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A - 364화 악마의 어울림 (2)

 ◈ 364화 악마의 어울림 (2)




니콜라이의 비아냥거리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존 도우. 너는 왜 거기서 세오른의 사람들을 위해 싸웠냐는 것이다.




실제로 루드거가 지키기 위해 싸웠는지 아닌지는 현장에 없었으니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과 목격자의 증언 등, 정보를 종합해 보면 정황상 추측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루드거는 황실에서 훈장까지 수여를 받았으니까.




테러를 막은 영웅이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니콜라이가 루드거를 물어뜯기엔 충분했다.




“설마, 배신하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이었다.




실제로 니콜라이가 루드거를 지적한 것은, 자신의 일을 방해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




뒤에서 몰래 해방군을 부려서 테러를 하고, 동시에 존 도우까지 한꺼번에 제거하려던 그의 계획이 전부 무산됐다.




당연히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루드거를 붙잡고 늘어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나오리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루드거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애초에 교사로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버러지들이 날 방해해서 제거했을 뿐이지.”




“그러면 훈장은 왜 받은 거지?”




“그거야 내가 제일 많은 버러지를 죽였으니 그런 거겠지.”




“뭐? 지금 그게 할 말이야? 네가 가만히만 있었어도, 해방군은 세오른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어. 그 세오른에 말이야.”




니콜라이의 목소리에 서서히 분노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루드거는 반대로 고요하고 차갑게 응수했다.




“어차피 그 자리에는 고위계 마법사들과 제국의 정예 병력이 모여 있었다. 큰 타격이라 해 봤자 햇병아리 몇 놈 죽는 게 전부였지. 그깟 해방군 버러지들이 뭘 할 수 있겠나. 그럴 바엔 차라리 내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게 이득이었을 뿐이다.”




“내가 보기엔 너는 오히려 그 몇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니콜라이, 오늘따라 유난히 감정적이군. 아니면 혹시 해방군이 네가 아끼던 부하들이라도 됐나?”




실제로 니콜라이가 해방군을 뒤에서 종용하고 부추겨서 수도 테러를 일으킨 것은 맞다.




오래전부터 모아 온 정보로 수도의 지하 아래에 거대한 버려진 시설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그곳을 해방군의 아지트로 만들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겠군.”




“…….”




니콜라이가 거기에 들인 공과 노력, 시간과 자금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그것이 눈앞의 존 도우 때문에 다 날아갔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니면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하하하. 그럴 리가?”




하지만 니콜라이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나가 봤자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다.




여기서 루드거와 더 논쟁을 지속하면 오히려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애초에 그런 녀석들, 뭐가 쓸모가 있다고 내가 부리겠어. 나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거 아니야?”




니콜라이는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자신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루드거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니콜라이를 바라봤다.




이 정도로 공을 들인 일이 실패했다면 보통 타격이 아닐 텐데,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것이다.




조금은 더 감정적으로 나왔으면 좋았는데, 아쉽게 됐다.




“다들 모였군.”




때마침 제로 오더가 회의장에 도착했다.




한쪽에는 자신의 부관은 이끌고서 늘 그렇듯 상석에 앉았다.




“오늘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새로 영입한 퍼스트 오더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새로 영입한 퍼스트 오더라고?




자리에 모인 퍼스트 오더들이 일제히 관심을 보였다.




과연 검은 여명회의 새로운 간부는 어떤 존재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동료, 혹은 경쟁자가 될지 모르는 자의 등장은 이 얼어붙은 자리에 다른 의미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인사하도록. 헬리아라고 한다.”




제로 오더의 소개와 함께, 퍼스트 오더가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야호! 모두 만나서 반가워! 난 헬리아라고 해!”




엄숙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




현장에 있는 모든 퍼스트 오더들의 눈빛이 싸하게 변했다.




이 녀석은 또 뭐야?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일단, 첫인사부터 발랄하게 인사를 하는 말투도 그렇고 행동이 가볍기 짝이 없다.




퍼스트 오더가 지녀야 할 강자 특유의 기품과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퍼스트 오더라고 해서 반드시 기품이 있을 필요는 없다.




빅터만 봐도 기품이나 카리스마와 전혀 상관없지 않은가.




하지만 적어도 빅터는 최소한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그 이상의 광기까지도.




‘조금 못 미덥군. 하지만 일단 제로 오더 님이 직접 뽑았으니.’




‘능력은 검증이 돼 있다고 봐도 좋겠죠?’




‘그보다 여성인가. 에스메랄다의 빈자리에 맞춰서 온 것치고는 꽤나 묘한 우연이네.’




모두가 저마다의 감상을 품고 있을 때 헬리아가 되물었다.




“어라. 뭔가 다들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네. 그래도 앞으로 함께 지낼 동료인데, 친하게 지내자고!”




“흥. 함께 지낼 동료는 무슨. 발목이나 잡지 마.”




그때 누군가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헬리아를 쏘아붙였다.




‘벤트민?’




다른 퍼스트 오더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벤트민은 헬리아를 못마땅한 것을 넘어 경멸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눈동자는 없어도, 이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벤트민은 원래도 장미에 핀 가시처럼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감정이 더 실려 있었다.




눈치가 없는 빅터 드레드풀조차도 벤트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평소의 웃음소리조차 자제할 정도.




“제로 오더 님께서 뽑은 만큼 실력은 꽤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엄연히 활동하는 분야가 다른 남. 그러니 자기 일이나 알아서 해. 친분이니 뭐니 그런 쓸데없는 건 입에 담지도 말고.”




“와오. 나 방금 그 말에 상처받았어.”




전혀 상처받지 않은 목소리로 엄살을 부리는 헬리아의 모습에, 벤트민이 발끈했다.




“정말 진지함이라곤 결여된 저열한 자네.”




“응? 난 매사에 진지한데?”




“하! 지금 장난치는 거야? 지금 네가 하는 말 자체가 뭐가 그렇게 진지하다는 거지? 장난이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너는 기품조차 느껴지지 않아. 아둔하고 가볍기까지 하지.”




그 폭언과도 같은 말에도 헬리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하게 벤트민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헤에. 그러면 그쪽은 자신이 고귀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보네?”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너는 나와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하고 말도 섞지 못했어.”




“아, 그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너 이름이 뭐야?”




“…….”




“생각해 보니 내 소개만 했지, 우리 제대로 통성명은 하지 않았잖아?”




“하. 그렇게 궁금하면 혼자서 알아보시든지?”




여전히 순진무구한 헬리아의 태도에, 벤트민은 이제 대꾸조차 하기 싫은지 대놓고 그녀의 의견을 묵살했다.




결국, 보다 못한 레슬리가 나섰다.




“벤트민. 그만하도록. 제로 오더 님이 보시는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냐.”




“흐응. 이름이 벤트민이라고 하는구나?”




헬리아는 그 순간 눈을 빛냈다.




자그마한 검은 불덩어리가 장난기를 머금은 것처럼 한차례 요동쳤다.




그것은 다른 퍼스트 오더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헬리아의 바뀐 태도에 다들 의아해하는 순간이었다.




“흐음? 가명을 쓰는 줄 알았는데, 일부는 그냥 자기 본명을 그대로 쓰나 보네.”




“뭐라고?”




“벤트민. 그거 네 본명 아니야? 이거 정말 우연이다! 나 그 이름 알고 있거든!”




이름을 알고 있다는 말에 벤트민은 헬리아를 찌릿 노려보았다.




벤트민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헬리아의 말을 막으려는 순간이었다.




“그야 그렇잖아? 벤트민은 엘프 왕국의, 리프레 가문 가주의 이름이니까.”




헬리아가 발 빠르게 진실을 입에 담았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침묵이 파도처럼 밀려와 좌중을 때렸다.




“그걸, 어떻게…….”




벤트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모르는 척으로 응수해야 했다.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헬리아의 말이 맞다고 인정해 버리는 꼴이었다.




“벤트민. 자네, 엘프였나?”




“오, 오효효. 세상에. 그냥 엘프도 아니고 가문의 가주라니.”




“직접 만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건 좀 충격이네.”




다른 퍼스트 오더들도 이건 몰랐는지 한마디씩 던졌다.




루드거도 꽤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벤트민이 리프레 가문의 가주였다니.’




쉐이드워든의 추적자들과 싸운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그리고 그 쉐이드워든을 보낸 것이 바로 리프레 가문의 가주다.




‘퍼스트 오더 벤트민. 그 정체가 설마 엘프의 일곱 가문 중, 가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리프레 가문의 가주였을 줄이야.’




루드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로 오더를 향했다.




‘제로 오더는 그런 자를 부하로 부리는 건가.’




둘 다 아주 오래 살아온 존재이나, 제로 오더가 격으로는 더 높다는 소리겠지.




아니면 바사라가 봉인된 과거, 그때 둘 사이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루드거는 이걸 기회로 여겼다.




벤트민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꽤 큰 소득이다.




이것은 훗날 그녀와 대립하게 됐을 때 그녀를 찌를 무기가 되어 줄 수 있었으니까.




‘처음 봤을 때도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플란테 가문의 생존자일 테지.’




이 또한 놀라운 우연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찾던 플란테 가문의 생존자가, 사실은 검은 여명회의 세컨드 오더로 활동하고 있었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꼴이었다.




‘세디나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숨겨야겠군.’




빠르게 계산을 끝낸 루드거는 다시금 벤트민과 헬리아를 살폈다.




벤트민은 가만히 있었는데, 분노 때문에 말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최대한 궁리하는 거였다.




“……너. 나와 같은 엘프인가?”




“응? 아니. 난 엘프가 아닌데?”




“그런데 나에 대한 정보를 알다니…….”




무언가 따지려던 벤트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인정하지. 너 또한 퍼스트 오더에 어울린다는 걸.”




“오 정말? 인정해 줘서 고마워!”




“나중에 왕국에 들리는 일이 생긴다면 꼭 날 찾아오도록 해. 극진한 대접을 해 줄 수 있으니까.”




벤트민은 기왕 정체가 드러난 김에 그냥 시원하게 드러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말은 차분하게 하지만, 그 이면에는 헬리아를 향한 살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헬리아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즐겁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오래 산 엘프 원로와 오래 살아온 악마의 대립인가. 끝내주는 매치업이군.’




세상 어디를 가도 이런 진귀한 광경은 볼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제로 오더가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그 한마디에 좌중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오늘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로, 새로 구한 퍼스트 오더 헬리아를 소개해 주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있지.”




두 번째라는 말에 모두가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나는 한동안 아주 먼 곳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소리지.”




“자리를 비우신다고요?”




레슬리가 믿기지 않는지 되물었다.




그것이 불충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에 조직이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안타까운 일이겠지.”




제로 오더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탁자의 끝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니 이 공간은 이대로 놔둔 채 유지하도록 하겠다. 내가 부르지 않더라도, 너희끼리라도 혹시라도 회의가 필요하다면 모여서 나눌 수 있도록.”




제로 오더가 없는 간부 회의라니.




억지로 시킨다고 해도 하지 않을 놈들인데, 과연 자율로 놔둔다면 퍽이나 모이겠다.




루드거는 당연히 제로 오더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그는 검은 여명회라는 조직 자체에 애정이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사용하기 편한 장기 말에 불과한 것들.




정말 소중했다면 자리를 비운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겠지.




‘제로 오더가 또 무엇 때문에 자리를 비우려는 건지는 모른다. 다만, 이건 어떻게 보면 내게 기회일 수 있어.’




최소한 제로 오더가 끼어들지 않는 선에서 다른 퍼스트 오더를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루드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레슬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로 오더를 향한 충성심이 깊은 그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는지 검은 불덩어리의 정신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레슬리.”




“네! 제로 오더 님.”




“이제 곧이군.”




“……네. 그렇습니다.”




“너의 소망을 이루길 바라마.”




“……!”




그 말에 감복한 레슬리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네. 꼭 이뤄 보이겠습니다.”




루드거도 그것이 정확히 무슨 계획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헤이백 공작이 경고하고, 레슬리가 호언장담할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마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일단 어떤 일이 벌어지리란 걸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 소용은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난데없이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게 될 테니까.




그때 제로 오더가 루드거를 향해 말했다.




“존 도우.”




“예. 제로 오더 님.”




“너도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마.”




“…….”




지금 이 타이밍에 제로 오더가 이쪽을 향해 한 말치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마 제로 오더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쪽이 신비의 밤에 참여한다는 것을.




그리고 레슬리와 척을 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 해 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 알겠습니다.”




기꺼이 응해 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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