내가 선생님의 조교로 일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과분한 거 같아.’




세디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올려 보았다.




로쉔 가문의 사람이지만, 가문 자체를 증오하는 이단.




아담한 체구에 성격도 소심하다.




타고난 것이라고는, 결국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엘프라는 절반의 혈통뿐.




감히 자신 같은 하프엘프가 루드거와 함께 있어도 되는 걸까?




세디나는 아직도 루드거가 자신에게 했던 제안을 떠올리면, 그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맛이 좋군.”




루드거의 칭찬 어린 목소리에 세디나가 황급히 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원두를 바꾼 건가? 처음 마시는 듯한 맛인데.”




“네. 조교실에서 소소하게나마 키우는 네사리엔 커피 원두입니다.”




“네사리엔 원두? 조교실에서 키울 만한 종은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




“예. 기온과 습도 조절이 중요하고, 병충해에 약하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키워 냈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키운 것 같지도 않은데…….”




루드거의 과분한 칭찬에 세디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아, 아무래도 제가 엘프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지, 유독 제가 키우는 식물은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흠.”




루드거는 세디나를 빤히 응시했다.




세디나는 그 시선이 묘하게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맛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상관없는 일이겠지.”




“그런가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원두 재배에 열을 올리지 마라. 네 본분은 어디까지나 내 조교로서 활동하는 것이니까.”




“네. 조교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루드거는 커피의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빠르게 잔을 비웠다.




동시에 루드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식물을 이렇게 잘 키워 내는 것도, 플란테의 혈육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납득이 가는군.’




문득 궁금함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적어도 루드거가 보기엔 세디나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며 그것을 최상의 형태로 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세디나 본인은 단순히 어머니의 피를 이었기에 엘프라면 모두 이런 건 줄 알겠지만.




벨라루나와 다른 엘프들을 봐 온 루드거의 입장에서는, 세디나는 확실히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




‘세디나의 특기는 종이를 다루는 마법. 게다가 종이에 자신의 의식을 불어넣어, 먼 곳도 감시할 수 있지.’




세디나는 마법으로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으고,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종이 마법이 단순히 특이 계열 마법이 아니라면?’




루드거는 그런 가설을 하나 떠올려 보았다.




종이는 결국 나무로 만든다.




원자재인 나무는 크게 보면 식물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것을 최적의 형태로 개화할 수 있는 거라면, 세디나의 마법은 단순히 종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




세디나는 엘프의 위대한 가문 중 하나이자 세계수를 수호하던 가문의 피를 이었다.




비록 혼혈이라고 할지라도, 혼혈이 더 약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흐음. 아직 확신은 할 수 없단 말이지.’




이런 부분에서 의문을 해소하려면 연륜이 있는 엘프에게 조언을 구해야 했다.




떠오르는 엘프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먼저 찾아가서 플란테 가문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기에는 걸리는 것이 워낙 많았다.




‘비에라노 선생님의 가문인 덴티스는 엘프 사회 내에서도 타 종족에게 우호적이라고는 하지만.’




세디나가 사실 플란테의 생존자였고, 엘프 왕국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비에라노 덴티스는 그걸 어디서 알았냐며 오히려 루드거를 추궁할 것이다.




아직 교사 외에 다른 신분을 지닌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총장을 제외하고 없는 상황.




여기서 괜히 추가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플란테 가문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루드거는 일단 이 건에 대해서는 내려놓기로 했다.




당장에 세디나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일은 없었으니까.




“아, 참. 세디나 조교.”




“네 선생님. 혹시 따로 시키실 일이라도? 아니면 커피 한 잔 더 내올까요?”




루드거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세디나가 반색하며 물었다.




“커피는 이만 됐다. 하루에 한 잔. 그 이상은 좋지 않아.”




“아, 네.”




세디나는 아쉬움에 곧바로 풀이 죽었다.




루드거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세디나에게 건넸다.




“받아라.”




“어? 이, 이건 뭔가요?”




“향수다.”




“향수요?”




루드거가 건넨 것은 정말로 향수였다.




아름다운 유리 세공이 들어간 병에 반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다.




그냥 향수도 아니고,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고급 향수다.




물론 시중에서만 구하기 힘들지, 이미 로열 스트리트의 지배자가 된 루드거에게는 원할 때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이걸 왜 저에게……. 헉! 서, 설마 제 몸에서 혹시 무슨 냄새라도 나는 겁니까?!”




세디나는 황급히 놀라서 자신의 몸 곳곳의 냄새를 맡았다.




루드거가 자신에게 향수를 준 이유가, 냄새가 독하니 그걸 지우라는 의미로 착각한 것이다.




사실 냄새를 지우라는 의미로 준 부분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진정해라, 세디나 조교. 너에게서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굳이 무슨 냄새가 나냐고 꼽는다면, 대자연의 우거진 숲처럼 청아한 풀 내음이 났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향수를…….”




“선물이다.”




“선물, 입니까?”




“그래. 내 조교로서 지금까지 고생도 많이 했는데, 선생으로서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이 향수는…….”




“내가 이성에게 선물을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말이다. 그건 조언을 구한 결과물이다.”




이성에게 선물을 해 본 경험이 없다고?




하긴, 당연한 일이다.




루드거는 얼굴만 보면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무더기로 받았을 테니까.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지.




세디나는 입술을 씰룩였다.




싫냐고? 절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죽을 정도였다.




심지어 루드거는 남에게 선물을 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 그렇다는 것은…… 내가 루드거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은 사람?!’




세디나가 고민하던 그때 루드거가 물었다.




“표정이 좋지 않다만. 혹시 싫은가?”




“아, 아닙니다!”




세디나는 루드거의 손에 쥐어진 향수병을 누군가에게 뺏길세라 빠르게 챙겼다.




세디나는 가장 소중한 물건을 지니듯 두 손으로 향수병을 품 안에 꼬옥 안았다.




동시에 황급히 변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그게. 제가 감히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런 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받는 네가 잘 써 준다면 그것만으로 내게 기쁜 일이니까.”




“헤헤. 그, 그렇군요. 아, 혹시 따로 지시하실 일은 있으신가요?”




“어차피 곧 신비의 밤에 참여하기 때문에 대부분 업무에 관한 일은 더는 없다. 다만.”




“다만……?”




“선물받은 것이라고 해서, 너무 아끼지 말아 줬으면 좋겠구나.”




“……!”




세디나는 이 순간 다짐했다.




루드거가 건네준 향수를 아끼지 않고 뿌리겠다고.




* * *




유리창을 통해 내리쬐는 달빛이 산산이 부서진다.




반짝이는 유리 파편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방 곳곳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루드거는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까, 이렇게 가만히 쉬었던 것조차 까마득한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띵동─!




숙소의 벨이 울렸다.




루드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굳게 닫힌 현관문으로 향했다.




손님? 이 밤중에 찾아올 손님은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루드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세오른.




누군가가 자신을 해코지할 생각으로 찾아왔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해야 했기에, 루드거는 즉시 마법을 펼칠 준비는 갖춰 둔 상태.




그대로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셀리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루드거 선생님.”




정령학 교수인 셀리나가 대체 왜 이곳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루드거는 차분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물었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슬쩍 하늘을 살폈다.




“이 오밤중에 말입니다.”




평소의 셀리나였다면 여기서 얼굴을 붉히거나 허둥지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반응은 평소와 아주 달랐다.




“그러면 안 되나요?”




“…….”




당당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셀리나.




그 행동에 맞춰 밤중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분홍빛 머리가 찰랑인다.




셀리나의 물음대로 딱히 안 될 일은 없다.




수업 시간 외에 교사들끼리 모이는 것이 규칙으로 금지돼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평소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라 약간 당황스러웠을 뿐.




“딱히 안 될 이유는 없죠. 다만 굳이 용무가 있으셨다면, 따로 저를 찾아왔어도 됐을 겁니다만.”




“루드거 선생님이 워낙 바쁘셔서요. 시간이 나지 않았어요. 그것도 있지만, 저도 가르칠 수업이 있잖아요?”




루드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수업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다 보니, 교사들도 꽤 혹사당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루드거는 불현듯, 마치 몸 위에 몰래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를 발견한 듯.




문득 그런 자그마한 위화감을 찾아냈다.




이쪽을 향해 생글거리며 눈웃음 짓는 셀리나의 모습.




평소와 달리, 어딘가 이질적이다.




“……누구냐?”




“아. 들켰네.”




상대는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지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한 턴이 이어진 뒤 그녀의 모습은 다르게 변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셀리나의 외모이지만, 셀리나가 아닌.




“에스메랄다?”




셀리나의 진짜 인격이자…….




검은 여명회의 퍼스트 오더.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자 루드거가 눈을 빛냈다.




에스메랄다는 죽었다.




그녀의 영혼은 콰지모도에게 속박당했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머나먼 빛의 저편으로 떠났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금 눈앞에 나타났을 리가 없다.




신의 농간이 아니라면.




‘혹은.’




악마의 장난일 수도 있겠지.




루드거의 표정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헬리아.”




“어라? 들켰네?”




에스메랄다가 혀를 삐죽 내밀더니 구두를 신은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의 모습이 환상처럼 흩어지며 진짜 모습이 나타났다.




흑과 백으로 구분되는 머리카락.




자유분방한 패션.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양산까지.




“짜잔. 네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하길래 놀러 왔어.”




“대체 네가 여기엔 어떻게…… 아니. 말을 말지. 어차피 네 능력이라면 이곳에 숨어들어 오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까.”




진짜와 같은 환각을 펼칠 수 있는 헬리아라면, 세오른에 몰래 들어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이리라.




“그래서 난데없이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우리는 이번이 고작 두 번째 만남이고, 그사이에 서로 친해질 만한 구석은 전혀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으응? 왜? 굳이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대할 필요가 있어?”




“필요가 아니라, 당장에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굳이 친분을 만들 관계는 아니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헬리아는 요염하게 웃으며 루드거의 목깃에 손을 올렸다.




그 손길은 마치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뱀처럼 자연스럽고 은밀했다.




“이제부터라도 친해질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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